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하느님 백성의 잣대
-예언서의 형성과정-
성서는 역사 대하드라마다.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과 그를 당신 백성으로 불러 세운 하느님을 주인공으로 1000년이 넘는 역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팔레스티나를 주 무대로 하고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집트와 바빌론 등 해외무대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고 다채롭게 다루고 있다.
이 역사 대하드라마의 주제는 ‘사랑’이다. 기원전 13세기에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당신의 백성으로 삼은 사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내 아들 이스라엘이 어렸을때,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이집트에서 불러 내었다”(호세11,1). 이로부터 서로 간에 사랑을 다짐한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가 책 전반에 진하게 펼쳐진다.
때로는 탈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하기도 하면서 오랜 역사를 함께 살아온 이듣이 1000여 년이 넘도록 간직해 온 사랑의 사연들이 진솔하고 담백하게 쓰여진 책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서다.그러므로 성서를 펼치면 감미롭고도 농익은 사랑의 흔적이 한 장 한 장마다 은은히 배어나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율법의 형태로 응집된 모세오경이 사랑의 서약이라면, 팔레스티나에 정착한 후 바빌론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귀환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담고 있는 역사서는 사랑의 회고록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느님 백성에 걸맞는 삶을 살라고 촉구한 예언서는 첫만남을 못 잊어 하며 부르는 사랑의 연가다.
사랑의 회고록으로 그동안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과 나누었던 사랑을 절절히 되새기게 햇던 이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사랑의 연가를 온몸으로 불렀던 이들.바로 그들이 예언자다.그들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온 이스라엘이 하느님 앞에서 깨어 있도록 촉구하는 시대의 양심이자, 하느님 백성의 잣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들이 삶으로 처절하게 썼던 사랑의 회고록과 사랑의 연가가 언제 어떻게 오늘날의 역사서와 예언서로 꼴을 갖추게 되었을까.
*예언서의 구분과 이름
예언서라 할 때 우리는 공동번역 성서에 따라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등 대예언서 3권을 비롯하여 호세아,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등 소예언서 12권에다가 애가와 바룩 및 다니엘서를 포함시킨 총 18권의 성서를 떠올린다. 그러나 히브리 성서(TANAK) 의 예언서 분류법은 이와 다르다.
히브리 성서에서 예언서는 모세오경에 이은 두 번째 모음집으로, 예언자들의 행적과 말씀을 기록한 문서 예언서뿐 아니라 역사 안에서 하느님 말씀으로서의 예언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해 놓은 역사서도 일부 포함한다.
즉 공동번역 성서에 예언서로 분류된 목록 중에서 애가와 바룩 및 다니엘서를 뺀 대신에, 역사서로 분류된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등을 포함시킨 21권을 모두어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로 볼 때 5권으로 된 모세오경에 비해, 예언서는 꽤 권수가 많은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히브리 사본에 나타난 예언서 모음집의 권수는 8권이다.
역사서 중 사무엘 상,하 와 열왕기 상.하가 각각 한 권으로 묶여져 있으며, 후기 예언서 중 12권의 소예언서가 한 권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 하 등 전기 예언서 4권과 이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12예언서 등 후기 예언서 4권이 한데 묶여 히브리 성서의 예언서가 되었다 .(도표1참조). 이글에서는 히브리 성서의 분류법에 따르기로 한다.
각 예언서의 명칭은 해당 성서의 내용을 잘 나타내거나 (판관기, 열왕기 상.하, 12에언서), 그 안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여호수아, 사무엘 상.하,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그 중에서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는 역본에 따라서 다르게 불려지기도 하였다. 70인역 성서에서는 1,2,3,4왕국기(Basileion) 로, 불가타 성서에서는 1,2,3,4열왕기(Regnum)로 명명되었다.
*예언서의 형성과정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 성서의 예언서는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구분된다. 그 이유는 전기 예언서가 뚜렷한 사관 아래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관계로 후기 예언서와는 성격이 워낙 다를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후기 예언서에 비해 먼저 집대성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두 모음집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차례로 짚어보자.
1. 전기 예언서
이에 해당하는 낱권성서는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등 4권인데, 각 성서가 다루고 있는 시대배경만 다를 뿐이지 모두 하느님의 말씀에 따르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입는다는 사관을 한결같이 드러내 보인다. 이런 관점은 모세오경 안에 묶여진 신명기에 뚜렷하게 제시된다. 그런 관계로 전기 예언서 4권에 신명기를 서론격으로 포함시켜 신명기계 역사서로 부르기도 한다.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을 낱권성서별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여호수아 :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요르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이 팔레스티나를 정복한 후 파별로 영토를 분배하고 세겜에서 계약을 갱신하는 이야기.
판관기 : 외적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부르짖고, 하느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듣고 판관을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틀로 전개되는 영웅담.
사무엘 상.하 : 마지막 판관 사무엘이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서 사울과 다윗을 잇따라 왕으로 기름부어 세운 후에 벌어지는 왕실 간의 갈등 및 다윗 왕권의 확립과정.
열왕기 상.하 : 다윗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솔로몬의 치적 및 그의 사후 남북으로 왕국이 분열 되어 각각 망하기까지의 역대 왕들의 치적.
한마디로 전기 예언서의 책들은 릴레이를 하듯 바톤을 이어 받으면서, 가나안 정착서부터 남북 왕조의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로 볼 때 전기 예언서의 편집은 신명기 학파에 의해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대략 유대 왕국의 멸망을 전후한 기원전 600-650년경에 현재의 꼴을 갖추었다.
