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7월 21일 나해 연중 제16주간 화요일(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학자)

dariaofs 2015. 7. 21. 05:57

 

체사레 데 로시는 나폴리(Napoli) 왕국의 브린디시 태생으로 그곳의 콘벨투알 회원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16세 때에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신학, 철학, 성서,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수 개 국어를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연구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북 이탈리아를 순회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수도회의 여러 고위직을 맡았으나 유대인 개종을 위하여 주로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로 파견된 적도 있으며, 프라하(Prague)와 빈(Wien) 그리고 고리지아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여 이 수도원이 후일에는 보헤미아(Bohemia),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티리아 관구로 발전케 하였다.

 

그는 루돌프 2세의 요청을 받고 독일 군사지도자들을 격려하여 터키인들과 싸우게 하는 한편, 자신도 종군신부가 되어 전투에 참가하였다. 1602년 그는 카푸친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또 필립 3세를 설득하여 가톨릭 연맹을 만들려는 황제의 의향에 따라 에스파냐로 파견되었을 때 마드리드에도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외교적, 정치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황제 혹은 교황의 특사로서 활약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유명한 것은 창세기와 에제키엘서의 주석서이다. 그는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9년에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강론   :    (마태 12,46-50)


<예수님의 참 가족>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8-5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와 가족을 부인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는

"어떤 사람이 나의 가족인지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자."로 해석됩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라는 말씀은,

"그들은 내 가족이 아니고 '이들만' 내 가족이다." 라는 뜻이 아니라,

"'이들과 같은 사람'은 모두 나의 참 가족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말씀 앞에

"내 어머니처럼"이라는 말을 넣어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참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예수님께서 육적인 가족을 부정하시고

영적인 가족만(신앙 공동체만) 강조하신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해석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 라는 말씀까지 끌어들여서

육적인 가족은 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주장은 더욱더 옳지 않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해석한다면,

절대로 이혼하면 안 된다는(가족을 해체하면 안 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마태 19,6)과 모순되고,

하느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을 예수님의 부모로 정하신 일과도 모순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일과도 모순됩니다(요한 19,27).

예수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영적인 가족이면서 동시에 육적인 가족이었습니다.

성가정에서는 그 두 가지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의 말씀에도

육적인 가족과 영적인 가족을 구분하는 뜻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가족들마저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그들이 가족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은 아니었고,

가족을 실제로 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장모를 고쳐 주신 일은(마태 8,15)

베드로 사도가 장모와 함께 살고 있었음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 일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당신의 제자로 뽑으신 후의 일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지낼 때에는

아마도 베드로 사도의 집에서, 또는 그의 처갓집에서 지낸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 승천 후 사도들이 교회를 다스리던 때에,

베드로 사도는 계속 아내를 데리고 다닌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1코린 9,5).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은,

인생의 모든 목표를 세속에서 하느님 나라로 바꾸는 일입니다.

지상에서 가족과 함께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는 것.

그래서 실제로 가족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가족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내 가족이 되려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라."로 생각할 수도 있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내 가족으로 사는 것이다."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 이 말씀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경우에는

우선 먼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이 말은, 원래 권한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새로 권한을 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 권한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 또는 잃어버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그 권한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신앙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면,

"하느님의 자녀라면 자녀답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라." 라는 뜻이 됩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는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루카복음 15장에 있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작은아들처럼

집을 떠나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마태오복음 21장에 있는 '두 아들의 비유'의 아들처럼,

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마태 23,3)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예수님)은 아무에게도

"너는 내 가족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자신이 가족답게 살지 않아서, 즉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아서

스스로 자격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생활이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생활은 아닌지,

각자 스스로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정말로 하느님의 자녀답게(신앙인답게) 살고 있는 신앙인인가?"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