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의 사바리아(Sabaria) 태생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이교도 장교의 아들로 부모가 파비아(Pavia)로 전속될 때에는 15세였다. 이때 자신의 뜻과는 달리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로마(Roma)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예비자가 되었다.
아미앵에서 지내던 337년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는데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를 거지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가 나타나 “아직 예비자인 마르티누스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 신비 체험 후 마르티누스는 18세 때 세례를 받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푸아티에(Poitiers)의 힐라리우스(Hilarius)를 찾아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먼저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고, 일리리쿰(Illiricum)으로 와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와 싸움으로써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였다. 그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아리우스파이던 밀라노(Milano)의 주교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는 잠시 갈리나리아 섬에 숨어 있다가 360년에 프랑스 지방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푸아티에의 주교인 성 힐라리우스로부터 도움을 받고 리귀제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이윽고 다른 은수자들이 그에게 몰려오므로 이 공동체는 갑자기 큰 공동체가 되었는데, 이것이 프랑스에서의 첫 번째 수도 공동체가 되었다. 이곳에서 10년을 지낸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개인생활은 마르무티에(Marmoutier)에서 은수자로서 계속 생활하였다.
그가 정열적으로 주교직을 수행하니 이교 신전의 파괴와 개종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는 또 계시와 환시로도 유명하며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또한 그는 프리실리아누스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고 격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는 프랑스 지방의 최고의 성인이며,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이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인 마르티누스의 경당은 유럽의 주요 순례지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강론 : (루카 17,7-10)
<의무가 아니라 사랑과 기쁨으로>
11월 11일의 복음 말씀은 루카복음 17장 7절-10절, "겸손하게 섬겨라."인데,
여기에 나오는 주인과 종의 모습은 당시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어떤 종이 하루 종일 들에서 일을 하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주인은 그 종에게 "수고했다. 어서 저녁을 먹어라." 라고 하지 않고,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라고 말합니다.
또 주인은 먹고 마신 다음에는 종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주인은 나쁜 사람이고 종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이 종에게 그렇게 일을 시키는 것과 종이 그렇게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노예제도가 정당하다는 뜻도 아니고,
종의 처지란 원래 그렇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신 것은
'신앙인의 마음가짐'에 관한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우리가 하느님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우리 자신을 '쓸모없는 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실제로 쓸모없는 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는 말에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해서,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 생색 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나오는 '쓸모없는 종'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시편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이 구절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해 감사를 드리면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찬미가입니다.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그 사랑과 자비는 하느님 쪽의 의무가 아닙니다.
무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를 드릴 뿐인데,
그 기쁨과 감사는 저절로 겸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애인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
기뻐하고 고마워하면서 자기도 애인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합니다.
오직 순수한 기쁨으로 주고받는 그것이 진짜 선물입니다.
선물을 내놓으라고 서로 요구하거나, 또는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주거나,
준 다음에 생색을 낸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세금이 되어버립니다.
신앙생활은 받고 있는 사랑에 기뻐하면서 사랑으로 응답하는 생활입니다.
하느님께 억지로 세금을 바치는 생활이 아닙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했을 때,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기꺼이 스스로 종이 되어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마리아가 진짜로 종이었다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 잉태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마리아의 응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통고만 하고 떠났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면,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정반대의 모습이 나옵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은 종이 아닌데도 종처럼 행동한 사람인데,
마리아와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루카 15,29)."
큰아들은 자기가 종이 아닌데도 종처럼 일한다고 생각했고,
계속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종이 아닌데도 종처럼 자기를 낮추었고,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기뻐했습니다(루카 1,47).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의 경우에
그는 스스로 아들 자격을 버리고,
아버지의 '품팔이꾼'이 되려고 했습니다(루카 15,19).
이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아들 자격을 버리려고 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옥에 가겠다고 말하거나
자기에게 천벌을 내려달라고 말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작은아들은 자기가 버린 아들의 자격을 되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이고 겸손입니다.
큰아들은 자기가 항상 사랑 받는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사랑 받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종의 의무감'이 아니라
'자녀의 사랑'으로, '사랑받는 자녀의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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