그러나 전기 예언서를 집필하는데 사용된 자료의 연대는 그보다 훨씬 웃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단편적인 자료는 이스라엘 백성의 팔레스티나 정착 이래 계속 생겨나 전승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판관들의 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그 이야기는 원래 12지파가 각기 거주하고 있는 지역 안에서 보존해 오던 영웅담이다.
따라서 동시대적인 사건도 있지만 이를 간과하고 일정한 사관에 맞추어 역음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사건으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고대 시 모음집으로 추정되는 “야살의 책”(여호 10,13; 2사무 1,18)을 비롯하여 “유대 왕조실록”과 “이스라엘 왕조실록”(1열왕 14,29; 15,7.31;16,5) 등도 신명기 사가에 의해 편집되기 전에 이스라엘 안에 전해 내려온 문서자료로 여겨진다.
이런 기록물이 얼마나 생겨났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실되기 이전에 신명기 사가의 작품에 어떤 형식으로든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마카베오 후서에 언급된 “여러 왕들에 관한 책과 예언자들과 다윗이 쓴 글과 제물을 드리는 일에 관해서 여러 왕들이 쓴 편지”(2마카 2,13)는 바로 그런 자료일 지도 모른다. 역대기 하권에 이름만 전해지고 있는 “예언자 나단의 기록”, “아히야의 예언서”, “이또의 환상록”, “에언자 스마야와 선견자 이또의 역사서”, “예언자 이또의 주해서”(2역대 9,29; 12,15; 13,22)등도 그런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여하튼 신명기 사가는 이런 자료들을 일정한 사관 아래 엮어서 정착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한눈으로 볼 수 있도록 작품으로 엮었다. 그리고 기원전 500년경에 공동체 안에서 그 위치를 굳혔다.
2.후기 예언서
전기 예언서가 한 세대 동안에 한 학파의 사관 아래 편집되어 일정한 흐름을 갖고 있다 하면, 후기예언서는 제각기 다르다. 다만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활동한 예언자의 생애와 가르침이 그 예언자의 이름을 따서 책으로 만들어져싸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그런 면에서 후기 예언서의 예언자들은 문서 예언자로고도 불리워진다.
물론 이들 외에도 이스라엘에는 여러예언자들이 활동하였으므로, 그들 이름으로 된 문서들이 더 생겨났을 수도 있다. 앞서 보았듯이 “예언자 나단의 기록”, “아히야의 예언서”, “이또의 환상록” “예언자 스마야와 선견자 이또의 역사서” “예언자 이또의 주해서”(2역대 9,29;12,15;13,22) 등이 그런 예이다. 이 문서들이 현재에까지 전해져 내려왔다면 후기 예언서로 묶여졌을 지도 모른다.
특히 북왕국의 유명한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그 가르침이 따로 책으로 묶여졌다면 경전으로서 손색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배 전후에 이 문서들이 상당 부분 소실 되었기 때문에, 현재 경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후기 예언서들은 그런 위기 중에서도 보존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가 도도이는 지도 모른다.
후기 예언서의 예언자들은 북왕국에서 활동한 아모스와 호세아를 빼고는 모두 남왕국에서 예언활동을 벌였다. 요담의 통치 하에서 각각 도시와 농촌에서 활약한 이사야와 미가 예언자를 필두로 하여, 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도 하느님의 뜻을 예언에 담아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유배지에서는 에제키엘이, 유배 이후에는 6명의 소예언자들이 그침없이 하느님의 대변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들의 외침 소리가 한데 모여 후기 예언서가 되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등 대예언서는 몇 차례의 편집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꼴이 되었지만, 12예언서에 묶여져 있는 개개 예언자들의 경우는 그들의 가르침이 제자들에 의해 단시일에 기록되고 모아졌을 것으로 보인다(9-14장 부분이 훗날 덧붙여진 즈가리야의 경우는 예외다).
후기 예언서는 기원전 750년경에 아모스서가 편집된 것을 시작으로 기원전 3-4세기에는 대략적인 꼴을 갖추었다. 전기 예언서가 기원전 500년경에 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기원전 4세기경에 모세오경이 경전으로 잠정적으로 확정된 사실이 못내 자극이 되어, 전해 내려오는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집대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거나 기원전 190년경에 집필된 집회서에 언급된 “열두 예언자”(집회 49,10)는 다분히 독립적인 열두 예언자들의 책이 한데 묶여져 있는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집회서 서문에 “율법서와 예언서”라고 확정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12예언서의 편집을 끝으로 후기 예언서가 이 시기에 이미 마무리된 상태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예언서는 모세오경과 더불어 형성되어 오다가 기원전 500년경에 전기 예언서가 먼저 위치를 확고히 한 데 이어, 후기 예언서가 기원전 3-4세기에 대략적인 꼴을 갖춘 후 기원전 2세기경에 그 가치를 인정받앗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으로써 4세기경에 확정된 모세오경에 이어 히브리 성서에서 두 번째 모음집으로 위치를 굳혔다.
*공동체와 예언서
역사는 우리의 눈을 틔운다. 트인 눈으로 우리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그런 면에서 전기 예언서는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법을 익히게 해준다. 더불어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걸어가야 할 올곧은 길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후기 예언서에서 이 시대의 예언자로 나설 이들이 바로 우리들임을 확인하게 된다.
팔레스티나 정착서부터 그들의 시대까지를 굽어보며 하느님의 손길을 찾던 예언자들. 우리도 그들처럼 한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며 분단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대어본다. 예언자들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하느님 백성의 잣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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