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둘이서 백제의 역사를 돌아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그 시간들 ....... 20090719
백제 왕릉원 (능산리 고분군 : 사적 제14호)
왕릉원은 부여읍 능산리 산15번지에 위치한 해발 121 m의 능산리산의 중턱에 있는 무덤들로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뒤쪽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부여 나성과 인접한 곳으로 공주 구읍지에 보면 (관아동십리혀유왕릉 "부여 관아에서 동으로 10리쯤에 왕릉이 있다"') 이라 하였다.
백제 왕릉원은 동 ~ 서와 중앙에 각각 무리를 이루어 모두 3군 16기로 분포되어 있는데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고분군은 중앙의 전 왕릉군 7기이다.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 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어 백제후기 사비시대의 묘제를 살필수 있는 좋은 자료로서 위치와 규모로 보아 왕과 왕족, 그리고 상류증의 분묘로 추정된다.
최근 무덤들 서쪽에서 절터가 발굴되어 백제 금동대항로(국보 제287호)와 벡재창앙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되었다.
꽃들이 떨어진 곳이라...
백제가 무너지던 날(660년) 백제의 여인들이 충절과 굳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백마강에 몸을 던졌던 곳으로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교훈적인 이야기와 문화적 유산으로 대표된다.
백마강에서 바라보면 아직도 절벽색깔이 붉은데, 당시 백제여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백마강에 접하고 있어 백마강의 황포돛배를 이용하여 관람할 수 있다.
고란사
낙화암 바로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약수로 유명한 고란사가 있다.
낙화암에서 떨어진 백제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백제 시대 임금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떠오게 하였는데 약수터 주변에서 자라는 고란초를 띄워오게 하여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이 약수를 즐겨 마셔 원기가 왕성하엿다고 한다.
* 고란약수의 전설
아득한 옛날 소부리(옛부어지명)에 살던 노부부의 이아기다. 부부의 금실은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으나 늙도록 자식이없어 늘 되돌릴 수 업는 세월을 한탄하고 있던 중 어느 날 할머니의 꿈 속에 일산의 도사로부터 부소산 강가,
지금의 고란사 바위에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 나오는 강한 물, 곧 유강이 합한 음양 약수가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는 좋아서 다음날 새벽에 남편을 보내 그 약수를 마시고 오게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걱정에 찬 할머니는 다음날 아침 약수터로 가봤더니 웬 간난아이가 남편의 옷 속에서 울며 누워 있었다.
도사가 약수 한 잔을 마실 때마다 삼년이 젊어진다고 한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할머니는 간난아이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는데 후에 그 아이가 자라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백제시대의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