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6월 29일 가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dariaofs 2017. 6. 29. 05:52

 

성 베드로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성 바오로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타르수스(Tarsus)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한다(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갔고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Athenae)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 법정 진술만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 사건이 유명하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비롯하여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a)에 갇히게 되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참고] 바오로의 여성형이 "폴리나"입니다.
이 이름을 아주 오래전에는 "보리나"라고 하였습니다.

 

강론   :   사도 12,1-11; 2티모 4,6-8.17-18; 마태 16,13-19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헌신과 열정으로 선포하는 복음의 기쁨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고기잡이를 하던 중 예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모퉁잇돌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교회를 이끌어갈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삼고 그에게 맺고 푸는 권한을 주십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그분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며 배신했지요. 그럼에도 그는 슬피 울고 다시 돌아와 교회의 기초를 확고히 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하기에 이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신자수가 늘어나고 있을 무렵,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맹렬히 그리스도교를 탄압합니다.

 

그는 신자들을 체포하려고 군사를 이끌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신비스런 회개체험을 합니다.

 

이후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배고픔과 추위, 박해 등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놀라운 열정과 헌신으로 신앙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교하다가 4년간이나 투옥되고, 39도의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으며, 태형을 세 번 당하고, 바다에서 일주일간 표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련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습니다(로마 8,39).

 

그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킨”(2티모 4,7)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그는 네로 황제의 박해 때인 서기 67년 성 밖에서 순교합니다.

우리가 공경하는 두 성인은 결코 완벽한 분들이 아니었지요. 인간 본성을 그대로 지닌 나약하고 부족한 죄인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단순하고 성격이 급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했으나, 정작 예수님께서 극심한 수난을 겪으시는 그 순간에 그분을 배신해버립니다.

 

유식한 바오로 사도는 회심하기 전에 그분을 믿는 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폭력성을 보였지요.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하필이면 이런 사람들을 교회의 두 기둥으로 삼으셨을까요? 그들은 나약했지만 하느님의 자비와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 때문에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 주님을 향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주님께서 그들에게 신앙과 사랑의 열정과 헌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두 성인은 탁월한 영적 감각도 지녔습니다.

곧 베드로는 배반하고 즉시 쓰러져 슬피 울 줄 아는 신앙의 겸손과 단순함, 그리고 정직함을 지녔습니다.

 

자신의 약함과 불신과 실패 모두를 주님께 맡기는 감각을 지녔던 것이지요. 사랑을 사랑하지 못한 아픔과, 사랑이신 주님과의 거리를 알아차리는 민감성이 있었던 것이지요.

 

바오로 사도도 자신을 "죄인 가운데 가장 큰 죄인"(1티모 1,15)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어둠을 명확히 보았기에, 빛이신 그분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축일을 지내며 인간적인 나약함과 시련 가운데서도 끝까지 주님 곁에 머물렀던 두 사도를 본받아야겠습니다.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세상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며 ‘살아계신 하느님을 선포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드러내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을 갈망하며, 사랑을 위해 타자(他者)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놓는 사랑의 사도가 되어야겠지요.

오늘도 죽어야 부활할 수 있고, 죽어야 잘 살 수 있음을 기억하며, 두 사도의 사도적 열정과 헌신을 본받았으면 합니다.

 

마음 열고 주님의 자비를 받아들여, 그 사랑의 힘으로 주님을 드러내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연약하고 자주 넘어지는 나이지만, 이 세상에 주님의 생명과 사랑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헌신과 열정으로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오늘의 사도들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