강 론 말 씀

2014년 8월 22일 가해 연중 제20주간 금요일(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dariaofs 2014. 8. 22. 04:30

 

                                                                                    (마태 22,34-40)

 

<율법>

 

어떤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계명에 관해서 묻고 있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 22,36)"

당시의 율법학자들은 계명, 또는 율법 조항들을 분류하고 구분하기를 좋아했고,

그것들의 중요도나 서열에 관해서 자주 토론했습니다.

예수님께 질문한 율법학자는

자기들의 토론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의견은 어떤지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율법학자가 말한 '가장 큰 계명'이라는 말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이라는 말은 표현만 같을 뿐이고 뜻이 다릅니다.

율법학자의 말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뜻이고,

예수님의 말씀은 '계명과 율법의 근본정신'이라는 뜻입니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라는 말씀은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예언서의 근본정신이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과 예언서' 라는 말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고,

동시에 이 말은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을 뜻하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계명들 가운데에는 더 중요한 계명과 덜 중요한 계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것은 더 중요한 계명은 우선적으로 지키고

덜 중요한 계명은 뒤로 미루거나

무시할 수도 있다는 속마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에 들어 있는 수많은 율법들을 전부 다 외워서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율법학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부터 먼저 실천하고

덜 중요한 것은 미루거나 안 하는 일이 생겼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고, 무엇이 덜 중요한 계명인가?

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달랐습니다.

 

마태오복음의 산상 설교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이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8-19)."

 

이 말씀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는

"가장 작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이고,

다시 이 말씀은, "가장 작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거나

안 지키는 계명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모든 율법은 전부 다 똑같이 중요하다. 그러니 다 잘 지켜야 한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뜻과 정신은 생각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주의를 반대하신 분입니다.

예를 들면,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계명만 생각하고

정말로 아무런 일도 안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르 3,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은

십계명을 비롯해서 '하느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일들'을 뜻합니다.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한 세부 지침,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정한 규칙, 전통, 관습 등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는 말씀은 하느님의 명령(율법)이고,

레위기 11장에 있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관한 내용은 실천 지침인데,

예수님께서는 음식에 관한 그 실천 지침을 폐지하셨습니다(마르 7,19).

 

성경에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바오로 사도는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1코린 14,34)."

라고 가르쳤지만, 이것은 당시의 사회 상황에서 나온 말일 뿐입니다.

이것을 성경의(또는 성령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오늘날에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계명과 율법의 근본정신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1코린 13장).",

또는 "계명과 율법을 사랑 없이 지키는 것은 지키는 것이 아니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조금 바꿔서, "사랑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고,

사랑 없는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랑 없이 믿음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기 때문에

사랑 없는 믿음은 실천 없는 믿음이고,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