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1)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자의 기원과 발달
조철수 (히브리대학 고대 근동학과 객원교수․앗시리아학)
산업사회를 이룩한 국가는 반드시 성문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 법이 사회에 적용된다. 서구(西歐)사회의 기본법은 로마법을 근간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유럽 중세를 지배했던 그리스도교의 교회 법을 주축으로 팽창된 교권은 서구사회의 사회법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로써 ‘교권과 왕권’의 갈등에서 엮어지는 많은 사화(史話)를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기본 틀이었던 중세시대 교회법의 기원은 결국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약성서 모세 오경에 기록된 ‘십계명’과 ‘모세 법’에서 찾을 수 있다. 모세 법은 여러 세대를 지나면서 생긴 많은 경우 법들을 모아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편찬한 것이다. 십계명은 가장 근본적이며 온갖 사회생활의 양상을 총괄할 수 있는 기본법인 것이다.
십계명의 1-4조항은 ‘하느님’에 간한 항목으로 이스라엘인들의 종교체험에서 비롯된 독특한 믿음의 기본계명이며, 5-10조항은 ‘사회생활’과 연간 된 ‘사회법’을 지키기 위한 계명이다. 여기서 5조항인 ‘부모를 귀중히 여겨라’는 부모님 같은 하느님의 말씀인 하느님의 가르침을 귀중히 여기고 목숨을 걸고 지키라는 내용이며,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도 사람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귀중히 여기라는 당부이다.
이러한 전통은 고대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석판에 쓰여진 십계명을 전수하기 전, 적어도 1000여 년 전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서도 그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점토판은 홍수가 세상을 휩쓸어버리기 바로 전, 마지막 도시국가의 임금이 그의 아들에게 전해 준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내 아들아, 내가 가르치겠다. 주의하여 들어라,(내 가르침을 포기하지 말라, 내가 한 말을 어기지 말라, 아버지의 가르침은 귀중한 것이다. 이것에 네 목을 걸 것이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 네 자신이 쓰러지는 것이다. 도둑은 정말로 뱀이며 즐긴 자는 정말로 여종이다. (남의) 집을 부수고 들어가지 말라,---살인강도를 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 네 스스로--- (남의) 젊은 여자와 놀지 말라. 구설수가 커진다. 맹세를 하지 말라. 네 자신이 매인다. 언쟁을 일으키지 말라. 네 것이 쓰러지는 것이다. 거짓을 (불리지 말라)---,
여기서 맹세하지 말고 남과 언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문구의 문맥은 ‘거짓증거’하여 생기는 사건을 대비해 일러주는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위의 고대 메소파타미아의 가르침은 십계명의 6-10조항, 즉 사회규범의 기본계명과 그 순서이며 내용이 유사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법전은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도 그 기본 골자를 ‘사회법 계명’에 두고 있다. 물론 구약성서의 모세 법에서도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판례로 체택 된 경우 법들을 많이 읽을 수 있다.
십계명과 모세 법은 그 한 예이며 성서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정신적인 문화가 많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정신문화를 문자로 전하기 시작했던 문명을 ‘수메르인 문자문명’ 이라고 부른다. 수메르는 남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성곽을 형성하며 세워진 여러 도시국가들의 연맹체(聯盟體)를 말하며, 수메르인들이 만들어 사용했던 ‘문자’는 선사시대의 인류를 역사시대로 방향 전환시킨 인류사의 가장 큰 분기점을 그은 것이다.
수메르에서 시작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약 3000년 간 지속되었으며, 그 모체는 사라졌지만 가장 핵심적이며 먼 옛날부터 지켜왔던 중요한 전통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히브리어 성서에 남게 되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찾아 읽으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헌과 대조하여 성서에 빠져 있거나 혹은 덧붙여 있는 부분을 주시할 수도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스라엘의 통사를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설명한다.
기원전 약 3200년경 남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성벽을 쌓아올린 도시국가들이 형성되고 문자 문명을 이룩하여 수메르 연맹체를 결성하였다. 이 때부터 약 700여 년 동안을 초기 왕조와 수메르 도시국가 왕조 시대라고 부르며, 이 시기에 수십 편의 영웅전과 신하가 항간에 생겨났다. 기원전 2400년대에는 그 동안 부(富)를 축적한 사제들과 기득권층에 반발하는 정직한 통치자가 사회개혁 칙령을 공포하여 ‘민주적’인 사회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2350년경 북서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쪽으로 대거 이동한 셈족(族)들이 메소포타미아의 중앙 지역에 도시를 건설하고 왕조를 세워 주변의 모든 도시를 장악하고 ‘제국’을 만들었다. 이 도시국가의 이름이 ‘악카드’였고 이 악카드 왕조의 창시자가 ‘싸르곤’이며 후대에 그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임금들이 많았다. 악카드 왕조는 약 180여 년이 지나자 내정이 혼란해져 한 임금이 불과 몇 개월을 통치하고 물러나거나 살해당하는 경우가 여러 번 생겼으며, 결국 동쪽 산간 지방에서 내려온 산적들에 의하여 망하게 된다.
약 40여 년 후에 남쪽의 도시국가 우르는 수메르의 영화(榮華)를 꿈꾸며 여러 도시국가들을 결성하여 새로운 왕조를 이룩한다. 이 왕조의 창시자는 인류최초로 ‘법전’을 공포하고, 사제들은 그 동안 전수되었던 수많은 주문(呪文)을 종류별로 추려 전집을 만들어 상황에 알맞는 주문을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편찬하였고, 인문학자들은 각 종류의 백과사전과 전문용어 사전 등을 간행했다. 기원전 2100년부터 약 100여 년 동안 지속된 ‘우르 3왕조’ 시대에 수메르 ‘문예부흥’ 이 일어났다. 우르 3왕조 말에 기근이 몇 해 동안 겹치고 물가가 폭동하며 신하들의 변절로 왕국은 망한다.
약 100여 년 후인 기원전 1900년경 북서 메소포타미아에 또다시 민족 이동이 생겨 메소포타미아의 중심부로 밀려들어 와 수메르 왕조는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대거 이주하여 들어온 셈족들은 도시국가를 건설하게 되며, 이 족장들이 바로 함무라비 왕의 선조들이다. 그들은 바빌로니아라는 도시국가를 이룩하여 위세를 키웠고, 함무라비 왕 때에는 주변의 도시들을 장악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실권자로 등장한다.
한편 이러한 아모리족의 대이동이 있을 때, 메소포타미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 ‘하란’ 등지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간 몇몇 부족들이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람과 그의 친척들이다.
바빌로니아는 고대 근동 문화의 중심지였다. 특히 바빌로니아 언어는 그 당시 국제어로 사용되었으며 이집트의 왕과 소아시아의 도시국가 왕 사이에 또는 가나안 땅의 여러 도시국가의 통치자들 사이에 왕래된 편지를 바빌로니아 언어인 악카드어로 기록했으며,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그 주변의 여러 도시국가 사이에 체결되었던 조약서도 악카드어로 기록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나안 땅의 여러 도시에 세워진 학교에서 악카드어는 서사(書司)가 되기 위한 필수어 였으며, 언어뿐 아니라 바빌로니아의 많은 신화와 영웅전, 찬양시 등도 교과과목으로 쓰였다.
기원전 13세기부터 약 70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은 물론 가나안 땅 전체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위세에 눌려 살았으며 결국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많은 지식인들을 바빌로니아로 집단 이주시켜 그곳에서 약 50여 년을 살게 되었다. 이들은 유다 땅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여 유다 인이라 불렀다. 대부분의 유다 인들은 바빌로니아의 고급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으며 세대가 바뀌면서 자식들은 바빌로니아의 교육을 받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학문적 전통을 배우게 되었다. 많은 유다 인들이 바빌로니아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 학적(學的)인 종교로 면모를 갖추게 된 유다 교에 이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이 반영되었다.
기원전 300년경부터 팔레스티나 지역은 희랍계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자연히 희랍 문화가 급속히 퍼지게 되고 예루살렘의 기득권층은 희랍계 통치자들과 병합하여 득세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대 사제 권도 희랍 왕에게 뇌물을 주고 획득할 수 있었으며, 사제들의 비리는 날로 극심해졌다. 이에 반대하여 기원전 168년에 경건한 유다 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4년 후 예루살렘을 되찾았으나, 몇 십 면 지나지 않아 종교적 이념과 대 사제 권에 갈등이 이러나 분파(分派)가 생기게 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정신사의 마지막 단계인 묵시문학 사조에 편승한 이 분파를 ‘엣세네’라고 부른다.
엣세네파 사람들은 재산을 공동체에 헌납하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함께 모여 식사하고 기도하며 성서를 배우고, 마지막 날의 하느님 심판이 곧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성서구절을 해석하며 메시아가 올 때를 대비하여 매일 정결례를 하고 율법에 딸 철저히 계명을 지키며 스스로 ‘빛의 자식’이라고 칭하였고, 마지막 날 어둠의 자식들과 싸울 준비를 하였다. 그들이 글로 남기고 간 많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사해문헌’이라고 한다. 사해문헌에 기록된 공동체의 종교적 사회적 이념에서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잔영을 볼 수 있다. 또한 엣세네파의 초대교회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성서를 공부하는 학도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생긴 이야기와 그 문화적․종교적 배경을 아는 것은 성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이 글에 언급된 성서와 고대 근동 문헌은 모두 필자가 개인적으로 옮긴 것이며, 앗시라이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음역에 준하여 포기한 것임을 밝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자의 기원과 발달
기원전 약 32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 지역에 문자를 쓰기 시작했던 문명을 수메르 문명이라고 부른다. 남쪽 메소포타미아 삼각주 근처 두 강변에 성을 쌓고 살았던 수메르 사람들은 물품을 주고받았다는 영수증이나 계약서를 점토판에 써서 보관했다. 그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점토를 빚어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판을 만들어 그 표면에 글자를 기록하였는데, 이 점토판은 오래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의사 교환 매개체였다. 그들은 계약 내용과 여러 증인들이 이름, 그리고 공증인의 날인을 했을 뿐 아니라,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보상금을 지불하거나, 거짓으로 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신(神)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도 첨부하였다. 이렇게 문자로 그들의 생활을 기록했던 수메르 인은 인류의 문자시대를 열었다.
문자의 기원을 자세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메소포타미아의 남쪽 지역에서 기원전 32세기에 상형문자(pictograph)가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상형문자는 사물의 모양을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기한 표의문자이다. 그러나 상형문자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사물을 보고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하여 생긴 문자는 아니다. 이러한 상형문자의 창작은 기원전 5000-3000년 동안에 사용했던 ‘물표(토큰)’에 유래된 것이다. 물표는 조약돌 모양의, 그만한 크기로 만든 점토덩이로, 물품의 명목가치를 나타내었다. 이 물표에서 점토판으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상형문자가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그 변천 과정을 아래와 같이 재구성해 본다.
기원전 5000경에 메소포타미아 북쪽 지역의 사람들은 형태가 비슷한 조약돌들을 사용하여 물건을 빌려주고 바꾸는 경제 활동을 했다. 예를 들어 양 8마리를 빌려주었으면 비슷한 형태의 조약돌 8개를 모아 쌓아 두었다(비슷한 모양의 조약돌들이 한 군데 모여 있는 곳이 많이 발견되었다). 그러다가 강가에서 조약돌을 찾아 물표(物標)로 사용하는 방법을 버리고, 대신 점토로 세모, 네모, 원 등의 조약돌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경제활동이 점차 많아지고 복잡해지면서 여러 종류의 품목을 구별하기 위해 물표의 위 표면에 여러 모양의 상징적인 선(線)을 그어서 사용했다. 예를 들어 양의 털 색깔이나 나이를 구별하는 수단으로 물표 표면에 일정한 양식을 표기하였다. 이 때까지도 물표를 점토로 쌓아 보관했다.
물량거래가 커지면서 여러 물표를 점토로 쌓아 봉판(封板)으로 보관할 것이 아니라, 점토로 토판을 만들어 그 위에 물표의 표면 모양을 그려서 물표를 대신했고 수효를 옆에 찍었다. 이미 상형문자가 생긴 것이다. 작은 점은 1, 조금 큰 점은 10, 좀 더 큰 동그라미는 60, 중간에 금을 그어 그 반(半)을 표시했다. 더하기는 10에 1(=11), 빼기는 1에 10(=9), 곱하기는 큰 숫자 안에 작은 수를 표기했다. 숫자 1을 표기하기 위해 작은 점을 찍었다거나, 10을 가리키기 위해 1보다 조금 큰 점을 표기했다는 것은 인류문화 보편성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60을 가리키기 위해 큰 동그라미를 표기했다는 점은 상형문자를 만들어 갈 수 있었던 시발점으로 볼 수도 있다.
십진법을 사용했던 셈족들과는 달리 수메르 사람들은 60진법을 썼다. 옛날 사람들은 틀림없이 손과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전달했을 것이다. 60진법일 경우 1엣 60까지 숫자를 세어나갈 때에, 한 손으로 손가락을 펴서 1-5까지 세고 6번째는 다른 한 손의 손가락 하나를 펴 올림으로써 그것이 6임을 가리킬 수 있었다. 계속해서 7-11까지는 편 손가락을 접으며 세고 12번째는 다른 손의 두 번째 손가락을 펴서 12를 표시했다. 이렇게 계속하여 다른 손을 다 펴면 30이 되고 (18=3 ; 24=4) 다시 오므리게 되면 60이 된다(또한 곱셈의 시작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손을 셈에 이용하면 동그라미 모양의 주먹은 60을 가리킨다.
점토판 위에 물표의 윗 모양을 그리고, 그 옆에 숫자를 찍어 토판에 글자로 사용하듯이,
사물의 모양 중 대표할 수 있는 모양을 간단하게 그린 문자가 생겼다. 예를 들어 ‘양(羊)’의 뜻인 글자는 동그라미에 가운데 십자를 그었다. ‘양’의 표의문자는 ‘양’의 명목가치로 사용했던 물표의 위 표면에 그렸던 모양을 그대로 글자로 썼다. 그러나 나귀나 멧돼지 등의 글자는 그 물체를 닮았다. 이와 같이 산(山)을 뜻하기 위해 한 점 옆에 두 점을 그렸으며 산 위에 떠오르는 둥근 모양이 태양, 황소머리에 두 뿔은 황소, 사람의 머리는 머리, 사람의 발 모양은 발, 걷다, 서다 등등으로 표의문자(表意文字 idcogram)가 만들어 졌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상형문자가 기원전 3200년경에 나타나, 갑자기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글자의 모양이 오랜 시간을 두고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 상형문자가 기록된 토판(기원전 32세기것으로 초정됨)이 남쪽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 우루크에서 약 1000개가 넘게 발굴되었다. 대부분은 경제 활동을 기록한 ‘영수증’과 같은 종류이다. 소 2, 보리 60 5(=65단), 염소 10 2(=12마리) 등등. 수메르인들은 한자(漢字)처럼 그렇게 많은 상형문자를 만들진 않았다. 상형문자로 기원전 32세기에서부터 200-300년 동안의 글자 수는 1000개 정도이며 글씨의 모양이 상형문자에서 쐐기모양의 글자인 설형문자(cuneiform)로 변해 가면서, 상형문자를 기록하던 토판의 위치를 90도 각도 왼쪽으로 돌려 설형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90도 각도로 돌려 기록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갈대로 만든 끝이 뽀쪽한 첨필(stylus)로 토판을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글씨를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원전 2500년경에는 글자의 수도 줄어들어 700개 정도의 쐐기문자로 고정되었다. 사물의 형상을 그것의 특정이나 대표할 부분을 간단하게 그린 상형문자의 수효가 사회가 발달하면서 적어도 1000개보다는 더 늘어나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수메르 사람들의 의식(意識) 구조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들은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문자로 수식(修飾)하여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가령, 궁전을 ‘큰 집’ e2-gal 이라고 쓴다. 이 단어에는 ‘집’을 뜻하는 e2 와 ‘큰’의 뜻인 gal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경우이다. 그러나 문맥에 따라 그냥 ‘큰 집’ 이라고 뜻할 수도 있다. 수메르어에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homonym)가 많아 앗시리아학에서는 그러한 경우 글자(기호)의 음역에 일련번호를 아래첨자로 붙여서 표기한다. ‘집’ e2는 ‘수로’의 뜻인 e와 서로 다른 글자이다. 즉, 음역에 표기한 번호는 동음이지만 변별하여 음역하는 표식의 변호이며 각기 다른 문자임을 가리킨다. 수메르어는 현재 한자에 비하면 동음 단어가 훨씬 적다.
한편 한 문자가 여러 음으로 발음되고 그 뜻도 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입’은 ka이며 이 문자를 ‘말하다’는 뜻인 dug4로 읽거나 ‘말씀’의 뜻인 inim, 혹은 ‘이빨’인 zu2로 읽을 수 있다.
기원전 2500년경 약 700여 개 정도의 쐐기문자로 줄어들어 고정된 또 다른 이유는 글자의 발음을 이용하여 많은 단어를 음절(syllable)로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수다’는 뜻의 동사가 halam인데 쓰기를 ha-lam으로 사용하여 halam이라는 글자는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즉 발음되는 식으로 음절에 맞추어 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위대한 착상은 기본적인 글자인 표의문자로 의사전달의 내용을 명기하며 그 글자의 발음 가치를 빌려와 음절로 문법적인 관계를 표현했다. 이렇게 하여 음절 문자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글자를 활용하면서 집문서, 땅문서나 노비(奴婢)문서 이외에도 별자리를 관측하여 별에 이름을 지어 주고 기록하기도 했다. 별자리 이름은 바빌로니아로 전수되고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예를 들어, 금성을 ‘하늘의 여왕’인 ‘인안나’ 라 이름 지어 주었는데, 이는 셈족의 ‘이쉬타르’와 동일시되었으며 영어 asterisk, star 등의 기원이다). 신전 사제들은 그들의 필수품인 주문(呪文)을 토판에 기록하여 적절한 경우에 사용하였으며, 이에 따라 ‘글’로 마귀를 퇴치하는 전통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문자주의’의 종교관이 정립되어 사회의 근본을 이루게 되자, 자연히 ‘말(言)만을 중시하며 마귀를 쫓아내는 무리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21세기초에 편찬된 인류 최초의 수메르 법전에는 이러한 마법사들의 행위를 불법으로 명기하게끔 되었다. 이후로 각 종류의 주문을 기록한 토판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전통은 바빌로니아 역사가 끝나는 기원전 6세기말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기원전 약 2600년경부터 토판에 수십 행이 되는 이야기를 쓴 문학작품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신(神)과 신전(神殿)을 찬양하는 시(詩)), 도시 창시자가 그의 아들에게 가르친 잠언, 도시 사이에 국경 분쟁으로 생긴 전쟁을 서술한 전쟁 사, 정의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사회개혁 칙령 등이 기록되었다.
기원전 2335년경 북 메소포타미아이 도시국가 키쉬네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악카드라는 도시가 세워졌다. 이 도시국가를 만든 인물은 싸르곤이라고 불렸는데 ‘수메르 왕 계보’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가 ‘정원사’였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그가 왕족 혈통을 타고 나지 않았다는 점이며, ‘정당한 왕’이라는 뜻의 이름 ‘사르곤’으로 자신의 왕권 계승을 정당화했음을 알 수 있다. 싸르곤의 집안은 셈어를 사용했던 북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 도시국가로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
싸르곤 왕은 55년간의 재위 기간 중에, 북서쪽에 위치해 있던 오래된 도시국가들을 무너뜨리고 지금의 터키인 아나톨리아의 중심부까지 들어가 악카드 상인들의 무역업을 보호했으며, 지중해 쪽에 있었던 무역 도시국가들도 장악했다. 북쪽의 앗시리아 지역과 동쪽의 자그로스 산맥 너머에 거주하였던 산족들을 정벌하고, 남쪽으로는 모든 수메르 도시국가들을 정복했으며 배를 타고 출정하여 지금의 바레인을 가리키는 딜문까지 장악했다.
싸르곤 왕은 그의 통치 말년 약 5년 동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동서남북이 광대한 지역에 많은 국가들을 지배하여 명실 공히 ‘수메르와 악카드의 왕’이 되었다.
주변 국가의 대부분을 정복하여 ‘제국’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판도를 만들었던 싸르곤 대왕의 위대한 업적은, 후대의 구약성서 열왕기에도 잘 나오듯이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 왕들이 싸르곤 시대의 제국을 만들겠다고 열망했던 대상이었다.
또한 인류의 문자 발달사에 있어서 싸르곤 대왕이 이룬 결정적인 혁신은, 그 때까지 국정 기록 언어로 사용되던 수메르어를 그들의 언어인 셈어로 바꾸어 국정 문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시 악카드의 이름을 따라 ‘악카드어’라고 이름 지어진 이 언어는 약 185년 간 지속된 악카드 왕조의 국용어로 쓰였다. 악카드 왕조가 무너진 후 약 130년 정도 지난 다음에 셈어를 모국어로 하는 바빌로니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면서 다시 악카드어를 행정문서 기록의 공용어로 사용함으로써 바빌로니아가 망하는 기원전 6세기말까지 악카드어는 공용어로 지속되었다.
악카드 왕조는 자그로스 산맥에서 내려온 산족(구티족) 들에 의해 무너졌고, 약 40년 동안 그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도시국가 우르를 중심으로 수메르 도시국가들이 산족을 몰아냈고 수메르 도시국가에서는 수메르어를 행정 용어로 다시 사용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21세기에 약 110년 간 계속된 우르 3왕조의 여러 왕 이름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많은 왕족의 이름이 악카드어로 된 이름이었다.
기원전 21세기 말 남쪽 메소포타미아지역에 여러 해 동안 기근이 들어 우르 왕 이비씬은 그의 충신 이쉬비에라에게 거액을 주고 곡식을 사오라고 북쪽으로 보냈다. 그는 곡식을 구입한 후 변절하여 북쪽 도시 이씬에 저장하고 이비씬에게는 ‘수메르 중앙 지역에 아모리족들이 침입하여 우르로 보낼 수가 없다’고 편지만 보냈다. 얼마 후(기원전 2017년경) 이쉬비에라는 도시 이씬에 새 왕조를 세웠으며 그러는 동안 우르의 물가는 폭동하고 결국 우르 3왕조는 무너졌다. 이로써 수메르 도시국가는 끝난다.
이씬 왕조 때를 초기 고대 바빌로니아라고도 부르며, 이 시기에 가장 주목할 사건은 소위 아모리족이라고 일컫는 민족들이 대거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하여 도시에 거주하였는데 그 중 함무라비 집안이 메소포타미아 중아 지역에 들어가 허허 들판에 도시 바빌론을 건설하여 도시국가를 창건한 사실이다. 이 때에 행정 문서를 다시 악카드어로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수메르 전통 문화를 지켰던 서사 학교에서는 수메르어를 열심히 가르쳤으며, 수메르어 문법책, 단어집, 동물, 식물, 광물 등을 분류한 백과 사전, 행정문서에 사용하는 전문용어 사전 등을 편찬했으며 수메르 문학작품을 그대로 전수하고 발전시켰다.
그 후 기원전 6세기말에 페르시아 사람들이 바빌로니아를 지배할 때까지, 수메르어로 쓰여진 문학뿐 아닐 종교적 정치적 문헌 등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한편 악카드어는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의 공용어였을 뿐 아니라, 이집트의 왕이 악카드어를 사용해서 아나톨리아의 힛티 왕과 편지 왕래를 한 것처럼, 주변 국가들의 외교 활동에도 통용된 국제어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람도 북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왔다고 창세기는 전한다. 아브람의 아버지 테락흐는 그의 고향 우르엣 가족들을 데리고 북서 메소포티미아에 있는 하란으로 이주하였다(창세 11,31). 여기에서 우르는 우르 3왕조의 도시국가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곳 하란에 머물며 살다가 아브람은 그의 아내와 그의 조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다(창세 12,1-5). 그래서 아브람의 자손들인 이삭, 야곱 등은 그들의 고향 땅인 그 곳의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였던 것이다(창세 24장 ; 29,1-30.24).
하란은 북서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지역에 위치하며 북서 메소포타미아의 광대한 지역에 많은 부족들이 씨족 단위로 연맹체를 결성하며 부족을 이루고 도시국가와 서로 왕래하며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악카드어로 쓰여진 이러한 편지 토판을 모아놓았던 서고가 발굴되어 아모리족들의 면모를 많이 알 수 있다. 아브람도 이러한 아모리족의 대거 이동에 편승하여 남쪽으로 이주한 부족이다.
이들이 쓰던 아모리어도 구약성서의 히브리어와 매우 유사하며 창세기 족장시대의 결혼 풍습 등도 그 당시의 문헌에서 찾아 읽을 수 있다. 또한 창세기에 나오는 여러 고유 명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배경을 그대로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 에덴 동산 옆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른다고 전한다(2,14). 티그리스강은 수메르어로 idigna이며 악카드어로 idiglat, 히브리어로 ‘히덱켈’이다. 유프라테스강은 수메르어 buranun, 악카드어 purattu, 히브리어 ‘프라트’이다. 특히 옛날 수메르 시대 때 두 강 사이의 넓은 들판 지역을 ‘에덴’이라고 불렀다.
또한 님로드(공동번역 성서에는 ‘니므롯’)의 왕국은 시나르 땅의 바벨과 에레크와 악카드와 칼네였다고 한다(창세 10,10). 여기에서 시나르는 히브리어로‘쉰아르’라고 음역한 것이며, 고대 바빌로니아의 북서 지역을 ‘샨하라’라고 불렀는데 히브리어식 음역이다. 또한 ‘님로드’는 전쟁신 ‘닌우르타’ 의 히브리어 음역이다. 바벨은 함무라비가 건설한 바빌론이며 에레크는 수메르 도시 우루크이며 악카드는 싸르곤이 창건했던 도시국가 악카드를 가리킨다.
그 외에도 많은 수메르 단어들이 악카드어를 통하여 히브리어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큰 집’ 이라는 합성어에서 출발하여 ‘궁전’을 뜻하는 수메르어 e2-gal 은 악카드어로 ekallu, 히브리어의 ‘헤이칼’이다. 악카드어는 동(東) 셈어이고 히브리어는 북서 셈어라고 부르며, 언어학적으로 서로 사촌지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언어 사이에 동음어는 매우 많다. 한편 고대 바빌로니아 학자들은 수메르 문화를 그대로 전수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에 악카드어로 쓰여진 문헌에 수메르 문화가 반영된 부분이 많으며, 고대 근동의 문화권은 바빌로니아가 중심이었기에 히브리 문화는 자연히 그 영향권에 있었다.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하여 함락되고 많은 상류층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유배되어 가 살면서 바빌로니아의 문화를 더 잘 습득하였음은 당연하며, 중요한 것은 유다 인들이 유배 기간 동안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을 많이 전수하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밀접한 교류가 많았던 유다 인들이었기 때문에 구약성서의 여러 부분뿐 아니라 신약성서 시대의 문헌까지 그 잔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2)
수메르의 성혼례와 산/저승 신화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말한다. 그 곳은 현재 이라크의 남쪽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지역으로 기원전 약 35세기경에 이미 성곽을 지은 도시 생활을 하였으며 인위적으로 만든 물표로 그들의 경제활동을 운영하였다. 점토를 빚어 만든 물표에 품목들을 구분할 수 있는 표식을 하고 표준화하여 의사 소통의 수단과 물건을 주고받는 증표로 삼았다는 것은 인류가 선사 시대에서 문자 시대로 넘어갈 수 있는 중요한 디딤돌이었다. 이렇게 발달하여 기원전 32세기에는 점토를 빚어 만든 점토판에 물품의 모양을 간단하게 그려 표현한 상형문자가 메소포타미아의 남쪽에 위치한 도시국가 우루크에 전례 없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그 당시 우루크가 경제활동의 중심지였음을 알려 준다. 이후 상형문자로 사물의 의미 뿐 아니라 그 표의 문자의 발음을 차용한 음절로 다른 지방의 이름이나 다른 민족의 이름을 기록했다. 또한 그들의 언어를 전하기 위해 사물의 뜻은 표의 문자로, 문법적인 요소는 음절로 토판에 표기하였다. 이렇게 몇 백 년 지난 후에 드디어 문학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전 찬양시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되었으며 사제(司祭)들의 필수품인 주문(呪文)을 토판에 기록하고 전수하였다. 이러한 문자 문명을 수메르 문명이라고 부르며 남쪽 메소포타미아에 도시국가 체제로 살았던 그들의 도시국가 연맹체를 수메르라고 불렀다.
가장 이른 시기에 도시 국가 형태를 지니며 자리를 잡기 시작한 도시는 가장 남쪽에 위치한 삼각주 지역의 에리둑이다. ‘수메르 왕 계보’는 “하늘에서 왕권이 내려왔을 때 에리둑에 왕권이 있었다”로 시작한다. 그 주변에 우루크와 우르, 그리고 두 강 사이의 ㅂ럴판에 여러 도시가 성곽을 짓고 도시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매년 봄이 되면 밀려 내려오는 홍수에 실려 온 새 흙이 강둑으로 넘쳐 그 해 농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수메르 사람들이 부(富)를 축적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두 강 사이에 수로를 많이 만들어 경작지를 넓히고 수로를 이용한 빠른 교통 수단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도시는 강가에 인접하여 있거나 도시 가운데로 운하를 만들어 교통을 편하게 하였으며 또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매년 봄에 생기는 홍수로 수로 밑바닥에는 항상 침적토가 쌓이게 되어 수위가 올라갔기 때문에 수로 바닥을 파내야 했다. 만일 그 노역을 몇 년 만 게을리 하면 홍수 때에 도시 안으로 물이 넘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원천지와 물 흐름이 달랐다.
유프라테스강은 시리아 쪽에서 완만히 흘러 내려왔으며, 티그리스강은 북동쪽의 자그로스 산맥에서 급히 흘러 내려 물살이 매우 빨랐고 위협적이었다. 홍수의 두려움을 소재로 한 수메르 신화는 티그리스강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러한 배경에서 생긴 이야기가 바로 ‘홍수 신화’이다. 이렇게 생긴 수메르의 홍수 신화는 주변의 여러 민족들에게 전해지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각색되고 번안되어 많은 종류의 홍수 설화로 전해진 것이다.
‘수메르 왕 계보’에 의하면, 처음에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온 후 다섯 도시가 각각 도시국가로 왕조를 이루고 살았는데, 대홍수가 생겨 도시국가들이 사라지고 그 후 다시 왕권이 북쪽의 도시국가 키쉬에 세워졌다고 한다. “홍수가 휩쓸어 버린 후 왕권이 키쉬에 있었다.” 키쉬는 유프라테스강 중류 수메르 북쪽에 위치한 도시였으며 이미 선사시대부터 모신-출산(母神-出産) 여신의 숭배지였다. 그 도시의 수호신은 ‘언덕이 여주(女主)’ 라는 뜻이 여신 ‘닌후르쌍’이다.
기원전 30-28세기 수메르 초기 왕조시대에 북쪽의 키쉬와 남쪽의 도시국가 우루크와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우루크의 왕 길가메쉬는 ‘사람이 산다’는 삼목산(杉木山)에 들어가 자기의 이름을 알리는 비문을 세우고 삼목을 벌채하여 오겠다고 산으로 여행길을 떠났다. 남쪽 메소포타미아에는 건축자재로 사용할 나무가 없었으며 신전이나 궁전의 중요한 방의 재료로 삼목을 사용하였다.
삼목 산의 산지기는 무서운 힘을 가진 용사 후와와였다. 산지기의 괴기한 모습에 길가메쉬는 두려워 떨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다가가 자기의 큰누이를 그의 아내로 그리고 자기의 작은누이를 성녀(聖女)로 주겠다고 약속하며 후와와의 힘을 자기에게 달라고 간청한다. 산 속에 홀로 살던 산지기는 아내와 성녀를 얻는다는 즐거움에 길가메쉬에게 그만 그의 힘(氣)을 모두 주고 기운이 빠져 뒤로 돌아 자기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순간 길가메쉬는 후와와에게 입맞추는 척하며 그의 뺨을 때려 눕혔다.
이 이야기에서 수메르 산(山) 신화와 관련된 특기할 부분은 길가메쉬가 산지기에게 그의 누이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대복이다. “나를 낳으신 어머니 닌순의 목숨과 나의 아버지 거룩한 루갈반다의 목숨으로 당신에게 맹세합니다.” 수메르 왕 계보에서 루갈반다는 우루크의 왕이었으며 길가메쉬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닌순’은 ‘들소의 여주(女主)’라는 뜻의 여신이며 우루크의 옛 도시에 그녀의 성소(聖所)가 있었다. 도시국가의 통치자가자기의 어머니가 여신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자기는 ‘여 사제’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수메르 사회에는 ‘성 혼례’( sacred marriage rite)라는 제도가 있었다. 매 신년 초 도시 가운데 높이 쌓아 올린 층계 탑 꼭대기에 세워진 신당(神堂)과 신방(神房)에서 행했던 수메르 통치자들의 성 혼례 의식은 매우 오래된 풍습이었다. 성 혼례는 한 해(年)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신년 초에 도시의 통치자가 간택된 여 사제와 ‘지구 라트’라고 불리는 층계 탑 꼭대기의 신방(新房)에서 혼례를 하는 행사이다. 신방 옆에는 정원이 있었으며 그 곳에서 여러 종류의 나무를 가꾸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도시가 형성되면서 도시 가운데에 층계 탑으로 쌓아 올린 흔적은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으며, 이 지구라트 옆에 도시 수호신의 신전이 있었다. 지구라트는 도시 한 가운데 흙벽돌로 쌓아 올린 피라밋 같은 형태의 층계 탑으로 기원전 32세기 우루크 도시 가운데에도 지구라트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기원전 21세기 초 수메르 남쪽 도시국가 우르의 지구라트는 3-4층으로 높이가 약 20m였다. 바빌로니아 역사상 가장 크고 높은 지구라트는 기원전 7세기 초에 건립한 바빌론의 지구라트이며 가장 낮은 층이 평방 90m에 7-8층의 높이로 약 90m나 된다. 옛부터 지구라트는 도시의 종교적 행사의 중요한 임무를 행하였으며 또한 도시의 위세를 떨치는 역할도 했다.
역사적으로 성 혼례를 통하여 태어난 아들이 통치자가 된 경우도 여럿 있다. 기원전 21세기 초 황폐 해 졌던 수메르 왕국을 재건한 도시국가 우르 3왕조의 창시자 우르남무도 자기의 어머니는 닌순이라고 자랑한다. 성 혼례는 통치자와 정해진 여 사제 사이에 이루어지는 종교적 혼례 행사이며 성혼례와 관계된 많은 ‘사랑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남녀는 ‘앙치기’ 두무지와 금성을 상징하는 여신 인안나이다. 수메르 왕 계보에 의하면 두무지는 하늘에서 왕권이 내려온 후 세워진 두 번째 도시 바드티비라의 ‘양치기’ 왕이었다.
바드티비라는 우루크의 동쪽 중앙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변에 위치한 곳으로 목양(牧羊)을 주로 했던 곳이다. 수메르의 ‘태초 홍수 이야기’에 하늘에서 왕권이 내려온 후 “두 번째로 바드티비라를 왕자와 성녀(聖女)에게 주었다”고 전한다. 왕자는 두무지를 그리고 성녀는 인안나를 가리킨다. 성혼례를 행하는 통치자와 여 사제를 두무지와 인안나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연인(戀人)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28-27세기경 수메르 도시국가 통치자들은 ‘도시국가 연맹체’를 형성하게 된다. 그 중심 세력은 남쪽의 우루크도 아니고 북쪽의 키쉬도 아닌 중앙의 도시국가 니푸르였다. 니푸르의 수호신은 ‘바람신’인 엔릴이었으며 자연히 신들의 모임에서 최고 권위자의 위치를 차지했다. 니푸르는 수메르의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모든 종교적인 행사도 니푸르를 기준으로 하여 행하게 되었다. 매년 각 도시의 통치자들은 도시 수호신의 신상(神像)을 배에 태우고 니푸르로 성지 순례를 왔으며 엔릴의 축복을 받고 자기 도시로 돌아갔다.
자연히 많은 신화가 엔릴을 중심으로 엮어지며 엔릴의 실권은 땅위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인 바람과 홍수로 실현되었다. 바람과 홍수의 근원지는 티그리스강의 상류인 자그로스 산맥(山脈)이라고 여겼으며, 엔릴의 칭호는 ‘큰 산(山)’ 이고 또한 니푸르에 있던 엔릴 신전의 이름이 ‘산 집’이며, 에쿠르 앞마당에서 모든 신들이 어전회의를 열었다.
이 당시에 생긴 신화들을 읽으면 큰 도시의 수호신들이 엔릴을 중심으로 친족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 신’ 안(An)이 ‘땅 신’ 키(Ki)를 아내로 삼고 엔릴을 낳았으며 엔릴은 그의 아내 ‘바람 여신’ 닌릴 사이에 ‘달 신’ 난나를 낳는다. 또한 엔릴은 세 사람으로 가장하여 닌릴과 잠자리를 하여 세 저승 신을 낳았으며 그 첫 번째인 네르갈이 저승 여주의 배우자가 된다.
난나와 ‘큰 여주’ 닌갈 사이에 생긴 자식들이 태양신 우투와 금성 인안나이다. 신(神) 계보에 의하면 ‘언덕 여신’ 닌후르쌍은 엔릴의 손위 누이이다. 한편 하늘 신 안과 ‘지하수 여신’ 남무(Nammu) 사이에 생긴 아들이 지하수-연못 신 엔키이며 엔키는 ‘왕자의 큰 부인’ 이라는 여시노가 정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쌀루히가 ‘마귀를 쫓는 사제’ 가 된다.
또한 엔키는 ‘양(羊)의 수호여신’을 택하여 아들을 낳는데, 그가 ‘양치기’ 두무지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땅 위에서 곡식이 자라기 때문에 하늘신과 땅 여신의 결합이라는 신화는 많은 농경 사회의 일반적인 신화이다.
또한 하늘과 땅의 아들인 바람 신 엔릴이 닌릴을 강간하여 달 신을 임신시키고 추방당해 저승길로 가는 길에, 첫 사랑이 그리워 그를 따라온 닌릴에게 저승 신들을 낳게 했다는 ‘저승 신들이 태어난 이야기’도 자연 현상을 신화로 이야기한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난 아들 바람 신이 하늘 아래 달과 해를 주관하게 되고 달과 해는 번갈아 가며 서편 뒤로 내려갔다가 다음 날 동편 산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바람 신 엔릴의 권력은 땅 밑의 저승 세계까지도 포함하게 된다.
한편 하늘 신이 지하수 여신을 택하여 ‘지하수-연못신’ 엔키를 낳게 한다는 신화도 자연 현상을 반영한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땅 밑에 고여 지하수가 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여름 동안 삶을 이어가게 한다는 사회에서 생긴 신들의 이야기이다. 두 어깨에서 내려가는 물줄기를 타고 물고기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상징하는 엔키는 ‘양의 수호 여신’을 배우자로 택하여 ‘양치기’ 두무지를 낳는다는 것은 연못가에 모이는 양떼의 수호 여신과 지하수-연못신의 결합인 목축사회를 반영하는 일반적인 신화이다.
그러나 수메르 신 계보의 특징은, 나푸르를 중심으로 신들의 계보가 결성되며, 니푸르의 수호신 엔릴이 신들의 왕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엔릴을 중심으로 하는 친족관계를 만든다는 점이다. 바람 신 엔릴의 아들이 당신 난나이고, 달 신의 자식들은 태양신 우투와 금성인 딸 인안나이다. 그리고 키쉬와 수호신인 ‘언덕 여신’ 닌후르쌍은 엔릴의 손윗누이로 엔릴의 가족관계에 들어온다. 엔릴은 하늘 신과 땅 여신의 정혼에서 태어난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한편 수메르 사회에 통치자와 여 사제 사이에 ‘성 혼례’를 행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신들의 족보를 엮어 가는 신화에도 이러한 종교 행사가 반영되었는데 하늘 신이 ‘지하수 여신’과의 성 혼례로 태어난 아들이 엔키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엔키도 정혼하여 ‘구마 사제’인 아들을 낳았지만 성혼으로 ‘양치기’인 ‘착한 아들’ 두무지를 낳는다. 두무지는 성 혼례 여사제의 배우자를 칭하였으며, 엔릴의 손녀인 인안나는 성 혼례 여사제의 대명사로 불렀다.
