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주님을 뵙는 갈릴래아를 찾으십니까?
(제1독서) 이사 35,4-7ㄴ (제2독서) 야고 2,1-5 (복음) 마르 7,31-37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 유다 땅에서 출생하셨지만 갈릴래아 지역의 나자렛 마을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
또한 갈릴래아는 주님의 첫 기적이 일어난 카나가 있는 고장이고 죽은 나자로를 살리신 마지막 기적이 베풀어진 고장이기도 합니다.
더해서 제자들이 백쉰세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 올렸던 곳, 제자들에게 부활 후에 만날 곳으로 갈릴래아를 지목하셨다는 것을 기억할 때, 갈릴래아야말로 주님께 참으로 특별한 곳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그곳, 갈릴래아야말로 주님의 은혜가 쏟아지는 자리라 싶습니다. 나아가 우리 믿음의 길에서도 갈릴래아가 존재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곳, 주님을 뵙고 주님과 함께 하는 은혜의 터를 소유하고 지내시는지요?
그날 주님께서는 문제도 많고 그만큼 시름도 깊었던 고장 갈릴래아를 다시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귀가 먹어서 말을 더듬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과 마주하십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주님께 나올 수 없었을 것이란 사실에 마음이 끌립니다.
그래서 더욱 홀로 할 수 없는 이웃을 주님께로 이끌어 주었고 말을 할 수 없는 그를 대신해서 주님께 청을 드린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남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간구해주는 이웃의 모습에 주님은 무척 행복했을 것이라 어림하게도 됩니다.
그런 만큼 내 우선주의에 빠져서 자신과 가족만 챙기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주님을 무척 아프게 할 것이라 싶습니다. 병든 세상을 외면하는 우리, 앓는 세상을 모른 척하는 우리 모습에 주님의 가슴앓이가 깊을 것이라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팔고 방황하며 울부짖고 있는 세상을 모른 척하는 우리 모습에 주님은 슬픔이 복받쳐 목이 메일 것만 같습니다. 이렇듯 이웃의 문제를 모른 척 외면하는 일은 곧 복음에 눈이 먼 꼴이니 말입니다.
이웃의 사정에 귀를 닫고 지내는 것이야말로 복음에 귀가 멀어버린 행색이니 말입니다.
때문에 허구한 날 성당을 들락거릴 뿐, 정작 주님의 뜻에 반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내내 하느님의 뜻에 딴청만 부리는 못난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때문일까요?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또 거푸 말씀하십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 하물며 성경의 마지막 책 묵시록에서 일곱 교회에 들려주시는 말씀마저 한결같습니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묵시 2장 참조) 이렇게 주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물론 듣되 제대로 듣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똑같은 말을 듣고서도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태도이니 말입니다. 이런 점은 우리 역시 일상에서 자주 겪는 일인 만큼 그 난감한 기분을 잘 이해하실 터입니다.
따라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들으려 하지도 않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내처 그런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심정이 어떠실지 살피게 됩니다.
오늘 마르코 사가는 그날 주님께서 귀가 먹고 말이 어눌했던 사람을 치유해 주는 모습을 타 복음서와 색다르게 전해 줍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뜻을 묵살하고 있는 우리 모습에 안타까운 한숨만 내쉬신다는 의미로 듣게 됩니다.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영적인 눈이 멀어 헤매는 우리의 어눌한 영성에 주님께서는 탄식하신다는 뜻을 캐게 됩니다.
그래서 사제는 속이 상합니다. 돈을 가져야 세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판단으로 세상의 것을 자랑하며 지내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도 다수이니 말입니다. 재물이 제일이라는 세상의 지론에 항복한 추한 모습을 수없이 만나게 되니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이 아픈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 애쓰기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으로 세상의 수많은 문제를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느님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둡고 답답한 갈릴래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도 그 누가 아닌, 바로 나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문제가 수두룩하여 매일 탈이 나는 이 세상이 바로 우리의 갈릴래아입니다. 안타깝게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이 주님을 뵙는 갈릴래아입니다. 언제나 나만의 갈릴래아에서 주님을 뵙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기를 청합니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부산 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교무처장 및 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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