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우리는 평일 복음을 마태오복음서에서
루카 복음서로 넘어 오게 되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루카는 루카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하기도 했지만,
의사이기도 하였고,
또한 성모님의 모습을 그린 화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달란트가 주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어쨋거나 루카는 그리스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학식이 높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프랑스의 종교비평가인 르낭이라는 사람은
루카복음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칭송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신학교의 저명한 성서신학 교수님도
네 개의 복음서 중에 하나만 읽는 다면 어떤 것을
읽을거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루카복음서”라고 대답하셨는데
이처럼 루카복음서는 문학적인 측면에 있어서
복음서 중에서도 Masterpiece, 즉 명작이라고 불리웁니다.
또한, 루카복음서는 지금 우리 본당 신자들이 본당의 날에 봉헌하기 위해
필사하고 있는 마르코 복음서와 비슷한 점이 많고,
루카복음사가 역시 마르코 복음서를 읽고 또 필사를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루카복음사가의 문학적 기법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이야기들의 구성, 즉 사건과 사건들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이야기 안에서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에도 뛰어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더러운 마귀에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당신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다!”라고 하며 관계의 단절을 선언합니다.
제가 청소년일때, 저의 어머니가 때론 제가하고 있는 일을 물어보시거나 참견할때면,
“엄마가 무슨 상관이야! 또는 신경끄세요!”라는 말로
관계를 단절하곤 하였습니다.
저 뿐만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무관심하고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남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합니다.
그러다보니, 바로 옆에서 소매치기를 당해도 무관심하고
여러사람이 한 사람을 죽을 때까지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리지도 않을 뿐더러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는 충격적인 일도 발생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들린 사람에게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이 사건의 저변에는
구마의 능력과 더불어
인간관계를 단절한 사람을 다시금 관계를 맺게 해주셨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겠습니다.
곧,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이웃과 함께하도록
마귀들린 사람의 관점을 바꾸어 주셨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과 형제자매, 또 이웃과의 삐뚤어져 있는 관계가 회복될 때,
우리는 마음깊은 곳에서 알수 없는 따뜻함과 벅차오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때론 관계가 주는 기쁨의 희열까지도 느끼게 됩니다.
이와반대로
누군가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때,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허무적으로 변하고
비판적으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웃에게 또는 가족들에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하며
관계를 단절할 때면
나 자신은 스스로 고립의 상황에 빠져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관계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적 관계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달라고 기도 해야겠습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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