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을 찾 아 서 1335

[신앙인의 눈] 평신도 신학자와 선교사 / 고계연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는 구치소와 교도소, 청소년 수형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열 번의 봉사자 교육을 받고 담당 신부님 면담을 거쳐 발령받아요. 저는 남부구치소에서 교리교사 일을 하고 있죠. 봉사자는 주로 미사 전례를 돕고 간식을 나눕니다. 여자구치소의 봉사자 자매님들은 그들과 직접 접촉하기도 해요. 1년쯤 봉사하다 보면 ‘여기에 참 잘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도 교육 이수하고 봉사하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11월 9일 가톨릭교리신학원(이하 신학원) 2학년 졸업반 강의실. 경찰·북방·공소 선교 등 6개 단체 설명회가 있었다. 선배들의 봉사 러브콜에 예비 선교사들도 귀를 기울였다. “신학이 ‘밥 먹여주는’ 시대 만드는 노력 필요.” 가톨릭신문 11월 12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이 눈..

길 을 찾 아 서 2023.12.01

[시사진단] 주님 업적으로 세상이 당신 조물로 가득합니다

주님의 업적으로 세상이 당신의 조물로 가득합니다.(시편 104,24-25 참조)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1,20) 시편과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말씀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그 세상의 모든 피조물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생명에는 하느님의 본성이 깃들어 있으므로 소중히 여겨야 하고 이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벼농사를 지으며 벼가 자라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제인 구달은 그의 저서 「희망의 자연」에서 다양한 생명들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거미줄’로 표현했다. 무농약 농사를 짓고 있어서 거..

길 을 찾 아 서 2023.11.30

[신앙단상] 사소한 것이 기적이다

스페인 지역의 있는 한 경당 전경. 옛날에는 본당이었을지도 모른다. 폰테 데 리마 천사들의성마리아성당에서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 정운필 신부 제공 산티아고길을 걸으면서 될 수 있으면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신분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피치 못할 때가 있다. 외진 숙소는 식사를 선택할 수 있는데, 그럴 때면 다른 일행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대화하다 보면 신분이 들통 난다. 특히 자녀와 직업 이야기를 할 때 그렇다. 미국 네브래스카에서 온 한 자매가 신부임을 알고 화들짝 놀라면서 마침 토요일이라 미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산티아고길에 사제는 지역 주교의 승인 없이 미사와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순례를 위한 일종의 공용 권한이다. 하지만 언어는..

길 을 찾 아 서 2023.11.29

[현장 돋보기] 평범하게 사는 일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집을 나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은. 누군가는 그런 일상이 무료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간절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모두가 잠든 저녁, 방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기대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었음을 생각하는 일, 또 내일 하루도 무사히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 말이다. 지난 8월 하청업체 일용직으로 일하던 강보경씨는 부산시 연제구 DL이앤씨 아파트 공사 현장 6층 높이에서 거실 창문 교체 작업 중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강씨는 대학..

길 을 찾 아 서 2023.11.28

[서종빈 평화칼럼] 하늘나라 여행 가방

만물이 옷을 갈아입는 늦가을에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 성월이 있다. 11월은 1년 중 가장 쓸쓸한 달이다. 일상의 고단함에 외로움이 겹친다.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 塞翁之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가장 많이 회자한다. 어디로든 떠나가고 싶어 한다. 여행 가방을 챙긴다. 넣고 빼야 할 물건을 고민한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늘 후회한다. 사용하지 못한 물품을 보면서 속절없는 미련이 남는다. 이사를 하거나 가재도구를 정리할 때도 과거의 물품을 선뜻 버리기가 어렵다.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 삶을 반추하고 죽음을 묵상한다. 천국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연옥으로 기도가 이어진다.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길 을 찾 아 서 2023.11.27

