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평화를 사랑하시고 폭력을 싫어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에는 당신이 성전에서 일종의 난동을 부리신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환전상들과 비둘기 장사들의 상을 둘러엎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선 성전의 구조부터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성전은 구조상 몇 개의 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의 뜰, 이중에서 오늘 사건이 일어난 곳은 이방인들의 뜰이었습니다.
언제나 아주 복잡하고 분주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유월절이면 세계 각 곳에서 몰려온 순례자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환전과 제물판매, 이 두 가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매매에서는 모든 화폐가 통용되었으나 성전에 바치는 돈은 특정한 화패여야 했습니다.
순도 높은 은화만을 사용하였습니다.
소위 환전상들은, 이 성전화폐로 바꾸어 주는 사람들인데,
너무 많은 수수료를 챙기면서 순례자들을 상대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었습니다.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은 더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것으로건 제물을 바치게 되어있었습니다.
출산한 여인이 출산 후 정결을 위해서나 문둥병자가 자기가 완치된 것을 입증하려고 할 때 등등
비둘기는 성전 밖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재물의 상태가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검사관은, 성전 밖에서 산 동물들은 반드시 불합격시키고
모든 제물은 성전안의 매점에서 사게 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성전 안의 재물들이 너무 비쌌다는 것입니다.
제물파는 매점은, 제사장의 이름의 따서 안나스의 특매점으로 불렸는데
대제사장 가족의 사적인 재산증식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일들은 아주 오랫동안 관행으로 이어져왔고 이에 사람들은 불만을 가져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이런 좋지 않은 관행에 정면으로 일격을 가하신 것입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뒤에서 이익을 챙기는 제사장들에게는 충격을 주고
손해를 보면서 불만스런 마음으로 기도하던 사람들에게는 후련함을 안겨 주셨습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어느 쪽이건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왜곡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충격적인 행동을 하심으로써, 왜곡된 마음을 어떻게라도 돌려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복음기록을 보면서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폭력 혁명가의 원조시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제도의 잘못된 부분을 개혁하시려고 힘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기도하는 집을 만드시는 것
사람들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신 것뿐입니다.
제사장이건 장사하는 사람이건, 손해 보면서 재물을 사들인 사람이건 어떤 사람이건 간에
어떤 잡스런 생각도 갖지 않는 순수한 신앙인의 자세를 가질 것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성적으로 병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하신 것이지
제사장들이나 환전상들은 가해자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혁명가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사람의 마음이 주님께 투사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자기 마음 안의 증오심을 주님께 전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왜 주님을 혁명가와 동일시하고 싶은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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