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3,1-6)
<마음 길>
세속의 달력으로는 지금이 연말이지만
교회의 전례력으로는 대림 제1주일 때 해가 바뀌었으니 지금은 연초입니다.
대림절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시기이고,
대림절 때 강조하는 회개 역시 마무리를 잘하기 위한 회개가 아니라
시작을 잘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루카 3,4-5)."
복음 말씀에서는
회개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주님의 길'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가 주님께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어떻든 그 길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 길'입니다.
길을 곧게 내라는 말은 구부러지고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으라는 뜻인데,
세속의 유혹이나 걱정, 근심 같은 것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아서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가지라는 권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걱정할 것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일도 많아서
머리속과 마음속이 복잡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한 마음 길을 곧게 내려면
우선 먼저 어린이처럼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너희가 이처럼 지극히 작은 일도 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것들을 걱정하느냐?(루카 12,25-26)"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면 자기가 하고, 할 수 없다면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골짜기를 메우라는 말은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이기심과 탐욕 등을 없애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이왕이면 좀 더 잘 먹고 잘 살면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생각 자체를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느님과 이웃을 잊어버리면,
그래서 자기 자신만 생각하게 되면, 그게 바로 이기심과 탐욕이 됩니다.
"'......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19-21)."
혼자서만 잘 살려고 하지 말고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뭔가를 주실 때에는
혼자 독점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산과 언덕을 낮추라는 말은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지라는 권고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바벨탑을 하나씩 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은 긍지, 자존심, 보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허영, 자만심,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아부를 칭찬이나 존경으로 착각하면 사탄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세금에 관한 논쟁 장면을 보면,
율법학자들과 사제들이 보낸 사람들이 예수님께
'저희는 스승님께서 올바르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가리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고 말하는데(루카 20,21),
우리가 보기에는 이 말이 사실 그대로를 말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말은 사실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 아첨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아첨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으셨고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꿰뚫어 보셨습니다(루카 20,23).
복음서를 보면, 마귀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고 하거나,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귀들의 말은 존경이 아니라 쫓겨나는 것을 피하려는 아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이 그렇게 아부해도 현혹되지 않으시고
마귀들을 단호하게 쫓아내셨습니다.
굽은 데는 곧게 하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라는 말은
앞에서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라고 했던 말과 같습니다.
굽은 길과 거친 길은 죄에 물든 생활을 뜻하고,
곧은 길과 평탄한 길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신앙인에게 대림절은 연말이 아니고 연시(새해)이기 때문에
이미 새로운 마음으로 새 생활을 시작하고 있어야 할 때입니다.
(괜히 들떠 있는 세속의 연말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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