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7월 14일 나해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성 가밀로 데 렐리스 사제)

dariaofs 2015. 7. 14. 00:30

 

 

이탈리아 복치아니코에서 출생한 성 카밀루스(또는 가밀로)는 군인으로서 터키인들을 대항한 베네치아(Venezia)를 위하여 전투에 참가하였고, 도박에 빠졌으며, 1574년경에는 무일푼의 신세가 되어 나폴리(Napoli)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는 몸이 건장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1575년 우연히 설교를 듣고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서, 두 번씩이나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했으나 일생동안 그를 괴롭힌 다리병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로 다른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정력을 쏟았으며, 로마(Roma)의 산 자코모 병원에 자원으로 봉사하다가 곧 그 병원의 회계를 맡았다.

이러한 경험은 병원의 놀라운 상황과 제 문제점들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이던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의 권고를 받아들여 158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이미 사제와 평수사들로 회를 구성하였던 병자들의 봉사자회(The Camellians)를 세웠다.

그들은 로마의 주요 병원에서 사목하다가 1585년에는 자신들의 병원을 세웠으며, 특히 로마 항의 배들을 통하여 전염되는 흑사병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치료하였다.

 

그는 항상 창문을 열어 놓고, 적당한 음식물을 먹게 하고, 전염병일 경우는 격리하는 방법을 그는 활용하였고, 그의 사제들은 항상 숨을 거두는 환자들 곁에 있었으며, 임종자들의 장례 등에도 큰 관심을 보이게 하여 세인들의 칭송이 높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도저히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1607년에 자신의 장상직을 사임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늘 환자들을 방문하면서 자신이 죽는 날까지 그렇게 하다가 제노바(Genova)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74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1746년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또한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천주의 성 요한(Joannes, 3월 8일)과 함께 모든 병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로부터는 모든 간호사와 간호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강론   :    (마태 11,20-24)


<회개>


7월 14일의 복음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마태 11,20-24)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20)."

예수님께서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꾸짖으시는데,

이것은 특정 고을들의 사람들을 꾸짖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자만심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이방 민족들을 '구원받지 못할 자들'이라고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심판 때에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보다 더 엄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이스라엘은 하느님도 알고 하느님의 뜻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벌을 더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방 민족들은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보다 벌을 덜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벌을 안 받는 것이 아니라 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더 많은 사랑을 주었는데도 응답하지 않았다고

이스라엘에게 서운해 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을 이방 민족들보다 더 많이 사랑하신 것도 아니고,

이방 민족들을 이스라엘보다 덜 사랑하신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특정 지역을 편애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더 많은 은총을 주셨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들 쪽에서 생각해서,

"메시아를 가장 먼저 만났고, 복음을 가장 먼저 들었던 이스라엘"

로 해석해야 하고,

유대인들의 자만심과 우월감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구원 사업의 순서대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먼저 복음을 선포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먼저 만났고, 복음을 먼저 들었으니,

믿고 회개하는 일도 먼저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보다 나중에 메시아를 만났고, 나중에 복음을 들었지만,

이스라엘보다 먼저 메시아를 받아들였고, 먼저 회개했습니다.

(개인 단위로 보면 사도들을 비롯해서 첫 번째 신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지만,

민족 단위로 보면 이방 민족들이 먼저 믿고 회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8,11-12)." 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21,43)." 라는 경고도 하셨습니다.


지금 이 경고는 그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이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면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신앙인이 아니었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죄 속에서 사는 사람보다

안 믿어도 착하게 사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더 가까이 가 있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마태 7,22-23)."


이런 말을 하면 "그러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교리 공부와 성경 공부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고,

그곳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아닌 경우, 안 믿는다고 다 지옥에 가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른다면 방황하게 될 것이고,

또 아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스스로 거부한다면

그 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1)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최종 판결은 아니고,

늦기 전에(심판을 받기 전에) 빨리 회개하라는 훈계입니다.

예수님은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분입니다(마태 12,20).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2) 고을들(또는 민족들)의 멸망을 경고하시는 말씀이지만

단순히 그 고을에(또는 그 민족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멸 당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이 온통 악에 물들어 있다고 해도 휩쓸리지 않고,

항상 깨어 있으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천한 사람이라면,

최후의 심판 때에 예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람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