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자연과학자들 가운데 최초의 위인"
성 알베르투스(Albertus, 또는 알베르토)는 남부 독일 슈바벤(Schwaben) 지방에 있는 도나우 강가의 소도시 라우인겐(Lauingen)에서 그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23년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 법률을 전공하던 시기에 가족들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쾰른(Koln)에서 수련 기간을 보내고 신학을 전공한 알베르투스는 1220대말 힐데스하임(Hildesheim)을 비롯하여 프라이부르크(Freiburg),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그리고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강의하였다. 쾰른으로 돌아올 즈음에 그의 지식과 강의에 대한 명성은 날로 치솟고 있었다.
1243년 혹은 1244년에 파리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획득하여 1245년부터 그 대학의 교수로 강의하였다. 이 시기 그의 제자로는 훗날 위대한 신학자가 된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가 있었다. 그는 토마스의 천재성을 일찍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는 지적으로 나의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다.” 이말 그대로 토마스 데 아퀴노는 1274년 죽을 때까지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 지냈다.
1248년 도미니코회는 쾰른에 ‘수도회 대학’(Studium Generale)을 설립하고 초대학장에 알베르투스를 임명하였다. 그는 쾰른의 수도회 대학 철학과 교수로서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1254년에 알베르투스는 독일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어 로마(Roma)로 갔는데, 그곳에서 빌리암 아르무르의 공격에 대항하여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데 진력하였다. 빌리암은 그 후 알렉산데르 4세 교황에 의해 단죄되었다. 그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교황의 신학 고문으로서 봉사하였다.
알베르투스는 1257년 관구장직을 사임하고 학업에 전념하다가 1259년 타렌타시아의 베드로(Petrus)와 토마스 데 아퀴노와 더불어 도미니코회의 새로운 교과 과정을 작성하였다. 그의 소망에 반하여 그는 1260년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서임되었으나 쾰른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2년 후에 사임하였다.
그는 1274년의 리옹(Lyon) 공의회에서 크게 활약하였는데, 특히 로마와 그리스 교회의 일치에 공헌하였다. 또한 알베르투스는 1277년 파리(Paris)의 스테파누스 탕피엘 주교와 그 대학의 신학자들에게 대항하여 토마스 데 아퀴노와 그의 입장을 옹호한 사건도 유명하다.
그 당시 알베르투스는 소위 만물박사로 통한 듯하다. 그의 저서에는 성서와 신학 일반은 물론 설교,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까지 두루 섭렵한 논문들이 많이 있으며, 그의 관심은 천문학, 화학, 생물학, 인간과 동물의 생리학, 지리학, 지질학 그리고 식물학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특히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감각-경험으로 얻는 지식의 유효성 및 조직 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치 확립 등이 돋보인다. 토마스 데 아퀴노는 이런 종합을 완성한 신학자이다.
성 알베르투스는 1931년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학자 칭호와 더불어 시성되었고, 과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그는 위대한 자연과학자들 가운데 최초의 위인이었다.
강론 : (루카 18,1-8)
<기도>
11월 15일의 복음 말씀은 루카복음 18장 1절-8절,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어떤 고을에 불의한 재판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 재판관은 과부 한 사람이 와서
자기와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졸라도 들어주지 않다가
계속 찾아와서 조르자 결국 그 과부가 바라는 대로 판결을 내려 줍니다.
이 이야기를 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7-8)."
하느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올바른 재판관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의 뜻은,
"하느님은 불의한 재판관처럼 미적거리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미적거리신다고 느낄 때가 많고,
또는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것으로 느낄 때도 많습니다.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는 것이 신앙생활의 어려운 점입니다.
(물론 기도하자마자 바로 응답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여라." 라는 말과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라는 말은
겉으로만 보면 모순입니다.
지체 없이 판결이 내려진다면 끊임없이 기도할 필요가 없고
그냥 한 번만 기도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지체 없이(즉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하면,
"하느님은 미적거리시는 분이 아니다."는
"하느님이 미적거리신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도
사실은 미적거리시는 것이 아니다."입니다.
늦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들의 생각일 뿐이고,
사실은 가장 적합한 때에 응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지체 없이' 라는 말은 '인간들이 바라는 때에 즉시' 라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즉시' 라는 뜻입니다.
'올바른 판결'은 '인간들이 바라는 판결'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공정한 판결'입니다.
내 욕심대로 청하고, 내가 청하는 대로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이기적인 기복신앙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善)이 되고 이익이 되는 것을 청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적합한 것인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에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해가 되는 것을 청한다면,
그것을 기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올바른 지향으로 청한다고 해도
그 시기를 우리가 마음대로 정하면 안 됩니다.
'때'를 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요나서'가 좋은 예입니다.
요나는 니네베가 멸망을 당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화를 냈습니다(요나 4,1).
그때 하느님께서는 니네베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은 당신의 뜻이 아니라고
요나를 타이르셨습니다(요나 4,11).
어떻게든 사람들을 회개시켜서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없다." 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믿음을 찾아볼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미적거리신다고 생각되어도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기다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지 못하면 기다리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만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또 처음에는 믿고 기다린다고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이 점점 더 약해질 수 있고,
결국 기다리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믿는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의 일에는 무한정 기다릴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시험은 응시 자격에 나이 제한을 두어서
그 나이가 넘으면 시험 응시를 포기해야 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지향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또 원래 실력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시험공부를 제대로 안 한 것일 수도 있고,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희망이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기도할 때에는 네 가지를 잊으면 안 됩니다.
'올바른 지향, 끊임없는 기도, 노력, 끈질긴 기다림'이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것을 청해야 하고,
끝까지, 즉 기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고,
자기 자신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하고, 끈질기게 기다려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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