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2월 10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dariaofs 2015. 2. 10. 01:00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의 쌍둥이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으로 살아 왔으나 아마도 부모의 집에서 기거한 듯 보인다. 그 후 그녀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는데, 혼자인지 아니면 공동체 생활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당시에 그녀는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성 베네딕투스를 만난 것 같다.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쓴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33장에 의하면, 성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의 대수도원을 설립한 뒤

 

그곳에서 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피우마롤라(Piumarola)에 베네딕토 수녀원을 설립하여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맡겼다. 그로 인해 성녀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대화집" 33장에는 이들 남매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 온다.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마지막으로 성 베네딕투스를 방문했을 때 성녀는 예년과 같이 수도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베네딕투스 성인이 몇몇 수사들을 데리고 나와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만나서 늘 하던 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담화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성녀는 오빠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 있기를 간청했으나 베네딕투스 성인은 수도회 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거절하였다. 이에 성녀가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도를 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서 베네딕투스 성인과 수사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머물게 된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의 뜻을 허락하셨구나. 대체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성녀는 “당신은 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주님은 제 말을 귀담아들으셨습니다. 자, 이제 나가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시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매는 밤새도록 영적인 생활과 천상 생활의 기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마지막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운명하였다.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동생의 시신을 자신을 위해 몬테카시노 수도원 내에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몬테카시노가 붕괴된 후 8세기경에 베네딕투스 성인의 유해와 성녀의 유해는 플뢰리(Fleury)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이로써 이탈리아 밖의 지역에서 성녀의 공경이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8세기 말에는 베네딕토회의 시간전례에 성녀의 축일이 수록되었고, 9세기경에는 전세계 수도원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였다.

 

성녀 스콜라스티카에 대한 공경 예절이 전세계의 교회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1-13세기에 이르러서였지만, 로마 전례력에 정식으로 축일이 수록된 것은 18세기경이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주보성녀로 공경받고 있다.
 

강론   :   (마르 7,1-13)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정결 예식을 행하지 않는 것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마르 7,5)"

예수님께서는 잘못하고 있는 쪽은 당신의 제자들이 아니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마르 7,9)."

 

지금 상황은 제자들 때문에 논쟁이 생긴 상황이지만,

사실은 예수님도 정결 예식을 무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루카 11,37-38)."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정결 예식을 무시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행동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계명'은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라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말한 '조상의 전통'은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실천했던 여러 가지 복잡한 정결 예식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전통은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전통'이라고 표현하십니다(마르 7,8).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또 자기들의 정결 예식이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통만 생각하느라고

하느님의 계명대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통 때문에 계명을 무시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르 7,6-7)."

마음이 따르지 않는 행위는 '위선'입니다.

실제로는 거룩하지 않은데도

정결 예식을 행하고 있으니까 자기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진짜로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척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전통이 나쁜 것인가? 아니면 그 전통을 악용하는 사람이 나쁜 것인가?"

 

정결 예식이(또는 그런 예식을 행하는 전통이)

하느님의 계명 실천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식과 전통이 계명 실천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고, 그런 것은 없애야 합니다.

또 그 전통을 사람들이 악용한다면 더욱더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마르 7,13)."

이 말씀에는 "하느님의 계명을 폐기하게 만드는 전통이라면,

그런 전통은 없애야 한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나중에 사도들이 예루살렘 회의 때에

몇 가지만 남기고 유대교 율법을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 일입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사도 15,28-29)."

이 결정은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중요하게 생각했던 할례를 비롯해서

모든 전통과 관습을 전부 다 없애기로 한 결정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의 모습과 우리 자신의 모습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악용하는 일이 없는가?

껍데기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악용해서

너무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은 없는가?

예를 들면, 마음과 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미사 참례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거나,

고해성사는 형식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이미 마음으로 회개했고 용서받았다고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거나,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교회 전례와 공동체의 기도를 외면하거나...

 

옷만 잘 입으면 정성스럽게 미사 참례를 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마음이 정성과 열성으로 가득 차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단정한 옷을 입고

경건한 모습으로 미사 참례를 할 것입니다.

정말로 마음으로 회개한다면 정성을 다해서 고해성사를 볼 것이고,

정말로 온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정성을 다해서 전례를 함께 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는 분명히 나쁘지만,

율법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외적인 경건함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적인 거룩함은 저절로 외적인 거룩함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로 거룩한 사람이라면 하느님 앞에서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