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요한 18,1-19,42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요한 19,17)
오늘의 전례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의 모습으로 우리의 모든 병고와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이사 53,4). 그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고,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 5,8-9). 하느님을 자신들의 고정된 틀 안에 가두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빌라도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유다 지도자들, 그에 동조한 무기력한 빌라도, 세상 가치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요한 19,15)고 외치는 유다인들, 모두가 어둠의 길을 달려갑니다. 군사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어, 그분을 거짓 왕으로 꾸미고 조롱합니다(19,2). 그분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보고 배운 베드로마저, 세 번씩이나 그분을 부인하고 맙니다. 예수님의 측은히 여기시는 사랑 앞에, 증오와 폭력, 거짓과 탐욕, 이기심과 헛된 야망, 배신에 이르는 나약함은 힘을 잃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늘과 땅이, 하느님과 우리가 이어집니다. 십자가는 영원한 하느님 사랑의 표지가 된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난하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자신에게 맡겨진 매일의 십자가를 사랑으로 져야겠지요.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작정 참아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 곧 곧 선과 사랑과 정의 때문에 겪는 고통은 견뎌내야 합니다. 십자가는 수동적 견딤을 상징하는 바보같은 묵인과 침묵과 견뎌냄의 표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죽어도 죽일 수 없는 생명의 주님께 대한 확신 속에, 적극적으로 불의와 폭력을 폭로하는 저항의 표지입니다. 연민으로 일상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의 불의와 악에 저항하는 복된 오늘이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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