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월 27일 나해 연중 제3주간 화요일(성녀안젤라 메리치 동정)

dariaofs 2015. 1. 27. 01:30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Garda) 호수 남쪽 데센자노(Desenzano)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았다.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즐겨 읽었고, 성인들의 금욕 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쌍둥이같이 자라던 15세의 언니와 브레시아 시민이라는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였던 아버지 조반니(Giovanni Merici)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간 휴양지로 유명한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 성녀 안젤라는 작은 형제회 재속회(3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부모처럼 돌보아주던 외삼촌의 사망 후 고향 데센자노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았는데, 특히 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기도와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1516년 안젤라는 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브레시아의 귀족 파텐골라(Patengola) 가족을 위로하러 브레시아에 갔다가 그들의 청으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서 성녀 안젤라는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속죄와 금욕생활을 하는 한편 고향에서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1524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다음 해 로마를 순례한 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에게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밝히고 허가를 받아 브레시아로 돌아왔다. 카알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1528년 브레시아가 점령당하자 크레모나(Cremona)로 피난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심한 병을 앓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1530년 전쟁이 끝나 브레시아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뜻을 같이 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이듬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1535년 11월 25일 28명의 동정녀들은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성녀 안젤라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1537년 성녀 안젤라가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특히 소녀들의 교육에 투신하고자 하였다. 가톨릭 여성 교육을 표방한 수녀회는 우르술라회가 첫 번째이다. 초기에 그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도복이 아닌 단순한 복장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봉사하였다. 성녀 안젤라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혔고, 1768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강론   :      (마르 3,31-35)

 

<예수님의 참 가족>

 

어머니와 가족들이 찾아오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계기로 삼아 가족에 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3-35)."

 

예수님의 말씀은, "나의 참 가족이 되려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라.",

또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자녀답게 사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지금 나를 찾아온 그들은 내 가족이 아니다." 라는 뜻은 아닙니다.

또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족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없습니다.

또 육적인 가족과 영적인 가족을 대립시키는 말씀도 아닙니다.)

 

원래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전부 다 가족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부정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있고, 자기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는다고 해도,

자녀답게(자녀로서) 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1-2ㄱ)."

아버지의 집은 하느님의 가족이 함께 사는 가정(하느님 나라)입니다.

그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는 말씀은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첫째 조건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족이지만,

스스로 가족이라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 집에서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하느님,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가족으로서 함께 산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함께 살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고, 예수님의 '말을'(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조건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호적에 가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가족인 것은 아니고,

가족답게 살아야 참 가족이 됩니다.

세례대장에 신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신자인 것은 아니고,

신자답게 살아야 참 신자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에게 가서' 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하느님과 예수님께서는 가족으로서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바라셔서

사람들에게로 먼저 가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은

사람들 쪽에서 예수님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적용한다면,

그 나라는 하느님께서 받아주시면 들어가고 받아주시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들에게 오셔서 누구든지 다 들어오라고 부르시는데도

들어가기 싫다고 하면서, 또는 관심 없다고 하면서 안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 못 들어가는 사람은 실제로는 안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내용을 '되찾은 아들의 비유'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쫓아낸 아들이 아니라

방탕하게 살고 싶어서 자기가 스스로 나간 아들입니다.

집 밖에 있었던 큰아들도 아버지가 쫓아낸 아들이 아니라

화가 나서 자기가 들어가지 않은 아들입니다.

 

돌아온 작은아들은,

원래 아들이 아니었는데 새로 아들의 신분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원래 아들이었는데도 자기 스스로 그 신분을 버렸다가,

회개하고 돌아와서 그것을 되찾은 사람입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스스로 아들 신분을 버렸는데,

그 아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포도나무의 비유'에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1-2)."

 

포도나무를 가족으로, 농부를 가장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가족답게 살지 않거나, 함께 살기 싫어서 가출했거나,

가족이라는 것을 안 믿거나 부정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아버지께서 다 쳐내신다는 말은 '심판'을 뜻하는데,

실제로는 가장이 쫓아내지 않았는데도 자기 스스로 가정을 버린 사람이고,

쳐내기도 전에 스스로 떨어져 나간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것,

즉 가족으로서 하느님,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이 아니었던 사람이 '가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이 아니라,

'원래 가족이니까' 가족답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지금도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은 '영원함'이 완성된 상태는 아닙니다.)

 

세례를 받고 새로 신자가 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 아니었다가 새로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사람이 아니라,

원래 가족이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가정으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