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7월 20일 나해 연중 제16주일 월요일 (성 엘리야)

dariaofs 2015. 7. 20. 00:30

 

성 엘리야(Elias)는 기원전 9세기경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예언자이다. 히브리어 이름의 어원적 의미는 ‘나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이다. 구약성서(1열왕 17-19장, 21장; 2열왕 1-2장)에서는 엘리야를 제자인 엘리사(Eliseus, 6월 14일)에 비해 비교적 덜 관대하게 소개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그의 활동 시작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엘리사와는 달리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은 이야기도 전하지 않고 생애 마지막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대기(21,12)에서는 그의 활약을 아예 언급하지 않으면서 엘리야가 왕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만 전하고 있다. 그러나 예언적 전승(말라 3,23)이나 지혜 전승(집회 48,1-11)은 이스라엘 후기에 엘리야가 이스라엘 영성에 있어서 핵심 인물로 누린 명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는 시종일관 ‘티스베 사람’이라고 불렸는데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칠십인역에서는 요르단 강 건너편 북쪽에 있는 한 지역, ‘길르앗의 티스베’(1열왕 17,1)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히브리어 구약성서인 마소라 본문은 엘리야를 ‘길르앗의 거류민’이라고 하며 ‘티스베’라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엘리야 자신에 관한 역사적인 모습은 기적적인 전설들 속에 감추어져 있다. 심지어는 그의 이름조차도 그의 열성을 반영하는 가명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엘리야 이야기들의 구조와 세부 묘사들은 예언 말씀, 엘리야의 소명, 그리고 모세의 전승과 연결되고 예언 계승에 대하여 잘 발전된 신학적 사고를 밝히고 있다. 엘리야의 역할은 이스라엘의 예언 전승 안에서 흥미를 끄는 특성으로 묘사되었다. 즉 엘리야는 야훼 신앙 수호의 영웅으로, 진실한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는 예언자이며 왕가의 압박에 저항하며 살아있는 신앙을 수호한 예언자라는 것이다.

구약 후기 중간 시기 문헌과 랍비 전승에서는 엘리야가 이 세상에서 신비하게 사라진 것에 대해 미래의 하느님 승리의 날에 유일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말라기 3장 23-24절에서는 그가 주님의 날의 선구자라고 예언하였다. 그는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랍비들의 율법 논쟁을 해결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엘리야가 메시아 전승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 여긴다.

 

이러한 점이 후기 유대 전승에서 약화되었다 할지라도 널리 퍼진 이 특징의 대부분은 열왕기(1열왕 17장) 이야기들의 영향이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하여 사회악과 싸우며 불의한 이를 징벌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전설의 인물로 남아있다. 그는 중세 민속학에서는 방랑하는 유다인으로 여겨졌고, 유월절 식탁에는 그를 위한 자리가 ‘엘리야의 잔’과 함께 항상 마련되었다.

 

그는 새로운 탄생의 보호자로 여겨졌으며 ‘엘리야 의자’는 할례식에 고정되어 있다. 엘리야는 이슬람교 전승에도 강하게 남아있다. 코란에 엘리야는 ‘정의로운 사람들’ 명단에 들어가 있으며, 바알 숭배를 철저하게 적대시하는 임무를 지닌 사람으로 되어 있다.

신약성서는 여러 문맥에서 엘리야를 언급하고 있다. 복음서들은 전승에서 착상하여 “먼저 엘리야가 와야만 한다”고 말한다(마르 9,11; 말라 3,23-24 참조). 또한 엘리야가 불행한 이들을 위하여 호의적으로 개입할 것(말라 15,35-36 참조)을 기다리는 민간 신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루가 전승에 의하면, 예수를 새로운 엘리야라고 하였다. 예수는 엘리야를 언급하며 자신의 고유 임무를 규정하였다(루가 4,25-26). 요한 복음서에서는 세례자 요한을 새로운 엘리야로 보았다(요한 1,21. 25). 이 전승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나타난다. 엘리야처럼 세례자 요한은 모든 것을 새로이 세우고 또 엘리야처럼 권력가와 충돌하였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엘리야의 기도가 열렬하여 응답을 받은 그리스도인 기도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야고 5,17-18).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무엇보다도 엘리야의 특징적인 모습은 메시아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대중의 의견은 예수를 이 모습과 동일시하고, 반면에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 동일시한다. 엘리야는 예수의 거룩한 변모 때 모세와 함께 예수의 곁에 있었다. 만일에 모세가 율법을 떠오르게 한다면 엘리야는 예언자를 떠오르게 한다(마태 5,17). 그리고 예수는 그것을 완성하러 왔다.

 

강론   :   (마태 12,38-42)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39-41)."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 라는 말은,

죄 속에서 살면서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표징만 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넓은 뜻으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신앙인들도 포함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표징을 요구한 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요구한 일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마태 27,42)."

이 말은, 믿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마태 27,44).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 사람들도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믿기 싫어서' 요구한 사람들입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예수님께서 직접 언급하신 그대로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일을 가리키고,

그 일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일로 해석합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이 말씀은, "나의 죽음과 부활을 보게 되면

너희는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로 해석됩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신자 수가 대폭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앙이고,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생겼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여주신 많은 표징들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가장 중요한 표징이고,

사실상 유일한 표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자체를 안 믿는 사람들도 있고,

부활을 믿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놀라운 표징을 보여주어도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안 믿습니다.


2) 요나가 겪은 일을 요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일은 죽었다가 살아난 일과 같습니다.

하느님을 피해서 달아났던 요나는 그 일 때문에 회개하게 됩니다(요나 2장).

(사실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나의 회개도 중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를

"너희는 요나처럼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을 겪어야만 회개하겠느냐?"

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기 전에 먼저 회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3) 최후의 심판 때에는 심판을 받기 위해서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요한 5,29).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이지만, 그 부활도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입니다.

그날이 되면, 예수님을 안 믿은 자들과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심판관으로서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를

"너희는 죽었다가 부활해서 심판을 받을 때가 되면,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회개하기에는 너무 늦은 때가 될 것입니다.

그날은 심판을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는 말씀은,

그들이 심판을 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고,

"이 세대는 유죄" 라고 증언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창피한 줄 알아라."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원래 하느님을 안 믿었던 사람들이었는데,

요나가 멸망을 선포하자 즉시 하느님을 믿었고 단식을 선포했습니다(요나 3,5).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생각하면,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일을 표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또 곧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공포심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느님을 믿고 회개한 것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신앙이었겠지만,

그래도 어떻든 안 믿었던 사람들이었는데 믿었고 회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는,

'니네베 사람들'은 "신앙인이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로 하느님 마음에 들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로,

또 '이 세대'는 "신앙인이었지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신앙인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신앙인들을 꾸짖을 것이다."가 됩니다.


지금도 비신자들이 신자들을 비판할 때가 많습니다.

"명색이 신자라면 신자답게 살아라." 라고...

신앙인이, 또 교회가 제대로 살지 않아서

비신자들로부터 그런 비판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