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연구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내게 왔을 때 나는 화급한 학교 일을 처리하느라 매우 바빴다. ‘선생님, 지금 바쁘세요?’ 학생들이 면담을 원할 때는 미리 약속을 잡는 편인데, 그날 그 아이는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왔다. ‘00구나, 들어와. 어떻게 왔어?’ 그 학기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 이름부터 외우기에 다행히 아이의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었다. 교실 뒤쪽에 조용히 있는 편이지만 친구가 있었고, 글이 섬세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대뜸 ‘죽고 싶어서 왔어요’ 라고 말한다. 첫 마디 치고는 너무 세다. ‘왜? 무슨 일 있어?’ 놀라 되묻는 내게 아이는 차분히 고민을 꺼냈다. 자꾸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사랑을 하게 된다고. 남자가 좋다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꺼내 놓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