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0월 2일 가해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수호천사 기념일)

dariaofs 2014. 10. 2. 01:00

 

 

하느님은 우리가 날때부터 각 사람에게 천사들을 보내시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전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비춰주시고 보호해주신다. 각 사람을 보호해주는 천사를 수호천사라고 한다.

 

*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 *
저를 비춰주시는 수호천사여,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시고 지켜주시며 인도하시고 다스리소서. 아멘

 

강론   :   (마태 18,1-5.10.)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수호천사 기념일을 맞아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대재난이나 대형 참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을 때에

그들의 수호천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 질문은 "하느님은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이기도 합니다.

(또는 "그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신학자들(또는 사목자들)은

어떻게든 대답하려고(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설명이) 공감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공허한 말일 때도 많습니다.

 

정답은 "모른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모른다는 대답만 하는 것도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인간 세상에는 정말로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신약성경에서는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들 탓도 아니고, 그것이 죽어야 할 이유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그 아기들을 순교자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고, 안 믿었고,

자기들이 예수님 때문에 죽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때 그 아기들에게는 수호천사가 없었을까?

있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 요셉에게 빨리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말해 준 천사는

왜 그 아기들의 부모들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비슷한 질문을 계속 해 봅니다.

'토빗기'의 여주인공 '사라'는

'아스모대오스' 라는 악귀 때문에 결혼할 때마다 신랑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신랑이 일곱 명이나 됩니다.

'사라'는 나중에 토비야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지만,

이유도 모른 채 죽은 그 일곱 명의 신랑들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욥기'를 보면,

하느님과 사탄이 욥을 두고 내기를 하는 바람에

욥이 모든 것을 잃었다가 나중에 다시 원상 복구되는데,

처음에 죽은 욥의 아들 일곱과 딸 셋,

그리고 욥의 머슴들은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욥' 자신은 시련을 통해서 하느님의 일을 더 잘 깨닫고 믿게 되었지만,

죽은 아들들과 딸들과 머슴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아예 없었지 않은가?

 

'요나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요나를 니네베에 보내서 멸망을 예언하게 하셨으면서도

그 도시를 심판하지 않으신 이유가 나옵니다.

"...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 4,11)"

니네베는 어른들의 죄를 보면 심판해야 할 도시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도시에 있는 어린이 십이만 명과 수많은 짐승들이 가엾어서

그 도시를 심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의 수가 십이만 명이 아니라 한 명뿐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하느님인데 인간 역사를 보면

아무 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어린이들이 너무 많고, 지금도 많습니다.

어른들의 죄 때문에 무죄한 어린이들이 죽는 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일까?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죽음을 보고만 계실까?

수호천사가 있다면 최소한 어린이들은 지켜 주어야 하지 않은가?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비극이 너무 많습니다.

(아마도 세상 끝 날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의 요셉처럼 자신의 모든 고난이 하느님의 섭리였다고

나중에라도 깨닫게 되면 다행한 일인데, 그래도 요셉은 죽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죽어버리면 섭리를 깨달을 기회도 없습니다.

(죽은 다음에 저 세상에서는 그것을 깨닫고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 깨달음을 지상의 부모에게 전해 줄 수가 없으니...)

 

수호천사 기념일 강론으로

"하느님은 수호천사를 통해서, 또는 직접,

우리를 항상 보살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자." 라고 말하면 간단한데...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 큰 고통과 슬픔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말이 무슨 도움이 될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울어 주던 여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 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루카 23,28-31)"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한다는 말씀은

죄가 없어도 억울하게 죽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죽음이 없게 하려면 전부 다 회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려면

질문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특정 죄인 한두 명만 탓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받아들이면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ㅡ 수호천사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 서로를 도울 때

비로소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