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2월 2일 나해 주님 봉헌 축일

dariaofs 2015. 2. 2. 08:12

 

                                                                                  (루카 2,22-40)

 

<봉헌>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루카 2,22-23)."

 

'정결례'에 관한 율법은 레위기 12장 1절-8절에 있습니다.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를 주님께 봉헌하라는 율법은 탈출기 13장 2절에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바친 것은(루카 2,24)

'정결례'의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사내아이를 봉헌할 때에는

봉헌한다는 뜻으로 '은 다섯 세켈'을 바쳐야 하는데(민수 18,16),

지금 루카복음에는 그 말이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돈으로 봉헌을 대신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직접 바치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주님께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기 예수님의 봉헌은

나중에 이루어질 십자가의 봉헌을 미리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에 봉헌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도 봉헌하신 것은 겸손과 순종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해석합니다.)

 

오늘날 사람을 주님께 봉헌하는 일로서 가장 대표적인 일이 바로 사제 서품입니다.

(수도자들의 종신 서원도...)

사제 서품은 한 가정이 아들을 주님께 봉헌하는 일이기도 하고,

교회가 한 청년을 주님께 봉헌하는 일이기도 하고,

서품자 자신이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례도 역시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데,

세례식 때의 서약은 앞으로는 주님 안에서만 살겠다는,

즉 자신의 삶을 모두 주님의 뜻에 일치시키겠다는 서약입니다.

그래서 세례식은 봉헌식입니다.

세례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내 인생은 오직 주님의 것"이라는 진리를 참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이 말은 거꾸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사셨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는다는 말은

우리가 주님의 노예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주님의 뒤를 따르면서 살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또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이라는 말은

우리에 대한 생살여탈권이 주님에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우리는 주님의 힘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예식으로서 세례식은, 또는 서품식은 일생에 한 번뿐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또는 사제로 사는 것은

예식을 한 번 거행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날마다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날마다'가 아니라 '매 순간마다'입니다.

 

출근도 퇴근도 없고, 휴무도 휴가도 없고, 정년도 임기도 없습니다.

한 번 신앙인이(사제가) 되었다면, 평생 날마다 이십사 시간 신앙인입니다.

교회에서만 신앙인인(사제인)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신앙인(사제)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취소' 라는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세례성사와 신품성사는 취소되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또 죽은 다음에도 신앙인은 신앙인이고, 사제는 사제입니다.

나중에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

신앙인은 신앙인으로 심판 받을 것이고, 사제는 사제로 심판 받을 것입니다.

 

(혼인성사의 경우에는 혼인 무효가 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은 성사가 무효라는 뜻이 아니고, 처음부터 유효한 성사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또 환속한 사제의 경우에는

신품성사가 취소되는 것도 아니고, 신분이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직무가 정지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9-10)."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일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고,

우리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오직 사랑, 그 한 가지 이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사랑'입니다.

 

지금 나는(우리는) 무엇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가?

돈인가, 권력인가, 명예인가?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