수메르 신 계보가 형성되던 같은 시대에 또 하나의 독특한 신학이 형성되는데 그것이 바로‘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큰 신’이라는 단합체 이다.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신’은 그 순서가 정해졌으며, 시대에 따라 그 위치도 변했지만, 고대 수메르 초기 왕조 시대에 결정된 이 전통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요일 이름에도 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초기 왕조 시대에 결정된 순서는 ‘하늘 신’ 안, 그 다음에 엔릴, 모신-출산 여신 닌후르쌍, 지하수신 엔키, ‘달 신’ 난나, ‘태양신’ 우투, 금성 인안나의 순서였다.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오면서 난후르쌍이 빠지고 천둥 신 아다드가 등장하여 그 순서는 안, 엔릴, 엔키, 난나, 우투, 인안나, 아다드였다, 또한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전통적인 신 계보에 커다란 혁신이 생긴다. 도시 바빌론을 건설하고 왕조를 형성한 함무라비 대왕의 도시국가 바빌론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역을 통치하게 되면서 바빌론의 수호신인 마르둑이 전통적인 신 계보에 엔키의 아들로 소개되어 들어온다. 그러나 ‘운명을 결정하는 큰 신 일곱’에서 일곱이라는 숫자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편 ‘하늘 신’ 안은 하늘이기에 원래 별이 없지만, 일곱 신중에 별자리가 없던 신들이 별을 차지하게 된다. 바람과 땅 위를 주관하는 엔릴은 토성(土星), 지하수신 엔키는 수성(水星), 앉아 있는 용 위에 세운 ‘부삽’을 상징으로 하는 마르둑은 목성(木星), 화성(火星)은 기원전 12세기 전후에 불만과 화로 가득 찬 역신(疫神)으로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된 에라(Erra)를 가리킨다. 바빌로니아 백과사전에 의하면 화성은 역병을 초래하는 별이며 ‘속임꾼’ 별이라고 풀이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요일 일월화수목금토(日月火水木金土)의 기원이 이와 같이 바빌로니아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성 혼례와 관련하여 엮어지는 수메르신화의 독특한 점은 성 혼례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인안나와 두무지의 관계는 단순한 새 신랑과 새 색시의 사이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새 색시가 새 신랑을 미워하여 그를 저승으로 쫓아 보내는 것이다. ‘인안나의 저승 여행’ 이야기에 ‘하늘의 여주’ 인안나는 하늘과 땅을 버리고 저승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저승 입구에 도착한 그녀에게 저승 문지기는 누구냐고 물어 본다.
“나는 인안나이며 해뜨는 쪽을 향하여”라고 대답한다. 문지기는 반문하여 ‘왜 돌아가지 못하는 길을 당신은 왜 택하였습니까?’ 고 말한다. 그녀의 대답에 “나의 언니 저승 여주의 남편인 ‘하늘의 황소’가 죽었기 때문에 그의 장례식을 보고 장례식에 술을 따르려고 그래서 왔다”고 전한다. 여기에서 알 수 없는 것은 저승 입구는 해 뜨는 동쪽에 있으며 저승에 들어가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수메르어로 ‘저승’과 ‘산’은 같은 단어kur이다. kur는 ‘산, 지방, 저승’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언어의 의미 파생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산’과 ‘저승’이 같은 범주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과 풍습에도 산소(山所)는 무덤을 뜻한다. 수메르 사람들에게 저승의 입구는 수메르 북동쪽 자그로스산맥 너머에 있으며 달이 뜨는 곳이 저승 입구의 대문이라고 여겼다.
저승 입구를 통하여 저승으로 들어간 인안나는 일곱 대문을 지나며, 각 대문을 지날 때마다 몸에 걸친 것을 빼앗겨 끝내는 벌거숭이가 된 채 저승 여주의 궁궐에 끌려온다. 저승 여주가 그녀를 보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자 인안나는 그녀의 자리에 얼른 주저앉는다. 옆에서 지켜보고 서 있던 신들이 깜짝 놀라 모두 인안나를 저주하자 그녀는 두들겨 맞은 고기 덩어리처럼 변하여 나무못에 달려 벽에 걸리는 신세가 되었다.
한편 저승에 내려갔다 돌아오겠다는 인안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시종은 여주인이 돌아오지 앉자 그녀의 부탁을 상기하고 엔릴의 신전 에쿠르에 가서 그녀를 도와 땅 위로 올라오게 해달라고 인안나의 할아버지 엔릴에게 청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이번에는 그녀의 아버지 달 신 난나에게 갔으나 마찬가지였다. 끝내 에리둑에 사는 그녀의 시아버지 지하수신 엔키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는 기꺼이 도와줄 것을 약속하고 두곡(哭)꾼을 만들어 생명수와 생명 초를 건네주고 그녀를 살려오도록 저승으로 보낸다. 나무못에 걸려 있던 인안나 위에 생명 초와 생명수를 뿌리자 그녀는 일어나 섰다. 그런데 그녀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저승 신들은 그녀를 막고 웃어대며 “저승에 들어왔다가 어떻게 몸 성히 올라갈 수 있느냐?”며 그녀를 대신할 ‘머리 하나’를 보내줄 것을 약속 받았다. 그녀는 저승사자를 동반하고 땅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이곳 저곳을 다니며 대신할 사람을 찾았으나 못 찾고 있다가 우루크의 옛 도시에 있는 큰 사과나무에 이르렀다. 사과나무 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즐겁게 앉아 있던 그녀의 남편 두무지를 보자 덜컥 화가 난 인안나는 그를 저승으로 보내라고 저승사자들에게 넘겨준다.
인정사정도 없는 저승사자들에게 붙잡힌 양치기 두무지는 그의 새 색시의 오빠 태양신 우투에게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나는 여신의 남편입니다.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나의 처남이며 나는 당신의 매제입니다. 당신의 어머니 집에 기름을 날라다 준 것이 나이며 인안나의 신전에 음식을 날라다 준 것이 나입니다. 우루크에 혼인 선물을 한 것도 나이며 인안나의 거룩한 무릎에서 춤춘 것도 나입니다.”
우투는 두무지의 손과 발을 도마뱀으로 바뀌게 하여 저승사자들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게 하였다. 들판으로 도망간 두무지는 그의 누이가 일하는 양조장에 숨었으나, 날아다니던 파리가 이를 알아차리고 인안나에게 일러 바쳐 결국 붙잡히게 된다. 그의 누이는 저승에 끌려가게 된 두무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하자, 인안나는 자기 남편에게 반년을 그리고 그를 숨겨 주었다는 누이에게 반년을 저승에 살다 오라는 운명을 결정해 준다. 이렇게 결정될 수 있는 연유도 인안나가 ‘운명을 결정될 수 있는 일곱 큰 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가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한다는 설명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건기와 우기의 구분이 확실하며 우기인 겨울이지나 6-7월에 여름이 시작되면서 들판에 초목이 점차 시들어간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양떼를 모는 양치기들은 마지막까지 남은 풀을 찾아 벌판을 헤매다가 양조장에 가서 술 한 모금씩 추기는 처절한 자신들의 모습을 이렇게 저승에 끌려가는 이야기에 담아 부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원한 반복’이 신화의 주제임을 알 수 있으며 한편 두무지가 저승사자들에게 붙잡혔을 때 태양신에게 호소하면서 그는 여신의 남편이라고 외친다. 이 대목에서 ‘사람’ 두무지와 여신 인안나는 매년 행하는 성 혼례의 혼인부부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도시의 높은 층계 탑 지구라트 꼭대기 신방에 사는 여 사제는 매년 신년 초에 임금인 남편을 맞이하고 임금은 여신의 남편으로 화려한 침상에 누워 당분간 혼인 생활을 하지만 그는 정해진 때에 세상으로 내려가야 하는 풍습도 이러한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다.
‘인안나의 저승 여행’은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에 하나이며. 그 주변 민족들에게 전해지고 퍼져나가 이와 비슷한 신화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두무지는 악카드 어로 ‘탐무즈’라고 부르며 6-7월에 걸리는 달(月)을 ‘탐무즈달(月)’ 이라고 한다. 이 달은 곡(哭)하는 달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고대 히브리인들에게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야훼)께서 나를 야훼의 성전 북쪽에 있는 대문 입구로 데려 왔다.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서 탐무즈를 (위해) 곡(哭)하고 있었다”(에제 8,14).
또한 ‘인안나의 저승 여행’ 이야기 중간에 나오는 “인안나는 신들의 저주를 받고 두들겨 맞은 고기 덩어리처럼 나무못에 매달려 있다가 생명 초와 생명수를 뿌려 다시 일어섰다”는 주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3)
지하수와 구마 사제
어느 민족에게나 그들이 믿고 전하는 저승에 대한 신화가 있기 마련이다. 저승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다. 거대한 피라밋을 건축했던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저승을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어서 죽은 자가 영원히 사는 곳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자(死者)는 저승 재판관이 천칭을 놓고 저울질하여 좋은 사람으로 판정을 받은 사람이었다. 이승에서 죽을 채비를 잘한 부유한 사자(死者)는 저승에 가서도 좋은 사람으로 판정을 받고, 즐겁게 영원히 사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한편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경험했던 저승의 세계는 이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누구나 죽으면 저승으로 가며, 그들이 두려워했던 대상은 저승에서 올라와 방황하는 악한 마귀들이었으며 그들은 산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괴롭혀 저승으로 붙잡아 간다고 한다. 운명 귀신이 하늘에서 방황하며, 병마(病魔)가 땅에서 폭풍처럼 헤메고 다니며, 악한 귀신이 길거리에서 날뛰고 있다고 한다. 악한 귀신이 남풍처럼 사람을 두르고 있으며 당황한 사람을 괴롭히며 그 사람을 죽인다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근육에서 악한 귀신들이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픈 채 누워 있다고 한탄한다.
또한 수메르 저승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순찰사 저승사자(使者)들은 저승으로 데려갈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며 인정사정을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풀을 알지 못하며 물을 알지 못한다. 뿌려 놓은 밀가루를 먹지 않으며 부어 놓은 물을 마시지 않는다. 달콤함을 주는 아내의 허벅지에 구부리지 않고 즐거움을 주는 자식과 입맞추지 않는다. 아이를 아버지의 무릎에서 빼앗아 가고 새색시를 시부모의 집에서 쫓아낸다”고 한다.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운명이 된 사람으로 저승 신화에 자주 나오는 양치기 ‘도무지’는 그를 쫓아다니는 저승사자들을 피해 산골 할머니 집에 도망가서 생명을 구하고 그녀에게 물을 붓고 밀가루를 뿌려 달라고 한 후에 그 속에 주저앉아 저승사자들이 그를 못 잡을 줄 알았지만 결국은 붙잡혀 저승으로 끌려가게 된다.
과연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 비추어진 저승이란 어떠한 곳인가?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저승 여행’의 한 부분에서 저승의 관습이 대하여 말한다. 길가메쉬는 우루크의 임금이었다. 길가메쉬와 도시의 젊은이들은 ‘나무공’ 과 ‘타봉’ 놀이로 하루종일 보냈다. 그러나 젊은 아낙네들의 원성에 나무공과 타봉은 저승에 떨어지고 만다. 길가메쉬가 아끼던 놀이 감이 저승에 떨어지자 그는 슬퍼 한탄만 하였다. 그의 시종 엔키두는 자기가 저승에 내려가 가져오겠다고 나선다. 그 때에 길가메쉬는 저승에 내려갈 때 저승에 사는 사람들을 흥분시키지 않게 지켜야 할 사항을 말해 준다.
“깨끗한 옷을 입지 말라. 그들이 너를 낯선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몸에) 좋은 기름을 바르지 말라. 그 냄새 때문에 그들이 너를 둘러쌀 것이다. 창(槍)을 저승에서 흔들어 대지 말라. 창에 다친 사람들이 너를 둘러쌀 것이다. 네 손에 작대기를 들지 말라. 유령들이 모여들 것이다.
네 발에 샌들을 신지 말라. 저승에서 소리를 내지 말라.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입맞추지 말라. 네가 미워하는 아내를 때리지 말라. 네가 사랑하는 자식과 입맞추지 말라. 네가 미워하는 자식을 때리지 말라. ‘태양신이여!’ 하는 원성으로 너는 저승에 잡힐 것이다.
물론 엔키두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옷을 잘 차려 입고 손에 작대기와 창을 들고 내려갔다. 당연히 저승에 붙잡혀 올라오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다. 길가메쉬는 그를 살리기 위해 ‘신들의 왕’ 엔릴에게 가서 애원을 하였으나 거절당한다. 그는 지하수 신 엔키에게 달려가 그의 시종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눈물을 흘리자 엔키는 저승에 바람구멍을 열고 엔키두의 혼(魂)이 저승에서 올라오게 하였다. 그들은 부등켜안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엔키두는 저승에서 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말해 준다.
평생에 자식을 많이 얻고 잘 살다가 편하게 죽은 사람도 있지만, 상속인 없이 죽은 이도 있고,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여자도 있으며, 혼인은 하였으나 자기 아내의 허벅지에서 옷 한 번 벗겨보지 못한 젊은이도 있고, 지붕에서 자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으며, 부모에게 저주받은 사람도 있었고, 부둣가 말뚝에 부딪혀 강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으며, 제사 지낼 사람이 없는 혼도 있었다. 이렇게 비운에 간 사람들은 한(恨)이 맺혀 악한 마귀가 되어 밤마다 땅 위로 올라와, 밤거리를 헤매며 산 사람들을 괴롭히고 병들게 한다고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믿었다. 그래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혼을 달래 주는 날을 정하여 매 달(月) 들판의 거룩한 언덕에 올라가 제사상을 차리고, 곡쟁이들은 곡(哭)을 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병에 걸리는 이유가 악한 귀신이 몸에 들어 와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문에 병을 치유하기 위해 ‘마귀를 쫓는 사제’는 한자의 병에 적합한 내용의 주문(呪文)을 읽고 환자의 상태에 맞는 정결례를 치루어서 악한 귀신을 퇴치하였다. 수메르에서 문자 문명이 시작되면서 종교적인 문서로 처음 나타나는 토판들이 이러한 주문이었다. 기원전 28세기 때 이미 작은 토판 왼편 윗단에 ‘주문(呪文)’ 이리고 명기하여 이 토판이 ‘주문’ 임을 밝혔고, 그 내용으로 몇 개의 단어를 기록하여 그 주문이 어떠한 상황에 사용되는지를 알려 주었다.
예를 들어 뱀이나 전갈에 물렸을 때, 산모가 출산할 때, 악한 저주에 걸렸을 때, 이상한 병에 걸렸을 때 등등, 세월이 지나며 내용도 늘어나고 다양해졌지만 일정한 양식을 갖추게 되었고, 기원전 21세기에는 종류별로 모아 여러 개의 토판을 한 시리즈로 편집하여 사용하였다. 고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악카드어로 번역하여 이중어(二重語) 사본을 만들어 정경화 했으며, 몇 세대에 한 번씩 토판을 베껴 보급했는데, 이러한 전승은 기원전 3세기까지 계속되어 왔다.
병에 걸리면 악한 귀신이 몸에 붙었다고 생각하여 병을 치유하기 위해 ‘구마 사제’가 주문(呪文)을 읽고 악한 귀신을 퇴치하였는데, 이러한 주문에 등장하는 악한 귀신들은 대부분 비운에 죽어 한이 맺힌 사람들이다. “(병을 일으킨) 네가 저승에서 올라온 유령이든, 네가 쉴 자리가 없는(즉, 무덤이 없는) 허깨비이든, 네가 손을 대지 않은 처녀이든, 네가 팔을 끼어 보지 않은 총각이든, 네가 들판에서 죽은 사람이든, 네가 들판에서 흙으로 덮이지 않은 사람이든, 네가 무기로 살해당한 사람이든, 네가 강둑에서 미끄러진 사람이든, 네가 사자(獅子)에게 살해당한 사람이든, 네가 개에게 잡아먹힌 사람이든, 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든, 네가 대추야자 나무에서 떨어진 사람이든, 네가 흙덩이로 쓰러진 사람이든(‘흙덩이를 맞았다’는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한 맺힌 혼들이 저녁 해질 때 서편 저 멀리에 있는 저승 출구로 나와, 밤거리를 다니며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고 밤늦게 돌아오는 사람의 등뒤에서 유혹하여 병들게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귀를 쫓아내는 정결례(淨潔禮)는 보통 지하수에서 길어 온 찬물을 한자에게 뿌리며
지하수신 엔키의 주문을 읽는다. 그 외 소금이나 불 또는 향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밀가루를 환자 주변에 뿌려 마귀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고, 갖가지 색의 양털실로 아픈 곳을 묶은 다음 잘라 한데 모아서 들판의 거룩한 곳에 파묻는 경우도 있다. 그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던 정결례식은 지하수에서 길어 온 찬 문을 부정(不淨)한 곳에 뿌리며 주문을 읽는 예식이었다. 중요한 점은 반드시 엔키의 주문(呪文)을 읽고 엔키의 기도문으로 악한 마귀를 퇴치한다는 것이다.
“나(구마 사제)는 엔키의 사람이다. 나는 담갈눈나(엔키의 아내)의 사람이다. 나는 그의 사자(使者)이다. 그 사람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위대한 주(主) 엔키가 나를 그에게 보냈다. 엔키의 거룩한 주문(呪文)이 내 주문이 되었고 그의 거룩한 입이 내 입이 되었다. 그의 거룩한 주술(呪術)이 내 주술이 되었고 그의 거룩한 기도가 내 기도가 되었다. 사지(四肢)를 괴롭히는 것들이 아픈 사람의 몸 안에 있다. 엔키가 말한 주문을 이 악한 것들을 뽑아버릴 것이다.
이러한 엔키의 기도문의 힘으로 악한 마귀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주문을 읽는 것이다. “악한 유령, 악한 저승사자, 악신, 악한 저승차사(差使), 그들은 악하다. 내 몸에 가까이 오지 말라. 내 눈앞에서 악한 짓을 하지 말라. 내 뒤를 따라 오지 말라. 내 집에 들어오지 말라. 내 집 지붕으로 넘나들지 말라. 내가 거주하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 하늘에 목숨을 걸고 맹세할 것이다. 땅에 목숨을 걸고 맹세할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을 병들게 했던 마귀를 쫓아내고 악한 귀신이 사람을 유혹하지 않게 막는 구마(驅魔) 사업이었다. 이러한 전승은 여러 형태로 변하여 정결례를 행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었지만, 바빌로니아 시댁 끝난 이후까지도 꾸준히 지켜왔던 가장 보편적인 졍결례식은 물을 뿌리고 때로는 향을 피우며 주문을 들고 읽는 예식이었다. 초기 그리스도 교가 형성될 때에도 이러한 전승에 편승했음은 분명하다.
또한 복음서에 전하는 예수의 행적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도 마귀를 쫓아내는 사건이었으며, 우리가 읽는 ‘주님의 기도’에도 ‘우리를 (마귀의)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이 반영되어 있다. 지하수는 깨끗한 물이며 거룩한 물이어서 정결례에 사용되었다.
또한 지하수는 풍요다산을 기약하는 증표로, 엔키의 두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두 물줄기에 물고기들이 올라가는 그림이다. 많은 원통형 인장에 이러한 내용의 그림이 나온다(원통형 인장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인장고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원통형 인장은 보통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이며 고급 돌이나 보석 혹은 상아로 만든 것도 있다. 표면에 그림을 그리고 주인의 이름과 직업 등을 명기했으며 축축한 점토 판에 굴려 날인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건기 동안에 비가 내리지 않아 여름 막바지쯤 되면 많은 동식물이 갈증에 쓰러지는 경우가 많은 것을 그들의 이야기나 편지 등에서 읽을 수 있다.
그들의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지하수였다. 그래서 지하수는 거룩한 것이며 생명의 대명사였다. 신전을 지을 때 기초를 세우며 처음으로 하는 작업은, 신전 터에서 한곳을 찾아 지하수 흐르는 곳까지 깊이 파서는 그곳에 네모난 조그만 방을 만들고 엔키의 모습을 그린 청동이나 점토로 만들어 구운 쐐기못 형의 소상(小像)을 벽에 박아 놓는 일이다. 때로는 신전을 짓는 통치자의 소상도 벽에 박힌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쐐기못 소상에 신에게 드리는 기도문과 통치자의 이름과 칭호가 명기된 쐐기못도 있다. 이는 신전이 거룩함과 풍요의 원천인 지하수에 매어 있음을 물질적으로 증거하는 것이며, 또한 신전은 근본적으로 지하수신(神 )에 속함을 보여 준다.
수메르 사람들의 관습에 의하면, 집을 팔았을 경우 집을 산 사람이 그 집의 담에 나무송이나 점토로 만든 못을 박아 그의 소유임을 밝혔다. 이러한 점토로 만든 쐐기못에는 그 소유주의 이름과 그의 직업 등이 기록되었다. “자유로운 몸이 되어 혼자 나갈 수 있는 종이 그 주인과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을 사랑해서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의 주인이 재판관들을 불러내어 그 종의 귓바퀴를 그의 집의 문이나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뚫으면 그 종은 그 주인을 평생 섬길 것이다”(출애 21,5-6)라는 구약시대의 관습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언제부터인지 유다 인들은 이스라엘 신명(神名)인 ‘엘 샤다이’라고 쓴 양피지 조각을 조그만 함에 넣어 자기 집 문설주에 박아 놓았다(신명 11,18-20). 이것은 그 집과 집안은 이스라엘 신에게 속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집과 집안은 이스라엘 신에게 속한다는 뜻이다. ‘엘’은 ‘신(神)’ 이라는 보통명사이며, ‘샤다이’는 악카드 어로 ‘산(山)’을 뜻하는 ‘샤두’와 동의어이다. 즉, ‘엘 샤다이’는 산신(山神)을 가리킨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도 법전을 기본으로 사회 생활을 유지하고 사회 범죄를 처벌하였지만,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생활 중에 하나가 정결례를 치루는 것이었다. 정결례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악마의 저주에 걸려 병이 든 사람을 치유하려는 데 있다. 수메루 사회에 왕권의 권력은 ‘바람 신’ 엔릴에게 있으며, 보좌 권능은 그의 아들 ‘달 신’ 난나에게, 그리고 법으로 재판하는 정의의 판결 권은 ‘태양신’ 우투에게 있다는 신관을 정립했다. ‘바람 신’ 과 ‘달 신’ 과 ‘태양신’은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라는 친족관계를 이루고 있다.
수메르 신 계보에 의하면 바람 신 엔릴은 하늘 신과 땅 여신의 혼인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한편 치유와 구원의 신인 지하수신 엔키는 하늘 신과 지하수 여신 사이에서 이루어진 성혼례에서 생긴 아들임을 수메르 신화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한 신관은 이미 기원전 28세기에 형성되었으며, 이렇게 왕권과 사제 권의 분리를 신화화(神話化)한 수메루의 정신 문화는 ‘국가와 교회’라는 주제로 유럽 역사에 항상 대두되어 있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4)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세 신화
수메르의 창세 신화
어느 민족이나 자기네 민족의 기원을 이야기하면서 처음을 시작하는 노래는 창세 신화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여러 형태로 전해 내려온 ‘창세 신화’가 있다. 또한 오늘날 성서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성서의 ‘창세기’ 이야기는 소위 인류의 ‘태초 역사’로 잘 알고 있다.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감찰하시고 사람을 만들어내시어 에덴이라는 곳에 땅을 일구고 지키라고 그를 그곳에 두셨다고 전한다. 에덴 동산에서 강이 흘러 나와 네 줄기가 되었는데, 그 셋째가 티그리스 강으로 앗슈르 동쪽을 흐르고 넷째는 유프라테스 강이었다고 한다. 앗슈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북쪽에 위치한 도시국가로, 기원전 2000년경부터 남쪽 도시국가들과 교류한 내용이 당시의 역사적 문서에 나오며, 그 후 약 700여 년 지난 다음에는 고대 근동의 최강국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약 600여 년 동안 그 명성을 떨쳤다.
또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메소포타미아의 원동력으로, 두 강 사이에 만들어 놓은 무수한 수로를 통하여 고대인들은 바쁜 왕래를 하였다. 특히 두 강의 하류 지역 강 사이의 들판을 ‘에덴’이라 불렀다. 그곳은 들짐승도 많았고 수확을 얻었던 곳이다. 창세기의 이러한 장소적 배경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것뿐 아니라, 그 이야기 자체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창세 신화를 엮어 새롭게 번안하고 개작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창세 신화”를 글로 써서 전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이야기는 수메르의 ‘창세 신화’이다. 수메르 인들이 기원전 32세기경부터 상형문자로 의사를 교환하고 그들의 문서를 보관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짧은 신화로 문자에 담아 전하기 시작한 것은 문자가 토판에 처음 쓰여지기 시작한 때로부터 약 500여 년이 지난 기원전 27세기경이었다. 이 때 기록된 수메르 ‘창세 신화’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하늘신 주(主)가 하늘을 밝게 하였으며 땅은 어두웠고 저승에 눈을 두지 않았다. 골짜기에 물이 흐르지 않았고 무엇도 생기지 않았으며 넓은 땅에 밭고랑이 없었다. (바람신) 엔릴의 훌륭한 구마(驅魔)사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거룩한 손 씻는 정결례를 갖추지 않았다. 여기에서 ‘구마사제’는 지하수신 엔키를 가리키며, 태초에는 정결례를 할 필요가 없었음을 시사한다. 하늘의 성녀(聖女)는 손을 두드리지 않았고 찬양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하늘신의 성녀’란 금성을 상징하는 여신 인안나이며, 도시의 층계탑 꼭대기 신방에서 신년 초에 행했던 성 혼례의 배우자인 여 사제를 가리킨다. ‘손을 두드리다’ 라는 표현은 손에 나무토막을 들고 두들기는 것을 가리키며, 실제로 수메르인들은 신상(神像) 앞에 서서 나무토막을 두드리며 기도문을 읽었다. 즉, 층계탑 꼭대기 신방에서 거행했던 성혼례가 생기기 전이었다는 말이다.
하늘과 땅은 서로 왕래하지 않았고 아내로 택하지 않았다. 달(月)이 비치지 않았으며 어둠이 와 결려 있었다. 좋은 땅에 풀과 약초가 스스로 자라지 않았다.
이는 하늘의 신들이 땅의 여신들을 아내로 택하기 이전이었다는 뜻이다. 수메르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신들이 모신/출산여신들을 택하여 많은 신들을 낳았다고 한다. 일축하여,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을 때에는 땅에 아직 초목도 생기기 전이었으며 풀도 자라기 전이었다”는 창세 2,5의 이야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창세 신화에 수메르 창세 신화인 이러한 형태소가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메르의 창세 신화 전통은 다른 민족의 창세 신화와 구별되는 독특한 맥이 있다. 수메르의 태초 역사는 ‘천지 개벽’을 시작으로 신들이 인간을 만들고 도시를 세워 왕권을 정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지고 타락하게 되었다. 이에 큰 신들은 분통해 하여 인간을 전멸하려고 홍수를 일으켜 모두 없애겠다고 하지만, 지혜로운 신이 ‘지우쑤드라’라고 불리 우는 착한 임금은 큰 방주(方舟)를 만들어 홍수에서 살아 남고 그로 인해 인간의 종자와 이름을 보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로 알려진 수메르 ‘태초 역사 이야기’는 수메르 역사와 자연 환경과 그들의 사회를 배경으로 생겨난 신화이며, 후대에 그 골격이 창세 1-9장에 살아 남게 된 것이다.
수메르 ‘태초 역사’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줄거리가 연결된다. 이 이야기를 거룩한 토판의 앞부분 약 40해이 부서져 없어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르지만,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창세 신화와 비교하면, 태초에 하늘과 땅이 갈라져 세상이 생겨나고 신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 후에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큰 신들인 ‘하늘 신’ 안과 ‘바람 신’ 엔릴과 ‘지하수신’ 엔키 그리고 ‘언덕의 모신(母神)’ 닌후르쌍은 사람을 만들어냈다.
“땅 밑에서 (올라오는)작은 기는 것들이 늘어났으며 들짐승과 네 다리 달린 동물들이 들판(에덴)에서 서로 즐겁게 놀았다.” ‘들판’의 뜻인 ‘에덴(eden)’은 남쪽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두 강 사이의 들판을 말하며 사람들은 도시 밖의 들판으로 수로를 만들어 경작했다. 들판 이름에 ‘에덴의 강둑’이라는 고유명사도 있으며 창세 2,8 이하에 나오는 ‘에덴 동산’(히브리어로 ‘간 에덴’)은 수메르어 합성명사인 gan2 eden(들판의 밭)과 같은 단어이다. 수메르의 에덴(들판)에 들짐승들이 살았으며 들판을 일구어 밭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나, 창세 2장의 에데 동산에서 아담(사람)이 들짐승과 살고 밭을 일구었다는 이야기는 같은 환경을 배경으로 한다.
‘들판(에덴)’이나 ‘들판의 밭(간 에덴)’에 해당하는 수메르어 보통명사가 창세기에서는 고유명사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수메르 태초 이야기에 사람들이 땅에 기는 것들(즉, 뱀)과 들짐승과 서로 즐겁게 살았다는 부분도 창세 2-3 장에 나오는 아담(사람)이 온갖 들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 불러 주고 뱀과도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살았다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이다.
그후 “왕권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제식과 제의가 다 갖추어졌다. 도시의 거룩한 곳에벽돌을 쌓았다. 그 곳에 이름을 주었고, 배급 그릇을 나누어주었다.” 수메르 인들은 일한 노임으로 곡식과 기름을 받았는데, 크기가 일률적인 ‘배급 그릇’으로 자기가 받아야 할 몫을 받았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배급 그릇을 소유하고 있었다. 수메르 신화에 “도시의 거룩한 곳에 벽돌을 쌓아 제단을 세웠다”는 문구도 자주 언급된다.
태초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 힘을 합하여 일한 작업이 바로 거룩한 곳을 택하여 벽돌로 제단을 쌓고 그 곳에 신상을 세워 예배했던 것임을 말해 준다.
수메르의 왕 계보와 아담의 계보
그 후 큰 신들은 ‘에리둑, 바드티비라, 라라크, 씨파르, 슈루파크’ 등 다섯 도시를 세워 주권을 정해 주었다. 이 다섯 도시들은 ‘수메르 왕 계보’에 기록 된 태초의 다섯 도시를 가리킨다. 수메르 왕 계보는 “왕권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후 에리둑에 왕권이 있었다”로 시작된다. “에리둑에 두 임금이 다스렸으며 그 햇수는 각각 3600×8년과 3600×10년을 다스렸다”고 한다. 그 후 “에리둑이 무너지고 왕권은 바드티비라로 옮겨갔다.” 이렇게 ‘수메르 왕 계보’에는 도시의 왕권이 다섯 도시를 옮겨다녀 “다섯 도시에 여덟 임금이 3600×60+3600×7년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섯 도시 중 마지막 도시 슈루파크의 임금인 지우쑤드라는 3600×10년을 다스렸고, 그 후 홍수가 일어나 나라를 휩쓸어 버렸다고 기록한다.
창세 5장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도 이와 같은 구조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담의 계보에 아담이 산 햇수가 930년이며 ‘노아’도 그의 햇수 600년에 홍수가 일어났고 그후 35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창세기의 족장들이 산 햇수는 ‘수메르 왕 계보’에 수메르 임금들이 통치한 햇수와 같은 방식으로 계산된 것이다. 위에서 수메르 왕 계보의 숫자를 곱셈으로 표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3600×10년이라는 햇수는 3600이 10변을 지나는 동안 다스렸다는 내용이다. 수메르 인들은 60진법을 사용하여 1,30, 3600(60×60)의 순서로 3600이 가장 큰 단위의 숫자이다. 수메르어로 1은 ‘디쉬,’ 60은 ‘기쉬,’ 3600은 ‘샤르’라고 불렀다. 수메르 왕 계보에 지우쑤드라의 아번지는 3600×5+60×10년을 다스렸다고 한다. 즉, 그는 가장 큰 단위(샤르)를 5번 그리고 그보다 작은 단위(기쉬)를 10번 지나는 세월만큼 다스렸다는 말이다.
한편 히브리인들은 10진법을 사용하였다. 십진법은 1, 10, 100(10×10)의 순서이며, 육십진법과 비교하면 육십진법의 60에 상응한 숫자는 십진법의 10이고, 3600에 상응하는 숫자는 100이다. ‘아담의 계보’dpl 아담이 산 햇수를 히브리어로 읽으면 ‘9×100년+30녀’(트샤 메으트 샤나 붸 - 쉴로쉼 샤나. ‘트샤=9’. ‘메오트=100의 복수형’. ‘샤나=년’. ‘뭬=그리고’. ‘쉴로쉼=30’)이다(창세 5,5). 히브리어로 100을 ‘메아’라고 읽으며 100단위의 숫자를 읽을 때 숫자를 곱셈으로 표기한 것처럼 읽는다(즉, 9메오트 = 900). 이러한 방법으로 셈하여 생각하면, 100단위의 햇수 9번과 나머지 햇수를 살았다는 뜻이다. 수메르 왕 계보의 통치 햇수나 아담 계보의 족장들의 나이가 같은 방법으로 셈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아담 계보에 나오는 족장들이 산 햇수가 1000년, 즉 10×100년 이상 되는 경우가 없다는 점이다. 비록 히브리어에 가장 큰 단위 숫자는 ‘엘리프’락 읽는 1000이었지만 족장의 나이는 모두 1000년 미만이다. 가장 오래 산 족장은 ‘메투쉐락흐’로 9+60+9×100년(=969년)동안 살았다(창세 5,27). 수메르 왕 계보에 가장 오래 통치한 임금은 3600×10+2×3600년을 다스렸다. 즉, 3600(샤르)년을 12번 동안 다스린 것이다. 즉, 3600(샤르)년을 12번 동안 다스린 것이다. 수메르 왕 계보에 한 도시국가의 여러 임금들이 통치한 햇수가 3600×60을 넘는 경우는 있지만, 한 임금이 절대로 3600을 60번이나 되는 햇수를 다스리지 못했다. 이렇게 한 임금이 3600을 60번 다스리지 못한 것처럼, 아담의 계보에도 한 족장의 나이가 100을 10번 하는 이상은 살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수메르 왕 계보 전승 범주 안에서 아담 계보가 작성됐음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단서이다. 또한 수메르 왕 계보를 보면 홍수 이전까지 통치했던 다섯 도시의 임금들의 수는 모두 8명이다(혹은 9명). 아담에서 카인․에녹으로 연결되는 계보(창세 4,17-22)도 이와 마찬가지로 홍수까지의 족장 수는 모두 8명이다(창세 5장의 아담 계보의 족장은 모두 10명이다).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
수메르 땅의 다섯 도시에 8왕이 다스리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수확을 고루 나누어 갖고 협력하며 살았다. “진흙으로 막힌 곳에 수로를 파서 물이 잘 흘러가게 했으며 좁은 수로를 깨끗이 파서 풍성한 수확을 얻게 했다.” 수메르인들은 두 강 사이에 많은 수로를 파서 경작지를 넓혔으며 수로를 통하여 물자 교류를 원활히 하였다. 이렇게 파놓은 수많은 수로바닥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닥치는 홍수로 인하여 침적토가 쌓였다. 강 상류로부터 붉은 흙을 실어 내려오는 흙탕물 홍수가 강둑으로 넘쳐 항상 새로운 흙을 강가 경작지에더해 주기 때문에 비옥한 경작지가 되어 농사일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해마다 홍수가 일러나기 전에 수로 바닥을 파내어야 했으며, 이 노역은 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은 잘 조직된 집단 노동력을 요구하는 사업이었다. 해마다 겹치는 이와 같은 부역에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吐露)하였고, 신들의 왕인 엔릴은 인간들이 불평만 하는 시끄러운 소리 떄문에 쉴 수가 없다 하여 떠들어대는 인간들을 모두 없애자고 큰 신들의 모임에서 재안 한다. 모신과 거룩한 하늘의 여주(女主)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고 슬퍼했다. 한편 ‘지혜의 신’이며 ‘치유와 구원의 신’인 지하수신 엔키는 인간을 살릴 계획을 하며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 충고했다.”
“그 때 지우쑤드라는 임금이며 제사장이었다. 앞일을 미리 알려 주는 신상(神像)을 만들고 신(神)의 말을 들으려고 그 옆에 겸손히 서서 두려워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지우쑤드라’라는 이름은 ‘목숨은 먼 날이다’. 즉, ‘오랫동안 살 것이다’라는 뜻이다. 메소포타미아이 ‘태초 이야기’에서 그는 구약성서 ‘홍수 이야기’의 ‘노아’와 같은 인물이다. 구원의 신 엔키는 올바르게 사는 임금 지우쑤드라의 환영에 나타나 큰 신들이 홍수를 일으킬 것을 알려 주고, 방주(方舟)를 만들어 홍수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담 옆 왼쪽에 서서 귀를 기울여라. 내 가르침에 주의하여라. 우리 손으로 일으킨 홍수가 배급 그릇들을 이 땅에서 휩쓸어 버릴 것이다. 인간의 종자를 없애 버리자고 결정했다.” ‘배급 그릇을 휩쓸어 버리겠다’라는 비유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밥그릇을 쓸어버리겠다’
는 말로 ‘사람들을 없애겠다’는 표현이다. 그 후 “거센 바람과 거친 폭풍이 모두 한 곳에 모여 홍수는 일곱 날과 일곱 밤 동안 나라를 휩쓸어 버렸다. 태양이 떠오르자 하늘과 땅에 빛이 비쳤다. 지우쑤드라는 큰배에 구멍을 뚫었다. 태양신은 빛을 큰 배 속으로 비쳐 주었다. 이렇게 인키의 조언대로 배를 만들어 살아 남은 지우쑤드라는 태양신 앞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지냈으며 지우쑤드라는 큰 신들의 축복을 받아 신처럼 사는 생명을 얻고 신처럼 사는 영원한 목숨을 받았다. 그리고 그에게 ‘작은 기는 것들과 인간 종자의 이름’ 을 보호하기 위해 바다 건너편에 있는 딜문 땅에 가서 영원히 살게 하였다.
‘딜문’은 수메르 신화에 자주 나오는 곳으로 지금의 페르샤 만에 있는 섬 바레인을 가리킨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시대에 딜문은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을 연결하는 해상 무역중개업을 활발히 했던 곳이었다. 수메르 신화 ‘거룩한 도시 딜문’에 의하면 딜문은 거룩하고 깨끗한 땅이어서 “까마귀가 까옥거리지 않았으며 늑대가 양을 채어 가지도 않았다”고 하며,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나는 할머니요, 나는 할아버지요”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노랫꾼이 “일하러 가세”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며, 도시 변두리에서 곡(哭)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딜문에서 홍수에 살아남은 지우쑤드라는 큰 신들의 축복을 받고 그의 아내와 함께 영원히 살았다고 한다.
훗날 도시국가 우루크의 임금이었던 길가메쉬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바다 건너에 살고 있다는 지우쑤드라를 만나러 온갖 모진 고난을 겪고 끝내 지우쑤드라를 만난다. 길가메쉬는 그에게서 ‘불로초’를 구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샘터를 지나가다 그 곳에서 잠시 멱감는 사이 뱀에게 ‘불로초’를 도난 당한다. 이러한 애처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길가메쉬 서사시’ 에도 홍수에서 살아 남은 의로운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메르 창세기라고 말할 수 있는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가 기록된 토판은 40행 미만의 마지막 부분이 부서져 없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줄거리는 구약성서의 창세기 ‘태초 이야기’가 인 ‘천지 창조 - 인간 창조 - 에덴 이야기 - 도시 건설 - 계보 - 홍수 -노아의 축복’ 등으로 이어지는 소제목들과 순서를 같이 하며, 그 시작과 끝이 한 묶음이다. 고대 근동 문학 작품 중에 이러한 주제들이 연결되는 창세 신화는 지우쑤드라 홍수 이야기뿐이다.
