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6월 13일 나해 연중 제10주간 토요일(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dariaofs 2015. 6. 13. 09:46

 


1195~1231. 포르투갈 출생 및 이탈리아 선종. 프란치스코수도회. 사제.

한국의 103위 성인 중에는 파리외방전교회 출신의 외국인 선교 사제들이 계십니다. 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순교하셨기에, 한국의 성인이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어느 한 나라의 성인이 되는 것은 출생지보다는 선종지(또는 순교지)가 어디인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갈 리스보아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에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로 불립니다. 성인은 선종하기 1년 전인 1230년 이탈리아 파도바에 정착해 활동했습니다. 1년 남짓한 이 기간에 안토니오 성인은 파도바 시민 대부분을 가톨릭 신자로 만들었습니다. 성인의 설교를 들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성인이 믿는 하느님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성인에 대한 파도바 시민들의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성인은 원래 아우구스티노수도회에 입회해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다 순교한 프란치스코회 선교 사제들의 모습에 감동 받아 해외 선교 사제로 살고 싶어 프란치스코회로 수도회를 옮겼습니다. 그리곤 곧바로 아프리카로 파견됐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대신 하느님께선 그를 유럽 곳곳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당시 유럽엔 이단과 이교도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습니다. 성인은 청중들을 단숨에 사로잡는 화술로 이단에 빠진 이들을 가톨릭 교회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성인은 가톨릭 교회 가르침을 명쾌하고 단호하게 전달하면서도,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설명할 땐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성인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고해성사를 주는 데 매달리며, 회개하는 신자들을 따뜻이 품어 주었습니다.

성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고, 높아지는 명성만큼 위협도 뒤따랐습니다. 성인의 활동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성인이 먹는 밥에 독을 타기도 했고, 사람들이 성인 설교를 듣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고, 성인을 방해하던 이교도인들조차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곤 했습니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빚을 갚지 못해 고리대금업자에 시달리거나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다니며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파도바에선 성인이 청원하면 빚을 진 이들을 구제해주는 법이 만들어졌다고도 합니다.

성인은 선종한 지 1년 만에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고, 1946년 교회학자로 선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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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    뒤틀린 인생


파도와의 성 안토니오의 생애는 어쩌면 뒤틀린 인생입니다.

뒤틀린 인생이란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된 인생을 말하지요.

그렇다면 성 안토니오는 어떻게 인생이 뒤틀렸다는 것일까요?

 

그의 생애는 참으로 짧습니다.

36세의 짧은 인생을 살았으니 짧은 인생이라 할 수 있지요.

36년의 인생에서 자기 생각대로 또는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자기 생각대로 된 것은 한 가지 있습니다.

아오스딩 수도회 수도자에서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된 것이

이슬람에서 순교한 작은 형제들처럼 순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순교하기로 간 모로코에서 중병에 걸려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고향을 포르투갈을 향했지만 그러나 태풍을 만나

안토니오는 뜻하지 않게 이태리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작고 낮은 자로서 조용히 살고자 하였지만

이번에도 뜻하지 않게 사제 서품식 강론을 하게 되어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설교가의 길로 나서게 됩니다.

 

그는 또 뜻하지 않게 작은 형제회 안에서 신학자와 관구장이 됩니다.

30 대에 관구장이 되었으니 그가 원한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신학자가 되어 형제들을 가르치는 것도 그가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란치스코가 허락한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 줄 알고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겠다고 하자 프란치스코는 이런 편지를 씁니다.

나의 주교 안토니오 형제에게 프란치스코 형제가 편지를 씁니다.

신학 연구로 거룩한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면

그대가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의 마음에 듭니다.”

 

사실 안토니오는 아오스딩 수도회에 있을 때 신학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그가 살고자 했던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를 통해 하느님의 뜻이 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드러나자

그는 프란치스코의 권고대로 기도와 헌신의 영에 따라 신학을 가르치지요.

오늘 지혜서의 나는 기도를 올려서 지혜를 받았고,

하느님께 간청하여 지혜의 정신을 얻었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지식은 하나의 욕망입니다.

그래서 지식욕, 지적인 욕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세에서 돈과 명예를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지식을 쌓으려 할 수도 있지만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듯이 하느님처럼 모든 것을 알고픈 욕심 때문에

지식을 쌓으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지혜는 다릅니다.

욕구가 아니고 깨달음이며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는 무엇보다도 인격적입니다.

오늘 지혜서가 얘기하듯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하느님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무신론자이고

그러하다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지요.

 

이것을 프란치스코의 표현으로 바꾸면

육의 영(정신)을 가진 사람은 지식을 얻으려고 하고

기도와 헌신의 영(정신)을 가진 사람은 지혜를 얻으려고 합니다.

 

안토니오의 일생은 뒤틀린 인생입니다.

자기 뜻대로 된 것이 거의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뜻대로 된 것인데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뒤틀린 안토니오 인생이 그렇다면 불행한 인생이겠습니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