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연중 24주간이 마칠 때까지
보름간 평일 독서로 코린토 1서를 읽게 됩니다.
코린토서는 사도 바오로가 직접 쓴 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코린토 교회 내부에 여러가지 분열이 발생했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이를 진화하기 위하여
“사랑”이 중심이 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하며
“믿음과 희밍과 사랑, 그 중에 의뜸은 사랑 (agape)”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당시에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에 있었는데
코린토 교회 안에 여러가지 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박한 심정으로 이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됩니다.
코린토 교회에서는 지리적으로 그리스 항구도시이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했고,
여러가지 철학과 종교가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여,
이방신들에게 제사를 지낸 음식을 먹는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여러가지 성령의 은사 중에서도
방언을 하는 것이 최고의 은사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방언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상황을 겪고 있었습니다.
서로 자기가 받은 은사가 더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던
코린토 교회에 바오로 사도가 말하기를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라고 이야기 하시며
오히려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을 선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라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예레미야서 9장 22절에서 23절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혜로운 이는 제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힘센 이는 제힘을 자랑하지 말며
부유한 이는 제 부를 자랑하지 마라.
자랑하려는 이는 이런 일을,
곧 나를 이해하고 알아 모시는 일을 자랑하여라.
나는 과연 자애를 실천하고 공정과 정의를 세상에 실천하는
주님으로 이런 일들을 기꺼워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섬기는 것이
겸손의 표본입니다.
겸손은 외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하느님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인식할 때,
내적인 겸손의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겸손은 내적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앞에서
나도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겠다는 외적인 표현이
함께 일치될 때 얻어지는 덕이고,
이를 겸덕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탈렌트를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종은
내 앞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겸덕을 깨닫지 못했던 코린토 교회의 구성원일 것입니다.
다섯 탈렌트를 가지고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던 종과
두 탈렌트를 가지고 두 탈렌트를 더 벌었던 종은
하느님 앞에 서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겸덕을 완덕으로 승화시킨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그 겸덕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빕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 (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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