또한 이러한 수메르 ‘창세기’가 구약성서의 창세기 ‘태초 이야기’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태초에 큰 신들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들이 들판에서 살다가 도시를 세우고 왕권을 받아 풍요하계 살았으나,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불평불만에 큰 홍수로 그 해결책을 택했다는 줄거리에 ‘왕 계보’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여러 구약성서 학자들은 창세기의 ‘아담의 계보 책’은 따로 떨어진 책으로 존재하였으며 후대 편집하는 과정에서 들어온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우쑤드라 홍수 이야기에서 읽은 것처럼 태초 역사의 큰 단락의 한 소제목으로 ‘창세’와 ‘홍수’의 중간에 ‘왕 계보’ 가 들어 있는 것은 ‘태초 역사’의 기술(記述)에 ‘아담 계보’는 처음부터 있어야 하는 필요한 장(章)이며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디딤돌이었다는 점을 수메르의 ‘창세기’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5)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법과 모세 법
고대 미소포타미아 문화와 구약성서에 나오는 많은 기록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지난 호에 게재된 ‘창세 신화’뿐 아니라 그 외 여러 부분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주제로 생각한다면 후대에 받아들인 문화가 더욱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특히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열거된 ‘모세 법(法)’도 이러한 범주에서 고찰할 수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법 중에 인류 최초의 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법은 서기전 21세기 초 도시국가 우르에서 공포된 우르남무 법전이다(우르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살았다고 전하는 바로 그 도시였다). 서기전 22세기 중엽부터 40여 년 동안 수메르 지역은 동쪽 산맥에서 내려온 오랑캐들에게 재산과 가족, 친척을 빼앗기고 동족간에 많은 고난을 당했다. 그 때에 우르남무(서기전 2112-2095년)는 오랑캐들을 물리치고 도시국가 우르를 재건하였으며 군왕으로 주변의 여러 도시국가들을 연합하여 수메르의 영광을 회복시켰다.
그의 법전 서문에 노예가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바른 경제활동을 위하여 도량형기를 표준화했으며, 고아가 부자(富者)에게 팔려가거나 과부가 권력자에게 팔려가지 않게 했고, 군왕의 친척들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사람들 사이에 반목과 폭행이 사라지게 했고, 나라에 정의를 확립했다고 말한다.
부패해진 나라를 바로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편찬한 우르남무 법전의 이러한 취지는 이보다 250년 전 메소포타미아 중아 티그리스강변에 위치했던 도시국가 라가쉬의 통치자 우르카기나(서기전 2351-2342)가 발표한 사회개혁칙령에서 비롯된다. 그 내용은 우르카기나가 통치자로 발탁 받기 전에는 권력자들의 횡포가 심하여 시민들의 원성이 높았으며, 시민들은 빚에 시달리면서도 곡식으로 세금을 내기에 급급했으며, 도둑질하여 그대가로 팔려 간 가족 성원들이 많았는데, 우르카리나는 그들의 부담을 풀어 주고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우르카기나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자가 권력자와 부자(富者)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도시 수호신에게 약속한다고 천명했다. 지금부터 4500여 년 전에 수메르의 한 도시국가의 통치자가 시민들의 사회보장을 위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실로 놀랍다. 이러한 전통은 후대에 기억되었고 바로 실현되어야 하겠다는 군왕들에 의해 법전으로 공포되고 바른 법령을 통하여 존속되었다.
어느 사회나 정의를 지향하는 향상될 수 있다고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정신사의 흐름은 문자로 기록된 토판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문자로 그들의 경제활동을 기록했던 서기전 30-29세기의 토판은 주로 팔 것을 약속하고 판매금을 받는 ‘계약서’이다. 그 내용은 ‘이러이러한 물건으로 얼마의 금액을 매도인(賣渡人) 아무개는 받았다’라고 적혀 있다. 특이한 것은 ‘받다’라고 번역한 동사는 ‘먹다’는 단어이다. 즉, 판매 금을 식(食)했다는 말이다.
그 후 약 200년이 지나면서 이러한 판매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첨부된다. “매도인은 이의(異意)를 지기하지 않을 것을 신(神)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만일 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신의 단검으로 그는 처형될 것이다.” 때로는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만일 매도 인이 약속을 어기면 그(매도인)의 입 속에 쐐기(나무못)를 박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자주 사용되었다(신의 이름 대신에 왕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계약서도 있다). 한 예로 “만일 매도 인이 그가 판 물건을 붙들고 이의를 제기하면 그의 입 속에 죄악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입 속에 쐐기를 박아버릴 것이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이러한 벌칙이 실제로 얼마나 또 언제까지 시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서기전 27세기경에 기록된 계약서에는 계약을 파기할 경우 신체를 상해하겠다는 복수(復讐) 대신에 돈으로 손해배상 할 것을 첨부한다. “누구든지 팔린 경작지를 붙들고 있으면 매도 인은 경작지 가격의 곱을 돌려 줄 것이다. 이렇게 계약을 체결한다.” 어떻든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경제활동에 있어서 신/왕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을 어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글로 기록했던 것이다.
이러한 계약서와 거의 비슷한 형식을 도시국가와 도시국가 사이에 채결했던 조약도 작성되었다. 현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유명한 ‘독수리 석비(stele of the Vultures)’를 그 한 예로 든다. 이 석비(石碑)는 위에 언급한 사회개혁칙령을 발표한 우르카기나보다 100여 년 전 그와 같은 도시국가 라가쉬의 통치자 에안나툼(기원전 2454-2425년)이 라기쉬의 이웃 도시국가 움마의 통치자와 체결한 조약서이다.
움마인들이 라가쉬에 접경한 국경지역의 경작지를 임차(賃借)하고 추수한 후 임차료로 곡식을 지불할 것을 약속하면서 절대로 경계비(境界碑)를 부수고 침범하지 않을 것을 수메르이 최고신 엔릴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만일 이 조약을 어길 경유 엔릴이 거대한 투망(投網)이 움마인들에게 덮어 씌워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늘과 땅의 왕 엔릴의 목숨으로 (맹세한다). 나(움마의 통치자)는 닌기르수(라가쉬 수호신)의 경작지를 임차(賃借) 한다. 나는 수로(水路)이 권한을 표명하지 않을 것이며 대대(代代)로 닌기르수의 경계지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며 수로와 운하(의 경로)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움마의 통치자는 에안나툼에게 이렇게 약속하였으며 에안나툼은 아래와 같이 청원과 함께 엔릴의 신전에 제물을 보냈다. “만일 그(움마의 통치자)가 (임차한 경작지를)붙들고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면 이는 조약을 어기는 것이다. 그가 맹세한 엔릴의 거대한 투망(投網)이 하늘에서 움마인들에게 덮어 씌워질 것이다.” 이 조약서의 마지막 부분은 땅의 여신 닌키에게 보내는 청원이 담겨 있다.
“만일 그가 조약을 어기면 그가 맹세한 닌키는 땅 밑의 뱀들로 하여금 움마인들의 발을 물게 할 것이다. 만일 움마인들이 (경계) 수로를 넘어 들어오면 닌키는 그들의 발 밑에서 땅을 잡아 당겨버릴 것이다.” 그들이 서 있는 땅을 갈라지게 하여 땅 속에 빠뜨리게 하겠다. 즉 웅덩이를 파서 그 속에 계약 파괴자들을 묻어 버리겠다는 경고이다. 약속을 지키는 사회가 되기를 염원하는 통치자들의 기상을 읽을 수 있다.
에안나툼보다 수십 년 전에 기록된 매우 유명한 현인의 어록 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가르침(슈루파크의 가르침)’ 에도 정의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계명을 가르치고 있다. ‘수메르 왕 계보’와 ‘홍수 이야기’에 의하면 착하고 바른 임금인 지우쑤드라는 수메르 땅에 대홍수가 일어나기 바로 전에 지혜신의 도움으로 큰 방주를 만들어 그의 가족과 생물이 살아 남을 수 있었으며 그래서 인간이 종자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한다. 슈루파크는 지우쑤드라의 아버지이며 그의 가르침은 훗날 모든 가르침과 잠언서의 원형이자 구약성서 십계명의 5-10조항의 모태가 되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가르침인 ‘슈루파크의 가르침’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지혜롭고 유식한 사람이 수메르에 살았다. 슈루파크인 그는 그의 아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도둑질하지 말라---. (남의) 집을 부수고 들어가지 말라. 살인강도를 하지 말라---. 간음(?)을 하지 말라---.(남의) 젊은 여자와 놀지 말라---. 맹세를 하지 말라---. 언쟁을 일으키지 말라---.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
이는 십계명 중 6-10계명과 같은 맥락이며, 또한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계명의 내용과 순서는 자세한 경우를 들어 설명하는 모세 법의 기본 골자이다. 이 가르침의 전통으로 법전이 편찬되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인류 최초의 법전으로 알려진 우르남무 법전이 바로 그 첫 번째 예이다. 우르남무 법전은 1-3조항이 ‘살인, 살인강도, 상해’. 6-8조항이 ‘간음’. 13-14조항이 ‘거짓 증거’ 등을 열거하는 경우 법 조항으로 이루어졌다. 1조항 - “사람이 사람을 살인했을 경우에 그 사람을 죽일 것이다---.” 6조항 - “처녀인 젊은이의 아내를 사람이 힘을 행사하여 강간했을 경우에 그 사람을 죽일 것이다---.” 13조항 - “사람이 마술을 행했다고 사람을 고소할 경우에 (고소인)이 그를 강(江)의 신명재판에 데려와 강의 신명재판에서 깨끗하다면 그를 데려온 사람은 은(銀) 3쉐켈을 지불할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결혼관습에 의하면 총각이 처녀의 집에 들어가 일정기간을 생활한 다음에 결혼식을 치르고 부부 관계를 가졌다. 강에 나아가서 신명재판을 받는 경우는 고소인이나 피고소인이 자기의 무죄를 설명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에 시행되는 방법으로, 강물에 빠뜨렸으나 우연히 물살이 약해 살아 나오면 죄가 없다(즉 깨끗하다)는 식의 판단이다. 모세 법에는 그런 비슷한 경우 하느님 앞에 나아가 하느님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 죄 값을 갚아야 한다고 말한다(출애 22,9). 누가 옳은지 판단되지 못할 경우 언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강신(江神) 재판을 시행했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은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우르남무 법전보다 350여 년 후에 공포된 바빌로니아의 최대 법전인 함무라비 대왕의 법전도 살인에 관한 법령이 첫 조항이며 또한 구약성서의 모세 법도 그 첫 조항이 살인에 관한 법령이다. “사람을 때려 죽였으면 그를 죽일 것이다”(출애 21,12). 함무라비 법전은 살인에 관한 조항에 이어 거짓 증거에 관한 법령이 나온다. 1조항 - “만일 사람이 사람을 고소하고 그에게 살해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그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 고소인을 죽일 것이다.”
2조항 - “만일 사람이 사람에게 마술을 (했다고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그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를 마술에 걸리게 한 자를 강신(江神)에게 데려간다. 그는 강 신에게 와 빠질 것이며 강 신이 그를 삼켜버릴 경우에 고소인이 그의 집을 차지한다. 그 사람을 강 신이 깨끗하다고 하여 그가 온전한 경우에는 그에게 마술을 걸었다고 (소송을) 제기한 자를 죽일 것이다. 강 신에게 와 빠진 자는 고소인의 집을 차지할 것이다.” 3조항 - “만일 사람이 재판에 거짓 증인으로 나와서 그가 이야기한 말을 입증하지 못했을 경우에, 그 재판이 생명에 관한 재판이면 그 사람을 죽일 것이다.
우르남무 법전과 하무라비 법전과 모세 법의 몇몇 조항을 대조하여 읽어보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법정신이 구약성서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간음에 관하여 :우르남무법 6조항 - “처녀인 젊은이의 아내를 사람이 힘을 생사 하여 강간했을 경우에 그 사람을 죽일 것이다.” 7조항 - “젊은이의 아내가 그녀의 뜻으로 다른 남자를 쫓아가 그가 그녀와 동침했을 경우 그 여자를 죽일 것이나 그 사람은 풀어 줄 것이다.”
한 사람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침한 경우에 여자를 살릴 수 있는 경우가 함무라비 법전에 있다. 129조항 - “사람의 아내가 다른 사람과 동침하는 것을 잡았을 경우에, 그들을 묶어 물에 빠뜨릴 것이다. 만일 여자의 주인(즉 남편)이 그의 아내의 목숨을 살리기를 원하면, (재판관인) 왕이 그의 종을 살릴 것이다.” 130조항 - “아직 부부 관계를 갖지 않고 그녀의 아버지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아내와 관계를 갖고 그녀의 품에 누워 있는 것을 사람이 잡았을 경우에 그 사람을 죽일 것이나 그 여자는 풀어 줄 것이다.”
131조항 - “만일 사람의 아내를 그녀의 남편이 고소하였으나 그녀가 다른 사내와 동침하는 것을 붙잡지 못했으면 그녀는 신들에게 맹세하고 그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132조항 - “만일 사람의 아내가 다른 사내 때문에 자신이 손가락질을 받으며 다른 사내와 동침하는 것이 붙잡히지 않았어도 그녀의 남편을 위해 강 신에게 빠질 것이다.”
모세 법에서는 “남자가 남편이 있는 여자와 동침한 것을 찾았을 경우에, 그 여자와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일 것이다”(신명 22,22). “남자가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찾아 그 사람이 힘을 행사하여 그녀와 잔 경우에 그녀와 잔 그 사람만 죽일 것이다”(신명 22,25).
결혼 계약서에 관하여 : 우르남무 법전 9조항 - “사람이 그의 아내와 이혼할 경우에, 그는 은(銀) 1마나를 그녀에게 지불할 것이다”(그 당시 은 1마나로 남종과 그의 아내와 아들과 딸을 살 수 있었다). 10조항 - “그가 미망인과 이혼할 경우에 은 2분의 1마나를 그녀에게 지불할 것이다.” 11조항 - “사람이 결혼 계약서가 없는 미망인과 동침했을 경우에, 그 사람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함무라비 법전 128조항 - “만일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고 그녀와 계약서를 만들지 않았으면 그 여자는 아내가 아니다.” 결혼 계약서를 체결하고 보관하는 것은 여자가 법적 절차를 통하여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유다 인들은 아직도 종교적인 결혼 계약서를 작성하고 결혼한다. ‘결혼 계약서’를 히브리어로 ‘크루바’라고 하며 이 단어는 동사 ‘카타브’, ‘글을 쓰다. 기록하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부모를 때린 경우에 관하여 : 함무라비 법전 195조항 - “만일 자식 그의 아버지를 때렸다면 그의 (인장을 굴리는) 손을 잘라 버릴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계약 등을 기록한 토판에 날인할 때에, 우리의 인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원통형 인장을 사용하였다. ‘인장을 굴리는 손’은 잘 쓰는 손을 가리킨다.
한편 모세 법에서는 “그의 아버지나 그의 어머니를 때린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출애 21,15)라고 한다.
상해복수법과 동태복수 법에 관하여
① ‘눈은 눈으로’ : 우르남무 법전 19조항 - “사람이 무기로 무자비하게 사람의 손발을 부러뜨렸을 경우에 은 1마나를 지불할 것이다.” 22조항 - (사람이)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렸을 경우에, 은 2쉐켈을 지불할 것이다. (법적인 용어로 ‘사람’은 도시국가 시민으로 자유인을 말한다).
이 조항을 함무라비 법전과 비교해본다. 196조항 - “사람이 (다른) 사람 자식의 눈을 멀게 하였을 경우에, 그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글자 그대로는 ‘눈을 부수다’). 197조항 - “사람이 사람의 뼈를 부러뜨렸을 경우에, 그 사람의 뼈를 부러뜨릴 것이다”(글자 그대로는 ‘뼈를 부수다’). 우르남무 법전에는 동등한 위치의 사람 사이에 상해가 생겼을 경우에도 보상제도를 택하였으나 함무라비 법전에는 동등한 위치에서 유발된 상해일 경우 동태복수 법(同態復讐法)을 지향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로 동태복수 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식의 보복해결책인 것이다.
그럼 이네 대한 구약성서의 법규를 모아놓은 구절들을 찾아본다. “상해가 생겼을 경우에, 생명은 생명으로(갚아) 주어야 할 것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갚아야 할 것이다)”(출애 21,23-24).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은 그의 피를 흘려야 한다”(레위 9,6)는 동태복수 법(lex talionis)을 모세 법에서는 매우 강조하고 있다.
실상 고대 수메르의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을 원형으로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하였음은 분명하지만, 우르남무 법전에서는 이러한 복수 법에 관한 경우를 말하지 않고 상해가 생긴 경우 손해배상 법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는 수메르인들의 계약제도 변천과정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초기 단계의 계약서(서기전 28세기)에 계약을 파기할 경우 신의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라든지 아니면 그의 입 속에 나무못을 박아 넣을 것이라는 식으로 복수 법을 택하였으나 곧 손해배상 법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에 부분적으로 동태복수 법을 규정한 것은 계약서 체결에 사용하였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오래된 복수 법을 부활시켰던 것이라고 이해한다. 바빌로니아 인들에게 동태복수 법이 매우 중요하게 표명되지만 실상 그 판례는 드물었다. 위의 우르남무 법전에서 읽었듯이 가능한 한 상해 보상제도를 적용하였다.
② 보상제도 : 함무라비 법전에서 상해보상제도는 계급이 낮은 층에게 상해를 가했을 경우에 이루어진다. 198조항 - “사람이 중인(中人)의 눈을 상하게 하였거나 중인이 뼈를 부러뜨렸으면, 은 1마나를 지불할 것이다”(중인의 위치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보다 낮고 종보다는 높았다).
199조항 - “만일 사람이 (다른)사람의 종의 눈을 상하게 했거나 사람의 종의 뼈를 부러뜨렸으면, 그의 가치의 반을 지불할 것이다.” 201조항 - “만일 사람이 중인의 이빨을 떨어뜨리게 하였으면, 은 1마나를 지불할 것이다.”
반면 모세 법에는 상해 당한 종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고 명기한다. “사람이 그의 종의 눈이나 여종의 눈을 때려서 멀게 했을 경우에, 눈 대신에 그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 사함이 그의 종의 이빨을 부러뜨렸을 경우에, 이빨 대신에 그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출애 21,26-27). 주인이 고의였건 타의였건 그의 종의 눈을 멀게 한 후 그의 가치의 반을 지불하는 함무라비 법전의 경우와 눈 먼 종에게 자유를 주어 나가라고 하는 모세 법의 경우사이에 과연 어느 쪽이 더 상해 당한 종을 위한 법규일까?
③ 뺨을 때린 경우 : 끝으로 사람의 뺨을 때린 경우를 규정한 함무라비 법전의 몇몇 법령을 읽어본다. 202조항 - “만일 사람이 그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이 뺨을 때렸으면 그는 모임에서 황소가죽 채찍을 60대 맞을 것이다.” 203조항 - “만일 사람이 자식이 그 같은 사람의 자식의 뺨을 때렸으면 은 1마나를 지불할 것이다.” 204조항 “만일 중인이 중인의 뺨을 때렸으면 은 10쉐켈을 지불할 것이다.” 205조항 - “만일 사람의 종이 사람의 자식의 뺨을 때렸으면 그의 귀를 잘라 버릴 것이다.”
‘눈에는 눈으로’라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동태복수 법에 대하여 신약성서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말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십시오, 오히려 누가 당신이 오른 뺨을 때리면 그에게 다른 뺨마저 돌려대십시오. 당신을 재판에 걸어 당신의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겉옷마저 내주십시오”(마태 5, 38-40). 예수의 말씀에 ‘눈에는 눈으로’라는 구절 다음 곧 바로 ‘뺨을 때리는 경우’의 문구로 연결되는 것은 상기한 함무라비 법전의 몇몇 조항의 순서와 같다. 곧 196조항 ‘눈을 멀게 한 경우’엣 201조항 ‘이빨을 떨어뜨리게 한 경우’까지를 다룬 후에 202조항 ‘뺨을 때린 경우’로 연결된다. 이처럼 눈과 이빨에 관한 법 조항 다음으로 제기되는 항목이 ‘뺨을 때린 경우’를 택하였을까 에 대한 궁금증은 상기한 함무라비 법전의 순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의 이러한 단락이 신약 성서까지 연결될 수 있었던 문화적 배경은 유다 인들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 바빌론으로 유배 갔던 많은 유다 인들은 그 곳에 남아 살았으며, 바빌로니아의 지적 문화 유산을 습득하고 발전시켜 미쉬나와 탈무드 같은 방대한 문헌을 남겼다. 유다 인들의 문화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신약성서에서 이러한 바빌로니아 문화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6)
신 상 (神 像)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 어느 곳에서든지 각양각색의 신상(神像)을 볼 수 있다. 신상은 신이 그림이라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신․구약성서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예를 들면, 엔키의 경우 그의 관할 지역인 지하수와 물고기가 그의 대표적인 상징이며 그의 신상의 모습이다. 신(新)앗리이아 제국시기에 출토된 많은 원통형 인장의 그림에서는 앗리리아 왕이 생명의 나무 옆에 서서 나무를 돌보고 있고 그 뒤에는 독수리 가면을 쓴 날개 달린 수호신이 서 있으며 가운데 위에는 태양신 혹은 활을 잡아 당기는 앗슈르 신이 두 날개를 펴고 있다. 신들의 특징이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은 자연적인 경로이다. 큰 신들과 작은 신들이 있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세계에도 그들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었다.
서기전 33-30세기 남쪽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수백 개의 경제문서 토판을 해독함으로써 그 당시 물량거래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지역은 크게 네 곳으로 구분되어 생산품을 만들어내었다. 남단 페르시아만 가까이 삼각주 지역 도시 에리두를 중심으로는 말린 물고기, 그 위 편 들판지역은 양치기를 주로 하는 곳이므로 우유제품(치이즈, 버터, 크림등)고 양피제품, 서쪽에는 우르와 우루크를 중심으로 소 치기를 전업으로 하는 생산품, 그리고 중앙과 북쪽은 곡식을 주로 생산하였다. 수메르 문명이 그렇게 짧은 시기에 고도로 발전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이처럼 문명 자체가 본업 경제사회였기 때문이다.
수메르 분업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물물교환을 하지 않고 중개상인을 매개체로 하는 시장경제 사회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중간 상인층이 발전되었으며 서로 다른 생산품을 대량 생산하는 도시국가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수메르 도시국가 생존에 절대적인 관건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생긴 정치제도가 ‘수메르’라고 불리웠던 도시국가 연맹체였으며,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히 그 중심역할을 맡게 되는 중심 산업이 대두되었는데, 그것은 중앙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었던 농업이었다.
이에 따라 이 농사를 관할하는 여러 수호신․여신들이 중심 세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래서 서기전 28세기 즈음에는 메소포타미아 중앙에 위치한 니푸르가 최강의 도식되었으며 니푸르의 수호신 엔릴이 실상 수메르 신들의 세계에서 ‘ 신들의 왕’ 으로 군림한다. ‘엔’은 ‘주(主)’, ‘릴’은 ‘바람, 기운, 혼(魂)’을 뜻하며, 엔릴은 단순한 풍신(風神)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 기운을 총칭하는 기(氣)를 장악하는 신이다. 분업을 지향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 농업이 가장 주요한 산업으로 부각된 것 또한 곡식의 주요가 제일 많았던 고대 사회의 자연적인 경제사회 현상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들이 즐겨 전했던 여러 수메르 신화에 이러한 경제사회 구조가 반영되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크게 넷으로 나뉘어져 분업을 했던 각 지역의 네 업종이 편을 이루는 것이다. 농부는 소치기와 합세하고, 양치기는 고기잡이와 한편이 되어 편싸움을 하는 정황이 여러 작품에 나온다. 물론 자연적으로 농부와 소 치기는 한 편이 될 수밖에 없고 어디에서나 양치기와 농부 사이는 나쁘다. 수메르 신 계보에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운명을 경정하는 일곱 큰 신’이 신들의 최고의회 하는 제도이다.
이 일곱 큰 신들의 분포는 소 치기를 주로 하는 우루크의 하늘 신과 인안나(금성), 그 아래 도시 우르의 난나(달신), 그 윗편 라르싸의 태양신 우투, 그리고 농업을 주로 하는 북쪽 도시 키쉬의 닌후르쌍(낮은 언덕 여신)과 중아의 중심지 니푸르의 엔릴이 한 편이며 가족관계로 한 집안 식구이이다. 그러나 양치기를 아들로 둔 지하수신 에리두의 엔키는 큰 신들의 모임에서 홀로 이다. 흥미롭게도 수메르 신화에 엔릴과 엔키 사이에 효한 갈등이 자주 나온다.
동정심 많은 구원의 신, 엔키
하늘 신은 지고의 신이며 실상 엔릴이 세상의 최고 권력자이고 엔키는 엔릴 다음, 차석이다. 그 한 예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세기인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를 들면 불평불만에 꽉 차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소음에 시달리던 엔릴은 인간을 없애려고 대홍수를 일으키자고 큰 신들의 모임에서 결정했다. 그 때 엔키는 이 소식을 당시 착한 왕에게 전해 주어 인간을 살리게 하려고 갈대 담에 대고 비밀을 누설하며 큰 방주를 만들어 살아 남도록 당부한다. 이렇게 하여 살아 남은 왕은 인간의 씨를 보호하게 되었다는 홍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엔릴은 참을성이 없는 권력자로 등장하지만, 엔키는 약자에게 동정심이 있으며 보호하려는 본능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계보에 엔키 본인이 엔릴을 누르고 그 위에 올라선 적은 없다. 그러나 지하수가 병을 치유하는 정결례의 가장 보편적인 수단인 사회에서 지하수신이 구원의 신을 대두되는 것 또한 당연한 발로이다. 그래서 구마 사제들이 마귀를 쫓기 위해 애독하는 주문(呪文)․기도문의 수호신은 엔키이다. 엔키의 거룩한 입(말씀)이 주문이 되어 병든 사람의 몸에서 악한 저주의 신을 추방하는 것이며, 이로써 사람은 치유되고 그의 집안 수호신이 손(보호)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엔릴은 세상을 권력으로 다스리며 때로는 재앙을 초래하고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지만, 엔키는 항상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을 도와주며 엔릴의 세력을 견제하는 존재이다. 구마 사제들이 사용했던 한 주문의 서두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주문(呪文) : 그들은 악한 저승 차사(差使)들이다. (엔릴의) 신전 이쿠르에서 나왔다. 온 땅의 왕 엔릴이 사자(使者)들이다. 악한 귀신이 들판에서 사람을 죽인다. 악한 귀신이 옷처럼 그를 두른다. 악한 유령과 악한 저승 사작가 그의 몸을 잡는다. 악한 귀신이 그의 몸을 병들게 한다. 들판에 사는 허깨비들이 몰려와 당황한 사람 곁에 가까이 와서 병마로 그의 몸을 병들게 했다.
한편 엔키를 수호신으로 세우고 마귀를 퇴치하는 구마 사제는 엔키의 사제 장으로 자임하고 구마 활동을 편다. 주문(呪文) : 나는 엔키의 사제 장 구마 사제이다. 나는 에리두이 정결례 사제이다. 나는 주문을 읊는 구마 사제이다. 내가 아픈 사람의 집에 갈 때, 내가 그 집의 문을 손으로 밀 떄, 내가 대문에 대고 그에게 소리칠 때, 그 집의 문지방을 넘어설 때, 그 집에 들어갈 때, 우투(태양신)가 내 앞에, 난나(달신)가 내 뒤에, 네르갈(저승신)이 내 오른편에, 닌우르타(전쟁신)가 내 왼편에, 내가 아픈 사람에게 가까이 갓 아픈 사람의 머리를 바로 놓을 때, 선한 저승 신들이 내 옆에 설 것이다.
구마 사제는 엔키의 권능을 받고 저주받은 곳(사람)을 향해 다가갈 때 몇몇 큰 신들을 대동하고 선한 저승 신들의 도움으로 기도문(주문)을 읽으며 환자가 저승 역신의 저주와 악한 주술의 억압에서 풀려날 수 있게 한다. 세상에 올라와 방황하는 귀신들은 그들의 집(저승)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큰 신들의 목숨을 걸고 구마 사제는 맹세하며 이곳을 떠나갈 것을 당부한다. 다시는 이 사람(환자)에게 가까이 오지 말며 이 집에 들어오지 말 것을 여러번 반복하여 읊는다. 이렇게 하여 치유가 된 사람은 깨끗하게 되고 빛나게 되며 거룩하게 되어 그 사람의 수호신의 손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고 주문은 마무리한다.
개인 수호신/가호 신(家戶神)
고대 메소포타미아 종교에서 또 하나 독특한 주제는 개인 수호신이라는 계층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 수호신은 일개인의 신이 아니라 주로 집안이 대대로 이어받는 가호 신(家戶神)으로 그 위치는 작은 신에 속한다. 대표적인 한 예를 들면 서기전 25세기 초 도시국가 라가쉬의 통치자가 도시에 신전을 건축하고 그 일을 기념하여 기록한 토판의 내용 마지막에 통치자는 그의 개인 수호신이 누구라고 명기한다. “왕의 (개인수호)신(神) 슐우툴이 거룩한 흙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일했다.
구르사르의 아들, 그니두의 아들인 라가쉬의 왕 우르난쉐는 (도시) 기르수의 신당을 세웠다” (그러나 실상 돌에 부각된 그림에서는 왕 우르난쉐가 친히 머리에 흙바구니를 이고 신전을 짓는 모습이다). 그림으로 볼 수 있는 다른 예로는 도시국가 라가쉬의 통치자 구데아가 그의 가호 신이 이끄는 손을 붙잡고 큰 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 원통형 인장에서도 이 내용을 읽을 수 있다.
구마 사제는 권능으로 치유된 사람은 이러한 개인 수호신의 보호를 다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작은 상식은, 역신이나 악신의 힘은 실상 개인의 수호신보다 더 세기 때문에, 사람이 개인 수호신의 손에서 늘 보호받다가도 역신의 저주로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신이나 저승 악신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원의 신 엔키는 그의 거룩한 입을 대신하는 마귀를 쫓는 주문으로 결국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정(淨)하게 만들고, 그 사람은 엔키의 가호(加護) 하에 거룩해질 수 있으며 그의 가호 신(家戶 神)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엔키의 주문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 항상 제도(제의)로써 유지되어 왔으며, 바빌로니아가 망한 후에도 민간요법으로 몇 백 년 간 계속되었다. 바빌로니아 인들은 구마사제 제도의 전승을 존중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은 치루었던 정결례의 주체는 지하수 신 엔키라는 실제를 믿고 살았다.
엔키의 아들, 마루득
서기전 19세기초부터 메소포타미아지역은 도시국가 바빌론을 중심으로 제국이 형성되는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로 접어든다. ‘신들의 문(門) (bab-ili)’을 뜻하는 바빌론의 주역은 함무라비 집안이었으며 바빌로니아 왕조 초기에 함무라비 왕은 재위 기간 42년 동안 주변의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을 외교와 인척관계로 바빌론 중심이 바빌로니아 제국을 형성하였다.
그의 업적으로 유명한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 보장된 함무라비 법전을 기록한 비석을 들 수 있다. 그 당시 바빌론은, 많은 학교들이 세워져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지적 문화를 전수하는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되었다. 서기전 21세기 우르 3왕조 시대에 편집된 여러 백과 사전과 행정 경제 용어사전과 단어사전 등을 재편집했고, 정결례에 사용하는 주문과 제의(祭儀)에 사용되는 기도문 등을 정경화 했다. 또한 신화나 영웅전, 찬양 시 등 문학작품을 망라하여 열람 표를 만들고 작품들을 도서관에 보관하였다. 이후 바빌론은 고대 근동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도시국가 바빌론이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세력이 되면서 종교적으로 새로운 사건이 생겼다. 이 사건은 고대 바빌로니아시대 초기인 서기전 1755년경에 공포된 인류역사상 매우 중요한 업적인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 실려 있다. 사회생활에서 생기는 대표적인 경우 법 282조항을 망라한 고대사회의 역작인 함무라비 법전 서문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훌륭한 아누, 아눈나키 큰 신들의 왕,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 하늘과 땅의 주(主) 엘릴(과), 아아의 첫째 아들 마르둑에게 온 누리의 주권을 결정해 주었다. 이기기 신들 중에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으며 ‘신들의 문(bab-ili)’ (이라는) 훌륭한 그 이름을 불렀다. (四方)에 드높이게 만들었으며 그 가운데에 세세의 왕권을 하늘과 땅에 그의 토대를 세운 것처럼 그를 위해 확고히 했다. 그 때에 경건하고 신을 경외하는 대표자인 나 함무라비를, 나라에 법을 알리게 하고 사악과 죄를 근절시키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지 않게 하고 태양신처럼 검은머리(즉 사람들)에게 떠올라 나라를 밝히라고 아누와 엘릴은 백성의 살(살)을 좋게 하기 위해 이름을 불렀다. 나 함무라비는 엘릴이 부른 목자(牧者)이다.
바빌로니아의 언어인 악카드어로 수메르의 하늘 신 안을 아누, 엔릴을 엘릴, 인키를 에아라고 부른다(아눈나키는 큰 신들의 무리를, 이기기는 작은 신들의 무리를 말한다). 이 서문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은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큰 신들의 계보에 소개될 때 에아(엔키)의 아들로 등장하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신들 중에 최고의 권력자는 엔릴(엘릴)인데 엔릴이 아들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엔릴의 차석인 엔키의 아들로 소개된다. 이렇게 등장되었던 배경과 요인은 바빌로니아 신관뿐 아니라 후대로 연결되는 바빌로니아의 세계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예로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들어오면서 그때까지 사용했던 주문 중에 상당수 토판을 수메르어-악카드어 이중어(二重語) 사본으로 편찬하였다. 그런데 수메르어 사본에 엔키의 아들이 아쌀루히 지만 악카드어 번역에는 그 이름을 마르둑으로 대치하였다.
아쌀루히/마르둑은 (병들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의 아버지 엔키/에아의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 악한 저주가 저승사자처럼 이 사람에게 내렸습니다.’ 또 한 번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엔키/에아는 그의 아들 아쌀루히/마르둑에게 대답했다. ‘내 아들아, 네가 무엇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무엇을 더하겠느냐? 내가 아는 것은 너도 안다. 가거라, 내 아들 아쌀루히/마르둑. 그를 거룩한 세정관(洗淨館)으로 데려가라.’
최고신으로 떠오른 마르둑
마르둑이 에아(엔키)의 아들로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큰 신들의 최고의회에 소개되고 그의 위치가 확정되며 바빌론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가 되면서 결국 마르둑은 그들 중 최고신이 된다. 이러한 배경을 보여 주는 작품이 바로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이다. 이 작품은 일곱 개 토판으로 작성된 약 1100행의 서사시이다. 바빌론의 마르둑은 신전에서는 해마다 신년 축제일에 방방곡곡에서 모인 순례자들 앞에서 대사제가 에누마 엘리쉬를 낭송했다. 이 서사시의 내용은 지하수의 거처에서 에아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둑이 신들의 대적(對敵) 바다를 상징하는 괴물 티야마트(龍)를 죽이겠다는 약속을 하고 신들의 전권을 넘겨받는다.
마르둑의 모습은 찬란했고 그의 눈매는 불길 같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용사였고 처음부터 용감했다. 그를 완벽하게 만들어 그의 신성(神性)은 두 배가되었다. 그의 모습은 재간 있게 만들어져서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생각할 수 없으며 상상(想像)하기도 어려웠다. 눈이 네 개이며 귀가 네 개였다. 그의 입술이 움직일 때 불길이 타올랐다. 귀가 매우 커서 네 배로 감지(感知)하고, 눈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들을 감찰(監察)했다. 그의 형상은 신들 중에 제일 크고 최고였다. 그의 사지는 매우 컸고, 태어날 때부터 최고(最高)였다.
한편 그와 상대할 티야마트는 괴기한 용뱀 들을 낳고 이 괴물들에게 누구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 날카로운 이빨을 만들어 주고 그들의 몸에 피 대신에 독을 채웠다. 사나운 용들에게 무서운 광채를 씌었으며 신들처럼 후광이 빛났다. 마르둑은 티야마트와 그녀의 군대를 상대로 전쟁하여 티야마트를 죽이고 그녀의 시신을 반으로 갈라 윗쪽은 하늘과 창공을 만들어 해와 달과 별들을 세우고 아래쪽은 육지와 바다를 만들어 초목이 자라게 하여 세상이 운영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마르둑이 세상을 설정한 후 사람을 만들어내어 마르둑을 위해 사람들이 바빌론 가운데 층계 탑 지구라트를 높이 쌓아 올리고 그 옆에 마르둑의 신전을 건축하게 하였다. 마르둑의 신전 ‘에삭일라’(머리를 드높이 신전)가 세워지자 그 곳에 모인 모든 신들 앞에서 마르둑이 최고신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사람들은 아누와 엘릴과 에아를 위하여 거처를 지었으며 마르둑은 그들 앞에 당당하게 앉았다. 에싹일라 짓는 일을 끝낸 후, 모든 아눈나키 신들은 자기네들의 신당을 만들었으며 하늘의 삼 백 이기기 신들과 지하수의 육 백 아눈나키 신들의 모두 모였다. 마르둑은 그의 거처인 장엄한 신전으로 그의 어버이 신들을 축하연에 초대했다. “이것이 ‘신들의 문’, 당신들의 거처입니다. 여기에서 즐거워하고,. 기쁘게 지내시오.” 신들은 앉았다. 술잔을 올리고, 축하연을 가진 후에 찬란한 에싹일라에서 제의를 행하였다.
모든 전례와 예의는 확실하였다. 모든 신들은 하늘과 땅의 설자리를 나누었으며 오십 큰 신들은 자리를 잡았다.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신들이 심판 내릴 것임을 확인하였고 마르둑은 그의 무기인 활을 집어 그들 앞에 놓았다. 그의 아버지 신들은 그가 한 일들을 칭찬하였다. 하늘 신 아누는 활을 들어올리고 신들의 모임 앞에서 맹세하며 활의 운명을 결정한 후에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왕좌를 마르둑에게 주었다.
큰 신들은 스스로 그에게 엎드려 이를 어기면 저주받을 것을 외쳤다. 그들은 물과 기름으로 맹세하고 그들의 목에 발랐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신들의 왕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였고 그에게 하늘과 땅의 주권이 있다고 확인하였다. 이후 모든 신들은 엘릴의 주권을 상징하는 오십 개 이름을 마르둑에게 불러 주면서 이 서사시는 끝맺는다.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 에누마 옐리쉬는 단순히 우주와 만물을 창조한 이야기를 말하는 찬조 서사시가 아니라 바빌론의 수호신이 전통적인 큰 신들의 세계에 들어와 최고신이 되며, 곧 바빌론은 세상의 중심지이며 바빌론의 가운데 위치한 마르둑의 신전이 우주의 중심임을 널리 선전하는 민족 서사시이다. 세상 중심에 세워진 신전이 가장 높은 왕좌에 자리잡고 있었던 마르둑이 신상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가장 중요한 소유물임에 틀림없었다.
잃었다 되찾은 마르둑 신상
메소포타미아 북쪽에 있는 도시 앗슈으와 니느붸를 중심으로 앗시리아 왕국은 제국을 형성하며 그 세력을 서쪽으로 팽창하면서 오랫동안 대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바빌로니아 왕국을 끝내 침범하였다. 서기전 1200년경 앗리리아 왕 투쿨티닌우르타 1세는 바빌론을 정복하고 마르둑 신전을 파괴하고 마르둑 신상을 뺴앗아 갔다. 앗시리아인들도 시년 축제일에 에누마 엘리쉬를 낭독하였는데 그들은 마르둑 이름을 지우고 그들의 최고신 앗슈르로 바꾸어 베낀 토판을 사용했다. 바빌론에서는 빼앗긴 마르둑의 신상이 돌아오기를 염원하여 수많은 점을 쳤으며, 그들의 재앙이 곡(哭)하는 통곡의 애가(哀歌) 제의를 수없이 행하였다.
바빌론 시민들은 적의 손아귀에 들어간 신상을 대치할 새 신상을 만들지 않았으며 그 신상이 돌아올 것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그 동안 메소포타미아 동쪽 산맥 저편에 거주하며 틈틈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내려와 노략질했던 엘람인들이 앗시리아 군대가 빼앗아간 마르둑 신상을 훔쳐갔으며 바빌론 시민들은 마르둑 신상을 빼앗긴 지 거의 100여 년이 지닌 후에야 비로소 자그로스 산맥을 너머 엘람까지 원정을 갓 그 신상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 빼앗겼던 마르둑 신상을 되찾은 사건이야말로 당대 가장 크게 기뻐했던 축제의 날들이었다고 전한다.
