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코스마(Cosmas)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또는 다미아노)는 아라비아 태생으로 쌍둥이 형제였다고 전해오는데, 그들의 전기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므로 전설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실리시아(Cilicia)의 에게해(Aegean Sea) 근방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의료기술이 남달리 뛰어나 그 명성이 널리 퍼져서 명의라는 높은 칭송을 듣고 살았다.
또한 열렬한 그리스도인이던 두 형제는 박해가 일어나자 실리시아의 집정관 리시아스(Lysias) 앞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신앙 때문에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이들 외에도 그들의 형제이던 안티무스, 유프레피우스 그리고 레옹시오도 함께 처형당하였다. 이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코스마와 다미아누스는 이발사의 수호자이고, 루카(Lucas) 복음사가 다음으로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다.
강론 : (루카 9,18-22)
<나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루카 9,20-22)."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는
여러 가지 뜻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너희는 왜 나를 믿고 따르느냐?"
"지금 나를 따르고 있는 너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나를 믿고 따르는 너희는 누구이냐?"
"너희는 누구를 믿고 따르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이고,
이 말은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입니다.
어떻든 대답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라고 생각했고, 믿었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사용한 '주님'이라는 말은 단순한 존칭이었지만,
사도들이 사용한 '주님'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왜 나를 따르느냐?" 라고 물으셨다면,
사도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고 따릅니다." 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4,19).
요한복음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그들은 "주님을 메시아로 믿기 때문에 따릅니다."
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요한 1,41).
만일에 예수님께서 "지금 나를 따르고 있는 너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셨다면,
사도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청했던 것처럼(마르 10,37)
예수님의 오른쪽 자리와 왼쪽 자리를 달라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에 대한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마태 19,27).
그러나 승천과 성령강림 후의 사도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은 그런 높은 자리나 어떤 보상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했습니다(사도 2,40; 4,12).
만일에 예수님께서 "나를 믿고 따르는 너희는 누구이냐?",
또는 단순하게 "너희는 누구이냐?" 라고 물으셨다면,
사도들은 "저희는 주님의 종입니다.",
또는 "주님의 일꾼(제자, 사도)입니다." 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에 "저는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첫 번째 교황입니다." 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있을까?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그런 대답을 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제자가 될 때 이미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너는 누구냐?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저는 누구입니다." 라는 대답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저의 주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에게는 "나는 누구를 믿는가?" 라는 질문과
"나는 누구인가?(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상 하나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질문에 "저는 교회에서 제일 높은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교황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예수님한테 크게 혼날 것입니다.
교황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에도
자신의 직위나 계급이나 신분 같은 것을 말하다가 혼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너는 누구냐?" 라는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하려면,
지금 자기가 누구를 믿고 있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잘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겪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루카 9,22) 그리스도"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처럼 고난을 겪을 각오를 하고, 죽음도 각오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신 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입술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 고백은 '삶'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신 것은(루카 9,21)
일차적으로는 당신의 부활 때까지 침묵을 지키라는 뜻인데,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말로만 고백하지 말고
'삶'으로 고백하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 때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나버린 제자들은
그때까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신 분, 주님'이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공개적으로 고백할 자격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고백을 공개적으로 하려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해야 합니다.
(또는 온 삶으로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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