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14.1-15,47(또는 15.1-39)
하느님의 입장에 서서 세상살ㄹ 본다면, 이 세상에서 창조적이고 게다가 사람들에게 참된 희망을 주는 힘은 무엇일까?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 우리들에 대한 중요한 물음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환영의 방식에도 나타났습니다. 옷을 벗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깔았습니다. 그것은 왕이나 신분이 높은 자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었습니다. 그것은 마카베오와 그의 군사들이 성전을 탈환했을 때의 이야기와 관계있는 것으로 승전을 환영하는 의미였습니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종려나무 잎을 장식하고 마카베오를 통해서 승리를 주신 하느님께 찬미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예수님을 맞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유다 세계에 승리를 안겨줄 왕이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힘이 넘치신 예수님, 지상에서 행복을 성취하실 분, 지상 낙원의 창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왕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예전에는 산으로 피해 버리셨는데, 여기에서는 어린 나귀를 타심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셨습니다.
나귀는 전쟁터에서 지휘를 하고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타는 군마와는 다르게 용감함, 강력함의 이미지는 없습니다. 나날의 생활의 노고를 가난한 사람들과 서로 나누는 가난한 사람의 벗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역하지 않고 가난한 주인이 바라는 대로 묵묵히 따르며, 그 무거운 짐을 지는 나귀와 일체가 되신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 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라고 이사야에서 말하는 메시아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을 자기 생각대로 조종해서 움직이게 하는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구축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시며, 자기의 특권을 포기하시고, 자신을 낮추시어 철저히 봉사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재창조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자기 겸허와 사랑, 거기에 예수님의 힘이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본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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