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침을 주고 계실 때,
그 당시에 소위 한가닥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어디 출신인지, 누구에게서 사사 받았는지,
지금 말로 하면 서품은 어디서 누구에게 받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을 것 같습니까?
정말 강심장이 아니고는 당황하고 주눅들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숫자에 압도당하시지도 않고, 그들의 지위가 높은 것도 전혀 상관치 않으시고,
오히려 당당하게 반문하셔서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십니다.
복음의 내용으로 보아서 예수님은 참으로 담대한 분이셨구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병들고 약한 사람들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될 것을,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약하고 여린 사람이 되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옳지 않은 상황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 그 자체였습니다.
신앙인은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가르치고 계십니다.
능동적인 신앙인이란 마음의 힘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음의 힘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정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마음의 힘의 근본적인 원천은 감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성심리에서 감정이란 우리의 기본 욕구들이 채워지도록 하고
우리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움직이게 하는 연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감정에 대하여 잘못된 편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분노의 경우,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합니다.
화내는 것은 나쁘다고 하며 화내지 말고 참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분노는 자신을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게 하는 힘을 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분노는 사람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역할도 합니다.
두려움의 경우, 누가 두려움을 가지면, 많은 사람들이, 왜 그리 믿음이 약하냐고 질책합니다.
또 남자들이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 사내자식이 새 가슴인가, 떨기는 하면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만용을 막아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두려움 덕에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위험한 곳에 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위험에 대한 식별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처럼 감정은 사람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진 감정을 마음의 호르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들을, 병적인 윤리관이나 신앙관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자기마음 안에서 삭제하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근육을 없애려고 하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하신 적이 별로 없으십니다.
슬플 때는 우시고 기쁠 때는 웃으시고 화가 나셨을 때는 화를 내셨습니다.
사람이 가진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고 사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당당한 마음으로 한 세상을 사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삶이 그러할진대 우리 역시 우리 삶을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잘 키워야 겠습니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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