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7월 15일 나해 연중 제15주일 수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5. 7. 15. 00:30

 

 

조반니 디 피단차(Giovanni di Fidanza)라는 이름의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는 아버지 조반니 디 피단차와 어머니 마리아 디 리텔로(리텔라)의 아들로 바뇨레조에서 태어났다.

 

불확실한 전설이긴 하지만 보나벤투라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받은 이름이라 한다.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어렸을 때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 중재 기도를 바쳐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1238년에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되어 영국의 유명한 헤일스의 알렉산데르 문하에서 공부하려고 파리(Paris)로 갔으며, 그로부터 총애를 받는 제자가 되었다. 그는 1248-1255년까지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가르쳤는데, 그의 강의는 새로운 탁발 수도자를 반대하던 교수들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생 아무르의 빌리암을 비롯한 반대자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 논쟁에 뛰어들어서,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그리스도의 가난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남겼다. 마침내 1256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가 생-아무르를 단죄하고 탁발 수도회에 대한 공격을 중단시켰다. 탁발 수도회가 파리에서 다시 부흥될 때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와 함께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와 비슷한 초창기에 성 보나벤투라는 작은 형제회의 총장으로 피선되었고, 수도회의 내부 분쟁자들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였으며, 온건한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극단주의 그룹을 단죄하였다. 1260년 나르본(Narbonne)에서 열린 수도회의 총회에서 그는 오랫동안 수도회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는 회칙에 대한 회헌을 선포하였다.

 

그는 1265년 요크의 대주교좌를 거절하였고, 1271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의 선출을 적극 지지하였다. 1273년 그는 알바노(Albano)의 교구장 추기경이 되었으며, 다음 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로마(Roma)와 동방 교회의 일치를 토의하려는 리옹(Lyon) 공의회의 의사일정을 짜도록 그를 위촉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회기 중인 7월 15일에 리옹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보나벤투라는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사상가 중의 한 분이다. ‘세라핌 박사’로 알려진 그는 수많은 글을 썼고 또 남겼는데, “베드로 롬바르드의 금언에 대한 주석”,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세 갈래 길”, “완덕 생활” 등의 영성 서적을 비롯하여 성서 주석, 약 5백 편의 설교 등이 유명하다. 그는 1482년 4월 14일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시성되었고, 1588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체와 성합 그리고 추기경 모자가 그의 상징이다.

 

강론   :    (마태 11,25-27)


<아들 외에는>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


이 말씀은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완전히 일치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모든 권한과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권한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요한 5,22)."


"아들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여기서 "아버지를 알다." 라는 말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다."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간 구원에 관한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데리고 들어가시지 않으면(또는 받아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1) 학문 연구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지식의 힘'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아주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자칭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마태 11,25)이

그런 어리석은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만일에 인간의 학문으로 하느님을 알 수 있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도 아니고, 하느님 나라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학문을 초월해서 계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증명할 수도 없고,

하느님이라는 절대 존재를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또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학문으로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신학이나 성서학 같은 교회의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서학은 하느님(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잘 알고 묵상하고 실천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만일에 그 한계를 벗어나서 '말씀'을 비판하고 논증하고 검증하려고 한다면,

성서학 때문에 믿음을 잃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분야의 신학도 신앙생활을 위한 일이어야 하는데,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하느님을 학문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면,

신앙 없이 신학만 연구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신앙인이 아닌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2) 혼자 힘으로 수도생활을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도를 닦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에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도를 닦고 수행을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 나라는 하느님 나라가 아닙니다.

그냥 인간의 나라일 뿐입니다.


원래 수도생활이란, 하느님(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 전부를 봉헌하는 생활입니다.

따라서 수도생활을 잘하기 위한 첫 번째 요소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인도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자기 혼자서 목적도 없이 도를 닦는 일이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수행이 아닙니다.


3) 어떤 공로와 업적을 많이 쌓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당을 많이 지었다고 해서, 예비신자 인도를 많이 했다고 해서,

신학 서적을 많이 썼다고 해서 하느님 나라로 직행할까?

물론 그런 일 자체는 좋은 일이고,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업적과 공로가 전혀 없는 분들도 성인품에 오르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느님(예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는다면

업적이든지 공로든지 다 무의미합니다.

만일에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같은 겸손한 자세가 없다면,

그래서 그런 공로와 업적이 교만죄의 원인이 되어버린다면,

하느님 나라로 직행하기는커녕 더 멀어질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철부지들'에게 당신의 일들을 드러내신 것에 대해서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마태 11,25).

(철부지들은 단순하고 순수하게 믿고 응답하는 신앙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어린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이 말씀에서 '어린이'는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자기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자기를 높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