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을 찾 아 서 1335

[신앙단상] 아버지의 선물

뉴스를 보니 좋은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지구 곳곳의 이상기후 현상들, 극으로 갈라지는 사람들, 비극적인 전쟁들. 그래서 화로 날카로워진 사람들의 말들. 심각한 문제들이 많아 한 가지 문제에 ‘모두의 힘을 모아 해결합시다!’하고 집중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세상입니다. 몸이, 마음이 아픈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먼 곳 이야기할 것도 없이 제 자신의 어둠이 제 피곤한 몸과 마음에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틀려던 어느 날, 하얀 눈이 두두두두 선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큰 기대 없이 나간 산책길에 소복이 쌓여가기 시작하는 눈을 맞았습니다. 집 앞 공원 여기저기 안 밟힌 눈들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눈길 따라 들어간 공원 언덕에서는 한 꼬마가 아빠가 끌어주는 눈썰매를 타고..

길 을 찾 아 서 2024.01.21

[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 어머니의 마음으로

2019년 3월 25일 주교회의 정기총회 첫 날, ‘한국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의 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연수가 있었다. ‘하늘’과 ‘지인’을 활동명으로 쓰는 두 사람이 초대되었는데 각각 게이와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이들은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커밍아웃 스토리」의 출판을 계기로 주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초대를 귀하게 생각한 하늘은 “주교님들이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여겨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 남성을 한 사람씩 데려갔다. 대학 교수인 지인이 1시간 강의하고 질의응답이 1시간 이어졌다. 질문은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연수와 만남이 처음이었던 주교들은 놀라움과 포용으로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고해소에서 성소수자를 그렇게 대하지는..

길 을 찾 아 서 2024.01.20

[방주의 창] 클린, 그린 사회를 향해 / 강성숙 수녀

2024년 새해를 맞이하고 보니 몇 년 전에 근무했던 노인복지시설에서의 새해 아침이 기억납니다. 숲에 둘러싸인 작은 동산 언덕에 굳건하게 세워져 노인 인구가 당연히 으뜸인 작은 읍내에서는 그냥 작은 위안이 됐던 곳이기도 합니다. 어느 해의 새해 아침, 요양원으로 가기 위해 수녀원 현관문을 여는 순간, 와! 세상을 온통 하얀 담요로 덮어 놓은 듯 하얀 눈이 가득히 쌓여있었습니다. 초록색 나무들도 흰옷으로 갈아입었고 시커먼 도로도 하얀색 카펫을 펼쳐 놓은 듯했습니다. 요양원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야 하기에 빗자루를 들었지만, 마치 하느님께서 주신 새해 선물을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잠시 망설였던 생각이 납니다. 어느 교육과정에서 “환경,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으니 어머니 지구를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길 을 찾 아 서 2024.01.18

[시사진단] 공생명

현대 생명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 한 번의 기원을 통해 생겨났으며, 그에 따라 그 생명체를 이루는 메커니즘 역시 동일한 원리에 따라 기능한다. 물론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러한 사실을 하느님의 창조와 연결해 이해하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저지르는 일이기에 피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런 사실을 생명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생명을 이해하고 존중할 원리를 성찰하는 작업은 별개의 사안이다. 이런 과학적 사실을 밝힌 것은 린 마굴리스였다. 공생명(共生命) 설로 불리는 이 이론에 의하면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일한 생명체라기보다는 다양한 생명체가 서로 연합하고 함께 살아감으로써 더 복잡한 수준의 생명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 몸에는 세포 수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으며, 이들이 ..

길 을 찾 아 서 2024.01.16

[신앙단상] 없어 보여 멋진 삶

가난했던 우리 부모님들의 시절, 밥때 방문한 손님은 대접받은 밥을 남겨 상을 물렸다고 합니다. 손님을 위해 밥을 양보하며 굶은 사람을 위해서였다고 해요. 아이에게 이 음식 귀했던 때의 이야기를 해주니, “이유~”라며 미간을 찌푸립니다. 저는 최근에 부모님 댁 한지붕 아래 삼대 가족을 꾸렸습니다. 추억이 중하고, 알뜰하여 버릴 줄 모르시는 부모님의 집은 구석구석 추억의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삼대가 한 공간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는 많이 버려야 했는데, 버리려 할 때마다 부모님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궁핍과 풍요로움을 모두 경험하신, 여전히 알뜰하신 어머니는 커피믹스 봉지를 재활용하여 삶은 달걀을 위한 소금을 담습니다. 일회용기는 늘 재활용, 전단지는 접어 냄비 받침하고, 목 늘어난 양말로는 지갑을 만드십니다..

