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인간은 왜 존엄한가
요즘 농촌 들녘은 황량함 그 자체입니다. 생명으로 넘쳐나던 논밭은 이제 자신들의 모든 역할을 마치고 텅 빈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거센소리를 내던 나뭇잎은 이제 마지막 흔적조차 모두 내려놓고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생명을 위한 봉사를 마치고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모습입니다. 제가 너무 인간 위주로 생각하고 해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창조 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이 모든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려라”(창세 1,28) 하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묵상해보았습니다.
인간이 도대체 무슨 존재이기에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경시하고 파괴를 일삼는 인간에게 특권을 주셨을까요? 하느님은 왜 인간을 대화 상대자로 선택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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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Masacre en Corea)’이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간 황해도 신천군에서 마을 주민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5383명의 무고한 양민이 잔인하게 학살된 사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겁에 질린 여인들 표정, 어머니 뒤로 몸을 숨긴 아이의 모습, 먼 길을 끌려온 모습, 이리저리 무너진 집,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일말의 눈물과 갈등도 없이 기계와 같은 표정으로 불쌍하고 나약한 여인과 아이들에게 총을 겨눈 군인들 모습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지 느낄 수 있습니다.
2009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20여만 명의 양민이 군ㆍ경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발표한 보도연맹사건을 비롯해 제주 4·3사건, 광주 민주화 항쟁 등 한국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권 상실’의 아픔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마음 아픈 기억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살과 이념 전쟁은 지금도 매일 벌어지고 있는 슬픈 상황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 인류를 보면서 “어떻게 인간이 존엄하다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갈등이 일어납니다. 비단 조직이나 집단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 삶을 살펴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납니다. 질투와 욕심으로 독을 품고 생명을 파괴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 모습입니다.
인간 존엄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창세기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인간 존엄에 대한 근거를 찾게 됐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 권리를 인정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교우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인간이 지성을 갖고 있고 언어,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 존엄성의 근거는 아닙니다.
인간 존엄성의 근거는 우선 창조 때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대화를 나누시는 협조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동물을 사랑한다 해도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진실한 대화는 동일한 본성끼리 가능합니다.
두 번째 근거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모상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모상에 대한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과 함께함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물질적 구조는 흙에서 왔기에 모든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과 함께하기에 존엄합니다.
세 번째 근거는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초대하신 것입니다. 부자, 가난한 사람, 죄인, 의인, 병자나 건강한 사람 모두를 초대하셨다는 사실이 우리를 존엄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라는 말씀으로 마음에 있는 편견을 버리고, 곧은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을 요청합니다. 하느님 모상인 원수와 의인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느님 저에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두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닮게 하소서!”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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