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0월 1일 가해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대축일

dariaofs 2014. 10. 1. 02:30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의 알랑송(Alencon)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Louis Martin)과 젤리 게랭(Zelie Guerin)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coise Therese Martin)이며, '소화(小花) 테레사'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석 달 동안 심하게 알았는데, 때로는 경련과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의식을 잃기도 하였다. 그녀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테레사는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넘쳐 드는 것을 체험하였고,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잊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고 한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 즉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며 필요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혈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성탄절에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고통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테레사는 14세에 리지외의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청하였다. 이 카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테레사의 두 언니, 마리(Marie)와 폴린느(Pauline)가 입회해 있었다. 그러나 그 수녀원에서는 테레사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하였다.

 

테레사와 그녀의 아버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를 청하기도 하였고, 또 아버지와 언니 셀린느(Celine)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게 개인적으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다. 이때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 하고 대답하였는데, 그녀가 1888년 4월 9일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것은 나이 15세 때였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테레사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Marie Gonzague) 원장수녀에 의해서 생긴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였다. 테레사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생활에 열중하였다.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녀가 이룬 하느님과의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는 그 어느 수녀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1893년 테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다. 그녀의 ‘작은 길’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죽기 18개월 전에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죽기 얼마 전 병상에 눕기까지 테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1897년 9월 30일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은 일 년 후 카르멜 수녀회의 통상 관습대로 그녀의 자서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여러 카르멜 수녀원에서 읽혀졌고, 이 자서전을 요구하는 부수가 점차 늘어나자 공식적으로 이를 출판하였다. 그 후 15년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테레사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이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 비오 11세는 테레사가 죽은 지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아기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선포하였다.

테레사는 로마를 순례한 것 외에는 고향인 알랑송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살았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고, 1944년 5월 3일에는 성녀 잔 다르크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1997년 6월 10일 성녀 테레사를 보편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녀가 남긴 저서로는 “성녀 소화 테레사 자서전”, “성녀 소화 테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있다.

 

강론   :   (마태 18,1-5)

 

<어린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데레사 성녀는 어린이처럼 살았던 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생각한다면,

데레사 성녀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데레사 성녀가

하늘나라에서 자기가 가장 큰 사람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자기를 그렇게 대우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러면 참으로 이야기가 이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데레사 성녀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아마도 성녀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면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자기가 가장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낮추는 것이라면

그것은 거짓 겸손이고, 위선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는 원래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러면서 남들은 다 자기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 됩니다.

(하늘나라는 그런 사람들만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는 남들보다 더 높거나 낮은 사람이 없고,

모두가 다 가장 큰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낮춘다는 말에는 함정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낮춘다는 말이 사전적으로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나는 지금 남들보다 더 높은 사람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나를 낮춰야지." 라고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잘하는 일로 보이긴 하지만,

"나는 남들보다 더 높은 사람이다."

라는 그 생각이 위선에 빠지는 함정이 됩니다.

 

자기가 남들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겸손을 실천하면서도 그것이 겸손인 줄 모르는 것,

자기를 낮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는 원래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그러니 겸손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겸손을 주제로 강론을 하면서,

자기가 겸손하게 행동한 일을 예로 들어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게 된 경우입니다.

진짜로 겸손한 사람은 "나는 겸손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어린이처럼'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어린이가 어린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실제로 어린이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인데도 어린이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어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는 누구든지 하느님 앞에서는 어린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라."

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요한 21,5)"

이 말씀에서 '얘들아'는 뜻으로는 '(어린)아기들아'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큰 어른들을 어린 아기들이라고 부르신 것은

그들이 그런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라고 해석됩니다.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이 같은 존재.

하느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자기를 어른이라고 내세울 수 없는 존재.

 

겸손은 자기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또 박사학위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경력과 업적을 쌓았다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냥 바벨탑을 쌓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얻는 존경, 인기, 명성 등이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인데,

남들보다 조금 더 반짝거린다고 해서 먼지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지금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깨닫는 것에서부터

겸손이 시작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못 잡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요한 21,5).

제자들의 대답은 물고기를 못 잡았다는 뜻이지만,

자기들이 어린 아기들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도 들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그들은 비로소

진정한 사도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수많은 군중 앞에서 설교를 하고,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여러 가지 놀라운 기적을 행하게 된 것은

자신들의 지식과 능력을 키웠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기 전에 사도들이 모여서 한 일은 '기도'였습니다(사도 1,14).

기도 외에 교리 공부나 설교 연습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고,

그들은 어린이로 변화되어서 어린이의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높은 데에서 오는 힘'(루카 24,49)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만일에 그들이 어린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자신들의 능력과 지식으로 사도직을 수행하려고 했다면,

그 교만 때문에 성령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