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1-14)
<구유>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6-7)."
마리아가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아야 했던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방이 없어서'였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라는 말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여관에 들어갈 돈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여관비를 지불할 능력은 있었는데,
방을 먼저 차지한 사람들이 산모에게 방을 양보해 주지 않아서
외양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셉과 마리아는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라는 복음서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외양간에서 태어난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배척' 때문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그 당시에 호적 등록을 위해서 베들레헴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요셉처럼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을 것입니다(루카 2,4).
그렇다면 그들은 촌수가 멀든 가깝든 모두 친척이었을 것이고
한 집안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혈연과 가문을 중시하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기네 집안의 어떤 산모가 곧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도
아무도 방을 내주지(양보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래서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이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날 밤에 마을 밖에서 밤을 지낸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그들입니다(루카 2,8).
(그 목자들은 왜 호적 등록을 하러 자기들의 고향에 가지 않았을까?)
그래서 예수님 탄생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방을 기준으로 안쪽에 있는 사람들과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
이렇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안쪽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밖으로 밀어낸 사람들이고,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밖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즉 밖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여관이든 가정집이든 간에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에서
단 한 집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제공한 집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상 사람들 마음에 여유 공간이 전혀 없었음을 뜻합니다.
마음이라는 공간이 이기심과 욕심으로 가득 차서
다른 것을 더 받아들이거나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모실 여유 공간마저 없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들에서 야영하던 목자들에게는 아주 넉넉한 여유 공간이 있었습니다.
외양간이 넓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자들의 마음이 넓었다는 뜻입니다.
('외양간'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외양간은 아니고
짐승의 우리로 사용하는 동굴이었을 것입니다.
복음 말씀에 등장하는 목자들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동굴의 주인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에도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나는 늘 돈에 쪼들린다.' 라고 하면서
불우이웃 돕기를 할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하루, 하루 살면서도
'나는 그런대로 먹고살만 하다.' 라고 하면서
기꺼이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여관들의 주인들은 (다른 가정집의 주인들도)
이렇게 변명했을 것입니다.
"정말로 빈방이 없어서 어쩔 수 없군요."
그러나 동굴의 주인인 목자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곳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여기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집주인들은 자기 자신의 사정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목자들은 상대방의 처지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
'아기가 구유에 누워 있음'은
사람들이 구세주를 받아들였는가, 거부했는가, 를 구분하는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표징이 됩니다(루카 2,12).
방을 구하는 산모를 밀어내서 아기를 구유에 눕히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방을 구하지 못하고 찾아온 산모를 받아들여서
구유에라도 아기를 눕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가? 의 차이...
(예수님의 구유가 자기 안에 있는가? 어디 멀리 밖에 있는가? 의 차이.)
구세주의 구원을 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먼저 구세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의 구유가 되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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