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월 26일 나해 연중 제3주간 월요일(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dariaofs 2015. 1. 26. 01:30

성 티모테오

리카이니아(Lycaenia)의 리스트라(Lystra) 태생인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또는 티모테오, 디모테오)는 그리스인 아버지와 유대교에서 개종한 에우니케(Eunice)의 아들이다. 그는 성 바오로(Paulus)가 리스트라에서 설교할 때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 후 성 바오로의 친구이자 오른팔 역할을 하였다(사도 16,1-4). 그는 혹시 말썽이 날까봐 할례를 받은 후 바오로의 제2차 전교 여행을 수행하였다.

바오로가 유대인의 적개심 때문에 베레아(Berea)를 몰래 빠져나갈 때, 성 티모테우스는 그대로 남아 있다가 테살로니카(Thessalonica)로 파견되어 그곳의 상황을 보고하고, 또 박해 중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였다. 58년 성 티모테우스와 에라스투스(Erastus)는 마케도니아(Macedonia)로 파견되었으며, 그 후 코린토스(Corinthos)로 가서 바오로의 가르침을 명심하라는 권고를 하였다.

 

 바오로가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투옥되고 또 로마(Roma)로 이감되었을 때, 성 티모테우스도 같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그 후 그는 에페수스로 가서 그곳의 초대주교로 봉직하였다. 그는 디아나(Diana)를 공경하는 카타고리아의 이교 축제를 공식적으로 반대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티모테우스에게 보낸 바오로의 두 편지는 65년경에 마케도니아에서 썼을 것이다.

 

성 티토

성 티투스(또는 티토, 디도)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의해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그를 코린토스(Corinthos)로 파견하여 오류를 시정케 하면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게 하였다.

 

그 후 그는 사도 바오로에 의하여 크레타(Creta)의 주교로 축성되어 바오로의 사업을 이어나갔다. 그 후 그는 달마티아(Dalmatia)를 방문한 뒤 크레타로 돌아와서 운명한 듯하다. 그는 법률가 제나가 쓴 “티투스행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가 성 바오로로부터 받은 편지의 주요 내용은 영적인 권고를 비롯하여 착한 목자가 지녀야할 자질 및 크레타 신자들에게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강론   :    (루카 10,1-9)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1월 26일의 복음 말씀은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루카 10,1-9).'입니다.

일흔두 제자의 주 임무는 복음 선포와 병자 치유입니다.

"...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9)."

 

그런데 복음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첫 번째 지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꾼들을 모집하는 것도 제자들의 중요 임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하여라." 라는 뜻이기도 하고,

"가서 하느님의 일꾼들을 모집하여라.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 상황은 제자들이 신자들을 찾아가는 상황이 아닙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선포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지금 제자들이 일꾼들을 모집하는 일은

신자들 가운데에서 선교사가 될 사람들을 뽑는 일이 아니라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신자로 만드는 일을 가리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하느님의 일꾼이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일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은 다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일꾼입니다.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것은 남이 만들어 놓은 나라에 손님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그 나라는 '내가' 함께 만드는 나라이고, 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시작되었고,

종말과 재림 때에 완성될 나라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나라의 건설과 완성을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내가' 들어가서 살게 될 '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즉 '나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의 명령이니까 억지로 하는 일도 아니고,

교회에서 하라고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는 일도 아닙니다.

선교활동은 '내가'(우리가) 들어가서 살게 될 나라를 함께 만들 가족을 찾는 일이고,

그래서 '나의 일'이고, '우리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마라." 라고 지시하십니다(루카 10,4).

열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에도 같은 지시를 하셨습니다(루카 9,3).

예수님의 이 지시는 "물질에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라."

라는 가르침인데, 제자들의 임무와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할 일은 하느님께 일꾼들을 청하는 일(루카 10,2),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 주는 일(루카 10,5),

병자들을 고쳐 주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루카 10,9),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경고하는 일(루카 10,10-11)입니다.

이 일들은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돈으로 하느님의 일꾼을 모집하면 안 되고,

돈의 힘으로 병자들을 고쳐 주면 안 됩니다.

또 돈으로 평화를 빌어 주거나 복음을 선포하거나 심판을 경고할 수는 없습니다.

 

선교활동은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힘으로만 해야 합니다.

평화를 빌어 주기 위해서 가기 때문에 제자들은 평화를 가져가야 하고,

복음을 전해 주려고 가기 때문에 복음을 가져가야 합니다.

선교 여행을 떠날 때에 돈이 많으면 안심이 되겠지만,

돈 때문에 얻는 안심이 하느님의 평화는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몸이 편안하겠지만,

그 편안함이 복음은 아닙니다.

 

(만일에 사제가 되면 호의호식한다고 생각해서 신학교에 지원한다면,

그 학생은 많이 불행해질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가끔 있는데, 나중에라도 그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누가 나가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나갑니다.)

 

그런데 일흔두 제자도 열두 사도처럼 처음에 예수님을 따라나설 때

모든 것을 버렸을 것이고, 지금 뭔가를 가지고 있는 상태는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라는 지시는 아니고,

새로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지시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이 지시는,

처음에 제자가 될 때 지니고 있었던 초심을 유지하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희망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니

끝까지 그 희망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호의호식하기를 바라고 사제가 된 것이 아니었더라도,

나중에 마음이 변해서 그런 생활을 더 좋아하게 되고,

그런 생활을 추구하는 경우도 가끔 생깁니다.

그렇게 '변절'한다면, 즉 초심을 잃어버린다면

복음 선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 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사제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다 해당되는 말입니다.)

 

평화를 빌어 줄 때 평화를 받을 사람에게는 그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루카 10,6),

이 말씀은 평화를 빌어 주는 쪽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신앙인들) 자신들이 먼저 평화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또는 가지고 있던 자격을 잃어버리면,

자기 안에 있던 평화도 잃게 될 것이고,

가지고 있지 않으니 남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