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월 28일 나해 연중 제3주간 수요일(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5. 1. 28. 00:30

 

 

이탈리아 로마(Rome)와 나폴리(Napoli) 중간에 있는 로카세카(Roccasecca) 가족성(城)에서 태어난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또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퀴노의 백작 란둘프(Landulph)와 어머니 테오도라(Theodora)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불과 다섯 살의 나이로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교육을 받았고, 1239년경에는 그의 교육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나폴리 대학교를 다녔으며, 1244년에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이때 가족들은 그를 강제로 데려다가 15개월 동안이나 로카세카 성에 감금시킨 적도 있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1245년에 다시 수도회로 돌아갈 수 있었고, 1245년부터 3년 동안을 파리(Paris)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프랑스 파리와 독일 쾰른(Koln)에서 성 대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 11월 15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하여 1256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250년과 1551년 사이의 어느 때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성 토마스의 스승이었던 성 대 알베르투스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없는 황소는 그의 울부짖음으로 전 세계를 가득 채울 것이다." 그 후 그는 주로 나폴리(Napoli), 아나니(Anagni), 오르비에토(Orvieto), 로마(Roma) 그리고 비테르보(Viterbo)에서 가르쳤으며, 1259-1264년 사이에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마무리 지으면서 그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ae)의 집필에 착수하였다.

파리로 돌아온 1269년에는 수도사제와 교구사제간의 논쟁에 말려들었고, 벨기에 브라반트(Brabant)의 시게르(Siger)와 요한 페캄(John Pecham) 그리고 파리의 주교 에티엔느 탕피에의 철학적인 가르침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리옹(Lyon) 공의회에 참석하여 동방과 서방 교회의 재일치 가능성을 토의하라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 1월 10일)의 부름을 받았으나, 리옹으로 가는 도중 테라치나 교외 포사 누오바(Fossa Nuova)에 있는 시토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7일 운명하였다.

그는 1323년 7월 21일에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에 의하여 시성되었고, 1567년에는 교황 비오 5세(Pius V)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리고 1880년에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모든 대학교와 대학 그리고 학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그에게 붙여진 칭호는 '보편적 박사'(Doctor Communis) 또는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모든 신학생들이 그의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주요 사상은 곧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신학자이며, 그의 사상은 그의 사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지배하고 있고, 그의 저서들은 신앙과 이성 간의 예리한 구분으로 특징지어지는 탁월한 저작들이다. 그의 미완성의 대작인 "신학대전"은 현대 가톨릭 신학의 뿌리로 받아들여질 만큼 위대한 신학 사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지적 능력 외에도 아퀴나스는 지극히 겸손하고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는 환시, 탈혼 그리고 계시를 체험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성무일도를 집필했고,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찬미가도 지었다. 또한 그는 주님의 기도(Pater Noster),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 그리고 성서 일부에 대한 주해서를 썼다. 한마디로 그는 지성과 성덕의 금자탑이었다.

 

강론   :    (마르 4,1-20)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1월 28일의 복음 말씀은 마르코복음 4장 1절-20절,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그 비유를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신 말씀입니다.

'씨'는 말씀,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밭'은 신앙인들, 또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는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씨가 길, 돌밭, 가시덤불 같은 곳에 뿌려지는 것은

농부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농부가 일을 제대로 안 했다는 뜻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밭'을 위해서 씨를 뿌립니다.

그래서 밭이 '좋은 땅'이 되지 않고,

길, 돌밭, 가시덤불 같은 상태가 되는 것과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밭'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하시는데,

사람들 쪽에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고,

이것은 예수님 탓이 아니라 사람들 자신들의 탓입니다.

 

비유의 뜻을 살려서,

예수님께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는 것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요한 4장).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생명의 물을 주십니다.

 

1)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물을 받긴 하지만,

사탄의 말을 듣다가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고 사탄에게 물을 빼앗깁니다.

이것은 씨가 길에 뿌려진 상황입니다(마르 4,15).

사탄이 빼앗아간다는 것은 마귀 들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루카복음서 저자는,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는데(루카 22,3), 유다가 마귀 들린 상태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고,

어떤 '유혹'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은 유다는

그 유혹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에게 힘으로 빼앗긴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은

말씀을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2) 어떤 사람은 물을 받고 기뻐하지만,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고 흘려버립니다.

예수님은 물을 주시는 분이지 억지로 먹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시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 있는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시다.'를 보면,

그 이야기에 나오는 병자는 예수님께서 치유의 은총을 주셨는데도

유대인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밀고합니다(요한 5,15).

아마도 당장 눈앞에 닥친 유대인들의 박해가 무서워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것은 씨가 돌밭에 뿌려진 상황입니다(마르 4,16-17).

 

그 병자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사람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요한 9,6-7).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셨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고 기적을 인정하지 않다가

결국에는 눈을 뜬 그 사람까지 회당에서 추방해버립니다(요한 9,34).

그 사람은 그런 일을 겪어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바리사이들에게 맞섰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요한 9,38).

 

3) 어떤 사람은 물을 받긴 하지만 마시지는 않고,

물보다 다른 음료수가 더 좋다고 하면서 다른 음료수를 찾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부부는 전 재산을 봉헌했다는 칭찬을 받고 싶은 명예욕을 버리지 못했고,

또 재물에 대한 욕심도 버리지 못해서,

땅을 팔고 받은 돈의 일부를 떼어 놓고 나머지만 바치면서

전부 바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사도 5,1-3).

이것은 씨가 가시덤불에 뿌려진 상황입니다(마르 4,18-19).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는

처음에 말한 '사탄의 유혹'과 두 번째로 말한 '박해'와

세 번째로 말한 '재물의 유혹'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탄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 때문에

환난과 박해도, 또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여러 가지 욕심들도

모두 사탄의 유혹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을 세세하게 구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유혹과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또는 극복하려면,

더욱 철저하게 믿어야 하고, 강한 의지로 그런 것들을 물리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기도'입니다.

 

4)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받아서 잘 마심으로써

갈증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성인 성녀들이 그런 분들입니다.

성인 명단에 없더라도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 해당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라는 씨를 뿌리기만 하시고

그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여라." 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씨를 뿌리시는 분이고,

동시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탄의 유혹을 받을 때, 환난과 박해 때문에 고생할 때,

여러 가지 세상 걱정 때문에 시달릴 때,

그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게 되면 그것을 모두 우리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열매를 주시는 분입니다(마르 4,25).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