이렇듯 신상은 고인들에게 중요한 소유물이었으며 도시민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수호해 주는 신상이 있으므로 최고신이 확실하게 보호해 줄 것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특히 어느 특정 신이 전통적인 신들의 위계질서에 도전하여 최고신의 자리를 확립한 마르둑의 경우처럼 그 신상 또한 다른 신상보다는 훨씬 위엄이 있었고 가장 경외로운 모습의 최고신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전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경우 그와 정반대였다. 십계명 2조항에 명기되어 있듯이 이스라엘의 최고신 야붸를 위해 신을 상징하는 신상이나 모습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어떠한 연유에서 이러한 혁명적인 종교관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본성서(7)
신상을 만들지 말라
신의 실재를 느끼게 하는 매개체들
종교세계의 문빗장은 인간이 세상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사를 신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이 실재를 느끼게 하는 가장 보편적인 매개체는 신상(神像)이다. 이는 어느 종교이든 일반적인 현상이며 고대 메소포타미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신상은 신의 현존을 공감하게 하는 전달자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들도 신상 앞에 나와 그들의 기원을 신에게 전하고 신의 축복을 기다리며 전해진 메시지가 응답되리라고 신상 앞에서 확신했다.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에 최고신 엔릴이 인간을 없애려는 방책으로 대홍수를 일으키자고 신들의 모임에서 제안하고 있을 당시, 지우쑤드라는 신상(神像)을 만들고 신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신상 앞에 나와 구두로 신에게 기도한 것은 분명하였겠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들은 글자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신에게 바라는 의사를 토판에 기록하여 전달했다. 통치자가 신전을 건축하거나, 개축할 경우에 신의 축복을 비는 문구를 토판이나 쐐기형 점토 못에 기록하여 신전 토대 밑에 만든 조그만 방에 보관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그 글의 내용은 도시국가 통치자는 신전을 지었으며 그 신전의 신은 그 통치자의 생명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한 예를 들면, 서기전 2130년경 도시국가 라가쉬의 통치자 구데아는 자기의 석상을 만들어 두시 수호신전의 신상 앞에 세워 놓고 자기 신상에 기록된 기도문을 매일 신에게 전할 것을 이야기한다. 도시국가 라가쉬의 수호신 닌기르수는 그의 도시를 사랑하여 구데아를 시민 가운데서 뽑아 백성의 바른 목자(牧者)로 세웠다. 구데아는 도시를 거룩하게 하고 불로 깨끗이 하여 새끼 염소 간 점을 쳐서 호의적인 대답을 얻고는 신전 에닌누를 건축하였다. 구데아는 에닌누를 지은 날을 세세에 기리게 하였으며 닌기르수의 말씀에 따라 바르게 이행하였다. 구데아는 설록암으로 석상을 만들어 “내 임금(즉, 도시신)을 위해 그의 신전을 지었으며 생명이 내 선물이다” 라는 이름을 붙였다(즉, 신전을 지은 그에게 신의 축복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말이다). 그는 그의 석상을 에닌누 신전에 들여와서 석상에 이렇게 말을 주었다(즉, 석상에 기록된 글을 읽었다).
“석상이여, 나의 왕에게 말하여라! 내가 그의 사랑하는 신전 에닌누를 지었을 때에 빛을 탕감했고 정결례를 치루었다. 칠 일 동안 곡식을 찧지 않았다. 여종이 그녀의 여주인과 동등했고 남종이 그의 주인과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부자(富者)와 그의 약자(弱者)가 같이 도시 밖에서 누워 있었다. 악(惡)을 그들의 집에서 막았으며 닌기르수와 (그의 아내) 난쉐에게 물어 보았다. 고아를 부자(富者)에게 넘겨 주지 않게 했다. 과부를 권력자에게 넘겨 주지 않게 해다. 상속할 아들이 없는 집에 딸이 상속인으로 들어가게 했다.”
구데아는 그의 석상의 입에 덧붙여 말한다. “누구도 팔을 치켜들고 (석상을) 부수지 말 것이다. 석상이여, 네 눈은 닌기르수의 것이다.”
만일에 누구든지 이 석상을 에닌누에서 꺼내어 석상에 기록된 글을 지우거나 석상을 부수면 신들의 저주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내용으로 구데아 석상의 비문은 끝을 맺는다. 이렇게 문구를 기록한 석상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통치자들이 신전을 건축/개축하고 신의 축복을 기원하여 그들의 뜻을 글로 남긴 수많은 토판들이 있다.
다른 예로, 고통받는 한 사람이 그의 괴로움을 신에게 편지로 써서 전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고대 바빌로니아 문학작품 세계에 이런 종류의 편지가 문학적으로 한 장르를 이루고 있었다. 아래의 편지는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의 것으로 씬샤묵흐라는 한 서사(書士)가 지하수 신이며 구원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엔키에게 보내는 것이다. 이 서사는 엔키의 희생제물 축제일에 잘못 끼어 들었다고 고발당하여 구치소에 감금된 상황에서 자기의 결백을 호소하기 위해 엔키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거짓말쟁이 의 유혹에 빠져 속임을 당하여 잘못 한 것이지 자기 자신은 진실로 올바른 사람임을 주장한다. 끝으로 신을 두려워함이 신의 자비를 구할 수 있는 근본임을 말하고 그의 수호신이 그에게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
“엔키, 천지에 우월한 주(主)여, 당신의 재능은 견주지 못합니다. 서사(書士) 씬샤묵흐, 당신의 종이 말합니다. 당신이나를 손으로 만지신 날부터 나를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아버지처럼 (두려워했습니다.) 당신의 희생 제물 축제에 내 발로 끼어 든 것이 아닙니다. 속아서 간 것뿐입니다. 운명 신이 와서 나를 거짓의 자리로 끌어갔으며 (좋은) 징조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적의를 품은 신이 죄를 가져왔으며 그 한도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나는 멍에가 부러진 역마차처럼 대로(大路)에 서 있습니다. 잠자리에 한숨과 한탄으로 누워 있으며 통곡의 눈물이 쏟아집니다. 밝은 날이 어두운 날처럼 되어버렸으며 내 무덤으로 밀려갔습니다.
나는 서사이며 아는 것이 많지만 흙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내 손은 글쓰기를 그만두었고 내 입은 대화를 멈추었습니다. 주인집에서 쫓겨나간 점장이 초심자처럼 이마를 두드립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가까이 오지 않으며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내 친구들은 나와 상의하지 않으며 내 마음을 달래주지 않습니다.
내 신이여, 나는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사람다운 내 모습을! 나는 젊은이인데 어떻게 거짓의 자리로 달려가겠습니까? 나는 먼지에 뒹굴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지 않은 곳에서 당신은 나를 붙드셨습니다. 누가 내 기도를 당신께 읊겠습니까? 내 친척이 모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은 (내) 어깨를 두드리셨습니다. 누가 내 선물을 당신께 드리겠습니까?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 담갈눈나가 내 어머니처럼 당신 앞에 설 것이며 내 눈물을 당신께 드릴 것입니다. 지하수의 아들 아쌀루히가 내 아버지처럼 당신 앞에 설 것이며 내 기원의 눈물을 당신께 드릴 것입니다.
오늘 당신께 죄를 내놓았습니다. 원수로부터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내가 빠진 곳을 쳐다보시고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내 어두운 곳을 낮으로 바꾸어 주십시오. 지를 사하여 주시는 당신이 문전에 앉아 당신을 찬양하겠습니다. 내 신이여, 당신을 두려워하는 자는 바로 나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내 신의 마음이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채널
인간이 신에게 간구 하는 기도의 응답은 과연 어떠한 채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작품에 나오는 여러 예를 읽어보면 신이 인간에게 보내 주는 메시지의 채널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꿈’, ‘새끼 염소 간 점(肝 占)’, ‘주문(呪文)’과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예언자)들의 글’이다. 이러한 통로는 종교의 일반적인 현상에 열거되는 매우 보편적인 예이다.
1) 꿈
꿈을 매개체로 하는 경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셉의 꿈 이야기에서 ‘꿈의 풀이는 하느님에게 있다’(창세 40,8)라는 말처럼 꿈을 통하여 신의 뜻이 특정인간에게 전해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작품 중의 대표적인 예로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인간의 요동법석에 쉴 수 없었던 최고신 엔릴은 큰 신들을 불러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없애자고 제의하여 그들의 동의를 구했다. 그 당시 지우쑤드라는 앞일을 미리 알려 주는 신상(神像)을 만들고 신의 말을 들으려고 그 옆에 겸손히 서서 두려워하며 기다렸다. 매일 매일 제사를 드리며 기다렸다.
그런데 꿈은 아닌데 무엇인가 나타나 말하였다. “하늘과 땅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다. 신들은 모임에 왔다.” 지우쑤드라는 그 옆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담 옆 왼쪽에 서서 귀를 기울여라. 담에 대고 내가 말하겠다. 내 말을 들어라. 내 가르침에 주의하여라. 우리 손으로 일으킨 홍수가 인간을 이 땅에서 휩쓸어버릴 것이다. 인간의 종자를 없애버리자고 결정했다” (지하수신 엔키는 착실한 왕 지우쑤드라의 환영에 나타나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우쑤드라는 방주를 만들어 홍수에서 살아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2) 새끼 염소 간 점(肝 占)
먼 옛날부터 통치자가 신전을 건축/개축하거나 먼 곳으로 원정을 가기 전에 통치자는 사제 장이 주관하는 새끼 염소 간 점이 호의적인 응답을 얻어서 실행으로 옮겨야 바르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간 점을 거치는 방법으로 통치자는 그 계획을 상정하고 사제 장은 정(淨)한 새끼 염소의 간을 꺼내 간의 모양과 색깔, 그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것이 흉 살(凶 煞)인지 길상(吉祥)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정된 계획안의 성취도의 가부(可否)가 결정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점술(占術) 중에 가장 전통적이며 공식적인 국가 사업에 주로 사용되었던 방법이 새끼 염소 간 점이었다. 간 점치는 사제를 악카드어로baru 라고 불렀으며 (baru는 ‘감찰하다’는 뜻이다).
옛부터 간 점 사제들은 새끼 염소 간 의 여러 부분의 색깔과 형태와 그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길흉을 상세히 토판에 기록하였다. 실제로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수십 장의 토판으로 편집되어 많은 경우가 기록되어 있다. 한편 점토로 간의 모형을 만들어 그 모형에 약 50가지 경우의 징조와 짤막한 주문을 써 놓았으며 이 모형을 기준으로 간 점을 파악하기도 했다.
새끼 염소의 간을 꺼내 보고 그 형상에 따라 길흉을 결정하는 척도는 사실 옛부터 수없이 많이 기록된 판례에 의한 정보였다.
실상 상정된 계획안의 실행 여부를 간 점으로 결정하는 제도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국가 산업 중의 하나로 전통적이며 공인된 제의였으며, 이를 위한 사제들을 양성했다. 간점과 국가 사업의 밀접한 관계를 알려 주는 예로 ‘악카드의 저주’라는 작품을 읽어본다.
서기전 2250년경 악카드 제국의 왕위를 계승한 나람씬은 그의 통치 56년간 지중 해변 쪽으로 레바논까지 점령하고 북쪽으로는 니느붸에 그의 전승 비를 세웠으며 동쪽으로 자그로스 산맥을 넘어 엘람까지 정복하고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현재 오만까지 출전을 나갔다가 돌아온 용사였다. 그는 종교의 중앙지인 니푸르의 엔릴 신전을 개축하고자 간 점을 의뢰했다. 그러나 칠 년 동안 매년 간 점은 흉 살이었던 것이다. ‘신전에 관하여 새끼 염소 간 점을 쳤으나 신전을 지으라는 간 점은 나오지 않았다.
또 한번 신전에 관하여 새끼 염소 간 점을 쳤으나 신전을 지으라는 간 점은 나오지 않았다. 끝내 그는 참지 못하고 신전을 허물고 그 주춧돌을 곡괭이로 파버리자 나라의 토대는 가라앉게 되었다. 신전 창고에서 금은과 곡식자루를 빼내가자 악카드린들은 정신이 빠져나갔다. 엔릴은 그가 사랑하는 신전이 파괴되었기에 보복하기로 결정했으며 동쪽 산너머에 살고 있었던 산적들을 동원하여 산에서 내려오게 하여 악카드를 부수게 하였다. 결국 악카드 왕국은 무너지고 말았으며 백성들은 산적들의 약탈과 폭행에 약 40여 년을 시달리게 되었다.
새끼 염소의 간 점이 신의 뜻을 전달하는 확실한 방법임을 알려 주는 한 예이다. 이러한 간 점 방법은 구약시대 히브리인에게도 알려졌다. 이스라엘 땅 므깃도에서 발굴된 점토로 만든 염 소 간의 모형은 서기전 1350-1150년경의 것(예루살렘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소장)으로 히브리인들도 한동안 간 점을 사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3) 주문(呪文)
신의 의사를 전하는 또 다른 방법은 주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글자가 사용되면서 처음으로 등장되는 토판 가운데 하나가 주문이었다. 서기전 28-27세기 것으로 예닐곱 글자로 쓰여진 수십 장의 주문이 있다. 뱀이나 전갈에게 물린 경우나 임산부가 해산하는 경우 신에게 도와 줄 것을 청하고 사제는 그 사람에게 맞는 주문을 읽음으로써 신의 의지를 알려 준다. 잘 아려진 주문 중에는 우둑훌 ‘악한 우둑 귀신’이라는 전례(典禮)로 서기전 1300년경의 악카드 왕조 때에 기록된 것이 있으며 서기전 3세기 세루키드 시대에도 이 토판 전체를 베낀 기록도 있다 고 바빌로니아 시대에 ‘악한 우둑 귀신’을 순서 있게 편집하여 정경으로 만들었으며, 이후 악카드어로 번역하고 16개 토판으로 다시 편찬하여 정형화했다.
신의 뜻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매개체가 주문인 것을 가장 분명히 나타내는 부분은, 구마 사제가 바로 엔키의 대리인이며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구원의 신 엔키가 이 구 마사제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엔키의 거룩한 말씀은 구마 사제의 주문이며, 이 엔키의 주문을 통하여 악신에게 붙들린 생명이 정화(淨化)되며 악귀의 속박에서 풀릴 수 있고 결국 인간이 깨끗이 되며 빛나게 되고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 준다.
구마 사제는 귀신예 붙잡힌 사람에게 주문을 읽고 그의 집에 넘나들지 말라고 엔키의 주문을 문지방에서 낭송한다. 구약성서에서 이와 유사한 관습 중의 하나가 나온다. 히브리인들은 토라의 구절을 양피지에 써서 팔과 이마에 묶고 예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문설주와 대문에 토라의 구절을 써 놓았다(신명 6,8-9). 또한 신약성서 시대 이후 비잔틴 시대에 팔레스타인에서 살던 많은 유다 인들은 동그란 접시에 가운데로 빙빙 돌아가며 줄줄이 주문을 기록하여 보관하였다.
4) 선지자의 글
신의 뜻이 인간에게 전달될 수 있는 또 다른 매개체는 신의 뜻을 알려주는 선지자(예언자)의 글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전해들은 하느님의 뜻을 백성과 왕에게 전달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이와 같은 선지자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그 한 예로 유프라테스강 상류 시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국가 마리에서 발굴된 토판 중에 선지자들이 신의 뜻을 전하는 편지글이 나온다. 그 예로, 도시국가 마리의 임금 찔리림(1780-1760년)의 아내가 임금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본다.
“내 주(主)여, 왕궁은 평안합니다. 축제일 셋째 날에 선지자 쉐리붐이 여신 아눈니툼의 신전에서 신접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찔리림 임금이여, 당신은 반란으로 시험받을 것입니다. 특별히 경계할 것입니다. 당신 주변에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장교들을 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당신을 계속해서 보고 서 있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홀로 밖에 나가지 마십시오. 당신이 통치를 시험하는 자들을 내가 당신에게 넘겨주겠습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이 선지자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한 조각을 임금님께 보냅니다.”
다른 예로, 찔리림 왕의 신하가 왕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본다. “다간 신과 이크룹일 신의 호의를 여전히 받고 있으므로 도시 테르카와 그 주변 지역은 평온합니다. 다간 신의 선지자가 나에게 와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기에 나는 곧 임금에게 보고합니다. 그가 말하였습니다. ‘다간 신이나를 당신에게 보냈습니다. 찔리림 왕의 아버지 야흐둔림의 혼을 위해 제사지낼 것을 요구하라는 편지를 당신은 임금님께 반드시 보낼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무엇이 올바른 경로인지 생각하시고 처리하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네 가지 방법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통용되었다. 구약성서에 밝혀진 이야기에 의하면 이스라엘에서는 위의 네 가지 중에 간 점을 쳐서 신의 뜻을 알아보는 경우가 적어도 서기전 11세기까지는 사용되다가 그 후 언제부터인지 무속신앙으로 전략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새끼 염소 간 을 꺼내보고 그 간의 모습이 길상인지 흉상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간 점에 관한 많은 판례를 아는 길뿐이다. 간단한 간의 모형으로는 가부의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고대 바빌로니아의 주요 도시에서는 간 점을 정확히 판단하는 전문적인 사제들이 거주하고 이행하였기에 그 정확도가 높았지만 변방이나 외국으로 갈수록 전문적인 사제들이 빈약하여 간 점의 공신력은 떨어졌고, 이로 인해 자연히 미신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이스라엘 땅에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유다 의 종교개혁과 무상(無像)
유다 의 왕 히즈키야 때(715-697년)에 대대적인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지방에 있던 모든 신당을 허물고 신상이나 목상뿐 아니라 그 주변의 점 장이나 무당 등을 추방하였다. 이러한 계기가 된 가장 큰 영향은 물론 야훼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전하는 예언자들의 입김이 신당의 사제들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지만, 중요한 점은 국 사업의 앞날을 선지(先知)하는 간 점 사제들의 간 점 판단이 그 동안 맞지 않았던 까닭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바빌로니아 간 점 사제들은 축적된 지식으로 그 정확성을 근 이천여 년 동안 유지하여 왔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간 점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었을 당시에 유익하게 활용 되었을지는 몰라도, 이스라엘의 간 점 사제들은 수많은 판례의 지식과 토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간의 모형으로는 그 결과의 정확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간 점은 요행을 바라는 점 장이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며 이러한 점 장이 집단의 종교는 하느님의 말씀을 입으로 바르게 전하는 예언자들의 연합 세에 밀리게 되었다. 즉, 신의 뜻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네 가지 통로 중에서 신빙도가 떨어진 모형에 의존했던 간 점 방법이 미신으로 추방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히즈키야의 아들 므나세의 통치 55년 동안 히즈키야의 종교개혁은 지속되지 않고 오히려 전처럼 점 장이 들이 득세하여 예루살렘에 들어와 활동하게 되었으며 더 많은 신당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의 손자 요시아가 왕이 되면서 다시 점 장이 들을 추방하고 신당을 허물고 신상과 목상 등을 버리는 개혁이 이루어졌다. 요시아가 이집트 군대와 싸우다 전사하고(609년) 그의 아들들이 왕권을 계승하게 되지만 몇 년 되지 않아 바빌로니아의 군대가 유다 땅을 침입하고 예루살렘은 함락되어(587년) 유다 인 지식인들과 사제들과 상류층 대부분은 바빌로니아로 잡혀간다(2열왕 18-25장).
이러한 와중에 간 점 제도는 유다 인 사회에서 전적으로 거부되었으며 신의 뜻은 신이 직접 사람에게 전하는 꿈이나 말씀 또는 글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신의 뜻은 어떤 모형이나 형상을 통하여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세워졌으며 결코 신은 신상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종교관이 확정된 것이다. 바빌로니아 문화의 전통인 신상에서, 신은 형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무상으로 바꾸어 놓은 히브리인들의 체험은 인류 종교사에 가장 큰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의 친히 그의 손가락으로 십계명을 석판에 기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며 하느님의 모습이 그의 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8)
농부와 목자
목자와 농부의 언쟁
농부와 목자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창세 4장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아담과 하와는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인 카인은 땅을 일구는 농부였고, 그의 동생 아벨은 양치기였다.
때가 되어 두 형제는 하느님께 제물을 바쳤는데 그 둘 중에 목자의 것은 하느님이 들여다보시고 농부의 것은 보시지 않았기에 농부는 매우 분통이 터져 그의 동생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였다고 한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단편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사회 상황은 농부와 목자 사이에 갈등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 이야기가 고대 모소포타미아를 배경으로 엮어졌다는 것은 ‘에덴동산,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등 여러 고유명사를 들어서도 충분히 설명 될 수 있다.
또한 농부와 목자의 갈등이 빚어지며 일어나는 여러 이야기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작품에 자주 나오기에, 구약성서 창세 4장에서와 같은 농부가 목자를 쳐죽이는 불상사의 문제점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랑의 노래’라는 장르에 속하는 작품에 의하면 시집갈 나이가 된 아가씨들은 농부와 목자 중 누구를 택하여 혼인하느냐며 많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j알 수 있다. ‘목자와 농부의 언쟁’이라는 한 작품을 들면, 시집갈 처녀 인안나의 오빠는 그녀가 양치기와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하지만 그녀는 양치기의 거친 옷에 몸을 기대기 싫고 오히려 아마(亞麻)를 가꾸는 농부와 결혼하겠다며 선물로 보내 준 양치기의 거친 양털을 거절한다. 양치기 두무지는 인안나에게 다가와 목자의 선물이 농부의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자랑하며 농부가 무엇을 선물하든지 자기는 그보다 좋은 것을 선물하겠다고 나선다. 목자 두무지는 그녀에게 말한다.
“나보다 농부가 무엇이 더 나으냐? 그가 너에게 검은 옷을 준다면 농부의 것보다 좋은 검은 양을 주겠다. 그가 좋은 맥주를 너에게 부어 준다면 농부의 것보다 나은 달콤한 우유를 부어 주겠다. 그가 너에게 좋은 빵을 준다면 농부의 것보다 나은 꿀 치즈를 주겠다. 네가 먹고 네가 마신 후에 남은 버터와 남은 우유를 그에게 남겨 주겠다. 나보다 농부가 무엇이 더 나으냐?”
듣고 있던 인안나는 목자의 달콤한 말에 빠져 기뻐하며 그와 혼인할 것을 약속한다. 이번에는 강둑에서 양치고 있던 목자에게 농부가 가까이 와서 언쟁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농부는 강둑의 풀을 양들이 먹게 하며 들에서 양을 치게 허락하고 목자는 농부를 그의 결혼식에 초대한다. “목자인 나의 결혼식에 농부인 네가 나의 친구로 초대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농부는 온갖 선물을 새 색시에게 가져왔으며 목자와 농부의 언쟁은 끝난다는 노래이다. 이런 종류의 노래는 도시의 통치자와 여 사제사이에 매년 신년 축제일에 거행하던 성 혼례를 배경으로 하는 노래이다.
두무지는 도시 통치자를 가리키며 인안나는 성 혼례의 신부인 여 사제를 뜻하는 노래이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과 들판을 경작하는 농부들 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양치기들과 농사꾼들이 좁은 j지역에서 자주 충돌하는 지리적이며 사회적인 상황을 말해 준다.
남쪽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를 주변에 인접한 광활한 들판에 수로를 만들어 경작지를 넓혀 곡물수확을 증가시켰던 농부들이 양치기들의 활동 범위를 좁히면서 그들 간에 분쟁이 늘어났다. 그들에게 우유제품은 그들의 음식문화였기 때문에 그 필요성은 경시할 수가 없었다.
자연히 농부와 목자의 다툼은 ‘언쟁’이라는 문학 장르를 타고 그 해소 방안으로 돌파구를 찾게 되었으며, 여러 이야기가 토판에 전해진다.
한편 목자와 농부의 언쟁을 통하여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은 등장 인물들이 신들의 계보에 걸맞는다는 것이다. 양치기 두무지는 지하수신 엔키의 아들이며, 인안나는 곡물을 전업으로 하는 도시국가 니푸르의 수호신 엔릴의 손녀이자 목우업을 주로 했던 도시국가 우르의 도시신 난나의 딸로서 신들의 계보는 정해졌다.
엔릴은 신들의 모임에서 최고의 권력자이며, 하늘 신과 땅 여신 사이의 정자(正子)인 엔키는 그의 칭호 중의 하나로 ‘작은 엔릴’ 이라고 일컫는 것을 보아도 신 계보에서 엔릴 다음으로 등장한다. 엔릴처럼 엔키의 아버지도 하늘 신이지만 그의 어머니가 지하수 여신으로 하늘신의 정처(正妻)가 아니기에 많은 신화에 엔키의 심리는 엔릴과 묘한 대치관계를 보여 준다. 엔릴은 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자로 등장하며, 엔키는 궁지에 몰린 자를 도와주는 협력자로 나온다. 농부와 목자의 이야기에서 목자는 엔키쪽이며 그와 맞서는 상대편 농부는 엔릴을 내세우는 쪽이다.
서기전 29-28세기경 엔릴의 도시국가 니푸르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최강의 도시로 득세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니푸르릐 광활한 주변 지역의 중앙 평원에 수로를 잘 이용하여 곡물의 생산을 증대하고 부(富)를 축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2-3세기 전까지도 남쪽 삼각중 지역에 건어물 생산을 전업으로 했던 에리두의 수호신 엔키의 세력이 컸으며 또한 에리두의 위쪽 들판에서 주로 목양업을 했던 여러 도시국가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오래된 전승을 가진 곳으로 알려 졌다.
물량구조가 바뀌고 인구가 늘어나며 곡물의 대량생산에도 도시의 운명이 걸려 있었던 사회에서 양치기의 위치는 옛날부터 거행되어 왔던 성 혼례의 신랑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였으며 그 품위를 지켰다고 할 수 있다.
암양여신 라하르와 곡식여신 아쉬난
목자와 농부의 말다툼으로 엮어나가는 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일명 ‘라하르와 아쉬난의 언쟁’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양(羊)을 수호하는 암 양 여신 라하르와 곡식을 보호하는 곡식여신 아쉬난 사이에 벌어지는 한 판의 말싸움이다. 태초에 큰 신들이 태어났을 때 곡식을 자라게 하는 곡식여신이나 양을 번식시키는 암 양 여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먹을 보리도 없었고, 양털이 없어 옷 입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후 암 양 여신과 곡식여신의 형상이 만들어져 태어났고, 그들의 큰 신들은 먹고 마셨으나 그다지 만족 해 하지 않았다.
그래서 큰 신들은 그들을 큰 신들의 거룩한 거처에서 내보냈다. 그러자 암 양 여신 라하르와 곡식여신 아쉬난은 수메르에 내려와서 양 우리를 돌보고 밭을 잘 가꾸어 풍요한 수확을 가져와 가난한 집도 풍성함을 맛보았다. 암 양 여신과 곡식여신은 달콤한 술에 흥겨워지자 말다툼을 가시 시작했다. 곡식여신은 빵과 곡식 주를, 암 양 여신은 양과 우유제품을 대변한다. 곡식여신은 암 양 여신에게 말한다. “동생, 나는 네 상전(上典)이며 네 앞에 선다. 나라의 보석 중에 내가 가장 찬란하며 우두머리 용사에게 내 힘을 준다. 내 힘을 용사에게 붙여주면 그는 전쟁터에 서서 몸도 모르고 힘줄도 모른다.
또한 나는 놀이터에 나가 이웃정과 우정을 좋게 하며 친구 사이에 말싸움을 풀어준다. 붙잡힌 젊은이에게 가까이 가면 그의 운명을 나누어 갖고 상처받은 그이 마음을 잊게 하며 수갑과 목에 묶은 나무를 풀어 준다.
나는 거룩한 이삭 곡식여신이며 엔릴의 자식이다. (그러나)벌판에 있는 헛간이나 오두막에 매여 있는 자여, 어떻게 너는 나와 맞서겠느냐? 네가 무엇을 말하겠느냐? 대답해 보아라!”
이에 맞서 암 양 여신은 양털과 양가죽의 위해함을 털어놓는다. 양털실로 짠 왕관이 빛나며 전쟁 용사들은 양털실로 만든 동아줄로 포로를 묶고 정탐 병은 새끼염소의 간(肝)을 보고 점을 쳐 전세(戰勢)를 판단한다. 양가죽으로 화살 통을 만들고 몰을 담는 가죽부대와 신발을 만들며 또한 양 기름으로는 제사장에 향을 피운다고 자랑한다. “내 자매여, 네가 무엇을 말하였던지 신들의 왕 하늘 신이 거룩한 곳 귀중한 곳에서 나를 내려보냈다. 우투(천 짜는 여신)의 갖가지(양털)실, 왕권의 후광을 나는 가지고 있다. 산등성이의 왕 샤칸(들판의 감독관 신)은 그의 외모를 돋보이게 한다. 그는 전쟁무기를 준비하며 반한 지역의 높은 꼭대기까지 동아줄로 휘감는다. 돌팔멩이 끈과 화살통과 큰 화살을 준비한다.
비밀 정탐병이 순찰하는 것은 내 것이며 경작지에 젊은이들의 목숨인 가죽부대와 샌들이 내 것이다. 좋은 기름, 신들의 향료, 약초 기름, 일상 제물의 삼(衫)나무 기름이 내 것이다. 하얀 양털로 만든 내 겉옷은 왕을 그의 왕자에서 기쁘게 하며 내 외모는 큰 신들의 몸인 양 큰 별처럼 빛난다. 정결례 사제, 구마 사제가 거룩한 정결례를 위해 옷 입은 후에 나는 거룩한 식사에 발길을 내딛는다. (그러나)씨레, 쟁깃술, 고삐, 이런 연장드은 모든 것을 삼키는 늪이다. 어떻게 네가 나와 맞서겠느냐? 네가 무엇을 말하겠느냐? 대답해 보아라!”
그러자 곡식여신은 양과 양치기 신세를 불쌍히 여기며 이에 응수한다. 술자리에서 양고기를 먹고 남긴 것은 다리뼈뿐이고 양치기는 먼발치에서 곡식 주를 쳐다만 본다. 장례를 치르는 장사 터에서 저승사자들이 양치기들을 붙잡아가려고 올까봐 걱정만 한다. 강충이 불 때 양치기는 오두막에 피해있지만 곡식나무는 당당히 폭풍과 맞선다고 곡식여신은 자기의 의견을 편다.
“엿기름을 가마(오븐)에 잘 다룬 후에 엿기름물을 가마에 넣고서 닌카시(맥주 여신)는 그것을 섞고 섞는다. 네 큰 새끼 염소와 수양은 내 술자리에서 끝나버린다. 내 것(곡식주) 옆에 두꺼운 다리뼈만 서 있다. 네 양치기도 내 것을 향해 벌판에서 눈을 Em고 쳐다본다. 내가 밭의 밭고랑에 서 있는데 내 농부는 네 양치기를 막대기로 쫓아버린다. 아래동네 장사(葬事)터에서 너를 찾으러 올 때 네 두려움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들판에 사는 강도가 벌판에서 네 목숨을 노리고 낄낄거린다.
매일같이 너를 세는 일을 하며 셈 패를 던진다. 네 양치기 꾼은 암 양이 얼마, 어린 새끼 양이 얼마, 염소가 얼마, 어린 새끼 염소가 얼마라고 누구에게나 말할 것이다. 잔 바람이 도시에 불어오며 세찬 바람이 거세게 불어댄다. 오두막을 너를 위해 지을 것이다. 나는 폭풍 신에게 마주보고 서 있는다. 나는 곡식여신이며 용사로 태어났다.
(그러나) 받침대의 통, 교유기(攪乳器), 양치기의 세세(世世) 우유, (이것이 네) 재산인데, 세워 보아라! 어떻게 네가 나와 맞서겠느냐? 네가 무엇을 말하겠느냐? 대답해 보아라!” 암 양 여신도 곡식여신에게 맞서 질세라 더욱 비꼬아 말꼬리를 물고 이어간다. 곡식 암은 곡식자루는 남자와 잠자리하기를 좋아하는 사랑의 여신 인안나처럼 나귀등에 올라타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곡식알 껍데기가 벗겨지라고 두들겨 맞은 다음 연자매에 갈려 빻아져 반죽 그릇에 놓이는 신세가 되고 빵으로 만들어져 식탁에 놓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기를 먼저 먹지 빵은 다음 차례라는 말이다. 하니만 어쨌든지 곡식도 양처럼 멀거리라는 것이다.
“너는 하늘의 거룩한 인안나처럼 나귀를 사랑한다. 그러나 막대기로 네 얼굴을 때리고 네 입을 때린다. 절굿공이처럼 ---남풍과 북풍에 너른 제 때를 맞이한다. 연자매가 맷돌에게 ---손잡이 돌에 네 몸은 빻아진다. 네가 반죽 그릇에 채워지면 빵 굽는 사람이 반죽하여 땅에 놓는다. 젊은 여자는 반죽 덩어리를 넓적하게 손으로 펴서 가마에 집어넣었다가 가마에서 끄집어낸다. 네가 식탁에 놓이면 나는 네 앞에 놓이며 너는 내 뒤에 놓인다. 곡식여신, 네 스스로 귀담아 들어라! 너도 나처럼 먹거리이다.
네 모습에 눈을 치켜들며 내가 그 뒤를 따라 가야 하겠느냐? 방앗간 주인은 나쁘지 않느냐? 어떻게 네가 나와 맞서겠느냐? 네가 무엇을 말하겠느냐? 대답해 보아라!”
그 때에 곡식여신은 그녀의 자존심에 마음이 사로잡히어 그녀와 다투려고 머리를 치대었다. 곡식여신은 암 양 여신에게 대답한다. “너는 폭풍 신이 네 주인이며 샤칸(들판 감독관 신)이 네 가축지기이고 마른땅이 네 잠자리이다. 집이나 밭에서 불에 부채질하는 것처럼 집 입구에서 날아다니는 참새에게 돌팔매질하는 것처럼 너는 절름발이나 유령으로 돌아간다. 나는 내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나는 너를 됫박으로 나누어준다. 네 내장(內臟)을 시장에서 사람이 사갈 때 네 자신의 허리띠로 네 목을 졸라매어 ‘내 양 값어치로 됫박에 곡식을 채워 주시오’라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한다”.
처음에는 술에 취해 놀이로 시작했던 두 여신의 언쟁이 점차로 격해지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곧 불상사가 생길 것이라 직감한 지혜의 신 엔키는 그들의 말다툼을 중지시키고 곡식여신이 암양여신보다 우월하다고 판정을 내린다.
그 때에 엔키는 엔릴에게 말한다. “아버지 엔릴, 암양여신과 곡식여신은 자매입니다. 둘이 함께 걷도록 합시다. 그들은 정말로 세 가지 금속 같습니다. 멈추지 못합니다. 둘 중에 곡식여신이 우월합니다. 곡식여신에게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릴 것입니다. 무리가 그녀의 발에 입맞출 것입니다.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곡식여신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은(銀) 있는 사람, 보석 있는 사람, 황소 있는 사람, 양 있는 사람은 곡식 있는 사람의 문전에 주저앉아 세월을 보낼 것입니다.”
이 말다툼의 결론은 사람들은 곡식을 구하러 곡식 가게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농부가 목자보다 부자라는 것이 암시되어 있지만 농부와 목자의 성격에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때에 곡식여신은 그녀의 자존심에 마음이 사로 잡혔으며 그녀와 다투려고 머리를 치대었다’는 대목에서 보여 주듯이 곡식여신과 암양여신 사이에 서로 주고받은 비웃음과 모욕에 자기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폭력을 과시하는 것은 곡식여신이었다.
마치 수메르 ‘홍수 이야기’에서 엔릴은 자기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세상에 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없애버리자고 결정하는 대목처럼 곡식여신은 암양여신에게 머리를 치대며 몸으로 싸우려고 달려들자 엔키는 둘의 말다툼을 끝내게 하고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농부와 목자의 언쟁이 때로는 폭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양치기 두무지의 운명
곡신여신이 암양여신을 조롱하는 말 가운데 “아래동네 장사(葬事)터에서 너를 찾으러 올 때 네 두려움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들판에 사는 강도가 벌판에서 네 목숨을 노리고 낄낄거린다”는 대목은 양들이 젯밥이 될까 두려워할 것이며 들판에 사는 강도 같은 저승사자들이 데려가려고 서로 비웃적거린다는 말이다. 양치기가 저승 사들에게 붙잡혀 저승으로 끌려간다는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이다. 두무지와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는 허망하게 죽어 가는 양치기의 죽음을 슬퍼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이런 종류의 노래로 ‘두무지의 죽음’, ‘저승사자들에게 붙잡힌 두무지’, ‘두무지의 운명’이라는 이야기를 한 예로 소개한다.
두무지는 폐허가 되어버린 그의 양 우리에서 그의 머리에 천을 뒤집어쓰고 서성거리고 있다. 그의 양과 염소는 끌려갔고 몇 마리 남은 새끼염소는 괴롭게 외치고 있다. 두무지의 아내는 그녀의 집에서 눈물을 흘리고 그의 누이는 그녀의 살을 손톱으로 긁으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다. 두무지는 그에게 정해진 운명을 슬퍼했다. 항상 사람들과 함께 다녔던 두무지는 혼자 무엇을 어떻게 하겠는가. 두무지는 갈라진 땅 밑으로 미끄러져 저승으로 내려가서 올라올 수 없으며 세찬 폭풍에 휘말려 저 먼 강둑으로 밀려 저승으로 내려가서 올라올 수 없다는 꿈을 꾼다.
그 때에 저승사자들이 그를 붙잡았다. 두무지의 아내 인안나는 그를 살리려고 하지 않고 그를 저승사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왜냐하면 인안나는 저승의 여주(女主)에게 그녀 대신에 누군가를 저승으로 넘겨주어야 하는 빚을 지고 있었던 형편이었기 때문이다(인안나의 저승 이야기 참조). 결국 두무지는 운명 신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 자기 아내가 진 빚의 담보로 멍에를 짊어졌다. 그 때에 들판의 신당에서 일곱 명의 마술사가 나타나 두무지에게 마술을 걸었다. 마술에 걸린 두무지는 땅에 꼬꾸라졌고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두무지 옆에 그의 개가 누워 있으며 그의 오두막에 자리잡고 살았던 까마귀는 하늘로 날아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이야기에 농부와 목자는 서로 잘 다투며 농부는 과격적이고 양치기는 연약하게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양치기는 허망하게도 자기 아내의 헛된 약속인 빚의 담보로 죽음을 면치 못하는 운명이라는 이야기도 잘 알려진 것이었다.
농부 카인과 양치기 아벨
구약성서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 에서도 농부 카인과 목자인 아벨 사이에 갈등이 심각했으며 결국 농부는 하가 치밀어 그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목자에게 달려들어 쳐죽였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양치기의 헛된 죽음은 아벨(헤벨)이라는 이름이 알려주듯이 히브리어로 헤벨은 ‘헛되다’는 뜻이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주의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초점은 카인이 아벨을 미워하게 만드는 장면(즉 하느님이 한 사람의 제물에 관심을 두는 장면)과 카인이 아벨을 들에서 쳐죽인 장면 사이에 있다. 하느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들여다보았고, 카인과 그의 제물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자 카인은 매우 분통이 터졌고 그의 얼굴이 땅에 떨어졌다. 하느님은 카인에게 말한다.
“왜 분통이 터졌느냐? 왜 네 얼굴이 떨어졌느냐? 만일 네가 잘하면, 들어올려질 것 아니냐? 만일 네가 잘하지 못하면, 문지방에 죄가 귀신으로 있으며, 그것이 너를 원하겠지만, 네가 그것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창세 4,6-7).
하느님의 새로운 관점(신학)에서 보면 제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잘하면, 즉 선행을 하면 하느님의 마음에 든다는 충고이다. 사람에게는 잘못할 성향이 있으며 악한 귀신이 문지방에서 기다렸다가 사람이 잘하지 못하면 죄짓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악신이 유혹하더라도 그것을 다스려야지 그렇지 못하면 저승으로 끌려간다는 경고이다. 카인은 이 뜻을 깨닫지 못하였던지 아니면 자기의 성향을 이기지 못하였던지 결국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문지방에 죄가 귀신으로 있으며’라는 번역은 공동번역의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와 다르다. ‘도사리고 앉다’로 번역하는 히브리어 ‘로베쯔’는 악카드어의 ‘귀신’이라는 뜻인‘라비쭈’의 음역이라고 이해하면 문맥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라비쭈’는 신과 인간 사이에 교통을 놓아주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말하며, 선한 라비쭈와 악한 라비쭈가 있었다. 적의를 품은 라비쭈(악신)가 사람에게 죄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구마사제의 역할 둥에 하나가 악한 라비쭈의 악령에 붙잡힌 사람에게서 악신을 쫓아버리는 일이었다.
