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르코(Marcus)는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사도 12,12-25)과 동일 인물이며,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회합 장소로 사용한 집주인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인 듯하다.
또 그는 성 바르나바(Barnabas)의 조카이며(골로 4,10), 키프로스(Cyprus) 태생의 레위 사람이다. 그는 예수께서 체포되실 때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붙들리게 되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던 인물로 여겨지나(마르 14,51-52)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바오로(Paulus)와 바르나바를 수행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고(사도 12,25), 그 다음에는 키프로스로 바르나바와 함께 갔으며, 바르나바와 함께 바오로의 1차 전교여행을 수행하였다(사도 13,5). 그러나 밤필리아에서 바오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사도 13,13).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바오로와의 의견 대립 때문에 바오로의 제 1차 전교여행에는 동행하지 않았다(사도 15,36-40).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으며(사도 15,39), 바오로가 투옥되었을 때에는 로마(Roma)에 함께 있었다(골로 4,10).
그는 분명히 베드로(Petrus)의 제자였는데 베드로는 그를 애정 깊게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라고 언급한다(1베드 5,13). 불확실한 전승이지만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초대 주교였으며, 신약에서 여러 번 언급된 바와 같이 요한 마르코임이 분명하다(사도 12,25). 동방에서는 이 요한 마르코를 또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는 비블로스(Byblos)의 주교라고 하며 9월 27일에 축일을 지낸다.
어쨌든 마르코는 60-70년 사이에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주로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였다. 소아시아의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는 그가 베드로의 통역자였다고 하며,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로마에서 복음을 기술했다고 전한다. 마르코는 베네치아(Venezia)의 수호자이며 그의 유해는 그곳의 산마르코(San Marco) 대성당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그의 문장은 사자이다.
강론 : (마르 16,15-20)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마지막 명령이고,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신앙인은 복음을 듣고 믿게 된 사람이고,
동시에 자기가 들은 복음과 자기의 믿음을 증언하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은 글자 그대로 온 세상입니다.
복음은 세상 모든 곳에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가 국교로 정해져 있는 곳에도,
또는 감옥처럼 폐쇄되어 있는 곳에도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뜻으로는 '모든 사람'이지만,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을, 즉 자연을 하느님 뜻에 맞게 보살피는 일도
복음화 사업에 포함됩니다.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복음'은 일차적으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이고,
그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다는 것,
우리도 그렇게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등도 모두 복음입니다.
'선포' 라는 말은, 세상에 널리 알린다는 뜻 그대로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전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교는 비밀 조직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신앙을 능동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놓는 것과 같습니다(마르 4,21).
만일에 자신의 신앙을 사람들 모르게 감추고 있다면, 즉 등불을 켜서 감춘다면,
그런 경우에는 그 등불을 잃게 될 것입니다(마르 4,25).
(사람들 모르게 감추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라는 말씀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는다면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믿음을 행동으로(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마태 7,21).
여기서 '구원'이라는 말은,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인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단순히 "신자가 아닌 사람은 무조건 지옥에 갈 것이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탓이 아닌 이유로 신앙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아서 못 들었거나,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본의 아니게 신앙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라면,
그러나 정말로 착하게 산 사람들이라면,
하느님께서 분명히 정상참작을 해 주실 것이고, 어떻게든 구원하실 것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단죄를 받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
그러면 단죄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갈망하던 옛날 조선의 선구자들은
누가 와서 복음을 선포하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복음을 찾아서 헤맸고,
복음을 듣게(읽게) 된 후에는 즉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힘들게 찾아 헤매지 않아도,
아주 쉽고 편하게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책들, TV, 라디오, 영화, 인터넷 등등...
그런데 너무 쉬운 일이 되어서 그만큼 절실함이 줄어든 것일까?
인터넷의 경우, 이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쪽에서 볼 때에는 대단히 유용한 도구이고,
분명히 '하느님의 선물'이고 천사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사탄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기쁜 소식'이 아닌 '해로운 유혹'과 거짓 정보가 너무나도 많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책이나 TV나 라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도구라고 해도 천사가 사용하면 구원의 지름길이 되고,
사탄이 사용하면 멸망의 올가미가 됩니다.
어쩌면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 자체가 사탄의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켜서 복음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
그것도 사탄의 입장에서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쓸데없는 것에 한눈팔지 말아야 하고,
'기쁜 소식'과 '해로운 유혹'을 잘 구분해야 하고,
우리를 구원하는 '기쁜 소식'만 찾아서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복음처럼 보여도 복음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저렇게 예수님께 기도하면 (세속적인) 복을 받을 것이고,
하는 일마다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말...
그런 말은 요즘에 자주 듣게 되는 사탄의 유혹인데,
겉으로는 기도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추구하라고 유혹하는 말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관이 없고, 그래서 복음이 아니고,
우리를 하느님과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사탄의 유혹일 뿐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듣기에 좋은 말만, 또는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존재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듣기에 거북하고 불편한 말이더라도
영혼에 유익한 말이라면 받아들여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는 말은
현재 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듣기 싫은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구원을 받으려면 들어야 할 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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