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아녜스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인 중 한 명이다. 로마의 어느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평소에 늘 순결한 생활을 희구하여 하느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녀가 소녀티를 벗자마자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표명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성녀 아녜스는 집을 떠나 순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어느 청혼자의 고발로 신자임이 드러나 총독에게 끌려갔다. 불과 만 13세에 지나지 않았던 성녀 아녜스는 온갖 고문 기구를 진열해 놓고 위협하는 총독의 직접 심문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자 격노한 총독은 그녀를 로마의 어느 매음굴로 보냈으나, 성녀 아녜스는 그녀의 영웅적인 용덕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성공적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 다시 그녀가 총독 앞으로 이송되자 그는 참수를 명하여 그대로 실행되었다.
전해오는 많은 전설 가운데에는 신빙성이 없는 것들도 있지만, 성녀 아녜스가 순교자로서 처참하게 죽었으며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 근처의 묘지에 안장되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성녀 아녜스는 동정녀의 상징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그녀를 '어린 양'(Agnus 아뉴스; Agnes 아녜스)으로 묘사하였다.
강론 : (마르 3,1-6)
<안식일>
어느 안식일에 사람들이(바리사이들이) 장애자 한 명을 회당에 데려다 놓고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지켜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그 장애자를 고쳐 주시면
안식일 율법을 어겼다고 고발하려고 계획한 것입니다(마르 3,1-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음모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 장애자를 사람들 가운데에 서게 하시고 질문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이 내용 바로 앞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시비를 걸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마르 2,23-28).
그 이야기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관한 논쟁이고,
지금 예수님께서 장애자를 고쳐 주시는 이야기는
'안식일에 해야 하는 일'에 관한 논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서 '좋은 일'은 자비를 베푸는 일을 가리키고,
'남을 해치는 일'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일을 가리킵니다.
'목숨을 구하는 것'은 넓은 뜻으로 사랑, 자비, 선행 실천을 모두 가리키고,
'죽이는 것'은 사랑, 자비, 선행 실천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장애자를 고쳐 주는 일은 목숨을 구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당장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 장애자를
안식일이어서 고쳐 주지 않고 다른 날로 미룬다고 해서
그것을 '죽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말씀에는
"살리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죽이는 일을 하는 것과 같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발당할 각오를 하시고 '의도적으로' 그 장애자를 고쳐 주신 것은
"안식일은 어떤 일을 하는 날인가?"에 관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은, "안식일은 어떤 일을 하는 날이냐?
좋은 일을 하는 날이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날이냐?
목숨을 구하는 날이냐? 죽이는 날이냐?"입니다.
또 이 질문은 "장애자를 고쳐 주는 일은 안식일에 해도 된다."가 아니라,
"안식일에는 장애자를 고쳐 주는 일을 해야 한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해도 된다."와 "해야 한다."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해도 된다는 말은 안 해도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야 한다는 말은 안 하면 안 된다는 뜻이 됩니다.
안식일은 사랑, 자비, 선행 실천을 '해도 되는 날'이 아니라,
'해야 하는 날'입니다.
만일에 예수님 말씀의 뜻이 '해도 되는 날'이라면,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안식일에 하셔서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키신 것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지금 이 논쟁은
"하면 안 된다."와 "해도 된다." 사이의 논쟁이 아니라,
"하면 안 된다."와 "해야 한다." 사이의 논쟁입니다.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간에
안식일에는 무조건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바리사이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사랑, 자비, 선행이라고 해도
다른 날로 미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루카 13,14).
그것은 '사랑, 자비, 선행'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는 일하지 마라." 라는 계명 자체를 반대하신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 자비, 선행'은 '일'이 아니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일'이 아니니까 안식일 율법으로 시비를 걸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의 뜻이 "해도 된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 라는 점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일 미사에 참례한 것으로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고,
'사랑, 자비, 선행'의 실천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사랑과 자비와 선행은 주일이 아닌 날, 즉 평일에도
당연히 실천해야 할 '신앙인의 덕행'입니다.
주일에는 특히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따라서 미사 참례만 하고 그런 덕행 실천을 안 한다면,
그것은 주일을 제대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주말'이라고 부르고,
'노는 날'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주일'은 주말이 아니라 '주초(주간 첫날)'이고,
노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쉬는 날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쉰다는 말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일을 쉬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주일에 건전한 취미 활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과 거리가 먼 일이라면,
역시 주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말씀을 보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마르 3,6)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선과 악으로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남을 해치는 일, 죽이는 것'이라는 말을 좁은 뜻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을 고발하거나 죽이고 싶어 하는 바리사이들의 속마음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살리시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른 날도 아닌 안식일에.
예수님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시는 분이신데,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안 지키는 자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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