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2월 3일 나해 대림 제1주간 수요일(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선교의 수호자)대축일

dariaofs 2014. 12. 3. 04:56

 

 

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방(Basque Provinces)의 팜플로나(Pamplona) 교외에 있는 하비에르 가족 성(城)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 또는 프란체스코)는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를 만났다. 처음에는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들은 1534년에 파리(Paris) 북부 몽마르트르(Montmartre)에서 첫서원을 발하였다.

그는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들과 함께 1537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서품을 받고, 그 다음해에 로마(Roma)로 파견되었으며, 예수회가 성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1540년에는 시몬 로드리게스(Simon Rodriguez) 신부와 함께 예수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발이 묶였다. 왜냐하면 국왕 후안 3세(Juan III)가 로드리게스 신부는 남으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프란치스코는 8개월을 하릴없이 지내다가 1541년 4월 7일에야 떠날 수 있었는데, 이때는 교황으로부터 인도의 교황대사 자격을 부여받은 뒤였다.

그는 13개월 후에 인도 중서부 고아(Goa)에 도착하였고,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의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타밀나두(Tamil Nadu)에 있는 코모린 곶(Cape Comorin)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족(Paravas)을 사목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에 그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alacca)를 찾아갔고, 1546년부터 1547년까지는 뉴기니(New Guinea)와 인접한 몰루카(Molucca) 제도와 필리핀과 가까운 모로타이(Morotai) 섬을,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였다. 그는 인도의 첫 번째 예수회 관구장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안토니우스(Antonius)라는 중국인 청년과 복음을 전하려고 출발하였으나 광둥항(廣東港)이 바라보이는 상치안(Sancian) 섬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대륙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하였고, 그 자신이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하더라도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라고 불리며, 1619년 시복되고 바로 이어서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예수회의 창설자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와 함께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7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일)와 함께 '가톨릭 선교활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강론   :   (마르 16,15-20)

 

<선교>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20)."

 

선교활동을 열심히 해서 많은 성과를 거두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가장 큰 기쁨은, 또는 진짜 기쁨은 '주님께서 함께 계심'입니다.

선교활동의 성과가 없다고 해도

그 기쁨을 얻었다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좋은 것을 얻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보시는 분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23)."

'탈렌트의 비유'에 있는 이 말은,

결과보다 과정의 성실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실한 종이 받는 상은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인데,

사실 그 기쁨은 일이 다 끝난 다음에나 얻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얻게 됩니다.

기쁘니까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주님을 위해서 일하니까 기쁩니다.

 

('탈렌트의 비유'에 나오는 첫째 종과 둘째 종이 칭찬을 받은 것은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를 더 벌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이 시킨 대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을 벌지 못했더라도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한 것.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복을 빌어서 얻어야만 기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어서 기쁘고 행복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인사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카 1,28)."

'주님께서 함께 계심' 자체가 은총이고, 복이고, 기쁨입니다.

 

이 말은 제1독서 말씀과 연결됩니다.

"... 레위인에게는 동족과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다.

그 대신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신명 10,9)."

'주님께서 함께 계심' 자체가 재산이고, 사실은 재산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선교활동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바오로 사도의 말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의무' 라는 말은,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

내가 기쁨으로 받아들인 신성한 의무" 라는 뜻입니다.

복음 선포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기쁨으로 받아들인 일이기 때문에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라는 말은,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나는 벌을 받고 불행해질 것이다."

라는 뜻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정말로 나에게 행복한 일인데,

만일에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그 행복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는 크게 불행한 일이 된다." 라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행복도 결국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행복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행복이고, 주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것도 행복이고,

주님과 함께 있는 것도 행복입니다.

 

선교활동을 열심히 해서 많은 결실을 얻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결과만'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우리는 입교자가 늘어날수록 냉담자도 늘어나는 현상을 반성해야 합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기쁨을 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기쁨 없이 전한다면 그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소식을 들은 사람이 기뻐하지 않으면 그것도 역시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우선 먼저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참으로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쁨'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야 하는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입니다.

세속적인 '재미'를 제공해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초대 교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6-47)."

 

공동체의 일치, 사랑, 기쁨, 나눔, 믿음... 등이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발로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말'로 하는 선교보다

'삶'으로 하는 선교가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나타내고,

사실상 선교는 '삶'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