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2일 나해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코린토 교회 신자들은 에페소에 있던 바오로에게
혼인과 관련된 질문을 하였고,
오늘 1독서의 내용은 그 질문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답변입니다.
혼인과 관련하여,
첫번째로 먼저 혼인한 사람들의 경우
주님께서 각자에게 부르신 대로
끝까지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권고하였고,
혹시라도 신자가 아닌쪽에서 헤어지기를 요구할 경우,
헤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신자들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하여
바오로 특전의 근거로써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아직 혼인하지 않은 경우,
바오로 사도가 주님의 명령을 특별히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내놓습니다.
즉, 지금 그대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독신 또는 과부로 그냥 살아가라고 권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든 힘과 열정을 다해 주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남녀가 하나가 되는 완전한 삶을 살고 있지 않더라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주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원기때 무전순례를 하다가
시골에서 어느 개신교 할머니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시길래
천주교 수녀님같이 살아가는 남자 수도자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할머니께서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신후,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내가 왜 이 할머니께 이러한 이야기 하고 있을까?”하는 후회가 되었습니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으로 딱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바오로 사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재림을 더욱 갈망하며 기다릴 수 있는
독신의 신분도 필요하다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종교적의미에서
독신의 삶은 사실 종말론적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라는 표징으로써
힘겹고 어려운 세상이 끝나면,
완전한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기다린다라는 표징입니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바오로 사도의 종말론적 관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 곧” 종말이 온다고 믿고 있었지만,
현대의 많은 이단들처럼
“언제 종말이 올거라는 것인가?”에 중요성을 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더 큰 중요성이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은 종말이 올 것을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임을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희노애락의 특별한 순간들을 통하여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곤 합니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와 견진, 서원과 서품 그리고 순례 등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미 자신 과거의 죄와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지금
여기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다 라는 이 말씀을 이해할 때
먼 미래에 하느님 나라에서 살 것이기때문에
현세를 잘 참고 견뎌내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바로 지금 여기와 아주 가까운 미래,
1초후, 1분후, 10분후 일 수도 있습니다.
아주 가까운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해야 합니다.
오늘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참된 회개를 한다면
곧바로 우리에게 새로운 삶
즉,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 (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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