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지금여기 강론대- [임상교 신부] 늑대 냄새와 양 냄새

dariaofs 2014. 10. 3. 03:00

10월 5일 (연중 제27주일) 마태 21,33-43

 

청양성당에서 공동체와 3년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주임 사제라는 직위로 파견 받아 생활하고 있지만 저는 제가 청양성당 공동체의 주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 동반하는 사람, 그리고 필요할 경우 도움을 주고 도움도 받는 사람, 사실 저는 공동체에 도움을 드리는 것보다 도움을 받을 때가 더 많습니다. 저는 그저 청양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본당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주방 자매님을 고용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밥을 하고 설거지, 빨래, 청소를 직접 합니다. 주방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여성들의 위대함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 가정을 가꿔 왔을까? 처음에는 한 끼 식사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청소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잘 안 됩니다. 이제 하루 한 끼 식사를 원칙으로 정하고 삽니다. 그래도 필요한 만큼의 힘은 생겨납니다.

 

지난 9월 25일, 일일주점을 열었습니다. 석면 광산과 일반폐기물 처리장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청양 강정리 주민을 돕고 석면 광산과 폐기물 처리장의 실태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청양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청양성당 공동체가 주관했던 이 자리에 천여 명의 시민이 방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음식 봉사와 서빙 그리고 재능 기부를 하셨던 본당 공동체 구성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의 환한 미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기뻤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러고 보면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목자는 혼자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종께서 말씀하신 양 냄새가 나는 사목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사목자는 사목자의 냄새가 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양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양과 함께 양 속에 살면서 공동 운명체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사목자입니다. 사목자가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소출은 오직 한 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단순한 양으로서의 백성이 아니라 사목자의 냄새를 풍기는 양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성장하는 성숙된 양, 그래서 다른 이들, 특히 주님께서 사랑하신 가난한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함께 길을 걷는 사목자의 냄새를 풍기는 양입니다.

 

주님께서 풍기신 냄새를 맡습니다. 그리고 그 냄새를 따라서 걷다보면 제게도 주님의 냄새가 밸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가끔 짜증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방송에 보험과 대출에 관한 광고가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자부심과 공포를 이용한 유혹에 많은 사람들이 빠집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광고 선전을 하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연예인과 아나운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정하게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듭니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저 말을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단순한 연기일까? 그러면 저 사람들이 번 돈은 정당한 돈이 되는 것일까?

 

   

사진출처 = www.flickr.com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정부와 여당의 횡포 그리고 야당의 무력함에 감탄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렸던 대통령이라는 여자의 연기력과 그 연기력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수고한 방송의 기술에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리고 놀랍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는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민중의 냄새, 시민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저만의 느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느끼는 저 사람들의 냄새는 짐승의 냄새입니다. 양들 속에서 양의 탈을 뒤집어 쓴 늑대의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늑대처럼 변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의 일베, 서북청년단 재건을 외치는 사람들, 어버이연합, 아줌마부대, 방사능이 검출된 일본산 고철을 수입하는 사람, 군피아, 철피아, 관피아, 해피아 등등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습니다.

 

양은 목자가 풍기는 냄새를 몸에 채워 나갑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부모의 체취를 그대로 간직하듯이 양의 상태는 목자의 상태를 알려줍니다.

 

좋은 포도를 심었는데 들포도가 나는 이유는 포도밭에 있는 일꾼이 들포도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씨앗은 가능성입니다.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가능성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움직임, 즉 투자가 필요합니다.

 

좋은 포도를 맺어야 주인에게 소출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일꾼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좋은 포도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자의 첫 번째 대상은 자신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해 줘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성장과 성숙에 필요한 것, 건강한 일꾼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양들의 삶과 유리된 그 무엇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양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삯꾼들의 횡포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들 속에서 위장한 채 숨어 있는 늑대는 배가 고프면 본색을 드러냅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이전에는 양과 늑대를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그리고 양과 늑대의 구별과 동시에 늑대의 잔인함과 속임수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늑대는 소출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을 물려고 덤빕니다. 그러나 늑대가 맞이하게 되는 결말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마태 21,41)

 

복음을 묵상하다가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교회의 현실은 그리고 그 상태는?’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렇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떻게 현실을 살고 어떤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가?’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