고대 바빌로니아 주문(呪文)에 자주 사용되는 문구인 ‘나가라. 악한 라비쭈! 들어와라, 선한 라비쭈!’를 정결례 사제는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의 집 대문이나 문지방에서 읊는 것이었다. 악한 저승귀신이 사람에게 붙어 병들게 하고 저승으로 붙잡아 가려고 집에 들어오며 문지방으로 들어온다고 하여 구마사제는 문지방에 밀가루를 뿌리거나 물을 부어 귀신을 쫓아버렸다. 이와 유사하게 히브리인들도 히브리성서의 몇몇 구절을 양피지에 기록하여 팔과 이마에 묶고 기도를 하였으며 대문이나 문설주에 성서구절을 적어 놓아 악신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카인은 자기의 의지로 죄지은 것이 아니라 악한 귀신의 유혹에 빠져 그의 동생을 살해하게 되었다는 변명이 생긴다. 결국 사람이 실수로 살해한 경우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있으며 감옥(피신처)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이 적용되는 것이다(수메르 우르남무 법전1-3조항). 모세 법의 첫 조항 역시 사람이 사람을 죽였으며 그를
처형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가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라 실수로 죽였으면 정해진 피신처로 갈 수 있다고 명기한다(출애 21,12-13). 이래서 카인은 사회에서 추방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9)
두 메시아
두 메시아를 기다린 이스라엘의 공동체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는 구절인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을 받는다’는 말씀에 대한 확실한 이해는 사해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해문헌이라고 일컫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동굴 속에 보관했던 공동체의 역사는 서기전 150년경부터 시작한다. 그 당시 유다교 기득권층의 사제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부정부패로 가득했으며 그들의 비리에 격분하여 반발한 사제들은 동조자들을 모아 분파를 형성하였다. 이들 분파의 사제들은 그들의 규례서를 성문화하고 그들 공동체의 탄생을 예견한 대목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구절들을 히브리성서에서 뽑아 해석하였다. 그들은 요르단강 하류 사해(死海)의 북서쪽 언덕에 거주지를 세우고 젊은 사제들을 양성하여 그 당시 가장 뚜렷한 종교관을 갖게 된 분파였다. 이곳을 아랍인들이 키르베트 쿰란이라고 불렀으며 그 근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양피지 두루마리를 ‘사해문헌’이라고 한다.
사해문헌에 기록된 내용에서 밝혀진 이들 공동체의 특징은 공동체 일원이 되면 자기 소유의 재산을 모두 공동체에 헌납하고 공유하였다는 데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가난한 자’라고 칭했다. 사해문헌 가운데 시편 37편에 대한 해석이 있다. 11절인 ‘겸손한 자들이 이땅을 이어받으며 그들은 많은 평화에 즐거워한다’는 구절에 대하여 ‘그 해석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참회의 기간을 얻고 벨리알(악마)의 모든 올가미에서 구해질 것이다’라고 해석하며, 또한 21-22절의 해석은 ‘가난한 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변론을 ‘가난한 자의 찬양’이라는 작품에서 읽어볼 수 있다.
내 영혼은 주의 모든 놀라움에 그를 영원히 축복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축복 받습니다. 불쌍한 자의 영혼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않으셨으며 눌린 자들의 어려움을 잃어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눌린 자에게 눈을 뜨시고 고아들의 외침을 듣고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분의 많은 은혜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의 길을 보도록 그들의 눈을(뜨게 하시고) 그의 가르침을 듣도록 그들의 귀를 열게 하십니다. 그들의 심장의 껍질을 벗기시며 그분이 자비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이들 분파 사람들은 마지막 날이 곧 다가온다고 성서 구절을 해석하고, 마지막 날 감찰의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에 돌아가야 하며, 빛의 자식들로 깨끗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모여 성서를 배우고 공동으로 기도하고 식사하며 그들을 구원하러 올 메시아를 열심히 기다렸다. 자기들의 공동체를 히브리어로 ‘함께 모여 하나가 되다’는 뜻인 ‘약하드’라고 불렀다(약하드를 ‘단합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한편 약하드를 희랍어로 옮기면 신약성서에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이름인 ‘꼬이노니아’이다. 약하드 공동체 사람들은 사해 근처의 쿰란에만 거주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에 생업을 갖고 살았으며 도시 한 지역에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여 일반 도시 한 지역에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여 일반 도시민과 매우 구별되는 생활을 유지했다.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양상은 식사 전에 모두 침례소(미크붸)에 들어가 침례를 한 후 공동체 의복으로 갈아입고 가진 공동 식사이다. 공동식사를 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확인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기원(祈願)하는 것이다.
서기 1세기말에 활동했던 유다인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이들을 엣세네파라고 칭했다. 예루살렘에는 시온산 근처에 그들의 거류지를 형성했으며 시온산 남쪽에 ‘엣세네 성문’이 있었을 정도로 이들 공동체는 잘 알려져 있었다. 한편 복음서는 ‘최후의 만찬’ 다락방이 시온산 근처였다고 전하고 있는데, 서기 6세기 사해 동쪽 요르단에 위치한 마다바의 교회 바닥에 그린 모자이크 지도에 의하면, 최후 만찬의 다락방 자리에 세웠다는 ‘시온 교회’는 시온 성문 쪽에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초대교회와 엣세네파 공동체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최후 만찬에서 행한 성찬식의 순서를 고찰하여 보아도 초대 교회는 정통적인 바리사이파 유다교의 예식을 따르지 않고 엣세네파 전례의 순서를 택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유다교 성찬식 예전에 의하면 식사 전에 먼저 포도주를 들어올리고 축성을 한 다음에 빵을 들어올리고 축성을 했다. 그러나 엣세네파는 그 반대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에서도 먼저 빵을 축성하고 그 다음에 포도주를 축성했다.
엣세네파 공동체는 마지막 날이 곧 올 것을 예측하고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곧 올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마지막 날 하느님의 심판에 대비하여 살아 남기 위해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정의와 진리로 사는 길을 추구하였다. 자기들을 ‘빛의 자식들’이라고 칭하며 소이 사두가이파 사람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적대시하고 원수(怨讐)라고 멀리 하였다. 예루살렘의 사두가이파 사제들을 ‘사악한 사제’라고 하며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부드러운 것을 추구하는 자들’이며 거짓과 속임을 일삼는다고 하였다. ‘부드러운 것’은 누룩이 들어간 빵을 가리키며 신약성서에 전하는 ‘누룩을 조심하라’ 는 구절은 율법 해석에 있어서 바리사이파 랍비들의 임기웅변식의 융통성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사해 문헌에 의하면 그들 공동체 일원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공교롭게도 두 메시아였다. 이들 공동체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두 메시아가 온다고 기다렸다. 하나는 대사제로서 아론의 메시아, 다른 하나는 임금으로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다.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그들의 규례서인 ‘새 계약의 규례’ (일명 다마스커스 계약)의 한 단락에서 그 예를 읽어본다.
하느님의 법규를 거부하고 떠나가서 그들 마음의 강퍅(剛愎)한 대로 행한 자들에게 이것이 심판이다. 정말로 다메섹 땅에서 새로운 계약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돌아와서 배반하고 생명수의 우물에서 떠나면 그들은 백성의 비밀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백성의 비밀’은 공동체의 친교인을 뜻한다).
단합체(약하드)의 선생님에게 모인 날부터 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일어설 때까지 그들은 그분의 책에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온전하고 거룩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들어와 정직한 자들의 감찰을 받기 싫어하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다. 또한 이들 공동체 지도자들은 마지막 날에 있을 성찬례를 준비하여 그 예전을 만들었다.
이 예전인 ‘마지막 날의 규례’에 의하면 마지막 날 공동 식탁의 만찬에 대사제로서 메시아가 먼저 착석하고 그 다음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들어와 착석한 후 그들은 빵과 포도주로 축성한다는 것이다. 서기 1-2세기에 번역된 히브리성서의 아람어 번역인 타르굼에도 두 메시아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이렇듯 두 메시아에 대한 종교관이 신약성서 시대 이전 유다교 사회에서 일부 통용되었다. 이런 두 메시아에 관한 전승은 히브리성서 즈가 6,12-13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나 만군의 야붸는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여기에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이 새싹이며 그의 밑자리에서 새싹으로 자라나 야붸의 성전을 지을 것이다. 그가 야붸의 성전을 j지을 것이며 그는 위엄을 갖추고 왕자에 앉아 다스릴 것이다. 그의 왕자 옆에 한 사제가 있을 것이며 그들 둘 사이에 평화의 조언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새싹’은 다윗의 새싹인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뜻하며, 그의 옆에서 평화의 조언을 하는 사제는 이론의 메시아를 가리킨다. 이처럼 구원자의 표상은 대사제와 임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구원자로서의 구마사제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에서 대사제와 임금이 백성의 구원자로 활동하게 되는 전승의 유래를 고대 바빌로니아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전승은 정결례와 성혼례라고 할 수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가장 중요했으며 또한 국가 전례로 근 삼천여 년 동안이나 그들의 문화 정통으로 유지되어 왔던 의례가 정결례와 성혼례였다. 정결례의 보편적인 의식은 구마사제가 거룩한 주문(呪文)을 읽음으로써 마귀를 쫓아버리는 것이며 성혼례는 도시의 통치자가 여사제와 신년 축제이레 혼례를 거행함으로 백성의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세기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인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한 단락은 졍결례와 성혼례의 기원을 알려주고 있다. 옛날 먼 옛날에 왕권의 지팡이와 왕관과 왕좌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후에 제식과 제의(祭儀)가 모두 잘 갖추어졌다. 도시의 거룩한 곳에 흙벽돌을 쌓아 신정을 세웠다. 그리고 다섯 도시를 선정하여 각각 도시에 도시 신을 정해 주었다.
그 첫째가 에리두였고 이 도시를 누딤무드(조물주)라고 불리는 지하수신 엔키에게 주었다. 그 둘째는 에리두의 북동편 티그리스강쪽에 위치한 바드티비라였고 이 도시를 왕자와 성녀(聖女)에게 주었다고 전한다. 여기에서 ‘왕자’는 양치기 두무지를, ‘성녀’는 사랑의 여신 인안나를 가리킨다. 엔키는 구마사제의 수호신이며 정결례의 대표자이다. 그리고 두무지오 인안나의 관계는 성혼례로 실현된다. 다시 말하자면 도시에 질서가 잡히고 도시국가 사회체제로 형성되어가면서 처음으로 부상된 공공의식(儀式)이 정결례이며 성혼례였다는 고대 바빌로니아 학자들의 역사관이다.
구원자로서 구마 사제의 역할은 선한 공동체에 잠입한 악귀의 세력을 몰아내고 공동체 일원이 개인 수호신의 보호를 다시 받을 수 있게 돌봐주는 것이다. 엔키는 구마 사제의 수호신이며 엔키의 아들 아쌀루히는 구마 사제로서 주문을 읽고 정결례를 수행한다. 도시국가 바빌론을 세운 함무라비 왕조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을 평정하고 바빌로니아 제국의 면모를 새로운 질서로 펼쳐나갈 당시,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 계보에도 새로운 질서가 생겼다.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이 만백성의 구원자로 등장하며 최고의 신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함무라비 임금 자신이 백성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공평한 재판을 행사할 주권을 태양신에게서 받고 있는 장면이 부각된 함무라비 법전 석비의 서문에 하늘신과 최고신 엔릴은 마르둑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주권을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바빌론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바빌로니아 제국이 형성되어 가면서 바빌론의 우위성을 고양하기 위한 정치적 선전에 목적을 두고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는 만들어졌다.
이 서사시에 마르둑은 어둠을 상징하는 바다 괴물 티야마트를 죽이고 세상의 질서를 새롭게 창조하여 신들에게 구원의 숨길을 터 준다. 마르둑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 계보에 등록되는 과정에서 그는 엔키의 아들로 소개되며 서기전 18세기 이후의 주문에는 마르둑이 구마사제의 역할을 맡아 악귀를 쫓아낸다. 마르둑은 공정한 법을 행사하는 주권자이며 구마사제로서 구원자가 된 것이다. 구마사제가 사용하던 주문은 바빌로니아가 망한 후에도 계속해서 일반인들 사이에 사용되었으며 적어도 서기전 3세기까지는 구마사제직이 존재하였다.
임금으로서의 메시아
임금으로서 메시아의 역할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에 따르면 풍요다산을 약속하는 임금이 ‘사랑의 여신’의 배우자로 신의 형상을 입고 신년 축제일에 혼례를 치루는 구원자의 상(像)이라고 말할 수 있다. 통치자가 신의 자격으로 일 년에 한 번씩 여사제와 신전에서 혼인식을 갖는 것이다. 사랑의 여신 인안나와 양치기 두무지가 각각 여사제와 통치자의 역을 맡고 연출하는 드라마이다. ‘수메르 왕계보’ 역사서에 통치자 두무지는 양치기였으며 도시 바드티비라의 세 번 째 임금으로 3600X10년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적인 인물인 목자 두무지가 한동안 임금으로서 왕권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성혼례라는 드라마에서는 여신의 남편으로 등장한다. 혼인의 기쁨을 노래하는 ‘새색시의 꿈’ 이라는 애가(愛歌)에 인안나의 오빠는 그녀에게 두무지와 혼인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인안나는 두무지를 기대하며 풍요를 꿈꾼다.
(인안나의 오빠는 그녀에게 말한다.) “여동생, 그가 너와 누울 것이다. 그가 너와 누울 것이다. 네 신랑이 너와 누울 것이다. 아마우슘갈안나가 너와 누울 것이다. 엔릴의 친구가 너와 누울 것이다. 좋은 모태(母胎)에서 태어난 그가 너와 누울 것이다. 옥좌의 씨로 받은 그가 너와 누울 것이다.” (아마우슘갈안나는 두무지의 칭호로 ‘높은 대추야자나무 열매’라는 뜻이다.) (인안나는 대답한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는 내 마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내 마음의 사람입니다. 내 마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호미 질을 하지 않아도 짚더미가 쌓아올려지겠고 곡식이 창고에 쟁여지겠습니다. 농부여, 그의 곡식은 많이 쌓일 것이며 목자여, 그의 양(羊)은 털이 수북해질 것입니다.
도시국가의 임금이 두무지의 이름으로 신년 축제일에 이러한 노래를 들으며 혼례를 치루는 신방(神房)에 들어간다. 이러한 행사는 백성의 풍요와 다산을 약속하는 것이며 백성은 행복한 한해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은 신의 모습으로 성혼례를 치루고 몇 일이 지난 후 신방에서 나와 보통 사람으로 돌아간다. 두무지에게는 두 얼굴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두무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많은 노래에 저승사자들은 두무지를 잡으러 찾아다니며 두무지는 이리 저리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다. 한 번은 들판에 사는 어느 할머니 집에 다가가 그 할머니에게 숨겨달라고 애걸한다. 그 때 두무지가 할머니에게 하는 말이 재미있다. “할머니,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여신의 남편입니다. 만일 내가 물을 마시겠다면 물을 부으시고 밀가루를 먹겠다면 밀가루를 뿌려주십시오.”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여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건기와 우기가 분명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10-11월 우기의 시작은 한 해의 생명을 약속하는 증거이겠지만 5-6월부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 동안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메마른 들판에 고스러진 풀뿌리라도 찾아다니며 황량한 벌판을 헤매는 양치기들의 처절한 모습은 죽음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양우리에 빈 우유 통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새끼 염소들은 목놓아 울고 있다. 양치기의 참담한 모습을 그린 한 비가(悲歌)를 읽어본다 폐허가 된 양 우리에서 양치기 두무지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머리에 천을 뒤집어쓰고 서성거리고 있다.
어째 서성거리느냐? 어째 서성거리느냐? 왜 머리에 천을 뒤집어썼느냐? 너는 양치기인데 어째 서성거리느냐? 네 암양들이 붙잡혔다. 네 새끼 양들이 끌려갔다. 어째 서성거리느냐? 네 암염소들이 붙잡혔다. 네 새끼 염소들이 끌려갔다. 어째 서성거리느냐? 네 거룩한 우리의 암 나귀가 붙잡혔다. 어째 서성거리느냐? 네 거룩한 교유기가 바람에 쓰러졌다. 왜 머리에 천을 뒤집어썼느냐? 네 큰 염소들이 양 우리에서 왜 목을 땅에 대고 있느냐? 네 작은 새끼 염소들이 사육장에서 괴롭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미가 없는 네 새끼 양들이 벽에 걸친 구유에서 괴롭게 외친다; 눈물이 어린 네 작은누이는 왜 그것들 가운데 애원하느냐? 네 개는 바람만 부는 들판에서 괴롭게 외친다. 네 아내 거룩한 인안나는 하늘에서(내려와) 땅에 세운 그녀의 집에서 괴롭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 네 고귀한 누이 게쉬틴안나는 성문과 넓은 사거리에서 살(근육)을 할퀴며 머리카락을 뽑고 있다. 살을 쥐어뜯으며 머리카락을 뽑고 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가시덤불처럼 손으로 뜯고 있다. (‘두무지의 운명’ 시작 부분)
삶이 거의 다해 가는 처참한 양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비가 오고 풀이 막 돋아나는 때가 되면 양치기들은 활기를 되찾고 양우리의 염소와 양은 살찌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기를 다시 찾는 양치기들의 격변하는 삶은 글자 그대로 ‘죽음과 부활’의 연속이다. 이러한 주제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인들은 노래한 것이다. 허망하게도 저승사자들에게 붙잡혀 가 저승에 가서 살다가 다시 돌아오는 양치기 두무지는 성혼례로 사랑의 여신에게 풍요를 약속하는 두무지 임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새로운 한해의 안녕을 기대하는 ‘영원한 희귀’ 의 이야기이다.
‘영원한 희귀’의 주제는 종교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주제는 구마사제인 아쌀루히와 양치기 두무지가 모두 구원이 신 엔키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엔키의 정처(正妻) 담갈눈나(‘왕자의 큰 부인’)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아쌀루히이며 엔키의 다른 아내 ‘양의 수호여신’ 두투르가 낳은 아들이 두무지이다.
지하수신 엔키의 두 아들이 각각 정결례와 성혼례를 통한 구원의 매개체가 된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종교관은 구원의 약속이 지하수의 수호신에게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지하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생명 줄이었음을 말해준다.
메소포타미아의 자연 환경과 비슷한 이스라엘의 생활 풍토에서도 지하수의 귀중함은 삶의 근본이었으며 지하수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히브리성서에 나온다. 한 예로 하가르의 이야기를 읽어본다. 아브람의 아이를 가진 하가르를 사라가 학대하자 하가르는 그녀를 피해 도망 나와 광야를 헤매다가 한 우물가에서 하느님의 천사를 만난다.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을 천사는 알려주며 그의 이름을 이쉬마엘(‘엘이 듣는다’) 이라 부르라고 당부한다.
하가르는 하느님의 천사를 보고도 살아 있는 자시의 모습에 놀라 그 우물의 이름을 “나를 보시는 살아 계신 분의 우물”이라고 불렀다(창세16장). 후에 그녀가 아들을 낳고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 광야를 헤매며 마실 물이 다 떨어져 거의 죽어 가게 되었는데 천사가 나타나 하가르의 눈을 밝혀 우물을 찾아 모자는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창세 21장).
지하수가 구원의 원동력이라는 주제는 이스라엘이나 남쪽 메소포타미아 같은 풍토에서 자연히 생길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지하수를 상징하는 지하수신의 두 아들이 구원이 매개체가 된다는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산 출품이다. 정결례와 성혼례의 사회 구조가 만들어 놓은 구원의 매개체 전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메시아와 그리스도
히브리성서를 입증하는 원문으로 삼고서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하던 엣세네파 공동체들이 전하는 두 메시아의 사상도 이러한 바빌로니아의 전승에서 그 줄기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엣세네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예수 한 분을 그들의 메시아로 고백했다. 초기 교회 일원들은 적어도 엣세네파 사람들에게 그들이 기다리는 두 메시아는 예수 한 분에게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대사제로서 악귀를 몰아내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고 거룩하게 만들었으며(히브리서에 예수는 대사제라는 명제가 나온다) 또한 신성모독 죄로 고소 당해 “유다의 왕”이란 팻말을 머리 위에 걸고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 많은 증거를 보여 주고 하늘로 올라간 ‘이스라엘의 왕’ 이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신약성서에 메시아 예수가 대사제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양면이 나오는 것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구원사의 종착역이 아닐까.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10)
이스라엘과 바빌로니아의 태초 이야기
창세1-9장의 태초사화(太初史話)는 12장부터 시작하는 이스라엘 족장들의 민족사를 서술하기 위해 이스라엘인의 시각으로 조명되고 전개된 인류의 태초(太初) 이야기이다. 이 두 역사의 연결점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주하기 시작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 아브람(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신 야붸가 만든 아담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관을 뒷받침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 가운데 하나로 아브람의 집안이 ‘갈대아(히브리어로 카스딤)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갈대아인은 서기전 9세기에 이미 남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기록이 있으며, 서기전 7세기말에는 바빌로니아의 갈대아 왕조를 세웠던 사람들이다.
도시 우르는 이미 서기전 28세기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주요한 도시국가로 번성하여 서기전 20세기에는 도시국가 우르를 중심으로 많은 문학작품과 짐승, 나무, 돌 등의 이름을 망라한 백과사전, 경제 행정 전문용어 사전 등을 편찬하였으며, 왕의 딸이 우르의 대여사제가 되어 종교 의식을 거행하였던 종교 도시였다.
갈대아인이 살았던 때의 우르는 이미 오래된 종교적인 도시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람의 집안이 이러한 남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변의 오래된 종교적 도시에서 이주해 왔다고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했던 히브리 성서학자들이 그들의 민족사관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서 그 시작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두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구약성서 창세기의 태초 이야기는 수메르 창조신화인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처럼 인간 창조에서 에덴 동산, 도시의 건설, 아담의 계보, 인간의 타락, 끝내는 홍수로 이어지고 홍수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 축복 받는 계약으로 끝난다. 아래에서는 창세 1-9장과 바빌로니아의 창조서사시를 비교하여 그 연관성을 읽어본다.
1. 천지창조(天地創造)
구약성서 창세 1-2장에 두 가지의 창조 이야기가 있음은 잘 알려진 가정(假定)이다. 전통적인 성서 주석학적 입장에서는 흔히 1,1-2,3까지를 ‘천지창조’ 라 부르고 2,4-25까지를 ‘낙원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구약성서 전반에 걸쳐 문서적, 역사적, 전승사적, 언어학적, 문학 비평적, 편집자적 연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서를 연구하는 기반을 쌓게 되었으며, 그 결과 창세 1-2장의 경우에 분명히 두 이야기가 몇 군데 반복되면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밝혔다. 창세 2,4 이하의 창조와 에덴 동산 이야기를 야휘스트 문서, 그리고 1,1-2,3까지의 창조 이야기를 제관계 문서라고 부른다( p문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바빌론 유배 기간중인 서기전 6세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며 J문서는 이보다 적어도 200-300년 전의 상황을 보여 준다). 창세 1장과 2장의 창조 이야기에서 서로 반복되고 축약된 문단은 1,1-2과 2,4b-5이다.
창세 1,1-2(p문서) : 처음에 엘로힘이 하늘과 땅을 만들어냈다. 땅은 불모지에 비어 있었다. (한글 성서에는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다’ 또는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번역한다).
창세 2,4b-5(J문서) : 그 때에 야붸 엘로힘이 땅과 하늘을 만들었다. 들의 어떤 초목도 땅에 아직 있기 전이고, 들의 어떤 풀도 아직 자라기 전이었다. 야붸 엘로힘이 땅위에 비를 내리지 않았고, 흙을 일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두 문서에서 서로 비슷하게 반복된 문단은 ‘하늘가 땅을 만들었다’와 ‘하늘과 땅을 만들어 냈다’이다. 그러나 1,2에서는 19개의 단어로 쓰여진 2,5의 문단을 jsp 단어로 축약해서 표현하였다. 즉 ‘땅에 초목이나 풀이 아직 자라기 전이었다’는 ‘불모지였고’호, ‘흙을 일굴 사람이 없었다’는 ‘(사람이 있기 전이어서)비어 있었다’로 축약했다.
2. 바빌로니아의 창조서사시
서기전 19세기 말 메소포타미아의 서편에 살았던 아모리족들이 메소포타미아 중앙부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중 한 부족이 유프라테스강 중류 강가에 도시를 건축하여 왕조를 세우고 도시의 이름을 babilu라 불렀다(여기서 바빌론/바빌로니아가 나온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조 초기에 함무라비 왕은 42년 재위 기간동안에 바빌론을 중심으로 주변의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을 정복하여 바빌로니아 제국을 형성하였다. 그의 업적으로 유명한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함무라비 법전을 기록한 비석을 들 수 있다.
그 당시 바빌론에는 많은 학교들이 세워져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지적 문하를 전수하고 학문이 중심지로 발전되었다. 서기전 21세기 우르 3왕조 시대에 편집된 여러 백과 사전과 행정 경제 용어 사전과 단어 사전 등을 재편집했고, 정결례에 사용하는 주문(呪文)과 제의(祭儀)에 필요한 기도문 등을 정경화했다. 또한 신화나 영웅전, 찬양 시 등 문학 작품을 망라하여 열람표를 만들고 작품들을 도서관에 보관하였다. 이후 바빌론은 고대 근동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도시국가 바빌론이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세력이 되면서 종교적으로 새로운 사건이 생겼다. 바빌론 사람들의 수호신인 마르둑이 그 당시까지 메소포타미아의 최고신인 엔릴의 주권을 양도받아 바빌로니아의 최고신이 된 것이다. 그 예로 서기전 1760년경에 공포된 함무라비 대왕의 법전 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눈나키 신들의 왕 아누(하늘신)와 하늘과 땅의 주(主)인 엔릴(바람신)이 모든 인간을 다스리는 엔릴의 주권을 에아(지하수신)의 큰아들 마르둑에게 주기로 결정했다”(1-12, 아눈나키 신들은 큰 신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바빌론의 사제들은 마르둑의 권능을 높이 찬양하고 바빌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천명하기 위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신화의 소재들을 내용으로 새로운 창조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에누마 엘리쉬”는 일곱 개 토판에 약 1100행이 넘게 쓰여진 서사시로서, 매년 신년 축제 넷째 날에 방방곡곡에서 바빌론의 마르둑 신전에 모인 순례자들 앞에서 대사제가 “에누마 엘리쉬”를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했다. 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태초에 지하수와 바다물이 함께 섞여 있던 곳에서 신들이 생겨났으며 하늘신이 지하수 신을 낳았을 때 바다를 상징하는 바다 괴물일 티야마트는 신들을 괴롭혔다. 이 때에 지하수신에게서 마르둑이 태어났으며 그의 형상은 커가며 모든 신들보다 훨씬 더 위대해졌다. 마르둑은 하늘 신에게서 받은 사방의 바람을 일으키는 노리개로 폭풍을 일으켜 티야마트를 어지럽혔다. 마르둑은 티야마트와 싸움을 하게 되어 승리한 후에 바다 괴물을 죽여 반을 갈라, 그 윗부분으로 창공을 세워 별들과 태양과 달을 두고 나머지 반으로 땅을 만들어 온갖 것들을 만들어내게 했다.
사람들을 만들어 바빌론 신전을 짓게 하고 신들을 그 곳에서 쉬게 하였다. 모든 신들이 모인 가운데 마르둑을 가장 높은 왕좌에 앉게 하고 하늘과 땅의 주권이 그에게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나서 마르둑에게 오십 개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으로 서사시는 끝을 맺는다.
많은 학자들이 창세 1장과 바빌로니아의 창조서사시 “에누마 엘리쉬”를 비교한다. “에누마 엘리쉬”로 시작하는 이 창조서사시의 첫째 토판의 시작 부분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1-9행)
그 때 위에 하늘이 이름지어지지 않았고, 밑에 마른땅이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들(신들)의 아버지 앞수(지하수)와 그들 모두를 낳을 모체(母體) 티야마트(바다)는 자기네들의 물을 하나로 섞고 있었다. 갈대 집이 엮어지지 않았고, 늪 있는 땅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어떤 신들도 나타나지 않아서,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았고, 운명도 정해지지 않았다. 신들이 그(앞수와 티야마트가 섞인 물)속에서 생겨났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라는 이름이 없었고 지하수인 민물과 짠 바다 물이 서로 섞인 곳에서 세상이 시작되었으며, 그때에는 사람이 생기기 전이어서 갈대 집이 엮어지지 않았고 풀이 자라는 늪 있는 땅도 보이지 않았다. 이 부분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에누마 엘리쉬” 첫째 토판 6-7행과 창세 2,5과 창세 1,2을 아래와 같이 축약해 본다.
“에누마 엘리쉬” : 늪 있는 땅도 보이지 않았다. 갈대 집이 엮어지지 않았다.
창세 2장 : 땅에 초목과 풀이 있기 전이다. 사람이 없었다.
창세 1장 : 땅은 불모지에 비어 있었다.
3. 지하수(地下水)와 바다
다음으로 비교하여 서로 평행 하는 부분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앞수(지하수)와 티야마트(바다)가 자기네들의 물을 하나로 섞고 있었다”(“에누마 엘리쉬”의 3-5행)는 문장과 창세 1,2 “어둠이 깊은 물위에, 엘로힘의 바람이 물위에 일고 있었다”는 구절이다.
‘깊은 물’은 바다이며, 엘로힘의 바람이 물, 즉 ‘민물’인 강물이나 지하수 위에 일고 있었다는 말이다.
“에누마 엘리쉬”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앞수(지하수)의 수호신 ‘조물주’누딤무드(에아)는 마르둑을 낳는다. 마르둑은 바다의 상징인 괴물 티야마트를 죽이고 그 시체를 둘로 갈라 창공을 만들고 별, 달 등을 세우고 , 사람을 만들어 일하도록 한 다음, 신들은 쉬며 신들의 왕인 마르둑을 찬미한다. 극 이스라엘인은, 바다인 깊은 물위에 티야마트의 죽음을 뜻하는 어둠이, 그리고 지하수에 조물주 에아의 힘이 있었다는 설명에 반하여 엘로힘의 바람(즉, 힘)이 민물 위에 일고 있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4. 창공(蒼空)과 안식일(安息日)
창세 1, 6-19의 내용인 창공을 만들어 달과 해와 별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에누마 엘리쉬”에서도 나온다. 티야마트의 시체를 둘로 갈라 만든 과정은 창세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창공’을 만든 후 그 곳에 별, 해 달을 세우고 그에 따라 절기와 날을 세는 징표가 되었다는 것과 아래의 물을 모이게 하여 육지와 바다가 생기게 했다는 것은 똑같다.
(마르둑은 티야마트를 죽였다). 그는 쉬었다. 주(主, 마르둑)는 그녀의 시체를 들여다 보았다. 이 괴이한 몸을 나누어 놀라운 것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그녀를 갈라 말린 물고기처럼 둘로 나누었다. 그 반을 세워서 창공으로 씌었다. 빗장을 걸고 문지기를 두어서 물이 내나가지 않게 하라고 명령했다(넷째 토판 135-140행).
큰 신들을 위하여 설자리를 만들었다. 별들을 그들의 모습대로 세웠다. 해를 정하고 절기를 나누었다. 열두 달에 세 별을 세웠다. 이에 따라 일년의 날짜를 정했다.
서로의 움직임을 정하기 위해 북극성을 세웠다(다섯째 토판1-6행).
달을 뜨게 해서 밤을 맡겼다. 밤의 보석으로 정하고 그에 따라 날을 재었다. 왕관(모습)에 따라 매달 어김없이 구별하라. 초승달이 땅 위에 비칠 때 뿔(모습)을 육일 동안 빛난다. 일곱째 날에 왕관은 반이다. 보름(샤파투)에 서로 반대된다. 한 달의 절반이다(다섯째 토판 12-18행).
지하 원천(源泉)을 열고 물이 솟아오르게 했다. 그녀의 눈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열었다. 그녀의 콧구멍을 닫고 … 그녀의 젓 가슴에 높은 산을 쌓아올렸다. 그녀의 꼬리를 꼬아말아서 큰 매듭을 만들었다. 그의 발 밑에 앞수를 … 그녀의 넙적다리로 창공을 받치게 세웠다. 그녀의 반으로 천장을 만들었고, 땅이 생기게 했다. 그는 … 일을 했고, 바다가 파도치게 했다(다섯째 토판 54-63행).
5. 인간 창조(人間 創造)
마르둑은 이처럼 천지를 창조한 다음에 티야마트를 선동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한 그녀의 아들을 처벌하여 피를 흘리게 하고 그 피로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신들의 노역을 감당하여 세상의 중심 도시 바빌론을 세우고 마르둑의 신전을 지어 신들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에 의하면 세상 처음에 신들이 살았고, 중요한 신들은 일을 지켜보고 서 있었으며 작은 신들은 노역을 감당했다. 작은 신들은 강과 수로에 퇴적된 흙을 파서 강둑을 쌓아 올리는 노역을 맡았다. 신들은 이를 갈며 그들의 삶을 불평했다. 그들은 매년 겹치는 노역에 견딜 수 없어 시끄럽게 떠들어대었고, 끝내는 큰 신들에게 f반란을 일으켜 신들의 왕 엔릴은 쉴 수가 없었다. 마침내 지혜 신 엔키와 모신(母神)/산파여신들이 사람을 만들고 그들에게 노역을 감당케 하여, 신들은 쉴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땅에서 일하여 먹고살라고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는 창세 2-3장의 인간 창조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야붸 엘로힘이 그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서 일구고 지키라고 그를 두었다(2,15); “네 일생동안 너는 고통스럽게 (일하여) 먹을 것이다”(3,17); 야붸 엘로힘은 땅을 일구기 위하여 그를 데려온 에덴 동산으로부터, 그 사람들을 내보냈다(3,23). 이와 같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전승인 ‘사람들은 강과 수로에 퇴적된 흙을 파는 노동을 하는 운명’이 되었다는 내용이 창세 2-3장에는 ‘사람들이 흙을 일구어 먹고살라는 운명’으로 반영되었음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사람을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대답에서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승과 창세 2장의 인간 창조 이야기는 설 상관됨을 읽을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에 의하면 노역이 심하다고 반란을 일으킨 죄지은 신중에 우두머리 하나를 잡아 죽여 그의 살과 피에 점토를 섞어서 사람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은 신의 살로 만들어졌기에 사람에게 혼이 생겼고 생명이 바로 사람의 징표라고 한다. 인간과 신이 다른 점은 신은 영원히 사는 반면에 인간에게는 한정된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초하룻날, 초이렛날, 보름날에 정결례를 했다. 큰 신들의 모임에서 지능(知能)있는 신(神) 웨일라를 잡아 죽였다. 닌투(母神)는 그의 살((肉)과 피에 점토를 섞었다. 지금부터 영원히 북소리를 들었다. 신의 살에서 혼이 생겼다. (한정된)생명이 그의 징표라고 알렸다. 그래서 잊지 말라고 혼이 생겼다.(“아트라하시스 이야기” 첫째 토판 222-230행)
이와 같이 고대메소포타미아의 전승에 비해 구약성서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야붸 엘로힘이 흙에서 흙덩어리로 사람을 만들고, 그의 코 속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서, 그 사람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창세 2,7). 엘로힘이 모든 살(肉)에 바람(목숨)을 주었다(넣었다) (민수16,22).
구약성서의 요지는 엘로힘이 흙덩어리로 사람 모양인 살(肉)을 만들어 그것에 한정된 삶을 살도록 생명의 바람인 목숨을 주어 사람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트라하시스 이야기’의 관점인 ‘죄짓고 처형당한 신의 살과 피에 점토를 섞어 만든 사람에게 생명 있는 혼이 생겼다’와 비교하면, 그 차이점은 ‘죄지은 신의 살과 피가 결국 사람의 혼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살(肉)의 혼(네페쉬)은 피에 있다’(레위 17,11)는 레위기 (즉, p문서)의 해석을 염두에 두면 구약성서에서 배제된 점은 ‘죄짓고 처형당한 신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부분이다. 비록 구약성서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인간 창조 신학의 주제인 ‘죄지은 신의 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찾아 볼 수 없으나 사람이 피를 흘리게 한 범죄와 인간 창조를 연결시킨 부분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은 그의 피를 흘려야 한다. 왜냐하면 엘로힘이 그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창세 9,4-6).
구약성서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인 ‘눈은 눈으로’ 갚아야 한다는 법규처럼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또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피로 속죄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생명을 다시 얻는다. 피를 제단에 뿌리는 속죄례를 매년 행하여 새로운 생명을 구해야만 한다. 레위기의 ‘피로 속죄한다’는 구절은 바로 이러한 신학이 반영된 것이다.
살(肉)의 혼(네페쉬)은 피에 있다. 나(엘로힘)는 너희들의 생명을 속죄하라고 제단에서 피를 너희들에게 주었다. 피는 생명을 속죄시키기 때문이다(레위 17,11).
6. 계약(契約) - 활/무지개
끝으로 창세기 태초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하느님은 노아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나(엘로힘)는 구름에 내 활/무지개를 (보여) 줄 것이니 나와 땅 사이에 계약의 징표가 될 것이다”(9,13). 홍수 이후에 엘로힘과 땅 사이의 계약의 징표로 활의 모양인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보여 줄 것이라는 배경과는 다르지만 활이 맹세하거나 계약하는 의식(儀式)에 사용되는 경우가 “에누마 엘리쉬”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한글 성서에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난다고 번역되었는데 ‘무지개/활’로 이해하면 올바르다. 활의 뜻인 악카드어 qastu와 히브리어 케쉐트 ‘활/무지개’는 동의어이다). 창세기에서는 홍수 이후의 계약에 구름의 무지개로 활이 나오지만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마르둑의 신전이 바빌론에 완성된 다음 모든 신들이 신전에 모여 앉았을 때 마르둑은 신들 앞에 그의 활을 놓고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하늘 신 아누는 이것을 들어올리고 축복하며 세 가지 이름을 주고 그 설자리를 정해 주었다.
아누는 활을 들어올리고 신들의 모임 앞에서 말하였다. 그는 활에 입맞추고, “이것은 내 딸이 될 것이다.” 그는 활에 이름을 주었다. 이것이 그 이름들이었다. “‘긴 나무’가 첫째일 것이며 ‘승리자’가 둘째일 것이다. 셋째 이름은 하늘에 빛나는 ‘활 별’이 될 것이다. 그는 그 형제 신들 사이에 활이 설자리를 정해 주었다(”에누마 엘리쉬“여섯째 토판 86-91행).
이 두 이야기가 서로 공통되는 소재는 ‘활’이 ‘계약의 징표’ 라는 것 외에도 노아의 ‘세’아들들이나 아누가 마르둑의 활에 붙여주는 ‘세’ 이름들이 있다. 이와 같이 고데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써놓은 많은 신화가 후대 바빌로니아인에게 전해지고, 그 주변이 히브리어 성서 등에서 그 전승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연속성을 찾는 작업은 성서 연구뿐 아니라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룬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11)
야붸, 엘, 바알
구약성서에 반영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히브리 민족이 수호신 야붸가 다른 민족의 신들과 많은 갈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아브람(아브람은 훗날 아브라함으로 개명된다)이 그들 부족의 신 야붸의 명령을 받고 그들의 고향 메소포타미아 도시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다. 야붸는 아브람에게 말씀 하셨다(창세12,1). “너는 가라! 네 땅과 네 조상의 땅과 네 아버지의 집에서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왔던 아브람이 부족들은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토착민들에게, 상호 협조와 이해를 구하며 커다란 충돌 없이 더불어 살았다. 아브람 부족은 가나안 땅의 원래 최고신(最古神)인 엘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 한 예를 들어 창세 14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어본다. 아브람이 열방의 군대를 쳐부수고 그의 조카 롯을 되찾아 돌아올 때, 도시국가 살렘의 왕이며 지고(至高)의 엘의 사제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을 축복한다(14,18-19).
“하늘과 땅의 창조자 지고의 엘에게서 아브람은 축복 받을 것이다.” 지고의 엘은 히브리어의 ‘엘 일리욘’을 번역한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혹은 God Most High)’ 이라는 뜻이기에 엘을 고유명사로 볼 수는 없다.
야붸와 엘
신명(神名)인 엘은 북서 셈어권에 나오는 지고의 신이다. 서기전 14-10세기의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를 이해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우가리트 문헌에 의하면 그들의 최고신(最古神) 엘은 지고의 신이며, 늙고 수염이 백발이다. 그는 자비로우며 백성을 긍휼이 여기고, 그의 처소는 장막이며, 왕자에 앉아 있다. 바알 서사시의 한 대목에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온다.
“엘, 당신은 위대하고 지혜로우십니다. 당신의 백발 수염은 당신을 가르칩니다. … 이제 바알이 비 내리는 때를 정할 것입니다.” 바알은 구약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가나안 땅의 최고(最高)신으로 폭풍신이며, 가나안 신화에 의하면 바알이 엘의 자리에 올라 신들 중에 왕이 된다.
히브리성서 욥기에 위의 인용문과 유사한 표현을 읽을 수 있다.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36,26-27). “보십시오, 엘은 위대하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분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분이 물방울을 끌어내어 안개 속에 비로 내려줍니다.
