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2년 12월 25일 다해 예수 성탄 대축일

dariaofs 2012. 12. 25. 00:30

 

                                                                                                         (루카 2,1-14)

 

 

 

 

<'빛'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4-5)."

 

이 구절에서 '빛'은 예수님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

 

'어둠'은 구원을 받아야 할 인간들을 뜻합니다.

이 구절에서 '어둠'은 '빛'의 적대세력을 뜻하지 않고,

'구원의 빛'을 갈망하고 있는 인간들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구원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라는 말은,

인간들이 빛을 갈망하면서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거부했음을 뜻합니다.

('깨닫지 못하였다.' 라는 번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로 바꿔야 합니다.)

 

<'어둠'인 인간들이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유.>

 

1) 자기들이 '어둠'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칭 의인들'이었던 바리사이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원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했으니 구세주가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아무리 병을 잘 고치는 명의라도

병자가 자기는 아픈 곳이 없다고 우기면(자기는 병자가 아니라고 우기면)

그 병자를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2) 예수님이 '빛'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을 믿게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끊임없이 예수님께 표징이나 증거 같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

빵 다섯 개로 많은 군중을 먹이는 등의 기적을 행하셔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도 안 믿었습니다.

사도들이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제시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들을 더 많이 만들어서 내놓았습니다.

그런 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3) 어둠이든 빛이든 간에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구원 문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적대세력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루카 17,26-30)."

 

예수님의 이 경고 말씀은 신앙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지금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다가

냉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냉담자를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만 냉담하는 경우.

 

이 경우는 교적에 냉담자로 분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냉담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건이 좋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신앙생활을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이 완전히 식어서 냉담하는 경우.

 

이 경우가 진짜 냉담자인데,

이런 경우에는 몸으로는(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마음이 식은 사람도 포함됩니다.

 

믿음을 잃어버렸지만(믿음이 식어버렸지만)

습관적으로 성당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남을 때에만 성당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신앙이 아닌 다른 이유로 성당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3) 아쉬울 때에만 예수님을 찾고 아쉽지 않으면 안 찾는 경우.

 

아쉬울 때에만 예수님을 찾는 것도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1) 사는 동안 현세적인 필요가 있을 때에만 예수님을 찾는 경우.

이런 경우는 언제든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가능성이 있긴 있습니다.

 

2) 죽은 다음에 심판대에 섰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찾는 경우.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져서 기회를 잃어버린 때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