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40)
마귀에 들려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어 가던 한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인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은 썩 편치 않은 듯합니다.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마르 9,38)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끔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반대한다고, 내 생각이나 사고와 맞지 않다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거나 속상해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잠이 안오고 어떻게 해볼 수 없을까 온갖 고민과 번민을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질적인 당파싸움의 유전인자 때문에 늘 이런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람들은 언제나 편가르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니편내편을 갈라,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버리려고 하지요. 현대에 올수록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편가르기는 더욱 교묘해지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편에 가담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정당정치는 물론이고 기업마케팅, 스포츠에도 엄청 스며들어 있지요. 축구가 뭐길래, 야구가 뭐길래,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도 적으로 편가르기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게 없으면 재미가 없다나요.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그렇게 하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냥 내 버려두라고 하시며, 내 맘에 안든다고 다 내편이 아니라 생각하지 말라시네요. "막지 마라."(마르 9,38)는 말이 이렇게 들립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경계하지 마라. 사실 모든 이가 내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이도, 따르는 이도, 지지하는 이도 내 사람이고 내게 무관심한 이도, 나를 부정하는 이도, 내게 실망해 등돌린 이도, 심지어 나를 미워하는 이도 내 사람이다.
자녀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내 자녀가 아니라 할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미움도 분노도 실망도 무관심도 막지 마라. 모두 지나간다. 아버지의 질서 안에 그저 흘러가게 두어라. 지금 모르면 굳이 알려고 하지 마라."
사실 언제나 나를 반대하는 사람,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한둘 정도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나를 좋아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도 몇몇은 있을 테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싫어하지도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다 나의 적일까요? 그들이 다 나의 지지자들이라고 여기라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 아닐까요? 그렇게 된다면 늘 90% 이상이 나를 지지하게 됩니다.
자,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잘 한번 살펴보세요. 나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괜찮아요. 한둘 정도는 문제 없어요.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나요?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하며 감격하세요.
나에게 큰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나의 지지자들이라고 여기세요. 사실 웬수같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지지하고 아무 표현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대부분 마음으로 지지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그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속상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보잘것없는 나를 지지해 주고 무언의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되면 언제나 신나지 않겠습니까? 오늘 괜히 사람 편가르기 하지말고 모두 내편이라 여기며 신나고 행복한 하루 꾸며봅시다. 오늘은 특별히 나를 늘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이들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면 어떨까 싶네요.
오늘 집회서는 소위 '지혜찬가'를 들려줍니다. "지혜는 자신의 아들들을 키워 주고 자신을 찾는 이들을 보살펴 준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 지혜를 붙드는 이는 영광을 상속받으리니 가는 곳마다 주님께서 복을 주시리라.
지혜를 받드는 이들은 거룩하신 분을 섬기고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집회 4,11-16)
오늘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많은데 지혜가 많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집회서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그가 탈선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파멸의 손아귀에 넘기리라."(집회 4,17-19)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남(의)편'을 '내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가시밭길, 두려움과 공포, 단련과 시험 등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거쳐야만 이 '지혜'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답니다.
"지혜는 곧 돌아와 너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집회 4,18) 그러니 기다려라. 언젠가 네 "앞에는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화답송)
오늘 제2차 북미회담이 개최됩니다. 두 정상의 지혜로운 결단으로 서로의 적이 한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이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 아쉽고 억울하지만, 지혜의 편에서보면 바빌론 유배를 끝내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이방인 왕을 이용하셨듯이, 하느님의 방법론이라 받아들인다면 이 또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니편내편으로 갈라진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평화를 하느님께서 남의 손을 빌어 이루어주실 수밖에 없구나 인정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침묵중에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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