가나안인들에게 엘은 신들의 아버지이며, 사람을 구원하는 평화의 신이다. 우가리트 문헌 가운데 엘을 찬양하는 시의 한 부분을 읽어본다.
“신들의 자식들의 엘이여, 엘의 자식들의 모임에, 엘의 자식들의 회중에 … , 엘과 아쉐라여, 엘은 자비로우며 엘은 확고하며 엘은 평화입니다(샬롬). 아쉐라는 여신이다. 엘이여, 서두르십시오. 엘이여, (우리를) 구원하십시오. 짜폰신을 위해 우가리트를 위해, 엘은 훌륭합니다. 엘은 찬미받습니다. 엘은 영원합니다. 엘은 강합니다. 엘은 영광을 받습니다.…” 짜폰은 ‘북쪽’이라는 뜻이며 짜폰산에서 신들의 모임을 가졌다. 구약성서의 시온산가 평행을 이루는 산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엘은 가나안 종교의 고유한 신명(神名)이었으며, 아브람의 부족들이 가나안 땅에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주변의 종교와 만나는 과정에서, 엘은 아브람 부족들의 수호신인 야붸와 같은 성격의 신으로 아브람 부족들의 문화권에 들어온 것이다. 한 예로 아브람의 서자(庶子) 이쉬마엘의 경우에서 이러한 면모를 설명할 수 있다. 아브람의 아내 사라의 여종 하가르는 아브람의 자식을 임신하여 사라의 미움을 사게 되고 광야로 도망갔을 때, 야붸의 천사가 하가르에게 나타나 이들의 이름을 ‘엘이 듣는다’는 뜻인 ‘이쉬마엘’이라 부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하가르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야붸가 들으셨기 때문이다(창세 16장).
엘이 야붸의 범위 안에 들어오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를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창세 28, 10-27). 야곱의 브엘쉐바를 떠나 하란 땅으로 가는 길에 한 곳에 이르러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베고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으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 때 야붸께서 층계 위에 서서 “나는 야붸이며 네 선조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야곱이 누워있는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그를 축복한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이 곳에 야붸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며 그 곳의 이름을 ‘하느님의 집’이며 ‘하늘의 문’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야곱은 돌을 가져다가 그 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의 이름을 ‘엘의 집’이라는 뜻의 ‘베이트 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야곱은 이렇게 서원 한다.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켜 주시고 나에게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주시고 내 아버지의 j집으로 안전(샬롬)히 돌아가게 해주시면 야붸는 나에게 하느님이십니다”(창세 28-20-21)
가나안의 신명 엘이 히브리 민족의 신명으로 쓰이게 되는 가장 대표적인 예는 q로 이스라엘이라는 인명이며, 그 이름을 얻게 된 동기이다(창세 32, 24-30). 야곱이 그의 가족들을 모두 강 건너로 보낸 다음 홀로 있는데, 한 사람이 나타나 그와 밤새껏 씨름을 하였다. 동이 트자 야곱이 자기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그를 놓아주지 않겠다고 하자 그는 야곱에게 말한다. “네 이름을 야곱이라고 더 이상 말하지 말고 이제는 이스라엘이다. 네가 하느님과 사람과도 겨루었고, 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야곱이 그의 이름을 묻자 그는 “어찌하여 너는 내 이름을 묻느냐?”고 대답하고 그 곳에서 야곱을 축복하였다. 그래서 야곱은 그 곳의 이름을 ‘프니엘(엘의 얼굴)’ 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내가 신을 얼굴 대(對) 얼굴로 보았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에는 두 가지 대목이 들어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프니엘’ 이라는 지명에 대한 설명이다. 야곱이 엘의 얼굴을 대면하였기에 ‘엘의 얼굴(프니엘)’이 지명이 되었으며, 그 곳에 엘이 사람으로 나타나 야곱과 힘을 겨루었기에 ‘엘이 겨룬다’는 뜻의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해석이다. 가나안의 지고신(至高神) 엘이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는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한다면 엘이 야곱 부족의 신 야붸와 겨루었다는 대답이다. 결국 가나안 최고신 엘은 야붸를 수호신으로 섬기던 히브리인들에게 동화되고 엘은 그들의 인명에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사무엘의 아들 요엘의 경우 그 뜻은 ‘요는 엘 이다’이며, 예언자 엘리야후(줄여서 엘리야)의 경우 “나의 엘은 야후/야이다”는 뜻이다(엘리야후를 엘야후 ‘엘은 야후이다.’라고 음역할 수도 있다). 야후, 야 혹은 요는 야붸의 축약형이다.
야붸와 바알
가나안의 폭풍신 바알은 히브리성서에서 야붸를 추종하던 이스라엘인들과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는 신으로 등장한다. 우가리트 문헌에 의하면 바알은 폭풍을 일으키며 전투에 돌진하여 승리하는 전쟁이다.
바알은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산(山)은 그의 왕좌였다 하다드(천둥신)는 (산에 쉬었다.) 그의 산중에 폭풍처럼, 바알은 일곱의 번개와 여덟의 굉음을 보냈다. ‘번개 나무’가 (날아갔다). 가나안의 지고신 엘은 야붸에게 동화되고 점차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전환되어 하느님이라는 의미로도 상용되지만, ‘주(主), 주인, 남편’의 뜻인 바알은 일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융화를 이루었으나 세월이 지나며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로부터 배척되어 가는 과정을 겪었으며 끝내 설자리가 없게 된다.
왕국시기의 인명을 조사하여 보면 그 현상을 보다 잘 알 수 있다. 히브리어 인명에 ‘명사+동사’ 혹은 ‘동사+명사’의 구조로 된 경우가 많다. 이런 이름에서 명사 자리에 신명(神名)이 들어가는 경우를 히브리성서와 그 외 인장(印章)이나 도판(陶坂)에 기록된 인명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중에 엘과 바알과 야붸의 신명이 포함되어 있는 이름들을 찾아보면, 엘이 들어 있는 이름의 수효는 77개, 야붸(야후, 야, 요등)의 경우 557개, 그러나 바알을 포함한 이름은 모두 5개뿐이다. 우가리트 문헌에 나타난 신화에 의하면 바알이 그들 종교사회에서 가장 강한 신이다. 가나안의 가장 우월한 신명이 가나안 땅에 더불어 살았던 이스라엘인들의 인명에 드물게 사용된 것은 설명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우가리트의 바알 신화에 의하면 신들의 숙적, 바다를 뜻하는 얌은 바알을 그에게 내놓으라고 신들의 모임에 말한다(모세의 누이 ‘마르얌’은 ‘얌의 사랑’이라는 뜻이다). 얌(바다)의 전령에 신들은 두려워하며 신들의 아버지 엘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바알의 야망은 얌을 물리치고 신들의 모임에서 최고의 신이 되는 것이었다. 폭풍의 신 바알은 신들의 적 얌을 물리칠 힘이 있었다. 결국 바알은 지고의 신 엘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가나안의 최고(最高)신으로 대두된다. 아래에서 바알 신화의 일부를 읽어본다. 얌은 신들의 모임에 전갈자를 보내 바알을 굴복시켜 그에게 보낼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바알은 즉각 거부하고 그에게 항쟁하여 싸울 것을 다짐한다. 그 때 바알을 도와주는 현자 코타르-와 -하시스는 두 개의 지팡이를 만들어 그에게 넘겨준다.
“당신에게 말하겠습니다. 수뇌 바알이여, 보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적을 죽일 것입니다. 당신의 숙적들을 소탕할 것입니다. 당신의 영원한 왕권을 누릴 것입니다. 당신이 주권을 영원무궁토록.” 코타르는 두 개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와 그것들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너로 말하자면 네 이름은 강타자이다. 강타자여 얌(바다)을 몰아내라. 얌을 그의 왕자에서 몰아내라. 나하르(강)를 그의 권좌에서, 바알의 손에서 날뛰어라, 그의 손가락에서 독수리처럼, 수뇌 얌의 어깨를 때려라, 판관 나하르의 두 팔 사이를.” 지팡이는 바알의 손에서 날뛰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독수리처럼, 그것은 수뇌 얌의 어깨를 때렸다. 판관 나하르의 두팔 사이를 얌은 강하여서 주저앉지 않았으며 그의 모습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사지는 흔들리지 않았으며 그의 모습은 무너지지 않았다. 코타르는 두 개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와 그것들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너로 말하자면, 네 이름은 격추자이다. 격추자여, 얌을 추격하라, 얌을 그의 왕자에서 추격하라. 나하르를 그의 권좌에서, 바알의 손에서 날뛰어라. 그의 손가락에서 독수리처럼, 수뇌 얌의 두개골을 때려라, 판관 나하르의 두 눈 사이를, 얌은 꼬꾸라진다. 땅바닥에 쓰러진다.” 땅바닥에 쓰러진다.
그러자 지팡이는 바알의 손에서 날뛰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독수리처럼, 그것은 수뇌 얌의 두개골을 때렸다. 판관 나하르의 두 눈 사이를. 얌은 주저앉았다.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사지는 흔들렸고 그의 모습은 무너졌다. 바알은 얌을 붙잡아 토막을 내었다. 판관 나하르를 끝내버렸다. 아쉬타로트는 얌의 이름을 힐난했다. “보아라, 승리자 바알을, 보아라, 구름을 달리는 자를. 수뇌 얌은 우리의 포로가 되었다. 판관 나하르는 우리의 포로가 되었다.”
(‘바다’를 뜻하는 얌은 바다용을 가리키며 ‘강’을 뜻하는 나하르는 강의용을 가리킨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쉬타로트는 여신이다. ‘구름 타고 달리는 자’는 구름을 전차처럼 타고 달리는 자를 말한다. 시편 68,5) 가나안 토착민들에게 바알과 같은 강한 전쟁 신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왔던 히브리 민족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엘리야후 같은 야붸의 선지자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판 싸움을 하였으며(1열왕18장), 여러 예언서를 읽어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일부는 바알을 쫓아갔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른 시기를 판관기에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인들이 야붸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다. 그들은 바알들을 섬기었다”(2,11).
그 구체적인 예로 야붸가 사람을 통하여 바알과 싸우는 장면을 알려 주는 사건을 판관 기드온의 에피소드에서 읽어본다(판관 6장). 이스라엘인들이 야붸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다. 그래서 야붸는 그들을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주었다. 일곱 해가 지나자 야붸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인들을 구할 것을 당부하고 야붸가 그와 함께 있음을 보여 주는 증표로 바위에 올려놓고 고기나 빵을 불살라 버렸다.
야붸의 천사임을 알아차린 기드온은 “오 주여 야붸시여, 정말로 나는 야붸의 천사를 얼굴 대 얼굴로 보았습니다”라고 말한다. 두려워 떠는 기드온에게 야붸는 말씀하셨다. “너에게 평화(샬롬)를.” 그리고 그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 곳에 야붸에게 드리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야붸 샬롬’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드온은 그의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그 곁에 세운 아쉐라 목상도 찍어 버렸다.
그 곳에 야붸를 위한 제단을 쌓고 찍어낸 아쉐라 목상을 불살라 만든 수소의 번제물을 올려놓았다. 다음 날 아침 성 읍 사람들은 이 일을 보고 아래와 같이 말한다(6,29).
사람들은 각자 그의 이웃에게 말했다. “누가 이런 짓을 하였는가!” 그들은 캐묻고 조사했다. 기드온의 행위였음을 알아낸 그들은 기드온을 끌어내어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기드온의 아버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6,31-32). “당신네들은 바알을 위해 다투겠다는 말입니까? 당신들이 그를 구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를 위해 다투는 자는 아침이면 죽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하느님이면 자기 제단을 무너뜨린 것이니 자기를 위해 그가 다툴 것입니다.” 그날 그를 ‘예룹바알’이라고 불렀다. 즉, ‘그가 그의 제단을 무너뜨리니 바알이 그와 다투라.’
이래서 기드온은 ‘바알이 다툰다’ 는 뜻인 예룹바알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히브리어 동사 미완료형 ‘예룹(원형은 리브)’의 뜻은 주로 ‘언쟁을 하다’, ‘법정에 고소하다’ 등으로 사용된다. 위의 이야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 야붸를 추구하는 기드온을 찾아 캐묻고 조사하였다는 점이다. 즉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야붸를 섬기는 자들과 말로 다투었다는 암시이다.
앞에서 읽은 야곱의 이야기와 기드온의 이야기에 여러 가지 공통된 요소가 나온다. 두 사람 모두 하느님의 얼굴을 대면하였어도 죽음을 면하고 오히려 새로운 인명과 지명을 얻게 된다. 가장 특기할 사항은 새로운 인명에 사용된 두 개의 동사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엘이 (야붸를 섬기는 야곱과) 힘으로 견주었다’ 는 것이고, 기드온의 경우 ‘바알이 (야붸를 섬기는 기드온과) 말로 다투었다’는 점이다. 엘이 야붸아 동격이 된 상황을 보여 주는 인명 엘리야후 혹은 엘야후의 경우처럼 바알이 야붸와 동격임을 알려 주는 ‘바알은 야이다’ 라는 뜻의 이름 브알야가 히브리성서에 한번 나온다(1역대 12,6). 브알야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시골에 가 있을 때에 다윗을 도우러 온 장수들 중에 하나이다. 한편 왕국시기의 한 인장에 브알야를 뒤집어 표기한 형태인 같은 뜻의 이름인 요바알(‘요는 바알이다’)이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인 가운데 일부는 바알과 야붸가 동화되는 양상도 보여주지만, 이스라엘 민족사의 기본적인 흐름은 바알의 제단을 배척하고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을 몰아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나안의 지고신이며 자비와 긍휼의 신 엘은 야붸 신앙과 합류되었는데, ‘왜 가나안 땅의 폭풍신이며 전쟁신으로서 최고신(最高神)이 된 바알은 이스라엘 신앙에 합류되지 못했을까?’ 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 대답은 바알과 야붸 모두가 강하고,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바알은 가나안 땅의 가장 대표적인 폭풍신이다. 그의 별명은 ‘구름을 타고 달리는 용사’이며 천둥과 번개를 만들어내고 폭풍우를 일으켜 적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쏟아 붓는 전쟁신이다. 히브리성서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쓰여진 작품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드보라의 노래’(판관 5장)를 읽어보자. 이 노래는 이스라엘의 적들을 물리친 야붸의 승리를 찬양하는 전승가이다. 여기에 나타난 야붸의 모습은 폭풍을 일으키며 전투에 돌진하는 전형적인 폭풍신이다.
“야붸여, 당신이 세이르에서 나올 때 에돔의 벌판에서 행군하였습니다. 땅은 흔들렸고 하늘도 쏟아내며 먹구름이 물을 쏟아 냅니다. 산들은 야붸 앞에서 진동합니다.”
야붸나 바알 모두 폭풍 신이며 전쟁 신이다. 이처럼 같은 성격의 두 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배척하는 상황이 판관시기에서 왕국시기를 거치는 동안 여러 작품에 전해진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바알은 산천초목을 떨게 하는 전쟁용사이며,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야붸의 원형(原形)이 폭풍우를 일으키며 전쟁에 돌진하는 용사로서의 신이었다. 위에서 읽은 바알 신화에 그려지는 바알의 전쟁 장면처럼, 구약성서에서 야붸가 그러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구절로 하바꾹서를 들어 비교한다(3,6-10).
“야붸가 서 있으니 땅은 흔들리며 그가 쳐다보니 열방은 떨고 있다. 태산이 폭발하고 태고의 언덕이 주저앉는다. … 나하르(강)에게 하나셨습니까? 야붸여, 당신의 분노는 나하르에게 난 것입니까? 당신의 진노는 얌(바다)에게 난 것입니까? 당신의 구원의 병거를, 당신은 당신의 활을 날립니다. 격추자의 일곱 지팡이를 (쎌라). 당신은 나하르를 땅에 고꾸라지게 합니다. 당신을 보고 산들은 흔들거리고 거센 물이 흐릅니다. 깊은 물(바닷물)은 소리지르며 야후(야붸)는 손을 높이 치켜듭니다.”
하바 3장은 바알 신화의 여러 부분과 매우 유사하다. 단어의 사용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얌(바다)과 나하르(강)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은 같은 문화권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928년 시리아 북쪽 지중 해변의 옛터에서 많은 토판이 발굴되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결과 우가리트 왕국의 한 서고에 간직되었던 작품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토판들이 서기전 14-10세기의 가나안 땅의 종교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문헌임은 주지하는 바이다. 위의 하바꾹서와 바알 신화의 일부 비교에서도 보여지듯이, 가나안 종교와 이스라엘의 종교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음은 분명하며, 하바 3장의 경우처럼 가나안 종교 문헌을 배경으로 이와 관련된 히브리성서의 일부를 해석하면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12)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않을 것이다.
십계명은 “나는 야붸이다.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땅에서 너를 이끌어낸 네 하느님이다”로 시작한다. 십계명 2조항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않은 것을 다짐받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수호신 야붸 이외에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규정이다. ‘네 앞에’라고 번역한 문구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내 얼굴 위에’을 뜻한다, 즉, 내 면전에 다른 신들을 놓고 섬기지 말라는 말이다. 그래서 곧이어 나오는 구절이 하늘이나 땅이나 물에 있는 어느 것이라도 본 떠서 형상을 만들어 그 신상에 절하지 말고, 그것을 섬기자 말라는 규정이다.
야붸 앞에는 다른 신을 둘 수가 없다는 단언이다. 고대인들의 심성으로 이해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 가나안 족속들을 (물론 그들의 신들도 함께) 몰아내고 그곳에 정착할 수 있게 만든 그들의 민족시니 야붸야말로 다른 신들보다 훨씬 우월한 최고신(最高神)임을 천명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각 민족마다 자기의 수호신이 그들의 최고신이라고 자랑하는 이야기는 고대 문헌에도 자주 등장하는 테마 중의 하나이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를 들 수 있다. “그 EO 위로는 하늘이 불리 우지 않았고”로 시작하는 에누마 엘리쉬는 바빌로니아 민족의 수호신 마르둑이 신들의 대적(對敵) 바다를 상징하는 ‘용’ 티야마트와 싸워 그녀를 죽이고, 그 j시신을 반으로 갈라 세상을 창조하여 신들을 고난에서 구원하였으며, 세상의 중심지 바빌론에 웅대한 신전을 지어 신들을 모이게 하여 향연을 베푸는 가운데 자신이 신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마르둑의 찬양 시 에누마 엘리쉬의 마지막 부분에 마르둑이 신들이 참석한 연회장에서 가장 높은 왕자에 앉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르둑은 “이것이 ‘신들의 문’, 당신들의 거처입니다. 여기에서 즐거워하고 기쁘게 지내시오”라고 말한다. ‘신들의 문’은 악카드어로 ‘밥-일리’, 즉 ‘바벨/바빌론’을 가리킨다. 신들은 축하연에 자리 잡고 술잔을 올린다. 그들이 새로 지은 신전 안에서 향연을 가진 후, 하늘과 땅에서 자신들이 설자리를 나누어 가졌다. 즉 신전 안에 각 신상들의 설자리를 정해 주었다는 말이다.
“주(主)는 그의 무기인 활을 집어들어 그들 앞에 놓았다.” 주는 마르둑을 뜻한다. 신들의 대표자 하늘 신은 신들 앞에서 활을 들어올리고 활에 세 개의 이름을 붙여준다. 활은 계약의 징표이며 이러한 장면은 계약 의식을 말해 준다. 활에 이름을 부여한 후, 마르둑에게 가장 높은 자리를 정해주고 그 왕자에 앉게 한다. 작은 신들은 물론 큰 신들도 그 앞에서 엎드려 절하고 그들은 물가 기름으로 맹세하고 그들의 목에 발라 만일 맹세를 어기면 목이 잘릴 것이라고 손짓한다. 그래서 마르둑은 신들의 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하늘과 땅의 주권이 그에게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서기전 19세기경 왕조를 형성하여 도시국가들의 경쟁에 출범했던 도시국가 바빌론이 근 100여 년 동안 팽창하여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도시국가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도 자연히 신들의 왕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변혁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에누마 엘리쉬이며, 이 서사시를 해마다 신년 축제일에 방방곡곡에서 모인 순례 객들 앞에서 낭송함으로써 바빌론의 우위를 재확인하고 마르둑과 동등한 위치에 다른 신들이 설 수 없음을 알려준다. 마르둑 신상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다른 신상들은 모두 그 밑에 있다는 말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현자들도 창조와 구원의 서사시를 편찬하였고, 신년 축제일에 성전에서 이를 낭송했다. 태초에 어둠이 깊은 물위에 감돌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수호신 야붸의 바람이 단물 위에 일어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밝히게 하여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창조 서사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고난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켜 그들 선조들이 한동안 거했던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 그들을 몰아내고 정착할 수 있게 만드신 야붸의 구원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한 사건을 시시때때로 기억하고 매년 유월절에 재현하는 구원의 역사는 그들의 민족사 서술의 기본 틀이 되었다. 그야말로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의 가장 보배로운 경험이었다. 이집트의 신이며 왕인 파라오의 전차와 기병이 바다 가운데에 처박히는 광경이야말로, 야붸의 능력을 만천하에 알리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또한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 가나안 족속들과 그들의 신들을 몰아내고 야붸를 위한 제단을 쌓아 제사를 올리며 야붸께 드리는 감사가 절절이 흐르는 시편 문구는 야붸가 열방의 신들보다 우월하며 최고라는 확신을 담고 있다. 출애 15장에 기록된 미리암의 노래에서 그 면모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15, 1-4 11-16).
나는 야붸께 노래 부르겠다. 참으로 그는 높고 높으시다.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박으셨다. 나의 힘이요 ‘야’를 찬양함이다. ‘야’는 야붸의 다른 이름이다. 할렐루-야(‘야를 찬양하라’)의 ‘야’와 같은 고유명사이다. 나에게 구원이시다. 이는 나의 엘이시며 나는 그를 모시겠다. 내 선조의 하느님이며 나는 그를 들어올리겠다. 야붸는 ‘전쟁의 사람’이며 야붸가 그의 이름이다. 파라오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집어던지셨다.
빼어난 그의 장교들이 갈대 바다에 잠겼다. (중략) 누가 당신 같겠습니까? 신들 가운데, 야붸여, 누가 당신 같겠습니까? 거룩함의 영광이고 찬양의 위엄임 놀라움을 행하시는 분이다. 당신 오른팔을 펴시니 땅이 그들을 삼켰다. 당신의 자비로 이 백성을 이끌어 주시고 구원하셨다. 당신의 힘으로 당신의 거룩한 풀밭으로 인도하셨다. 열방이 듣고 두려워 떤다. 두려움이 불레셋 주민을 사로잡았다. 이제 어둠의 천부장들은 아연실색하고 모압의 장군들도 전율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가나안의 모든 주민들은 녹아버렸다. 공포가 그들을 눌렀으며, 두려움도.
이스라엘의 민족 수호신 야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뒤따라 쫓아오는 파라오의 병거와 기병을 바다 속에 잠기게 했다는 역사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야붸의 권능이 이집트의 최고신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중대한 통로였다. 바른 정신을 지닌 이스라엘인이면 구원의 하느님은 야붸이지 다른 신들이 아니라는 역사의식을 간직하였을 것이다. 더욱 발전하여 바빌론 유배 기를 전후로 이스라엘의 현자들은 야붸야말로 유일하며 다른 신들은 없다고 천명하게 이 면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을 흔히 제2 이사야 라고 명명되는 예언자의 글(이사 40-55장)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내 앞에 엘(神)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내 뒤에도 있을 수 없다(43,10-11). 내가 처음이요, 내가 가 마지막이다. 나 이외에는 더 신들이 없다. 정의와 구원의 엘(神), 나를 제외하면 없다(45,21).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의 구원자로 믿어야 하는 신은 야붸 하나이지 결코 둘 이상이 아니라는 논박이다. 이스라엘의 신은 하나라는 신앙고백을 확정짓는 문구는 신명 6,4의 ‘쉐마’이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야붸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며 야붸는 하나이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뿐 아니라 지금도 종교적인 유대인들이면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을 쉐마를 소리내어 읽는다. 전통적인 유대교 성서 해석에 의하면, 야붸가 하나라는 말씀에는 ‘그는 홀로이’라는 뜻이 내포되었다고 말한다. 야붸는 유일하며 홀로이시라는 뜻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잠언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슈루파크의 가르침 74-75). 용사는 정말로 하나이며 그 홀로이지만 사람은 많다. 태양신은 정말로 하나이며 그 홀로이지만 사람은 많다. 태양신, 즉 태양은 하나이며 홀로 세상을 비춘다는 바빌로니아 인들의 직관은 야붸가 하나이며 홀로 라는 유대교의 전통적 해석과 상통한다. 히브리성서에서 야붸를 태양으로 은유하는 대표적인 문구로 시편 84,12을 든다.
“야붸 하느님은 태양이요 방패이시다.” 한편 히브리어 숫자 개념에 ‘하나’는 첫째요 가장 높은 것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한 예를 들어 창세 1장에 나오는 단락이다. “하느님께서 빛이 있어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하루. ”첫째 날을 하루라고 썼다. 둘째 날부터는 서수로 사용하였지만 첫째 날은 기수이다. 다른 예로 홍수이야기에 물이 열째 달까지 줄어들기 시작하여 열째 달의 ‘하나’, 즉 초하루에 산꼭대기가 보였다고 한다(창세 8,5).
또 다른 예로 제사장의 예복 중에 가슴받이를 만드는 설명이 있다. 여러 가지 색색 실로 네모나게 가슴받이를 만들고 거기에 보석들을 네 줄로 물린다. 홍보석과 황옥과 취옥을 ‘하나 줄’(즉, 맨 윗줄)에, 둘째 줄에는 녹주석과 청옥과 백수정을 … 등등 넷째줄까지 보석을 물린다(출애 39, 10-13). ‘하나’라는 숫자가 서수로 사용될 경우 첫째 혹은 맨 윗쪽 등을 뜻한다.
‘야붸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와 ‘야붸는 하나이다’ 라는 두 문장이 서로 연관된 것이라면, 야붸가 하나라는 문맥은 극 첫째/최고라는 뜻이 내포된 것이다. 그러기에 미카야는 말한다. “나는 야붸께서 그의 왕자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으며 그의 오른편과 왼편에 하늘의 모든 군대가 그를 향해 서 있었습니다”(1열왕 22,19). 위에 인용한 바빌로니아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이 가장 높은 왕자에 앉아 있고 다른 신들은 그 아래에 좌우로 서있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최고신의 자리와 동등한 선상에는 아무도 있을 수 없다. 야붸가 가나안의 신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신이 되었다는 확인을 ‘야붸는 하나이며 다른 신들은 그 앞에 두지 말라’ 는 단언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다른 신들을 두지/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1조항과 야붸를 나타내려고 그분이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2조항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분명히 이 두 조항은 설 연관된 한 묶음의 단원이다. 얼른 읽기에 다른 신들, 즉 다른 신상들을 섬기지 말라는 규정과 야붸의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규제 사이에 즉각적인 관련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듯하다. 그러나 십계명 1-2조항뿐 아니라 히브리성서 여러 군데에서도 이렇게 평행 문으로 나오는 경우를 여러 번 볼 수 있다. 한 예를 들어 제2 이사야의 글을 읽어본다(이사 46,5-9).
너는 누구에게 나를 비교하겠느냐?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나를 비유하겠느냐? 우리가 비슷하다고?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내며 은을 저울에 달고 도금장이를 고용하여 엘(神)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 엎드려 절한다. 그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날라 그 밑에 내려놓아도 그 곳에 서서 움직이지 못한다. 그에게 부르짖는다 하여도 대답하지 못하고 그 곤란에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것을 기억하라. 분명히 하라. 마음에 돌이켜 보아라, 반역자들아. 옛적의 처음 것들을 기억하라. 정말로 내가 엘(神)이며 신(神)들은 더 없다. 나 같은 이는 무(無)이다.
우상을 만들어 그에게 구해달라고 외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체험에서 야붸 이외에는 다른 신들이 전혀 없다나 주장이 생성됐다고 설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야붸는 신상으로 표상 되지 않은 존재임을 밝히는 논리가 자명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신상을 만들어 그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다 하더라도, 바른 정신이 박힌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하느님 야붸의 형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규제를 분명히 설명할 논리가 필요하다. 또한 그렇다면 야붸를 어떻게 표출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고대인들에게 신상은 신이 현존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통상적인 종교적 통로이며, 신상을 소유하는 것은 정신적, 물질적 부(富)를 확인하는 척도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들의 표현에 ‘신을 소유한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신상을 소유한다는 뜻이며, 신상을 소유함으로써 그 신이 보호를 확신하고 악한 귀신들의 침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괴기한 병에 걸리 환자에게서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을 가진 구마 주문이 경우, “그 사람(환자)은 깨끗하게 되고 빛나게 되며 거룩해질 것이다. 그의 신이 자비로운 손에 돌아 갈 것이다”라는 문구로 정결례 의식을 끝맺곤 한다. 악한 귀신의 저주에 걸려 든 병에서 치유되며 한자의 원래 가호신에게 다시 돌아간다는 말이다. 신/신상을 다시 소유한다는 뜻이다.
히브리성서에도 시상을 소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자기 처자식들과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가지고 도망 나올 때 라반이 그들 뒤를 따라잡고 야곱에게 묻는다. “네가 네 아버지의 집이 참으로 그리워 떠나간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찌하여 새 신들을 훔쳐 가느냐?” 아곱은 그런 일없다고 부인하고 그의 처 라헬은 낙타 안장 밑에 신상들(트라핌)을 숨겼다(창세 31,30-34). 트라핌은 손바닥만한 크기이며 점토로 만든 신상들이다(1사무 19,13.16 ; 판관 17,5; 18,14.17참조).
고대 사회에서 개인이 트라핌 같은 신상을 소유하는 것은 일상규범이었으며 보편적인 종교행위였다. 그러나 지각 있는 이스라엘의 일부 현자들은 어느 시기를 정점으로 신상 거부운동을 세차게 일으키기 시작했다. 끝내 신상들을 모시고 있었던 신당들을 허물어버리고 모든 신상들의 목을 부러뜨렸던 일련의 사건은 인류 종교사에 중대한 변혁을 자아낸 종교혁명이었다.
종교사 측면에서 고찰하면 신상을 거부하는 현상은 신의 의사가 형상을 통하여 전달된다는 과정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신의 뜻을 전하는 매개체 중의 하나인 간 점 방법에 커다란 착오가 누적되었다는 것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생겨난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중요한 사건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새끼 염소의 간을 꺼내 그 모양을 감찰하고 신의 이사를 판단하는 간 점 제도가 이천여 년 동안 지켜져 왔다. 주변이 가나안 지역과 소아시아 전역에도 그 활용이 전파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여러 도시에서도 간 점 제도는 사용되었으나, 이스라엘의 만은 선지자들은 간 점에 동의하지 않고 간 점의 모형들을 배격했다. 그 대신에 예언자들이 표상 하는 신의 의사는 그들을 통한 하느님이 직접적인 말씀이었으며, 그것을 글로 표출하였다(97년 7월호 참조).
또한 이스라엘에서 생긴 신상거부의 종교혁명은 신학적 논박을 동반한다. 사람이 신상을 만들어 그것에 엎드려 절하고 예배한다면 자가당착이라는 논리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하느님의 모습을 본떠 그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과 물의 물고기를 본떠서 만든 형상에 사람이 절하고 그것을 섬기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매우 사변적이며 이성적인 숙고에서 형성된 신학이다. 성서학자들은 이러한 사조를 신명기 학파라고 명명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붸는 어떻게 표상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이스라엘 현자들은 제기했다. 신상을 대신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반론이며, 사람들에게 그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붸임을 알릴 수 있는 징표가 무엇이냐는 냉소였다. 야붸의 징표가 무엇이냐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에피소드는 모세가 호렙 산에서 불꽃 이는 떨기에 나타난 야붸와 대화하는 장면이다(출애 3장). 야붸는 모세에게 이집트에 가서 고난과 핍박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라고 말하자 모세는 그들에게 가서 야붸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증거 하느냐고 반문한다.
“이제 와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겠다. 내 백성 이스라엘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와라.” 모세는 하느님에게 말했다. “내가 누구이기에 정말로 파라오에게 갑니까? 정말로 내가 이스라엘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와야 합니까?” 그는 말했다. “정말로 에히예(‘내가 있다’)가 너와 함께, 이것이 너에게 징표이다. 네가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려와 이산에서 하느님을 섬기라고 내가 너를 보낸다.” 모세는 하느님께 말했다.
“보십시오. 내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와서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이 너희에게 나를 보냈다고 그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나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말할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합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했다. “에히예(‘내가 있다’)는 내가(너희와 함께)있다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에히예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라고.” 하느님은 모세에게 더 말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아곱의 하느님인 야붸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 이것이 영원히 내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내 명성이다’라고.”
모세는 하느님께 자기가 누구이기에 파라오에게 갓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자기의 처지를 질문하지만, 하느님의 대답은 하느님의 징표를 모세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알려 준 징표는 하느님이 이름 야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모세의 첫 질문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 ‘키 에히예 임카’를 모세는 평범하게 ‘정말로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고 이해했음이 분명하다.‘키’는 ‘정말로’, ‘에히예’는 ‘내가 있다’, ‘임카’는 ‘너와 함께’이다. 에히예는 ‘이다, 있다’를 뜻하는 동사 하야의 일인칭 미완료형이다. 하느님은 ‘에히예 임카’ 라고 말하며 그것 즉 ‘에히예’가 징표임을 밝혔지만 모세는 ‘에히예 임카’를 서술문, 즉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로 평범하게 알아듣고 그것이 징표임을 확신하지 못하였으며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재차 묻는다.
그때 하느님은 에히예가 무엇을 함축하는지를 묘하게 다시 알려 준다. ‘에히예 아쉐르 에히예.’ ‘아쉐르’는 관계대명사이며 첫째 단어 에히예는 징표를 가리키고 둘째 에히예는 서술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에히예(내가 있다)’는 ‘내가 (너/너히와 함께)있다’는 것이다. ‘에히예가 너(모세)와 함께’는 단지 ‘너와 함께’ 뿐 아니라 ‘너희(이스라엘 백성)아 함께’도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모세가 여전히 잘 알아듣지 at하는 것 같아서인지 하느님은 덧 붙여 더욱 분명히 말한다. “‘에히예’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라고 그들에게 전하라고 말하며, 에히예는 다름 아닌 선조들의 하느님 야붸라고 한번 더 부연한다.
‘에히예 임카’의 순서를 뒤집어 만든 고유명사로 ‘엘(하느님)이 우리와 함께’를 뜻하는 임마누엘을 상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분이 너희에게 징표를 주실 것이다. 보아라,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다”(이사 7,14). 모세와 하느님의 대화에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는 하느님 야붸의 숨겨진 비밀은 ‘이다, 있다’를 뜻하는 동사와 깊은 관련을 맺는 점이며, 야붸의 신성(神性)은 ‘있다’에 근거한다는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의 설명이다.
적어도 서기전 12세기 고대인들의 심성으로는 매우 철학적이며 실존적인 사고이다. 이러한 전승에 따라 서기전 3세기 유대교 현자들은 하느님 이름의 우회적인 표현으로 ‘현존하신’을 뜻하는 ‘쉐기나’, 혹은 ‘편재하신’을 가리키는 뜻으로 ‘마콤’(장소)이라고 하느님의 이름 대신에 불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필자가 ‘야붸’라고 음역하는 것은 현대 성서학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을 따른 것이다. 하느님 이름의 자음자를 편의상 영어로 YHVH 혹은 YHWH로 표기할 수 있으며 히브리어식으로 음절을 나누어 YH-VH(야붸) 혹은 YH-WH(야웨)로 읽어야 한다. ‘붸’로 표기하는 것은 세 번째 자음자의 음가를 유대교 후기 히브리어에 준한 /V/로 택한 것이다. 초대 교부들의 글에서도 하느님의 네 철자 이름의 희랍어 음역을 볼 수 있다. 서기 2세기말에 할동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민트(Clement)는 (야웨)로, 4세기의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야베)로 표기했던 경우가 있다. 한글 번역 성서에 ‘애훼’로 음역한 것은 영어 표기 Yahweh를 국어식의 음절인 Ya-hweh (야-훼)로 나눈 데 기인하는 것 같다.
유대인들은 네 철자로 쓰여진 하느님의 이름을 어떻게도 읽지 않으며 ‘나의 주(主)’를 내포하는 뜻으로 ‘아도나이’라고 부른다. 작금에 사용하는 히브리성서에 전해진 네 철자의 하느님 이름에 첨부된 모음부호는 아도나이의 모음부호를 자음자에 가입한 것으로 네 철자가 실상 어떻게 읽혔는지는 아는 바 없다. 히브리어는 자음자만 사용되다가 서기 8-9세기에 모음부호가 만들어졌다. 히브리어는 문법 활용이 매우 규칙적이고 대부분 3근 자음으로 활용되기에 자음자만으로 글을 써서 전하는 데 착오를 일으킬 확률이 극히 적다.
히브리 이름은 대부분 문법적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이츠학은 ‘그가 웃는다’ 는 뜻으로 삼인칭 미완료형이다. 인명뿐 아니라 신명도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야붸가 무엇을 뜻하는 지를 밝히려는 노력은 옛 사람이나 현대 성서학자들도 한결같다. 야붸의 문법구조를 찾으려는 시도는 당연한 과제이다. 한 가지 공통된 의견은 야붸는 존재 동사 ‘하야’와 상관된 단어라는 점이며 하야의 현재분사인 호붸와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고유명사일 가능성이 높다. 태양신 샤마쉬/삼쉬는 태양 쉐메쉬와 같은 단어이며, 마르둑은 ‘태양신의 송아지’라는 뜻이고, 바알은 주인, 엘은 신(神), 아쉐라는 목상을 뜻한다. 수없이 많은 신들은 대부분 그들의 실체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태양신, 달신, 금성여신, 황소신, 뱀신, 독수리신 등등.
고대인들의 인장에는 인장 소유주의 이름뿐 아니라 그림을 그려 넣었다. 서기전 8-7세기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 지역에서 출토된 히브리 이름의 인장에는 약 700여 개 중에 이름과 함께 신상을 새겨 놓은 인장의 수효는 전체의 10%도 안되고 약 500여 개에는 오직 이름만이 새겨져 있으며 나머지 중 대부분이 빈 공간을 꽃무늬 등 장식으로 채웠다.
그렇지만 인자에 신상을 새겨 넣는 풍조가 이스라엘 백성에서 서기전 7세 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하느님은 형상으로 표상 될 수 없다고 외치며 우상들을 부수고 신당을 허물었던 히즈키야와 요시야 시대의 종교개혁 지도자들의 신학적 각성은 아마도 ‘있다, 이다’ 라는 현존/존재를 뜻하는 하느님의 이름을 어떻게 신상이 아닌 대체 표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앗시리아 왕 산헤림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당시 히즈키야가 성전에 올라가 야붸에게 드렸던 그의 기도를 읽어본다(2열왕 19,15-19).
거릅들에 앉으신 이스엘의 하느님, 야붸여, 당신은 이 땅의 모든 왕국들에게 당신 홀로 하느님이신 그 분입니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야붸여, 당신이 귀를 기울여 들으십시오. 야붸여, 당신이 눈을 들어보십시오. (중략) 그들은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습니다. 정말로 그들은 신들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 손으로 만든 나무이고 돌이며 사라져 버립니다. 이제 우리의 하느님 야붸여, 그(산헤립)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이 땅의 왕국들이 알 것입니다. 정말로 당신 야붸께서 당신 홀로 하느님이라는 것을.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절박한 상황에서 히즈키야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들의 형상은 사라질 것이고 오직 야붸의 존재(이름)만이 영원하며 그 이름이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는 확신의 기도를 드린다. 히즈키야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메나쉐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55년 동안 유다 왕국을 다스렸으나 그의 아버지의 우상타파 개혁정신을 저버리고 전례대로 우상숭배를 따랐다. 지나간 역사를 기록하며 비판하는 글에서 형상과 그것을 반대하는 무상(無像)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그 글에 의하면 메나쉐는 바알을 섬기고 아쉐라 형상을 만들어 야붸의 집에 들여와 세웠으나 이 성전은 야베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내가 내 이름을 영원히 두겠다”라고 말씀하신 집(성전)이라고 표명한다(2열왕 21,7). 이러한 새로운 각오를 가장 두드러지게 알려 주는 시편이 있다(135, 13-21).