길 을 찾 아 서 2024.01.15

[사도직 현장에서] 미사 지각 삼세번

수도원에서 외부 일정을 요청받고 다니다 보면, 뜻하지 않은 교통 상황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예전엔 자주 다니는 길이라 교통 상황이 예측 가능했지만, 요즘은 같은 시간에도 전혀 다른 상황이 일어나곤 한다. 몇 해 전, 교구 사제 연수를 떠나는 본당 신부님 요청으로 우리 신부님들이 나흘간 하루씩 본당 미사를 맡게 되었다. 첫날 당번 신부님이 내부순환로가 막혀 본당에 제때 가지 못했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자 본당 수녀님·사무장·전례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도로 상황에 어찌할 수가 없어 모두 당황했다. 다음날 미사 담당자를 바꿔 내가 가기로 했다. 성사를 감안해 제법 여유를 갖고 출발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내부순환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접촉 사고가 나 도로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

길 을 찾 아 서 2024.01.14

[방주의 창] 사랑의 선물과 성역할 / 이동옥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내가 음식을 너무 잘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는 성실한 중년 남성이다. 그는 자녀들을 사랑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친정을 방문하거나 집을 비울 때 자녀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할 때면 라면 외에 요리를 할 줄 몰라 상황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는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시켜 먹었다. 나는 그에게 요리를 배우라고 권고했고 대단한 요리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밥, 국 등 간단한 요리를 통해 생존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소를 하지만 요리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므로 자신이 요리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팬데믹 전후로 나는 그를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다시 그를..

길 을 찾 아 서 2024.01.13

[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 축복에 대해 바뀐 지침

교회가 동성 커플을 축복해 줄 수 있다는 교황청의 최근 문헌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동성 커플을 축복한 이동환 목사가 감리교에서 출교 처분을 받고 열흘 뒤였다. 그래서인지 교황청의 결정에 가톨릭보다 일반 언론과 개신교계에서 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3년 “하느님을 진심으로 찾고 교회의 신앙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는 동성애자들을 내가 누구라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그 뒤로 그는 동성 커플을 만났고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려는 이들을 격려했다. 이전의 교회 입장과 달리 그는 동성 커플의 삶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시민결합법’을 지지하고 있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교종의 이런 행보에 감동한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 인권의 문제이고, 교종이..

길 을 찾 아 서 2024.01.12

[시사진단] 2024년 예상 뉴스 바꾸기

갈등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라 한다. 이번 명절은 누구네 집에서 보낼 것인지, 모임 대표로 누가 적당한지 등 일상의 순간에도 이해관계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고속도로를 어느 쪽으로 놓을지,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할지, 법인세율을 어떻게 조정할지 등 국가 차원에서도 집단에 따라 목표가 달라지기도 한다. 국경, 무역, 역사, 정체성 등 복잡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는 갈등의 당사자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집안일이든, 국가 정책이든, 국제 관계든 모든 갈등은 단번에 발생하지 않는다. 서로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입장은 다양할 수 있으나 작은 갈등이 쌓이고 커질 때 풀기 힘든 큰 갈등이 된다...

길 을 찾 아 서 2024.01.11

[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단일민족 한국, 새해 다문화·다민족 국가 된다

2024년 국내 외국인 비중이 처음으로 인구의 5%를 넘어서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한다. 아시아에서 최초다. 외국인 근로자를 먼저 받아들인 일본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다. ‘다인종·다문화 국가’ 진입은 주민 20명 중 최소 1명이 외국인 또는 이민자 2세, 귀화인으로 구성된 국가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호주, 캐나다가 있다. 이미 우리는 ‘대한외국인’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콩고의 왕자로 불리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하는 조나단과 그 동생 파트리샤, 여러 방송에서 독일의 다니엘,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벨기에의 줄리안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인 타일러의 한국어 실력은 놀랍다. 지난해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인요한’ 위원장이 맡았다. 인..

길 을 찾 아 서 202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