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2년 12월 8일 다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dariaofs 2012. 12. 8. 07:12

 

                                                                                                         (루카 1,26-38)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카 1,28)."

(새번역 성경의 '계시다.'는 '계신다.'로 바꾸는 것이 옳습니다.)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믿음은

예수님의 어머니시니까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지만,

가브리엘 천사의 '은총이 가득한 이여' 라는 말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라는 말을

그 믿음의 중요한 근거 구절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잃게 되었고,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셨다고 해서

그들과 관계를 끊으신 것도 아니고, 그들을 멀리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죄를 짓기 전에도, 죄를 지은 후에도,

항상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들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에

하느님을 피해서 숨은 것을 생각하면(창세 3,8)

하느님께서 그들을 멀리 밀어내신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것입니다.

('죄'는 사람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께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고,

또 하느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마리아가 아담과 하와의 원죄 이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계시는 분임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0절의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함께 있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으로써 '동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선택하시고,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신 일은

마리아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지만,

그 이후 마리아께서는 일생 동안

스스로 하느님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하신 분이고,

하느님을 닮으려고 노력하신 분이고,

하느님과 동화되려고 노력하신 분입니다.

('선택'과 '부르심'은 인간의 응답으로 완성됩니다.

일방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공경합니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너는 사제들이 어떤 가르침을 내릴지 이렇게 물어보아라.

`어떤 사람이 봉헌된 고기를 옷자락에 담아 가져가는데,

그 옷자락이 빵이나 삶은 요리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다른 어떤 음식에 닿으면,

그것들도 거룩해집니까?`'

그렇게 하자 사제들은 '아닙니다.' 하고 대답하였다(하까이 2,11-12)."

 

특별한 복장을 하고 하루 종일 성당에서 지낸다고 해서

저절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삶과 영혼을 거룩하게 하려고 스스로 노력해야 거룩해집니다.

 

(미사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성당에 있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미사의 은총을 받아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몸은 성당에 있었지만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하는 생활이고,

하느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생활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어떤 사람은 환난이나 박해 때문에(또는 먹고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본의 아니게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마태 13,21),

어떤 사람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때문에

(하느님보다는 세속의 일에 더 정신이 팔려서)

하느님을 멀리하기도 합니다(마태 13,22).

 

이처럼 '항상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닮고, 하느님과 같아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마태 7,13-14).

 

어떤 부대 대원들이 흔히 하는 말,

'아무나 000 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000 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말을 신앙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아무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곳은 하느님 나라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지만,

'아무나' 구원하러 오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부르심'만으로 구원사업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쪽에서 '응답'해야 완성됩니다.

 

지금 마음과 정신이 어디에 가 있습니까?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