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35-42)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라고 말하여, 세례자 요한은 두 제자에게 예수님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공공연하게 기적도 설교도 하지 않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표면적으로 보면, 나자렛 출신의 보통 젊은이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존재의 내면에 하느님의 신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거기로 눈을 돌리도록 제자들에게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요한이 말하는 것에 순수하게 따름으로써 자기들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했으면 하는 것은, ‘보라’라는 말입니다. 이 호소는 요한 복음에서는 중요한 장면에 쓰입니다.
한 가지는, 가시관을 머리에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시고 군중 앞에 끌려 나오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빌라도가
‘보시오, 내가 이 사람을 여러분 앞으로 데리고 나오겠소’라고 하는 장면, 다른 한 가지는 십자가에서 마리아와 요한에게 각각 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장면입니다.
두 장면 모두 표면적으로 보면 하찮은 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매우 중대한 일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똑바로 거기를 주목하라고 하는 호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복음의 장면도 똑같습니다.
‘보라’라는 말은, 사람들의 눈에는 평범한 젊은이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 예수님의 내면에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신비가 살아있는 사실에 주목하도록 호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간 그들은 그날 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시몬에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라고 전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열려 심오한 진리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일상도 그 내면으로 눈길을 돌린다면, 어떠한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대로의 심오한 삶이 있으면, 더 나아가 그 내면에 눈길을 보낸다면 하느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고, 하느님의 신비로 연결되는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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