[사도직 현장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의 피정

토요일 아침 아홉 시, 북카페에 앉아있습니다. 주말 아침이라 서울 논현동 가구거리는 한산합니다. 길가에 선 느티나무들도 노란색,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고 그 아래로 두꺼운 점퍼에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수도회가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는 서원을 놓고 고민하다가 새로운 형태의 서원으로 북카페를 시작한 지도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북카페 소임을 맡아 일하면서 제일 좋은 때는 이렇게 아침 시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앞에 두고 조용히 거리를 내다보는 시간입니다. 자신 안에 잠기는 시간이 달콤하구나, 싶거든요. 우리 북카페 단골 중에 아이스 카페라테를 좋아하는 분이 있어요. 늘 시럽을 넣어서 마시는 분인데 지난번에는 한 모금 마셔본 뒤에 그러는 거예요. “어? 커피 맛이 변한 거 같아요!” “..

길 을 찾 아 서 2023.11.26

[시사진단] 중독 전문인력 양성에 힘써야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 인터넷중독을 4대 중독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4대 중독률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높은 편이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알코올사용 장애율은 13.9%이고 도박 중독률은 5.3%인데, 이 비율은 외국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캐나다에서 실시된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의존율은 조사에 참여한 24개국 중에서 5위였고,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중독이 심한 국가로 분류되었다. 마약류 사용 인구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들어 중독의 종류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어 중독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사에서 MZ세대 사회복지사들 또한 미래는 중독이 사회 문제로 더욱 ..

길 을 찾 아 서 2023.11.25

[신앙단상] 노란 화살표(flecha amarilla), 생명과 인연의 표시

정식 표시 말고도 주변에 노란색 화살표가 많이 있다. 포르투갈길에는 반대 방향으로 난 파란 화살표시가 있다. 어느 곳에 Fatima라고 씌여있느 것을 보니, 파티마로 향하는 도보길인가보다. 정운필 신부 제공 모든 산티아고길에는 표지석이나 안내표시 말고도 인쇄되지 않은 노란색 화살 표시가 있다. 이는 ‘생명의 표시’다. 누가 십계명을 “행복에 이르는 가이드 라인”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산티아고길 노란 화살표는 곳곳에 있는데, 화살표를 찾지 못해 심하게 헤매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생명이라고 절감한다. 출발부터 잘못 본 화살표에 반대로 갔지만, 화살표가 보이지 않을 때는 몹시 불안하다. 올바로 가고 있는지 이 화살표가 알려주는 것이다. 가끔 표시가 오래되어 흐리거나 길섶 풀숲에 가려져 있으면 지나칠 때가 있다..

길 을 찾 아 서 2023.11.24

[현장 돋보기] 미래의 주인은 누구일까

‘미래의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청년’이 아닌 ‘노인’이라고 대답하면 어떨까.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을 터다. 우습거나 황당하게 여기는 이도 있으리라. 그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주인 의식이 없는 주인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느냐’라고. 지난 10월 13~20일 일본에서 열린 ‘한일탈핵평화순례’를 취재하면서 든 생각이다. 인류와 공동의 집 지구의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고자 힘쓰는 이들은 청년이 아닌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12년 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지금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 체르노빌 핵사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류 최악의 핵사고인 후쿠시마 핵사고다. 여기에 최근 오염수 투기까지 더해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

길 을 찾 아 서 2023.11.23

[조민아 평화칼럼] 평화의 성사(聖事)

지난 10월 26~29일 한·미·일 주교단과 학계, 종교계, 시민 단체들, 젊은 세대가 함께한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다녀왔다. 내게 맡겨진 일은 3국의 젊은이들과 주교단의 대담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었다. 가을에 고향을 찾기는 참 오랜만이다. 정겨웠지만 슬펐다. 위령 성월을 앞둔 거리엔 1년 전 이태원 참사의 기억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산업재해로 죽어간 노동자들을 기리는 추모 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수십 년 억압의 역사가 더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러 결국 전쟁으로 폭발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었다. 나라 안팎, 전장과 일상을 가로지르는 그침 없는 고통의 파장 속에서 포럼 일정으로 휴전선 일대와 히로시마를 오가며, 나는 마른 뼈가 가득한..

길 을 찾 아 서 202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