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3,10-18)
<메시아>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루카 3,16-17)."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말을 보면
메시아의 '구원'이 아니라 '심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는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심판자' 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메시아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이 처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시아의 심판은 구원받을 사람과 처벌받을 사람을 분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심판을 함께 받아도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심판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처벌의 심판이 됩니다.
'회개'는 심판을 받기 위한 준비인데,
처벌을 피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고 구원을 받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심판을
'알곡'과 '쭉정이'를 분류하는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밭에서 가라지를 뽑아내는 일로 표현하십니다(마태 13,30).
'알곡'과 '쭉정이', 또는 '밀'과 '가라지'로 표현되어 있지만,
이것이 구원받을 사람과 처벌받을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구원을 받아들인다면 전부 다 알곡(밀)이 될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이 거부한다면 전부 다 쭉정이(가라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각자 스스로 선택할 일입니다.
또 한 번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알곡(밀)이었다가 쭉정이(가라지)로 전락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쭉정이(가라지)였는데 회개해서 알곡(밀)이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탄절 때 보게 되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에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무서운 심판자의 모습이 없습니다.
또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애 동안
사람들을 심판하거나 처벌하는 일을 하신 적이 없고
오직 자비와 사랑만을 베푸셨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은
아직 예수님이 지상에서의 활동을 시작하기 전인데도
'종말의 처벌자'를 미리 소개한 것이 아니라
'그 심판 때의 처벌을 피하게 해 주시려고 오시는 구원자'를
소개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한 말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쭉정이인 너희들을 알곡으로 만들어서 구원하실 분이다.
그분이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려면 지금 회개하고 알곡이 되도록 하여라.
만일에 너희가 회개하지도 않고, 또 그분을 거부한다면
쭉정이인 너희는 알곡이 되지 못하고,
쭉정이인 채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이 알곡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회개도,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알곡이 되어 있으니까
그런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이 죄인 취급했던
가난한 일반 백성들, 여자들, 어린이들, 세리들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기들을 쭉정이로 생각했고,
그래서 알곡이 되기를 소망했고,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교도소 사목하던 시절에 늘 느꼈던 일인데,
재소자들의 고해성사(회개)가 대체로
일반 신자들의 고해성사(회개)보다 훨씬 더 진실하고 성실했습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힌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알곡(의인)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적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재소자는
자기의 억울한 사정만 하소연하고 회개 같은 것은 할 생각도 안 합니다.
(원한과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재소자는 복수할 생각만 하기도 합니다.)
교도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간에
진정한 회개는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메시아의 심판을 시험으로 비유한다면,
그 시험은 정원제가 아니고 자격제이고, 상대평가가 아니고 절대평가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라고 방심하거나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 라고 자만하다가 탈락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성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자주 회개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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