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마태 26,14-25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5)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유다 이스카리옷이 수석사제들을 찾아가 종 한 명 값인 은전 서른 닢에 그분을 팔아넘기겠다 합니다(26,14-15). 돈이 노예가 된 사람을 조종하기 시작합니다. 파스카 축제 전날 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드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26,21) 한심하게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것이지요. 그런데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좋았을"(26,24) 유다는 한술 더 뜹니다. 그는 뻔뻔스럽게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예수님께 여쭙니다(26,25). 그는 자신의 물욕을 충족하려고 예수님이 아닌 돈을 선택하고 맙니다. 감히 하느님을 팔아 자신의 탐욕의 곳간을 채우려 한 것이지요. 그는 어리석게도 생명의 곳간 대신 죽음의 곳간을 채운 것입니다. 돈에 집착하면 우리 영혼은 그렇게 갈갈이 찢기고 맙니다. 자아분열이 심해져 나도 알 수 없는 가짜 내가 나를 뒤흔듭니다. 돈집착증 환자가 되면 뻔뻔해져 거짓을 진실인양 자신있게 말합니다. 우매한 일부 군중은 그의 말에 환호했고, 그는 최고 권좌에 올랐지요. 그러나 그는 돈에 대한 집착이 극심하여 뻔뻔스레 악행을 일삼고, 탐욕의 밥그릇과 거짓의 국그릇만 챙겼던 것 같습니다. 그의 절친은 유다뿐이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유다의 모습이 숨어있을 수 있겠지요. 뭔가를 잘못하거나 현세의 우상들을 섬기면서도,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 말한다면 그건 유다의 목소리입니다. 성도 인격도, 생명도 돈보다 소중할 순 없지요. 그러나 이번에 수감된 전직 대통령은 유다처럼 국민의 존엄한 기본권을 짓밟아버렸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아분열과 관계단절을 부르는 거짓과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돈의 우상에 사로잡혀 인간은 물론 하느님과 예수님마저 상거래 대상으로 삼는 추악함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하찮은 물질과 욕구 충족을 위해 예수님께 소홀하거나 그분을 배반하여 십자가에 못 박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아니겠지요?”(26,25)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움 대신, 겸손하게 그분의 정의와 자비를 찾아가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8년 3월 30일 나해 주님 수난 성 금요일 (0) | 2018.03.30 |
|---|---|
| 2018년 3월 29일 나해 주님 만찬 성목요일 (0) | 2018.03.29 |
| 2018년 3월 27일 나해 성주간 화요일 (0) | 2018.03.27 |
| 2018년 3월 26일 나해 성주간 월요일 (0) | 2018.03.26 |
| -가톨릭신문- [장재봉 신부] 2018년 3월 25일 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0) | 2018.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