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분도 신부의 추묵화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dariaofs 2018. 11. 15. 17:18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나의 몸과 영혼을 주님 은혜로 다 채워주소서
이 세상 괴로움 걱정 근심 주여 받아주시고 힘든 세상에서 인도하소서
예수~~~~예수 지금 오셔서 예수~~~~예수 채워 주소서
 
당프 22~23 모든 사물의 새로운 광채, 과제의 발견
 
    세기적 재판을 거쳐 육신의 아버지와 이별한 프란치스코는 이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갈등하던 마음과 과거에 끄달리던 두려움이 사라진 지금, 새로운 빛으로 빛났다. 이제 하느님은 그의 아버지이시고 그것으로 그는 충분했다.

행복하고도 자유로웠다. 집도, 식량도, 직업도, 친구도, 명예도, 과거도 모두 툴툴 털어버린 알몸 벌거숭이였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의 보호를 실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퓰리처상을 받은 전쟁터에서 쌔근쌔근 잠드는 아이) 숲과 골목길에서 노래를 부르며 정처없이 거닐었다.

모든 사물에서 광채가 빛나고 있었고, 이 시점부터 접하게 되는 모든 사건은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를 때리고 입고 있던 옷을 찢은 후 눈구덩이에 던져버린 도둑들을 만났어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오로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려는 프란치스코에게 그분께서는 몇 번의 전환점을 통해 그의 결심을 더욱 굳건히 해주셨다

 첫 번째 전환점은 굽비오에서였다. 그곳에서 그의 친구 페데리코가 그에게 식량과 옷을 가져다주어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낼 수 있었다. 주님은 자비로우셔라 ~ 감사와 찬미!!!

 두 번 째는 굽비오 근처의 나환자촌에서였다. 그곳에서 그는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벽화 속에서의 얼굴이 아니라 나환자들의 썩은 육신 즉 쌩얼을 통해서 였다.

며칠을 같이 지내며 자신이 가장 역겨워하고 두려워하던 일을 극복할 수 있었다. 주님은 자비로우셔라 ~ 감사와 찬미!!!

 세 번 째산 다미아노 성당에서였다. 아버지의 돈이 아닌 본인이 아씨시 거리에서 직접 동냥한 돈과 마음씨 착한 농민들로부터 얻은 벽돌을 가지고 성전을 수리해 나갈 수 있었다. 주님은 자비로우셔라 ~ 감사와 찬미!!!
 
나눔꺼리 :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체험하는가?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온전한 선, 완전한 선, 충만한 선이신 분 ~ 우리는 선을 체험함으로써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

내 인생 내 삶속에서 그분의 선하심을 체험한 날은 없었던가?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를 노래 부를 수 있었던 날은 언제였던가? 그것은 분명 하느님의 체험이다. 우리는 이 체험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시인 홍윤숙 등잔 밑이 어두워 그들은 금강석을 돌이라 버렸습니다. 등잔 밑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금강석을 돌로 보지 않는 마음의 눈 간절히 원하건만 내 마음은 언제나 눈뜬 봉사. 낮과 밤조차 가리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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