야붸여, 당신의 이름은 영원까지 야붸여, 당신의 명성이 대대로, 야붸는 그의 백성으 심판하시고 그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신다. 열방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며 사람 손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에게 입은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 바람이 전혀 없다. 그들을 만든 자들과 그들을 믿는 자들은 모두 그들처럼 된다. 이스라엘의 집안이여, 야붸를 축복하라. 레위의 집안이여, 야붸를 축복하라. 야붸를 두려워하는 자들이여, 야붸를 축복하라. 야붸는 축복 받는다. 예루살렘의 처소 시온에서, 할렐루-야.
신상을 대체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이 당면했던 과제는 과연 ‘야붸의 이름’을 어떻게 표상화 할 수 있느냐(즉 ‘입에 바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거 하느냐)는 것이었겠고, 네 철자로 쓰여진 하느님의 이름 자체, 즉 네 철자만이 하느님의 실체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신학적, 철학적 논박이 신상을 거부하는 운동이 학문적 기초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13)
지팡이, 송아지, 손
히브리성서에 담겨진 가장 긴박하며 통쾌한 이야기 중의 하나는 출애굽기 앞부분에 펼쳐지는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탈출 서사시이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이집트로 내려가서 종살이와 고난에 허덕이는 하느님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해오라고 명령하신다. 하느님의 현존을 확신시키는 이름이 신 ‘에히예’가 모세와 함께 있으며, 그것이 모세에게 구원이 징표임을 단언하고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며 파라오 앞에 설 것을 당부하신다. 파라오와의 대면을 꺼려하는 모세에게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야붸의 권능을 드러내는 징표로 알려 준다. 그러나 모세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당면한 과제를 피하려고 애쓴다. 자기의 입과 혀가 무거워 말을 바로 전하지 못한다고 이유를 대지만, 하느님은 그의 형 아론과 함께 파라오 앞에 갈 것을 축구 한다. 아론이 모세를 대변하여 이스라엘인들에게 말할 것이며 모세는 아론의 하느님(즉 아론이 수호신)처럼 행동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여러 징표를 행하게 돌 것임을 약속한다.
우여곡절 끝에 파라오를 대면하고 이스라엘인들의 해방을 요구하지만 이집트 왕은 분노하여 그들을 전보다 더 핍박하게 되며 이스라엘인들은 더 심한 곤경에 빠진다. 끝내 야붸 하느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여, 강가에 나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강물을 쳐 물을 피로 변화시킴으로써 이집트인들이 강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재앙을 내리라고 하여, 피치 못할 재앙이 시작된다. 열 번의 온갖 재앙 끝에서야 비로소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제발 떠나 줄 것을 종용하게 되고, 해방의 기쁨을 얻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출발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탈출 소식을 전해들은 파라오는 마음이 변해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추격한다. 밤낮으로 걸어서 도망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차 타고 쫓아가는 이집트 군대가 따라 잡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마침내 갈대바다에 당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피할 길 없는 죽음을 앞두고 모세에게 말한다.
“이집트에 무덤이 없다고 하기에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습니까? 이집트에서 우리를 끌어내어 우리를 어찌 하겠다는 말입니까? 이게 바로 우리가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그러지 마십시오.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는 이집트인을 섬기겠습니다’ 라고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모세는 그들에게 이집트 군대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뒤에서 말발굽 치며 달려오는 파라오의 기병을 치켜보는 그들은 벼랑 끝에 몰려 마지막을 지켜보는 암담한 심정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때 하느님은 모세에게 말한다(출애 14,16).
지팡이를 치켜들고 네 손을 바다 위로 뻗쳐 바다를 갈라놓아라.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가운데 마른땅으로 지나갈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로 생겨난 마른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가자 뒤를 쫓아오던 이집트 기병들도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다. 그때 “어두운 구름이 생겼으며 밤(처럼) 주술을 걸었다. (이집트인들은) 밤새껏 여기저기로 가까이 가지 못했다. 야붸는 불기둥과 구름에서 이집트 군대를 쳐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겁나게 만들었다. 그들 병거의 바퀴를 걸어 무겁게(어렵게) 전진하게 했다. 이집트인은 말했다. ‘이스라엘로부터 도망가자, 정말로 야붸가 그들을 이해 이집트와 싸운다’”(출애 14,20-25).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스라엘인들이 바다를 다 빠져나가자 모세는 손을 다시 바다위로 뻗쳤다.
그러자 양쪽으로 갈라졌던 바다 벽은 제자리로 돌려지고 안간힘을 쓰며 마차 바퀴를 돌리던 이집트 기병들은 모두 물 속에 잠겼다. 이 구원이 사건을 기억하고 부르는 노래가 출애 15장이다. “나는 야붸께 노래 부르겠다.… 나의 힘이요 야를 찬양함이다”(15,1-2).
흔히 히브리 성서 번역에 ‘야’를 보통명사 ‘하느님’(God)으로 변역하기에 ‘야’의 존재를 쉽게 보지 못한다. 미리얌 노래의 ‘야’는 야붸에 상응하는 고유명사이며 모음 부호를 첨가한 히브리성서 본문에 의하면 ‘야’ 는 야붸에 상응하는 고유명사이며 모음 부호를 첨가한 히브리성서 본문에 의하면 ‘야’가 출애굽기 이외에 이사야서와 시편 등에서 모두 24번 나온다.
이 고유명사 ‘야’는 많은 인명에 접미되는 야붸의 축약형 ‘야’와는 구별된다. 즉, ‘야(붸)가 기억한다’는 뜻인 ‘즈카르야’ 나 ‘누가 야(붸) 같으냐?’는 ‘미카야’등의 ‘야’는 야붸축양형이며 히브리어로(Yah)이다. 그러나 미리얌 노래의 ‘야’는 즉(/h/의 음가에 해당하는 철자 ‘헤’)의 가운데에 강점이 첨가된 것이다. 흔히 잘 모르고 지나가는 예로 시편에 자주 나오는 ‘할렐루야’라는 문장을 들어 설명할 수 있다. ‘할렐루-야’의 ‘야’는 강점이 찍힌 ‘야’이며 ‘야’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히브리성서 원문 중에 ‘할렐루’(찬양하라)와 ‘야’를 띄어 표기한 사본들이 많다. 다시 말하면 강점이 찍힌 ‘야’는 ‘동사구+야’ 형태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인명의 ‘야’와는 변별되는 고유명사이다. 시편의 마지막 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맺는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 계신 엘을 찬양하라. … 모든 생명은 ‘야;를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강점이 찍힌 야붸의 이름 ’야‘는 야붸와 병행하는 독특한 고유명사이다. 모세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출애굽기를 계속 읽어본다. 갈대바다를 무사히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메마른 광야생활을 시작한다. 광야생활 중에 모세의 지팡이로 일으킨 또 하나의 기적을 들어본다.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피담이라는 곳에 진을 쳤으나 거기에는 마실 물이 없었다. 그들은 모세를 또다시 원망하며 왜 이집트에서 데려와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며 돌로 모세를 쳐죽이려고 대든다. 야붸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17, 5-6). 나일강을 친 그 지팡이를 네 손에 쥐고 가거라. 여기 호렙산에 있는 바위 위에 거기 네 앞에 서 있으니 바위를 쳐라. 그러면 물이 나올 것이며 백성이 마실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했다. 그때에 아멜렉 사람들이 몰려와 이스라엘인들을 공격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장정들을 모아 나가 싸우라고 명하고 모세는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서서 그의 손에 하느님의 지팡이를 쥐고 있겠다고 말했다.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올리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그의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곤 했다.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아론과 후르는 돌을 가져와 모세를 앉히고 그들은 그의 손을 붙들어 올려 해가 질 때까지 손을 내리지 않게 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멜렉을 무찔렀다. 이 일을 기념하여
“모세는 그곳에 재단을 쌓고 ‘야붸는 나의 깃발이다’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는 말했다. 정말로 ‘손은 야의 왕자 위에,’ 야붸께서는 아말렉과 대대로 전쟁하신다”(17,15-16).
갈대바다를 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너가게 하고, 갈증에 죽어 가는 백성을 구하기 이해 바위를 쳐서 물이 쏟아지게 하며,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백성들을 도와 이기게 한 것도 모두 모세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었다.
또한 그때마다 그들의 하느님은 다름 아닌 ‘야 라고 야붸의 이름에 덧붙여 전한다. 강점이 찍힌 ’야‘가 야붸와 평행으로 나오는 문구는 출애굽기 이외에도 몇 군데에서 읽을 수 있다. 그 한 예로 시편 135편을 읽어본다(1-10).
할렐루-야(야를 찬양하라). 야붸의 이름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야붸의 종들아. 야붸의 집에 서 있는 자들이여. 우리 하느님의 집 앞마당에, 야를 찬양하라. 정말로 야붸는 좋으시다. 그의 이름을 찬송하라. 정말로 즐겁도다. 야는 그를 위해 야콥을 택하셨으며 이스라엘을 그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나는 야붸께서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았으며 우리의 주(主)가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다).
야붸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늘과 땅에서 행하시며 바다와 깊은 물에서도, 땅 끝에서 구름을 일으켜 올리시며 비를 이해 번개를 만드시고 그의 보물창고에서 바람을 내보내신다. 이집트의 맏아들을 사람에서 짐승까지 치셨고 이집트 안에서 파라오와 그의 모든 종들에게 징표와 징조를 보냈다. 많은 열방을 치셨고 수많은 왕들을 죽였다.
이스라엘의 구원사를 열거하는 시편 135편은 매우 중요한 대목을 알려준다. 야콥을 선택하여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고, 하느님의 보배를 소유한 백성으로 만드신 분이 바로 ‘야’라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보배는 하느님의 언약이며 하느님의 가르침인 토라를 가리킨다(출애 19,5 ; 신명 26,18). ‘야’는 야콥을 자기의 백성으로 택한 하느님의 이름이라고 시편 135편 시작 부분에서 단언한다.“할랄루-야(야를 찬양하라). 야붸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편 135편에서는 ‘야’가 야콥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야’가 야콥의 하느님이라고 확언하는 결정적인 문구는 시편 94편에 나온다(1-7).
복수의 엘, 야붸여, 복수의 엘이여, 나타나십시오. 땅의 심판자여, 일어나십시오. 오만한 자들에게 응분의 벌을 주십시오. 악한 자들이 언제까지 기뻐하겠습니까? 그들이 지껄이며 거만하게 말합니다. 죄를 행하는 자들이 자긍(自矜)합니다. 당신의 백성을 짓밟습니다, 야붸여. 당신이 유산을 괴롭힙니다. 과부와 떠돌이를 죽이고 고아들을 살해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야는 보지 않는다. 야콥의 하느님은 돌보지 않는다.”
‘야’는 아콥의 하느님이라고 분명히 말하며 그분은 다름 아닌 야붸라고 알려 준다. ‘야’는 야붸를 가리키는 것이고, ‘야’라는 명칭은 어떤 특수한 상황에 종종 사용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야콥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건과 동기는 창세 32장에 있다(32, 25-31). 야콥이 그의 형 에사오를 상면하기 전에 그에게 선물을 보내고 다음 날 만나기로 작정하여 그 날 밤에 자기 식구들과 모든 소유를 강 건너로 보냈다.
그리고 야콥은 홀로 남았다. 동이 틀 때까지 ‘사람’이 그와 씨름을 하였다. 그는 그를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보고 그의 엉덩이뼈를 비틀었다. 야콥은 그와 씨름하면서 엉덩이뼈를 다쳤다. 그는 말했다. “동이 텄으니 나를 놓아달라.” 그는 말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놓아주지 않겠습니다.” 그는 그에게 말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는 말했다. “야콥,” 그는 말했다. “네 이름을 더 이상 야콥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제 이스라엘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느님과 겨루었고 사람들과도, 너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콥은 묻고 말했다. “당신의 이름을 제발 알려 주십시오.” 그는 말했다.
“왜 너는 내 이름에 대하여 묻느냐?” 그는 그를 거기에서 축복하였다. 야콥은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엘의 얼굴)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을 얼굴 대 얼굴로 보았으니 내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다.”
야콥과 씨름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야붸이다. 야붸를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출애15장에 나오는 야붸의 칭호 ‘전쟁의 사람’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전쟁의)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어했던 야콥의 간절한 부탁은 무시되었지만 여기에서 그 궁금증이 풀리지 않을까? 아마도 야콥에게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 이름은 ‘야’가 아닐까?
모세의 출애굽 서사시 가운데 또 한번의 극적인 절정은 무엇보다도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새긴 석판을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내려와 벌어진 돌발적인 사건이다. 십계명은 히브리성서를 대표하여 하느님의 가르침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압축된 양식의 선언문이다. 오직 야붸만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며 그 외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절대로 하느님을 신상으로 표상하지 않을 것을 단호히 천명한다. 동시 하느님의 보배로운 토라를 소유한 백성으로 하느님과의 계약을 증거 하는 안식일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거 등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이것이 십계명이며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가지고 내려온 두 석판은 이 열 마디를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증거 판이다(출애 31,18).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고 두 석판을 받게 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산기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사람들은 아론에게 몰려가 모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니 “우리 앞에서 걸어갈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드십시오”(32,1)라고 말한다. 그때에 아론은 사람들에게서 금귀고리들을 모아 거푸집에 넣어 수송아지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외쳤다. “이것들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올린 이스라엘의 신들이다”(32,4).
그리고 아론은 그 앞에 제단을 쌓았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제사상을 차리고 먹고 마시며 뛰어 놀았다. 이 일을 알게 된 모세는 두 석판을 그의 손에 쥐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들이 만든 송아지와 사람들이 춤추는 꼴을 보고 모세는 화가 치밀어 석판을 내던져 깨뜨려 버렸다. 그리고 송아지 형상을 집어 불에 태우고 가루를 만들어 물위에 녹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했다. 송아지를 만드는 일에 가담한 사람들은 처형당했으며 모두 삼천여 명이라고 한다(32,28).
이스라엘인들이 야붸 하느님의 형상으로 송아지를 만든 죄의 시작이 여기에 있다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죄 값으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린다고 말한다.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겼기에 그 죄 값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곤경에 빠졌다는 역사의식이 생긴 것이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조의 실록을 편찬하며 늘 대두되는 안건 중에 하나가 바로 송아지형상을 만들어 모셨던 왕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것을 대변하는 숙어가 ‘여로보암(야롬암)의 길을 걸은 자’라는 문구이며 바르게 통치하지 못한 왕을 비난하는 문장으로 열왕기에 자주 사용되었다. 다윗이 통합했던 이스라엘 왕국은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죽자 두 나라로 갈라지고 여로보암은 북 왕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여로보암은 백성이 큰 절기에 예루살렘의 야붸 성전으로 순례 가는 일을 막고자 금송아지 형상 두 개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선포한다(1열왕 12,28).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이제 충분하다. 보아라, 이스라엘아, 이집트 땅에서 너를 이끌어 올린 너 신들을. 그리고 금송아지 형상 두 개를 각각 단과 베이트엘에 보내어 그것을 섬기게 했다. 이것이 바로 ‘여로보암의 죄’이다. 또한 신주(神柱, 신주는 흔히 ‘아쉐라목상’이라고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를 만들어 제단 옆에 세웠다(14,15). 한편 유다 왕국의 륵하브암(르호보암)도 높은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 신당(神堂)을 짓고 돌기둥과 신주를 세웠다(14,23).
여로보암의 재위 20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고 우상타파를 외쳤다. 사람들이 만들었던 우상들을 멀리 하고 그의 할머니가 아쉐라 여신을 위해 만들었던 괴상(怪像)을 꺽고 태웠다(15,9). 그런가 하면 아사 왕 제 38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아합(아흐압)은 여전히 여로보암이 길을 걷고 아쉐라를 만들고 바알에게 가서 섬기고 절했다(16,31-33). 엘리야가 야붸의 예언자로 활동할 당시 바알의 예언자는 450명이고 아쉐라의 예언자는 400명이나 되었지만 야붸의 예언자는 엘리야 혼자뿐이었다고 전한다(18,19).
예후가 야붸 예언자의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아흐압의 가문을 모두 처형하고 바알 신당들을 허물었으나 여로보암의 죄로부터는 돌아서지 못했다(2열왕 10,26-27). 즉 바알 신상과 신당을 부수었으나 야붸와 아쉐라를 형상으로 섬기는 무리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유다 왕 예호야다는 바알 신전을 부수었으나(11,17-18), 이스라엘의 왕 예호악하즈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돌아서지 못하고 사마리아에는 아쉐라 형상이 서 있었다(13,6). 앗시리아인들이 사마리아에 정착할 당시에 이스라엘에서는 야붸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으며 송아지 혀앙 두 개를 주조하고 아쉐라를 만들어 하늘의 군대와 함께 우상에 절하였으며 바알을 섬겼다(17,16). 이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로보암이 행했던 죄를 따라 걸었으며 그것에서 돌아서지 않았다(17,22).
유다 왕구게 히즈키야가 왕이 되어 우상을 철저히 파괴하고 신당을 허물고 돌기둥을 부수고 아쉐라 여신상을 꺾고 모세 시대부터 있었던 구리로 만든 뱀상도 깨뜨려 버렸다(18,4). 히즈키야가 병에 들어 야붸에게 기도하는 대목에 야붸는 ‘홀로’있으며 살아 계신 하느님이고 다른 신들은 사람 손으로 만든 나무나 돌에 불과하여 사라진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야붸만이 홀로 하느님임을 확신한다(19,15-19)고 말한다.
그러나 히즈키야가 29년 동안 유다 왕국을 다스리고 병으로 죽자 열두 살인 그의 아들 메나쉐가 왕위에 올랐다. 히즈카야의 종교개혁은 전(前) 시대 기득권층의 사제들에게 다란 타격이었으나, 그가 죽고 어린 나이에 등극한 메나쉐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기존 타성을 그대로 답습하여 신당을 짓고 바알을 위해 제단을 세우고 아합이 만들었던 아쉐라를 다시 만들고 하늘의 군대에게 절했다. 또한 야붸의 집에 아쉐라의 형상을 세웠다(21,3-7). 왕조실록 편찬 가들은 야붸의 집(예루살렘 성전)에는 형상이 없고 오직 야붸의 이름만이 있었다고 통탄한다(21,7).
요시아가 왕이 되고 제위 18년 성전 보수 공사 중에 옛날 율법 책이 발견되었다. 요시아 왕은 이 언약 책에 기록된 규례에 따라 온 백성이 야붸 하느님을 섬길 것을 촉구하고 대대 적인 종교개혁 정치가 전개된다. 야붸의 전(殿)에서 바알과 아쉐라와 하늘의 모든 군대를 위한 도구를 꺼내어 태웠으며 태양신, 달신, 열두 별자리와 하늘의 모든 군대를 위한 분향을 금했다. 아쉐라를 야붸의 집에서 꺼내어 태웠으며 가루로 만들어 공동묘지에 뿌렸다. 아쉐라를 위한 천 짜는 집이 있었던 남창들의 밀실을 허물어 버렸으며 신당을 허물고 몰렉을 없앴고 유다의 왕들이 태양신을 위해 주었던 말(형상)들과 야붸의 신전입구에 세웠던 태양신의 병거를 없앴다. 이방 신들인 아쉬타로트와 크모쉬와 밀콤 등의 신당을 부수고 아쉐라를 꺾고 사람의 뼈로 그곳들을 채웠다.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무당과 점쟁이들과 트라핌과 우상들이나 괴상들을 다 몰아냈으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된 옛 율법 책에 따라 관습을 지킬 것을 선포했다(23,4-24).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습관적으로 지켰던 종교 관습은 대부분 혼합종교의 양상이었다. 전국 도처에 신당을 짓고 신상을 만들어 신당에 들여놓고 제단에 형상을 올려놓고 절하며 제사를 드리는 것이 풍습이었으며, 이일로 먹고사는 사제들의 수효도 상당히 많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열왕기 편찬가들이 왕조사를 기록․편집하며 역사를 비판하는 초점은 항상 형상을 거부하는 야붸의 신성(神性)을 송아지 형상으로 표출하여 신당에 세워놓고 섬겼다는 것이다. 또한 야붸의 송아지 형상과 더불어 아쉐라 여신상도 만들어 야붸의 성전에 들여와 그 옆에 놓았다는 과거의 죄를 신랄하게 파헤친다.
성서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 논문이 지난 1976년 이스라엘의 한 학술지에 발표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논란과 시비는 가시지 않고 있으며, 작음에도 그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과 단행본들이 발간되었다. 그 발단은 큰항아리 표면에 새겨진 글의 내용과 그 밑에 그려진 두 형상의 그림이다. 이 큰항아리는 시나이 반도 북쪽에 위치한 마을 카데쉬 바르네아에서 약 50킬로미터 남쪽에서 발굴된 것으로 이것들이 사용된 연도는 서기전 850-750년경으로 추정된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이 그을 아래와 같이 번역한다.
…가 말했다. …‥ 예할렐엘에게 말하라. 그리고 요아쉬에게, 나는 너희를 축복한다. 야붸로 그리고 그의 아쉐라로.
즉, ‘(누구)는 야붸(의 이름)와 그의 아쉐라(의 이름으)로 두 사람을 축복한다’는 문구이다. 성서학자들의 논란의 대상은 ‘그의 아쉐라’라고 번역한 바로 이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아쉐라는 제단 옆에 세웠던 목상이라고 이해하며 아쉐라의 복수형 아쉐림을 ‘아쉐라 목장들’로 번역한다. 열왕기에 서술된 종교분쟁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쉐라는 여신이며 그녀의 형상이 나무(목상)와 관련된 것이다. 아마도 흔히 볼 수 있는 신주(神柱)나 장승같은 목상일 것이다. 학자들 사이에 논쟁의 근원은 이 글 밑에 그려진 두 형상의 해석이다.
남성과 여성인 두 형상들은 모두 소의 얼굴 모습이며 꼬리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여로보암의 죄라고 일컫는 송아지 형상을 들 수 있으며 그 당시 우상종교의 단적인 면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의 야붸의 성전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북 왕국의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의 야붸를 대치하여 만들었다는 금송아지 형상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상타파를 단행했던 히즈키야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한 그의 아들 메나쉐가 우상숭배를 복원하며 아쉐라의 형상을 만들어 야붸의 성전에 세워 놓았다는 것들이 이러한 소 모습의 형상이었을 것이다.
‘야붸와 그의 아쉐라’라는 문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미 1970년이었다. 유다 왕국의 남쪽 중심지였던 헤브론에서 서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진 키르베트 엘 쿰이라는 곳에 위치한 무덤동굴 벽에 새긴 글이다. 서기전 75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히브리어 본문을 아래와 같이 번역한다. 부자(富者) 우리야가 이것(즉글)을 썼다. 우리야는 야붸에게 축복받는다. 그리고 그의 아쉐라에게, 그의 적대자들로부터 그가 그를 구원하였다. 오니야에게 그리고 그의 아쉐라에게‥…
이 글도 윗 글처럼 축복 문이며 이 동사구는 수동형으로 우리야는 야붸와 그의 아쉐라에 의해 축복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다음 행에 이어지는 문장은 야붸가 우리야를 그이 적대자(원수)들로부터 구원했다는 것이다. 눈에 뜨이는 것은 이 글 밑에 그려진 ‘손바닥’모양이다. 손의 그림과 축복 문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즉 ‘우리야는 야붸에게 축복 받은 사람이기에 야붸는 우리야의 적대자들로부터 그를 구원하였다’라는 문장과 ‘손’을 연결하는 문제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인 축복의 문구와 적대자들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건을 알려 주는 에피소드가 아브람 이야기에 나온다. 열방의 군대가 아브람의 조카 롯이 사는 곳으로 쳐들어와 롯과 그의 재산을 빼앗아 가자 아브람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쫓아가 그들을 쳐부수고 롯과 그의 재산을 되찾아 왔다. 아브람이 돌아가는 길에 도시 살렘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엘의 사제인 멜키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나와 그를 축복한다(창세 14,18-20).
하늘과 땅의 소유자, 지고의 엘에게 아브람은 축복 받는다. 당신의 적대자들을 당신의 손에 넘겨 준 지고의 엘은 축복 받는다. 아브람의 적대자들을 아브람의 손에 넘겨준, 즉 아브람의 조카를 적대자들로부터 구원한 도시국가 살렘의 최고신 지고의 엘에게 아브람은 축복을 받는다(살렘은 훗날 예루살렘이 된다). 멜키세덱의 축복 문 형식으로 우리야의 글과 ‘손’ 그림을 함께 읽어보면, ‘우리야의 적대자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어 그를 구원한 야붸에게 우리야는 축복 받는다’라고 다시 풀이할 수 있다. 한편 ‘손’이라는 은유는 야붸의 권능과 보호를 상징하는(출애굽기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것처럼) 일반적인 수사(修辭)로 이해한다면, 야붸는 그분의 손(권능)으로 우리야를 그를 적대자들로부터 구원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아브람이 멜키세덱으로부터 축복 받고 돌아온 후 얼마 지나 야붸는 아브람의 환여에 나타나 말씀하신다(창세 15,1). 두려워 말라, 아브람아. 나는 너에게 방패이며 네 보답은 메우 클 것이다. 방패는 신이 보호를 뜻하는 일반적인 은유 형태소의 하나이지만 멜키세덱의 축복문의 ‘(손에) 넘겨 준’(히브리어로 ‘미겐’) 동사구와 아브람의 환영에 나타난 야붸의 말씀의 ‘방패’(히브리어로 ‘마겐’)라는 명사는 서로 ‘곁말’ 관계에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아브람의 적대자들을 아브람의 손에 넘겨준(미겐) 지극히 높으신 엘은 다름 아닌 ‘너를 위한 방패(마겐)인 야붸’라고 야붸는 아브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우리야의 글과 손 그림을 함께 보고 읽음으로써 ‘손바닥’ 이 ‘방패’를 상징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파악될 수 있다.
실상 유대인들은 우리야의 그림에 있는 똑같은 모양의 손바닥 모습을 하느님의 방패/방어/보호로 부적처럼 사용하여 집이나 벽 등에 그리거나 또는 그런 모양의 걸이를 만들어 벽에 걸어 놓는다. 지금도 그러하다. 우리는 이러한 유물들에 무엇보다도 글과 그림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여유를 엿볼 수 있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14)
초기 유대교 성서 해석 방법
초기 유대교 문헌은 서기 200년경부터 약 400여 년 동안 유대교 랍비들이 집필하고 편집한 종교 문헌을 말한다. 이 시기에 편찬된 책들에는 서기전 300여 년 전부터 유대인들의 일상 생활에 관한 온갖 법규와 규례 혹은 관습 등을 정리하고 문서화하여 정한 유대교 최초의 성문법전 미쉬나와 미쉬나를 본문으로 약 300-400년 기간에 활동했던 많은 랍비들의 해설을 덧붙인 탈무드, 히브리성서의 성서 해석서인 미드라쉬, 여러 랍비들의 강론집과, 창조서나 명도서(明道書) 같은 신비주의작품 등 백여 권이 넘는 다양한 문서들이다. 이러한 초기 유대교 랍비들의 문헌을 기반으로 유대교는 근 1500여 년 동안 천여 권의 종교 문헌을 산출해냈다.
성서 공부의 길잡이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초기 유대교 문헌의 핵심적인 책들은 성서 해석서 미드라쉬라고 말할 수 있으며 미드라쉬는 모세 오경의 주석 뿐 아니라 애가(哀歌)와 아가(雅歌), 시편과 잠언서, 예언서 등을 구구 절절이 해석한 책들이다. 미드라쉬는 유대교의 종교사상을 확립하는 기본 자료이기 때문에 유대교의 근간이다. 또한 성서 해석 서에 전해진 많은 랍비들이 신약성서가 형성될 당시의 인물들로 그들의 성서 해석 방법과 입장을 신약성서와 대조하여 보면 한층 새로운 관점에서 신약성서를 읽을 수 있다.
초기 랍비들의 성서 해석의 전통은 모세오경 자체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세오경은 히브리어로 ‘토라’이며 우리말 성서에서는 토라를 흔히 ‘율법’이라고 번역한다. 좁은 의미로 율법은 모세의 계약법에 그 기본을 둔다고 할 수 있다. 모세의 계약법은 출애 20장의 십계명과 그 이하에 편집된 법규들이다. 그러나 모세오경에 전해진 율법은 출애굽기에 전해진 모세의 계약법과 신명 5장의 십계명과 그 이하에 기록된 신명기 법전이 있다. 신명기 법전(신명 12.1-25.16)은 십계명의 조항 (5,6-21)을 더 상세히 설명하는 여러 경우를 모아서 편찬한 부분이다.
신명기(LIBRUM DEUTERO-NOMII)라는 이름, 즉 ‘두 번째 율법 책’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명기 법전은 모세의 계약법 이후에 모세의 계약법을 근간으로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재해석한 법규들이다. 비록 신명기라는 이름이 서기전 3세기 중엽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했던 유대교 현자들에 의하여 희랍어로 번역된 70인 역 성서에 처음으로 등장한 책명이지만 초기 유대교 성서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신명기 법전은 모세의 계약법에 대한 재해석 책임을 시사하는 증거이다. 즉 히브리 성서에도 본문에 대한 해석 책이 존재함을 말해주며 이러한 전통은 본문해석을 추구했던 유대교 현자들의 역사가 깊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 예를 들어 신명기의 십계명은 출애굽기의 십계명과 거의 유사하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한 부분을 찾아 볼 수 있다. 출애 20,8-11과 신명 5, 12-15에 기록된 안식일에 관한 계명을 대조하여 본문 해석의 사례를 살펴본다.
출애 20,8-11 : 안식일을 거룩하게 기억하라. 너는 육 일을 일하며 모든 작업을 하여라. 칠 일째는 네 하느님 야붸를 위한 안식일이다. 너는 모든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너와 네 아들과 딸과 종과 여종과 가축과 네 집안에 머무는 나그네도, 왜냐하면 야붸께서 육일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칠 일째에 쉬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붸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신명 5. 12-15 :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은 너희 하느님 야붸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너는 육 일을 일하며 모든 작업을 하여라. 칠 일째는 네 하느님 야붸를 위한 안식일이다. 너는 모든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을 이어지는 문구는 출애굽기와 비슷하다.) 네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으며 너의 하느님 야붸께서 그의 강한 손과 뻗친 팔로 너를 거기에서 이끌어내셨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 하느님 야붸께서 안식일을 행하라고 너에게 명령하셨다.
출애굽기의 안식일 계명과 신명기에 재해석된 안식일 계명 사이에 차이점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출애굽기의 원(原) 십계명에 의하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기억하라는 이유를 하느님께서 육일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 역사에 두고 있지만, 십계명의 재해석인 신명기는 ‘출애굽 사건’ 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해방사건에 그 중점을 두고 그 사건의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지키고 노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대교 신학에 있어서 하느님의 가장 큰 역사는 ‘창조 사건’ 이며 바로 그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는 ‘출애굽 사건’이다. 신명기 사관은 서기전 6세기초에 형성된 역사관을 이스라엘 민족사의 전환점을 출애굽 사건에 두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유배되었다가 유다 땅으로 돌아온 이후 서기전 5세기초에 형성된 유대교 현자들의 모임에서는 모세 오경의 성서 해석 전통을 이어받아 성서 해석 방법을 더욱 더 발전시켰다. 랍비들의 활발한 활동과 꾸준한 성서 연구는 수백 년 이어지는 랍비들의 전승으로 전해졌으며, 성서 해석 책들도 자연 늘어났다. 모세 오경을 율법조항에 대한 상세한 판례들과 규례 들이 편찬된 유대교의 성문법전 미쉬나와 이 미쉬나에 새로운 해석과 보충 설명, 또는 어떤 판례에 관련된 설화 등이 첨가된 탈무드, 또한 히브리 성서의 여러 책을 해석한 책인 미드라쉬(성서 해석서)에서 많은 랍비들의 뜻깊고 다양한 의견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전통 유대교는 초기 유대교 현자들과 랍비들의 전통을 전수한 종교이다. 전통 유대교의 성문법전인 미쉬나는 서기 220년경에 편집된 문헌이지만 미쉬나에 전해지는 많은 사례들은 그 이전 300-400년 동안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에 신약성서가 편집될 당시의 유대인들의 상황과 문제거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신약성서에 전해진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는 사해문헌이다. 또한 사해문헌에 언급되는 율법의 규례와 그 해석 등을 미쉬나와 비교하면 미쉬나에 구전으로 전해졌던 법규들의 연대가 적어도 서기전 150-서기 50년경 당시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사해 문헌을 남긴 공동체는 정통파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이지만 그들의 엄격한 율법주의는 정토파 종교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서해석의 기본적인 입장은 매우 다르다.
사해문헌을 남긴 공동체를 일명 엣세네파라고 일컬으며 엣세네 분파가 생기게 된 서기전 150년경에서 서기 70년 로마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전통파 유대교 바리사이들이 야브네로 유대교(Rabbinic Judaism)를 형성하는 때까지의 유대인들 사회의 여러 분파들의 논박과 성서 해석의 이론(異論) 전개는 전통파 유대교를 확립시켜 가는 랍비들의 논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은 랍비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을 적대시하는 엣세네들이 사해문헌을 남긴 공동체이다. 엣세네파 사람들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들 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은 자기 소유의 재산을 공동체에 귀속시키고 이를 공동체 의회에서 관리했으며 개인소유의 재산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공동 생활을 그들은 ‘가난한 삶’ 이라고 말하며 ‘가난한 자가 복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이 공동체에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올 메시아를 기다리며 매일 물 속에 들어가 몸을 깨끗이 하는 침례와 공동 식사를 했으며 마음이 악에 끌려가지 않도록 토라의 법규와 그 해석을 열심히 지켰다. 마지막 날에 올 하느님이 심판에서 구원될 수 있는 길은 몸가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하느님의 가르침(토라)을 바르게 이해하라고 가르치는 공동체 지도자들의 규례와 히브리 성서 해석을 따르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활로 엣세네 사람들은 곧 올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들은 이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을 ‘새 계약’에 들어온다고 말했으며 자신들이 지켜야 할 온갖 규례와 지켜야만 되는 이유, 또한 이를 지키지 못했을 경우나 잘못했을 때 어떠한 벌을 받아야 하는가 등을 책으로 만들어 공동체 일원에게 철저히 가르쳤다. 이러한 법도를 기록한 책명이 ‘새 계약의 규례’ 와 ‘공동체의 규례’이다.
이들의 법규는 매우 엄격하며 벌칙도 무거웠다. 이렇게 엣세네파 사람들은 엄격하고 경건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으며 또한 자기 공동체 사람들끼리만 한껏 자비를 베푸는 공동 생활을 하였고 마지막날에 올 하느님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였던 것이다. 한 예를 들어 ‘공동체의 규례’7단 5행 이하에 기록된 내용을 읽어본다.
(공동체 일원이) 그의 이웃에게 모질게 말하거나 알면서 속이는 자는 육 개월 회개할 것이다. 그의 이웃을 이해 기부하지 않으면 살 개월 벌받는다. 만일 단합체의 재산에 기부하지 않아 손해를 보면 그는 앞당겨 갚을 것이다. 만일 그의 손으로 갚을 수 없으면 육십일 벌받는다. 그의 이웃에게 재판 없이 적의를 품은 자는 일년 벌받는다. 무슨 일이든 그의 목숨을 걸고 보복하면 마찬가지이다. 어리석은 일을 그의 입에 담은 자는 삼 개월, 그의 이웃이 말하는 중에 말한 자에게 십일, 또한 대중의 모임에서 이유 없이 나가는 사람이 한 모임에서 세 번 이상 그러면 그는 십일 벌받는다. 만일 투표하지 않고 있다가 떠나면 삼십일 벌받는다. 그의 이웃 앞에서 인간적인 이유 없이 벌거벗고 걸은 자는 육 개월 벌받는다. 대중의 모임 속에 침을 뱉은 사람은 삼십일 벌받는다.
엣세네파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유대교의 율법보다 더 엄격한 법도를 지켰다. 그 한 예로 안식일에 관한 규정들을 ‘새 계약의 규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 인용된 유대교 규범(법도)은 미쉬나에 편집된 안식일의 규범보다 더 엄격한 것도 있으며 거의 비슷한 것도 있다.
‘새 계약의 규례’ 10단 14행 이하 그 법령에 따라 지켜야 하는 안식일에 관하여 여섯째 날 태양이 멀리서 문을 잠그고 있을 때부터 사람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이다”(신명 5,13). 안식일에 사람은 헛소리나 빈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이웃에게서 아무 것도 빌리지 않는다. 재산과 이익에 관한 것을 재판하지 않는다. 다음 날에 할 일과 작업에 관한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안식일에 즐거운 일을 하려고 들판에 걸어다니지 않는다.
사람은 도시 밖으로 천 완척(완척(腕尺)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이상을 걸어다니지 않는다. 사람은 미리 준비한 것 이외에는 안식일에 먹지 않는다. 들판에 떨어져 있는 것을 먹지 않는다. (중략) 사람의 목숨이 수원지나 침례소(浸禮所) (침례소는 미크붸를 번역한 것이며 미크붸는 지하로 여러 계단 내려간 조그만 방에 물을 저장한 곳을 말하며 그곳에서 사람들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정결 예식을 치루었다.)에 빠졌는데 그를 사다리나 밧줄이나 다른 도구로 끌어올리지 않는다(11단 16행).
위 인용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엄격한 율법주의를 고수하였던 엣세네 사람들이 안식일에 사람의 생명에 위험이 생겨도 안식일을 철저히 지킬 것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실상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일에 대한 정의를 상세하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법규로 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범을 유대교에서는 할라카라고 말한다. 할라카를 법도(法道)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바리사이들의 기본적인 입장도 유대교의 할라카(법도)를 따르지 않고 선행(善行)을 한다면 그것은 선행이 아니라고 말한다. ‘선조들의 어록’에 서기 100년경에 활동했던 랍비 엘아자르의 언명 중 아래와 같은 글이 전해진다(3,11).
할라카(법도)를 따르지 않고 성서의 뜻을 밝히는 자는 비록 그의 손에 성서가 있고 행함이 선(善)하더라도 내세(來世)에 한 몫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랍비 엘아자르의 말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주장하는 할라카의 기본적인 입장을 밝혀주는 글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에 위험을 주는 상황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법도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냐는 논박이 그들 사이에 중요한 쟁점이었음을 복음서에 기록된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복음서에 전해진 예수와 바리사이들의 논쟁의 초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안식일에 누가 수원지나 웅덩이에 빠졌는데 그를 사다리나 밧줄로 끌어올리지 않겠느냐? 만일 안식일에 지켜야 하는 할라카를 따르지 않고 그를 살리는 선행을 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인가라는 상황을 직접 인용한 부분이 루가 복음서에 나온다. 예수께서 어느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낫게 하셨다. 물론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도 안식일의 법도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예수를 지탄하지만 그에 대하여 예수는 아래와 같이 반문한다(루가 14,1-6).
안식일에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이 아들이나 그의 소가 웅덩이에 빠진다면 즉시 그를 붙들어 끌어올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에 대한 답변을 그에게 줄 수가 없었다.
안식일에 사람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논박은 이미 서기전 150년경에도 부상되었던 논쟁이었다. 서기전 167년경 유다 땅을 통치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은 유대대인들에게 배교를 강요하였으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처형하겠다고 압박하자 많은 유대교 전통주의자들은 광야로 피신하였다. 사악한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이 일하지 않는 안식일을 골라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경건자들(하씨딤)은 거룩한 안식일을 더럽힐 수 없다며 공격하는 적군에게 돌을 던지거나 방벽을 쌓는 등 방어를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이때 율법과 선조 들의 계약을 열심히 지키던 모디인 사람 마타티아는 이 소문을 듣고 율법을 지키느라고 적군과 싸우지 않으면 멀지않아 모두 몰살당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비록 안식일에도 자기들에게 공격하는 군인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며 안식일에 대한 율법 해석을 새롭게 하였다(1마카 2,31-48). 이때에 생긴 좌우명이 ‘사람의 생명은 안식일 위에 있다’라는 문구였으며 생명은 안식일에 앞선다라는 안식일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생겼다. 이후부터 사람의 생명에 위험을 주는 심각한 상황이 안식일에 생긴 경우 이 금언을 적용하여 생명을 구하는 근거로 사용하였다. 사람의 생명에 이협이 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안식일에 지켜야 되는 규례를 어길 수 있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랍비 유대교(바리사이)의 법도에 의하면 안식일에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사건이 생기면 안식이라도 그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규례가 준수되었다. 이러한 해석이 적용된 유명한 경우로 랍비 힐렐은 평화를 사랑하고 인자하며 인내심이 강하고 매우 겸손하며 한껏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힐렐은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났으며 성서 공부하려고 그의 나이 40살에 예루살렘에 왔다. 그는 랍비 샤마이와 랍비 아브탈리욘의 학교에서 배웠으며, 훗날 헤로데 대왕 집권의 마지막 몇 년부터 아르키라우스의 포악한 통치 기간인 서기전 4년-서기6년 사이에 산헤드린의 대표로 활동했다.
힐렐은 랍비들 사이의 많은 논쟁을 해결하고 유용한 법규와 탁월한 성서 해석을 했던 학자로 알려졌으며, 특히 성서 해석의 기본방법인 삼단논리, 추론, 연장, 비유, 은유, 평행, 모순 등 일곱 가지 해석 방법을 정리하여 성서해석에 적용하였다. 그는 초기 유대교 랍비들 중에 가장 뛰어난 랍비로 추앙 받는다. 힐렐의 학창시절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힐렐이 예루살렘에 와서 샤마이와 아브탈리욘의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할 때 그가 하루 벌은 돈의 반은 생활에 쓰고 반은 수업료로 냈다고 한다. 이 당시 토라를 배우기 위해 성서공부학교(베이트 하-미드라시)에서 수업료를 내면서 공부했다. 복음서에도 선생이 가르치는 임금을 받는다는 내용이 열두 제자를 세상에 파견하는 강론에 나온다. ‘일꾼이 그의 양식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마태 10,10). 여기에서 일꾼은 제자를 가리키며 제자들이 사람들을 가르치면 양식을 얻기 때문에 돈이나 옷 등을 챙기지 말고 빈 몸으로 집을 떠나가 일하라는 말씀이다.
어느 겨울 안식일 전날 그에게 돈이 없어 학교 청지기는 그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힐렐은 지붕에 올라가 창 밖에서 그들의 강론에 열중하였다. 눈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강론에 흠취되어 그만 눈에 파묻히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안식일에 샤마이와 아브탈리욘은 지붕 위에 꽁꽁 얼어붙은 힐렐을 보고 비록 안식일이라도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에 올라가 눈을 파서 그를 내려와 씻기고 몸을 문질러 주며 화로 가에 앉혔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안식일을 어겨도 된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힐렐에 관한 이 이야기는 예수 당시 잘 알려졌을 것이다. 생명이 위험한 경우 안식일이라도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 이라는 판례가 있다는 것을 어느 바리사이나 랍비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복음서에 전해진 이야기에 의하면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낫게 하신 예수께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할라카를 지키지 않고 임의로 안식일에 대한 해석을 하였다고 그를 비난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비록 병자를 낫게 하는 선(善)을 행했다고 하더라도 할라카를 어겼기 때문에 내세에 한 몫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내세에 한 몫을 차지한다’는 숙어를 신약성서의 단어로 바꾸면 ‘하느님의 왕국에 한 몫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의 안식일에 관한 해석은 ‘생명이 안식일에 앞선다’는 판례를 들어 논박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예수에게 반구(反求)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리사이들이 ‘이것에 대한 답변을 그에게 줄 수 가 없었다’락 전한 맥락을 이와 같은 정황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안식일보다 앞서지만 과연 어떠한 상황이 생명에 위협을 주는 것인가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초기 랍비들의 성서 해석과 복음서에 전해진 예수의 말씀이 서로 부합하는 한 예를 읽어본다. 부모의 말씀과 하느님의 말씀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 누구를 따라야 하겠는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 할라카(법도)이다. 복음서의 시작 부분에서 네 어부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어부들에게 예수께서 “당신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삼겠소”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즉시 그들의 아버지를 남겨 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전한다(마태 4,18-22).사람들이 부모를 떠나 선생을 따라 나섰다는 이야기이다.
미쉬나에 이와 비슷한 비유가 전해진다. 만약에 사람이 그의 아버지나 그의 선생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간다면 그는 먼저 그의 선생이 잃은 것을 찾고 그 다음에 그의 아버지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이 세상에 자기를 낳았지만 그의 선생은 자기를 내세로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바바 2,4). 복음서에 전하는 위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예수를 선생으로 모시고 그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부모를 떠나 그분에게 모였다는 것이다. 선생은 그의 성서 공부를 통하여 제자들을 내세, 즉 하늘 나라로 데려가는 길을 열어 준다는 내용이다.
만일 부모의 가르침이 토라의 법규와 상반되는 경우 어느 것을 택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자명하다. 그러나 미드라쉬는 그 당위성을 본문을 통하여 입증한다. 초기 랍비 들의 레위기 미드라쉬인 시프라(Sifra)의 한 대목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중히 여겨라”고 말한다(출애 20,12). 그리고 또한 “네 재산으로 주(야붸)를 중히 여겨라”고 말한다(잠언 3,9). 그러므로 성서 구절은 부모를 중히 여기는 것과 전능하신 주를 중히 여기는 것 사이의 유사성을 세운다(시프라 195장 2째문단 3절). “너희 누구나 그의 무모를 중히 여길 것이다” 라고 말하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가 토라에 쓰여 있는 법규 등에 어느 하나를 어기라고 말하였다고 가정하면 그는 그들을 따라야 하겠는가?
성서구절에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내 안식을 지킬 것이다. 나는 네 하느님 주(야붸)이다” (출애 20,2). (그러므로) “너희 모두는 나를 중히 여겨야 한다”(6절).
십계명 5조항인 부모를 중히 여겨라 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토라의 법도를 어길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계명은 하느님이 주(야붸)라는 것을 확인하는 할라카(법도)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할라카가 십계명 5조항을 앞선다는 말이다. 즉 부모를 떠나 성서 공부(토라)를 가르치는 선생을 따라가는 것이 내세에 한 몫을 차지하는 길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의 왕국에 사는 길은 ‘나는 네 하느님 주(야붸)이다’에 대한 모든 법도를 준수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네 하느님 주(야붸)이다’라는 십계명의 시작 문구가 모든 계명의 근본임을 알려 준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에 ‘나는 네 하느님 주(야붸)이다’ 이기 때문에 ‘내 앞에 다른 신들이 너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출애 20,3)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내 앞에 다른 신들이 너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 는 히브리어의 직역이며, 흔히 ‘내 앞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라고 번역한다. 이에 대하여 출애굽기 미드라쉬(‘메킬타 데 랍 이쉬마엘’)는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 내 앞에 다른 신들이 너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느냐? 왜냐하면 ‘나는 네 하느님 주(야붸)이다’이기 때문이다. 한 비유를 들면, 어떤 한 임금이 한 고을에 들어갔다. 그이 부관들이 그에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칙령을 내리십시오.” 그러나 임금은 그들에게 대답했다. “아니다 그들이 내 통치를 받을 때에 그들에게 칙령을 내릴 것이다. 만일 그들이 내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 칙령을 이행하겠느냐?”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말씀하셨다.
“나는 네 하느님 주(야붸)이다. 내 앞에 다른 신들이 너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이집트에서 네 스스로 택한 통치자이다.” 그들이 그분께 “네, 네”라고 말할 때 그분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이제 방금 네가 내 통치를 받아들였으므로 너는 내 칙령인 ‘내 앞에 다른 신들이 너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 도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랍비 심온 벤 요하이는 말했다. 더 나아가 말한 “나는 네 하느님 주(야붸)이다”(레위 18,2)라는 것은 “나는 네가 시나이 산에서 네 스스로 택한 통치자이다”를 뜻한다. 그리고 그들이 “네, 네”라고 말했을 때 그분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자, 너는 내 지배를 받아들였으니 이지 내 칙령인 ‘이집트에서 행한 일 후에’(레위 18,3)도 받아들여라” 여기에서 말한 ‘이집트 땅에서 너를 데리고 나온 네 하느님 주(야붸)가 나다’ 라는 것은 ‘나는 네가 세 스스로 택한 통치자이다’라는 뜻이다. 그들이 그분에게 “네, 네”라고 말했을 때 그분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내 지배를 받아 들였으니 잊 내 칙령인 ‘너에게 다른 신들이 있지 않을 것이다’를 받아들여라.” 너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느냐? 왜냐하면 “너에게 우상을 만들지 말라”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든 만드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벌써 만들어진 것을 간직하는 것이 금지된 것임을 어떻게 나는 알 수 있느냐? 성서는 말한다. “너에게 우상을 만들지 말라”등. 다른 신들. 그들이 신들이냐? “그들의 신들을 불 속에 내던져라. 왜냐하면 그들은 신들이 아니기 때문이다”(이사 37,9)라고 쓰여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다른 신들” 이라고 말할 때 성서는 무엇을 뜻하느냐? 단순히 다른 이들이 부르는 신들이다.
또 다른 해석. 뒤(악하림)의 신들이다. ‘다른’은 히브리어로 악헤림이다. 그러나 악하림으로 읽으면 ‘뒤’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선함이 도래하는 것을 뒤에서 막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선함이 도래하는 것을 뒤에서 막는다. 또 다른 해석. 다른 신들. 그들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방인처럼 행동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소리질러도 전혀 응답이 없으며 그의 고난에서 그를 구하지 못한다”(이사 46,7). 랍비 요스는 말한다. 다른 신들. 왜 이렇게 말하느냐? “만일 우상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워졌다면 그들도 가치 있을 것이다”라고 세상 사람들이 변명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보아라, 그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워졌으나 그들은 전혀 가치가 없지 않느냐? 언제그분이 이름으로 불리워졌느냐? 세트의 아들 에녹흐 시절에,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그 때부터 야붸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창세 4,26). 그 당시 바다가 일어 세상의 삼분의 일을 덮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를 ‘신들’이라고 부름으로 새로운 것을 했다. 나도 역시 새로운 것을 하겠으니 나를 ‘야붸’ 라고 부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바닷물을 부르고 땅 위에 쏟아 붓는다. 야붸는 그분이 이름이다“(아모 5,8). 랍비 엘리에제르는 말한다. 다른 신들. 그들은 매일 자신들을 위해 새로운 신들을 만든다. 어떻게? 금으로 만든 신상이 있자 금이 필요하게 되어 은으로 신상을 만들고, 은으로 만든 신상이 있자 은이 필요하여 구리로 신상을 만들고, 구리로 만든 신상이 있자 구리가 필요하여 철로 신상을 만들고. (그래서) 철로 만든 신상이 있다. 이처럼 주석으로 그 다음은 납으로 그렇다.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신들이 가까이 에서 왔다”(신명 32,17). 랍비 이츠학이 말한다.
“만일 모든 우상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기하려면 세상의 양피지로는 충분하지 않다.” 랍비 하나니야 벤 안티게노스는 말한다. “와서 토라가 선택한 표현을 생각해 보아라. ‘몰레크에게’ (레위 18,21). ‘멜레크(임금)에게.’ 멜레크는 ‘임금’이라는 뜻이며 동사 말라크는 ‘지배하다. 다스리다’는 뜻이다. 인용한 랍비의 의도를 입증하는 본문이 제시된다. 즉 네가 너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어떤 것이든 나무토막이나 항아리 조각이라도.” 랍비는 말한다. 다른 신들. 창조의 순서에서 마지막인 사람보다 나중 것들이 신들이다. 누가 창조된 것들 중에서 마지막인가? 그들을 “신들”이라고 부르는 자이다. 내 앞에. 왜 이렇게 말하느냐? 이집트에서 나왔던 자들만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이스라엘이 변명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고 있으며 영원 무궁토록 견딘다’라고 말하는 만큼 ‘내 앞에’라고 말한다. 그래서 너와 네 아들과 네 아들의 아들과 세대의 끝까지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십계명 첫째 계명 후반 구절이 세 마디 대하여 출애굽기 미드라쉬, ‘메킬타’에 편집된 미드라쉬, 즉 성서 해석은 백 행이 넘는다. 이러한 미드라쉬를 읽음으로써 유대고 성서 해석의 일반적인 특색을 조금이나마 알아 볼 수 있다. 미드라쉬는 여러 랍비들의 해석을 기본 자료로 마치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때로는 비슷한 내용을 연속 반복하면서 r 주제가 조금씩 진보한다. 또한 랍비들의 해석이 계승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랍비 아무개는 이렇게 해석했고 이에 대해 다른 랍비는 그와 반대로 설명하고 또 다른 랍비는 이에 찬성하여 자신이 해석을 덧붙여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한 문장에 대한 해석으로 미드라쉬는 시작하며 그 다음 한 구절에 대한 여러 해석이 등장한다. 더 나아가 한 단어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잇따라 소개된다. 미드라쉬이 특징 중의 하나는 위에 번역한 예의 ‘임금’에 관한 비유처럼 비유가 자주 등장하며 그 구성 방식은 인용구 - 비유 - 인용구의 순서이다. 대부분의 인용구는 통시적이며 그 상황에 맞는 구절을 인용하여 그 성서구절을 미드라쉬는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때로는 새롭게 전혀 막힌 상태에서 헤매지만 미드라쉬를 읽고 배우는 독자는 읽는 과정에서 한 마디 할 수 있는 여백을 찾을 수 있다.
미드라쉬는 그 자체가 독서의 즐거움이다. 랍비들이 발전시킨 성서 해석 방법의 열쇠는 “왜 이렇게 말하느냐?” 는 질문이다. 성서구절을 줄줄이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왜 이렇게 말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변을 성서의 다른 맥락에서 찾아 그 구절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입증하거나 보충하는 방법이다.
랍비들에 의해 자리잡은 마드라쉬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해문헌 가운데 하바국서 등의 미드라쉬가 엣세네파 사람들에게 성행했던 점으로 보아 적어도 서기전 2세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랍비들을 주축으로 형성된 바리사이 사람들에게 미드라쉬의 구전은 랍비들이 학파를 중심으로 전수되었으며 서기 3세기경부터는 책 단위로 편집되었다. 또한 초기 단계의 미드라쉬가 레위기, 출애굽기, 민수기 등의 미드라쉬라는 점을 착안하면 그 발생된 연유가 종교법규 해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생활 규범을 다루는 유대교의 성문법전 미쉬나가 서기 220년경에 완성되었고 이 미쉬나는 수많은 종교법규와 관습, 예전, 제의 등 유대인들 생활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많은 경우를 열거하여 규정한 총서이다. 이와 같이 성문법의 기본 자료는 모세 오경에 집약 되어 있으며 모세 오경의 미드라쉬가 초기 단계의 성서 해석 책이라는 점은 모세 오경d 성서 공부의 시작임을 말해준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15)
현자의 가르침과 십계명 5-10조항
십계명의 5조항과 4종항에 대한 초기 유대교 레위기 미드라쉬 씨프라의 한 대목을 인용하였다. ‘너희 누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히 여길 것이다’ 라고 말하기 때문에 만약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토라에 쓰여져 있는 법령 중에 어느 하나를 어기라고 말하였다고 가정하면 그는 그들을 따라야 하겠느냐? 성서 구절에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 나는 너희 하느님 주(야붸)이다,’ 너희 모두는 나를 중히 여겨야만 한다(195,2,6).
부모가 토라에 쓰여진 법령 중에 하나를 어기라고 한다는 것은 부모가 토라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미드라쉬는 부모가 토라를 가르치는 (즉 해석하는)과정에서 어느 법령은 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전제로 하연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중히 여길 것이다’(십계명 5조항)라는 조항은 단순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단편적인 계명이 아니다. 그리고 위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계명(4조항)이 부모를 중히 여기라(5조항 )는 계명에 선행(先行)한다는 해석이다.
또한 십계명에서 부모를 중히 여기라는 뜻은 부모의 가르침을 중히 여기라는 것이며, 부모의 가르침은 구체적으로 십계명의 6-10조항을 가리킨다.
슈르파크의 가르침과 십계명
본고의 주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가르침가 법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고 히브리성서에 편찬된 십계명과 모세의 계약법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맥락과 유사함을 밝히려는 것이다. 서기전 28-25세기 수메르 문화의 중심지였던 도시국가 니푸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아부짤라비크(Abu-Salabikh)라는 지역이 있다. 1950년대에 그곳을 발굴하여 서기전 2600년경의 토판 백여 개를 해독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토판이 계약서나 행정문서 등이지만 그래도 신전(神殿)을 찬양하는 시(詩)와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가르침 등 문학 작품도 읽을 수 있었다.
한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알려준 가르침은 슈루파크라고 일컬어지는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가르친 어록이다. 서기전 18세기경 고대 바빌로니아시대에 편집된 ‘슈루파크의 잠언집’이 있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졌으나 이보다 적어도 800여 년 전에 같은 전승의 잠언집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적어도 지혜문학의 전통이 구마사제들의 주문(呪文)이나 평 사제들의 신전 찬양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있었다는 점이다. 아부짤라비크에서 발굴된 ‘슈루파크의 가르침’은 지혜문학의 전통이 무척 오래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된다. 이 토판은 앞면과 뒷면에 약 180행이 넘게 쓰여진 작품으로 실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학 중의 하나이다. 이 가르침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지혜롭고 유식한 사람이 나라에 살았다. 유일한 용사 슈루파크. 지혜롭고 유식한 나라에 살았다. 슈루파크는 그의 아들에게 가르쳤다. “내 아들아, 내가 가르치겠다. 주의하여 들어라. 네 밭을(길에 일구지 말라.) 넓은 길거리에 집을 짓지 말라---”
한편 이 토판의 3단에 “슈루파크는 그의 아들에게 가르쳤다”는 말로 새 문단을 시작한다. 슈루파크는 그의 아들에게 가르쳤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 네 자신이 쓰러지는 것이다. 도둑은 정말로 사룡(蛇龍)이며 즐긴 자는 정말로 여종이다. (남의)집을 (부수고 들어가지)말라. (---) 살인강도를 하지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스스로 (---) (남의)젊은 여자와 놀지 말라. 구설수가 커진다. 맹세를 하지 말라 네 자신이 메인다. 언쟁을 일으키지 말라. 네 것이 쓰러지는 것이다. 수메르 가르침에서는 “언쟁을 하지 말라”를 강조한다. 수메르 문학 작품에 언쟁하는 이야기가 많고 ‘논박’(dispute, diatribe)이라는 장르의 작품이 수십 편 된다. 예를 들어, ‘호미와 쟁기’, ‘가축과 곡식’, ‘여름과 겨울’, ‘농부와 목자’,‘나무와 갈대’, ‘새와 물고기’,‘구리와 은(銀)’, ‘두 여자 사이의 비난’, ‘두 서사(書士) 사이의 논박’, 등 거짓을 (불리지 말라.)---”
여기서 이 문단이 끝나며 다음 문단은 “슈루파크는 그의 아들에게 가르쳤다”로 또다시 새로운 내용이 시작된다. 슈루파크의 가르침은 도둑질, 살인, 간음, 헛된 맹세, 언쟁, 거짓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슈루파크이 가르침의 내용과 순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의 몇몇 조항과 비슷함을 쉽게 볼 수 있다.
슈루파크가 그의 아들에게 악한 짓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구체적인 내용은 지혜문학의 일반적인 특성이며 기본 골자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바른 사회를 이루려는 현자들의 교훈이며 정의사회의 기준을 세워 주는 기본조항이다. 이러한 계명을 근간으로 법이 제정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편찬된 법전은 서기전 2100년경에 공포된 ‘우르남무 법전’이다. 수메르어로 쓰여진 이 법전의 기본 골격은 이보다 350년 후에 만들어진 고대 바빌론 왕조의 ‘함무라비 법전’의 모체가 되었으며, 그 외 앗시리아 법전과 힛타이트 법전 그리고 히브리 성서에 전해진 모세 계약법 등 인류의 법전 발달에 가장 근원적인 뿌리가 된다.
우르남무 법전은 서문에서 기득권자들의 권력 남용과 사회 비리를 바로 잡았고, 도량형기를 표준화하여 경제 질서를 확립했으며, 약자를 보호하여 억울하게 부자들에게 팔려 가지 않게 했고, 반목과 폭행과 부정이 사라지게 하여 수메르 땅에 정의를 확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법전의 첫 번째 조항이 ‘사람이 사람을 살해했으면 그 사람을 죽일 것이다’로 시작되는데 우르남무 법전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이나 히브리 성서의 모세 법과 같은 법규의 모두(冒頭)임을 알 수 있다. ‘우르남무 법전’의 법 조항은 아래와 같다.
① 만일 사람이 사람을 살해했으면 그 사람을 죽인다.
② 만일 사람이 살인강도를 했으면 그 사람을 죽인다.
③ 만일 사람이 실수로 사람을 상해했으면 그 사람은 감옥살이하며, 은(銀)15쉐켈을 지 불 한다. ④ - ⑤ 조항은 종에 관한 경우 법이다.
⑥ 만일 처녀인 젊은이의 아내를 다른 사람이 힘을 행사하여 강간했으면 그 사람을 죽 인다
⑦ 만일 젊은이의 아내가 그녀의 뜻으로 다른 사람을 쫓아가 그가 그녀와 같이 잤으면 그 여자를 죽이며 그 사람은 풀어준다.
⑧ 만일 처녀인 한 사람의 여종을 다른 사람이 힘을 행사하여 강간했으면 그 사람은 은 5쉐켈을 지불한다
⑨ 사람이 그의 아내와 이혼할 경우에, 그는 은 1마나를 그녀에게 지불할 것이다.
그 당시 은(銀) 1마나로 남종과 그의 아내와 아들과 딸을 샀다. 이혼을 할 경우 위자료로 주는 1마나는 큰돈이었다. 위자료를 주지 않고 쫓아내어 여자 측에서 소송을 제기했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⑩ 그가 미망인과 이혼할 경우에, 은 2분의 1마나를 그녀에게 지불할 것이다.
⑪ 사람이 결혼 계약서가 없는 미망인과 잤을 경우에, 그 사람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12조항은 부서져 없음)
⑬ 만일 사람이 마술을 행했다고 사람을 고소했으면 그를 강(江)의 신명재판(神明裁判)에 데려와 강의 신명재판에서 깨끗하다면 그를 데려온 사람은 3쉐켈을 지불한다. 수메르어로 ‘사람을 거스르는(맞서는) 강신(江神)’ 의 뜻인 ‘강의 신명재판’은 고소된 사건에 증인이나 증거가 없는 경우 그 판결 수단으로 고소인과 피고소인 중 누구인가 강에 빠져 죽으면 그에게 죄가 있다고 처리하는 방법이다. 여기에서 ‘깨끗하다’ 는 뜻은 ‘강물에 빠졌다가 살아 나왔음’을 뜻한다. 아무런 확증이 없는 경우 운명은 신에게 달려 있다는 결론이며 거짓 증거를 하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말이다. 결국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 는 경고이다.
⑭ 만일 젊은이의 아내와 잠자리했다고 사람이 고소했으나 강의 신명재판에서 깨끗하다면 고소인이 은 3분의 1마나를 지불한다.
우르남무 법전의 법 조항은 살인, 살인강도, 상해(1-3조항), 간음(6-8조항), 거짓증거(13-14조항) 등에 관한 경우 법의 순서로 편찬되었다. 우르남무 법전의 이러한 경우법 조항은 이보다 500여 년 전에 기록되었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왔던 ‘슈루파크의 가르침’ 의 내용과 순서가 거의 같다. 여러 악한 짓을 하지 말라는 슈루파크의 가르침과 우르남무 법전의 법 조항과 대조하여 읽어보면, 즉 ‘---하지 말라’ 는 언명이 ‘만일---한다면’ 그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받는다는 법규로 발전된 것을 읽을 수 있다. ‘도둑질, 살인강도, 간음,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 는 수메르의 교훈집의 내용과 순서를 전통으로 이어받아 우르남무의 법 조항이 편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둑질, 살인강도, 간음,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슈루파크의 가르침’ 의 언명을 히브리성서에 기록된 십계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십계명 중 ‘사회계약법’에 관한 계명과 특히 유사하다(출애 20,13-14).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로 대답하지 말라. 신명 5,17에는 ‘헛된 증거’를 하지 말라고 쓰여있다. ‘네 이웃에게 헛된 증거로 대답하지 말라.’ 네 이웃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이 아내와 그의 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것을 탐내지 말라.’ 십계명 10항에 대하여 많은 이견(異見)이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이웃집을 탐내지 말라는 의미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조항과 ,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의미는 간음하지 말라는 조항과 유사하다.
사회규범의 엣센스를 불과 다섯 조항으로 축약한 십계명의 사항과 의미가 중복되지 않는 뜻을 나타낸다. 10조항이 무슨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관건은 ‘탐내다’라는 동사דםח(하마드)의 사용범위를 찾아내는 것이다. 동사 하마드와 연결하여 한 쌍을 이루는 동사 군은 ‘탐내어 강제로 소유하다’ 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권력자들은 경작지를 탐내어 잘라가고 집들을 (탐내어) 빼앗아 간다’(미가 2,2). ‘일년에 세 번씩 너희 하느님 야붸의 얼굴을 보러 올라올 때에 네 땅을 누구도 탐내지 않을 것이다’(출애 34,24). 다시 말해서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간 사이에 불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땅을 취하지 말라는 법규이다. ‘너희 신상들을 불살라 버리고 그 금과 은을 탐내지 말고 스스로 취하지 말라’(신명 7,25). 십계명 10조항 ‘남의 소유인 것을 탐내지 말라’는 뜻은 남의 소유인 것을 공적인 계약 절차를 밟지 않고 불법으로 자기 소유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대메소포타미아의 문화와 고대 히브리인들의 전승 사이에 깊은 교류가 있음은 창세 신화 같은 신화뿐 아니라 지혜 문학과 법전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십계명은 히브리어로 ‘열 말씀’이다. 십계명의 1-4항은 ‘이스라엘의 신 야붸’에 대한 조항이며 다음 5-10항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 가운데 6-10조항은 위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 “--- 하지 말라” 는 금지 명령형의 문장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관한 계명의 시작인 5항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중히 여겨라’ 는 문장은 긍정 명령형 문장이다. 이어 따라 나오는 문구는 ‘그러면 네 하느님 야붸께서 너에게 주는 이 땅에서 네 (사는) 날이 길 것이다’(출애 20,12).
한글 번역 성서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로 번역한다. 여기에서 ‘공경하다’ 라는 히브리어 동사 דככ(카베드)의 기본 뜻은 ‘무겁다, 중하다, 중히 여기다, 존경하다’ 등이다.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식(신명 21,18-21)이나 부모를 욕하거나 저주하는 자식(출애21,17; 신명 27,16)은 부모를 존중히 여기 않는 자식, 즉 부모의 말씀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식을 말한다.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중히 여겨라’는 구절과 비교하여 읽을 수 있는 문구는 잠언에 나오는 대목이다. 잠언서의 시작 부분엣 이러한 문맥을 읽을 수 있다(1,8-10).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교훈(무싸르)을 들어라! 그리고 네 어머니의 가르침(토라)을 저버리지 말라! 그것들은 네 머리에 아름다운 관이며 네 목에 목걸이이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꾀더라도 따라가지 말라!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의 가르침은 머리에 쓰는 아름다운 왕관이나 목에 거는 목걸이처럼 중하다. 그러므로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 죄 짓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문맥을 서기전 19-17세기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편집된 ‘슈루파크의 가르침’의 시작 부분(10-15행)과 대조해 본다.
슈루파크는 그의 아들 지우쑤들에게 말한다. “지우쑤드라여, 내가 너에게 말을 하겠다. 주의하여라. 내 가르침을 포기하지 말라. 내가 한 말을 어기지 말라. 아버지의 가르침은 중한 것이다. 이 것이 네 목을 걸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에 ‘목을 걸다’는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뜻이다. 울어대는 나귀를 사지 말라. 한 밤중에 너를 괴롭힌다. 길가에 밭을 가꾸지 말라. 아우성친다. ‘슈루파크의 가르침’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은 중한 것이다’라는 문구가 잠언 1장의 부모의 말씀은 중하다는 문맥과 병행한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아부짤라비크 토판 ‘슈루파크의 가르침’에 ‘아버지의 가르침을 주의하여 들어라’ 라는 권유가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형 문장을 선행하는 예를 읽었다.
슈루파크는 그의 아들에게 가르쳤다. “내 아들아, 내가 가르치겠다. 주의하여 들어라. 네 밭을(길에 일구지 말라.)” ‘슈루파크의 가르침’의 서두처럼 잠언 1,8 이하도 ‘아버지의 교훈을 들어라’는 구절 다음에 ‘---하지 말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이와 같이 십계명 5항은 십계명6-10항의 서두(書頭)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여 십계명 5-10항을 아래와 같이 다시 띄어 써 본다.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의 가르침)를 중히 여겨라. 살인하지 말라. 간을 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로 대답하지 말라. 네 이웃집을 탐내지 말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중히 여겨라’는 계명의 내용을 ‘부모의 말씀을 중히 여겨라’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실인, 도둑질, 간음, 거짓증거 등을 하지 말라’ 는 부모의 가르침을 중히 여기며 살아가라는 문맥이다.
출애 20장에 십계명을 내세운 다음으로 이어지는 구절들은 십계명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많은 경우를 법규로 해석한 ‘모세 계약법전’이다. 십계명과 연결하여 출애 20,22-23,8을 여러 경우 법으로 설명한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20,22-26 하느님의 제의에 관한 법령 21,1-11 안식년의 종에 관한 법령 21,12-36 살인에 관한 법령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때린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다’ (출애 21,15)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다’(출애 21,17)의 두 조항은 ‘살인자를 처형하는 법’과 관계된 항목에 속한다. 즉,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는 자는 사람을 살해하는 만큼 무거운 죄에 속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22,1-15 도둑질에 관한 법령 22,16-20 간음에 관한 법령 22,21-27 탐냄에 관한 법령 23,1-8 거짓증거에 관한 법령
위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부모를 중히 여겨라(혹은 공경하라)’는 조항에 관한 상세한 법령이 없다는 점이다.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모아 편찬한 것이 신명기 법전이다. 신명기에 십계명의 조항은 5,6-21에 나오며 이 조항에 대하여 더 상세히 설명하는 여러 경우 법들이 신명기 법전이다(12,1-25,16). 십계명 4조항을 자세히 설명한 안식년과 절기에 관한 법령이 15,1-16,17에 나오며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 6조항에 해당하는 많은 경우를 설명한 살인에 관한 법령이 19,1-22,8에 나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문단 16,18-18,22이 하느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그의 법령으로 재판하는 재판관들의 판결대로 행하여 법을 중히 여기라는 부분이다.
십계명 신명기 법전
1-2조항 12,1-31 하느님의 제의
3 조항 5,12-15 하느님의 이름
4 조항 15,1-16,17 안식년/ 절기에 관한 법령
5 조항 16,18-18,22 하느님의 법령은 중하다.
6 조항 19,1-22,8 살인에 관한 법령
7 조항 22,9-23,19 간음에 관한 법령
8 조항 23,20-24,7 도둑질에 관한 법령
9 조항 24,8-25,4 거짓 증거에 관한 법령
10조항 25,5-16 탐냄에 관한 법령
‘하느님의 법은 중하다’를 설명하는 신명기 법전의 해석은 십계명의 사회계약에 관한 계명의 시작인 ‘부모의 가르침을 중히 여겨라’는 명령이 사회법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다섯 가지 금지 명령형 계명을 지키라는 경고에 앞서는 언명(言明)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즉 네 부모 같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중히 여기고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거, 남의 것을 탐내는 일 등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십계명 5항 ‘부모(의 말씀)를 중히 여겨라’는 조항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1-4항과 사회규범을 다루는 6-10항을 연결하는 조항으로 볼 수 있다. 부모 같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중히 여기어 네 목숨을 걸고 지키면 네 하느님께서 너에게 주는 이 땅에서 너는 오래 살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이해를 뒷받침하는 해석을 기원전 1세기경에 기록된 사해문헌 가운데 ‘미래의 신비’라는 작품에서 읽어본다.
미래의 신비를 추구하고 진리의 모든 길을 스스로 이해함 죄의 모든 뿌리를 지켜보아라. 그러면 인간에게 무엇이 씁쓸하고 사람에게 무엇이 달콤한지를 알 것이다.
네 아버지를 네 머리로 네 어머니를 네 발걸음으로 중히 여겨라. 인간에게 전능하신 분은 아버지 같으며 그의 어머니는 한 사람에게 주인 같다. 그들은 너를 손으로 가리켜 주며 그분(하느님)이 그들에게 그렇게 다스리라고 하셨으며 성령으로 명령하였으니 그들을 따를 것이다. 그분(하느님)이 미래의 신비에 귀를 밝혀 주셨다. 네가 중한 것처럼 그들을 중히 여겨라. 네 생명과 네가 살날을 위해(---).
여기에서 ‘전능하신 분’과 ‘주인’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십계명의 6조항을 설명하는 유대교의 성서해석은 심온 벤 요하이의 주석 책의 한 구절을 들어 설명한다. ‘하느님과 사람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 세 분이 각 사람의 동반자이다.’
십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끝으로 십계명의 5-10조항에 관하여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대목을 읽어본다. 어느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슨 선행(善行)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길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그때 그가 어느 계명을 말하느냐고 되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중히 여겨라), 그리고 네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신다(마태 19,16-19; 마르 10,17-19; 루가 18,18-20). 복음서마다 조금씩 순서가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히 여겨라’는 조항이 십계명 6-10조항을 열거한 다음에 언급하는 점이다. 즉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등’을 가르치는 부모를 중히 여기라는 설명이다.
한편 십계명 6-7조항에 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을 읽어보면 초기 유대교 랍비들의 성서해석의 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내가 토라(모세오경)와 예언서(의 구절)를 취소(삭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려고 왔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신다(마태 5,17-48).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옛 사람들이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즉 예수님의 성서해석). 자기 형제에게 성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며 --- ‘간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남의) 아내를 탐내어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제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한 것입니다 ---”
십계명 6-7조항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은 십계명의 내용을 삭제 혹은 취소하려는 것이 분명히 아니며, 오히려 사건이 생기기 전에 미리 방지하려는 예방책이다. 사람이 상대방에게 화를 내게되면 결국 살인으로 끝은 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카인과 아벨의 경우 카인은 화가 치밀어 결국 그의 아우를 쳐죽이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인간은 범죄자라는 표를 이마에 달고 다녀야 했던 경우를 보아서도 남에게 화를 내면 끝내 살인으로 몰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남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 살인을 막을 수 있으며 남의 아내를 탐내어 바라보지 말아야 간음하는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살인을 하지 말라 또는 간음을 하지 말라는 계명보다 앞서는 도리(道理)이며, 바로 이러한 것이 ‘토라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말씀이다. 즉 ‘토라에 울타리를 쳐라’는 ‘선조 들의 어록’ 1장 1절의 언명을 구체적인 예로 들어 십계명의 조항을 예수님께서 해석하신 것이다. 죄를 유발시키는 동기를 피하여 죄를 짓지 않게 하라는, 즉 유혹에 들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다.
아버지를 두고 스승을 따름
초기 유대교에서는 이러한 울타리에 해당되는 온갖 생활양식이 미쉬나라는 성문법으로 서기 220년경에 편찬되었다. 서기전 4세기경부터 형성되는 랍비들의 유대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표제는 성서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서를 가르치는 현자가 되라는 것이다. 미쉬나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약에 사람이 그의 아버지나 그의 선생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간다면 그는 먼저 그의 선생이 잃은 것을 찾고 그 다음에 그의 아버지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이 세상에 자기를 낳았지만 그의 선생은 내세에 자기를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바바 메찌아 2,4). 이와 비슷한 맥락을 신약성서 복음서의 시작하는 부분에 네 명의 어부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대목에서 읽을 수 있다. 어부들에게 예수께서 “당신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삼겠소” 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즉시 그들의 아버지를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전한다(마태 4,18-22). 위에서 인용한 레위기 미드라쉬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때로는 부모의 가르침이 토라의 기본 입장을 이탈하는 경우가 있기에 성서공부는 성서공부학교에서 마치 귀양살이 간 것처럼 해야 한다는 구절이 ‘선조들의 어록’(4,14)에 전해진다.
성서(공부하는)곳으로 귀양살이를 갈 것이다. 그것이 네 뒤를 따라온다고 말하지 말라. 네 동료들이 그것을 네 손에서 이루어 준다. ‘네 이해에 너는 기대지 말라’(잠언 3,5).
동료가 성서공부를 이루어 준다는 것은 동료들 사이에 견실한 논쟁으로 성서공부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스스로 성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에 기대지 말라고 설명한다.
문자문명을 이룩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지혜서와 더불어 발달한 법전은 사회정의를 유지하기 위한 고대인들의 노력이었으며 그들의 교훈과 그것을 골자로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법전은 그 이후 기록된 히브리성서의 계약법이나 십계명과 잠언서 등에서 그 전통을 찾아 볼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연속성은 히브리성서뿐 아니라 히브리성서를 경전으로 끊임없이 성서를 해석해 온 유대교 랍비들의 문헌과 복음서에도 담겨져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고대 근동문화에 비추어 본 성서(16)
다윗과 예루살렘 성전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이, 다비드
유대인뿐 아니라 많은 서양인들 가운데 다비드(다윗)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는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을 주제로 한 회화나 조각 등을 여러 박물관이나 그림책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다윗이 유럽 사회에서 그렇게 유명한 사람으로 부각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임에 틀림없다.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이 자손이었다는 역사적이며 신앙적인 고백에서 다윗의 위대함을 증거 할 수 있다.
한편 유대인들에게 다윗은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을 연합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왕국을 건설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역사적 인물이다. 유대인들은 축제 때 “다윗! 이스라엘의 임금이여,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습니다”라는 구절을 자주 노래한다.
그러나 역사적 다윗은 히브리성서 사무엘서 상․하권에 자세히 이야기되어 있듯이 노아나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온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린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때려눕힌 신동이었고, 청년 다윗은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긴 ‘야붸의 궤’를 탈환한 영사이며 예루살렘에 ‘야붸의 집’을 짓기로 마음속에 다짐하고 계약궤를 시온산으로 옮겨 놓은 영도자였다. 그래서 훗날 예루살렘은 ‘만민(萬民)의 문’으로서 순례 객들의 본향이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남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그 여자의 남편을 사지(死地)에 홀로 남게 하여 죽음을 면치 못하게 하였으며, 미망인이 된 그 여자를 자기의 아내로 삼은 장본인이었음은 익히 아는 이야기이다. 모세의 계약법에 의하면 십계명의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절대적인 계명을 어긴 사람은 돌로 쳐 맞아 죽었다. 비록 다윗이 예언자 나탄에게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였다고 하였지만 하느님의 분노를 면치 못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다윗(히브리어로‘다비드’)이라는 이름은 ‘사랑을 받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비드’라는 인명과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가 아가서에 자주 나온다. “그가 그의 입의 입맞춤으로 나에게 입맞추세요. 당신의 사랑(도드)은 포도주보다 더 좋습니다”(1,2). “내 사랑(도드)은 나에게 향 주머니에요 내 젖가슴 사이에 안겼네”(1,13). ‘사랑’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도드’와 다비드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이다.
히브리성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명․지명 등은 그 이름이 지니는 운명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브람’은 ‘위대한 족장(아버지)’, 즉 아브람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장이요 첫 번째 선조이다. ‘노아(노악흐)’는 ‘쉰다’, 즉 하느님은 당신을 ‘쉴 수 있게 해준’ 노악흐와 계약을 맺으시고 쉬시었다. 또한 동사구로 만들어진 이름도 흔하다. 동사+신명(神名) 혹은 신명+동사, 예를 들어, ‘요나탄’은 ‘요(야붸)가 주었다,’ 즉 야붸가 아들을 주었다. ‘나탄엘’은 ‘엘이 (아들을)주었다.’ 또한 신명 없이 동사만 나오는 경우, 예를 들어 나탄은 요나탄 혹은 나탄엘 중 하나를 뜻한다. 다윗의 경우 다윗(다비드)의 뜻은 ‘사랑 받음’, 즉 하느님의 사랑 받음을 가리킨다.
이름 자체가 운명을 안고 지어진 것이기에 히브리성서에 전개되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그 이야기의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의 이름 풀이가 이야기의 목적/목표를 알려 주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다윗은 야붸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성서에 다윗(다비드) 이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라는 뜻의 이름을 부여받은 인물이 있을까? 아가서에 ‘내/네 사랑’ 이라는 호칭 이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도망 나와 광야를 헤매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고 사는 동안 이스라엘의 신 야붸는 이스라엘인들에게 ‘하느님의 두려움’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모세 계약법을 새롭게 설명하고 부연한 신명기 계명에 새로운 방향이 설정된다. 가장 두드러진 계명이 바로 ‘쉐마’이다. ‘들어라(쉐마), 이스라엘이여, 야붸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며 야붸는 한 분이시다. 네 하느님 야붸를 온 마음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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