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3.01. 연중 제7주간 금요일

dariaofs 2019. 3. 1. 03:39



가끔 "도저히 못살겠습니다. 신부님 이혼해도 됩니까?" 물어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 마음 안에서는 "그렇게 지옥으로 살 바에는 이혼하십시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때마다 오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2)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난해한 문제를 들고 왔습니다.


혼인과 이혼에 관해서 입니다. 약자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시고 여성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자기들이 지키는 모세의 율법 가운데 이견의 소지가 있는 사안을 들고 나온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목숨같이 지키는 그들에게 모세의 명령은 어떠했냐고 되물으시고는, 그런 계명을 기록해 남긴 모세의 어쩔 수 없는 심경을 모세를 대신해서 피력해 주십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마르 10,5) 즉,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기보다 인간의 완고하고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차선으로 그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었던 미봉책 정도였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모세 이전의 법, 즉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 에덴동산에서 행복했던 시절,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시면서 질서지워 주신 원리를 언급하십니다. 법의 본질로 돌아가 근본 정신을 일깨우시려는 듯합니다.

그때 아담은 하느님께서 제 갈빗대로 지으신 여자를 데려오시자 이렇게 부르짖었었지요.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


이 부르짖음은 기쁨에 겨워 외친 환호입니다. 자기가 이름 지어준 피조물 가운데 드디어 저와 비슷한 존재를 발견하고 반가움과 사랑에 들떠 외치며 당장 이름부터 지어 주는 관계맺음의 첫 시작입니다.


부부의 연을 시작할 때 모두 이렇게 영혼의 반쪽을 만났다고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주님을 경외하고 서로를 존중하기보다는 마음이 완고해져 가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버리려하는 단계까지 와 버린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에서는 사회와 가정 안에서 여성의 권리가 매우 취약했습니다. 남자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거나 싫어지면 아내요 어머니이며 한 인격체인 여성의 거취가 함부로 취급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성이 남성과 더불어 한 몸이 된 존재이기에 이제는 둘이 아닌 하나임을 강조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셨기에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집회서는 "친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육적인 사랑까지 포함해서 하나를 이루고 사는 혼인유대관계의 남녀에게 친구관계를 이야기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집회서 저자가 제시하는 한 덕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바로 "주님을 경외하는 이"(집회 6,16.17)입니다.

사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라면 친구로도, 연인으로도, 부모로도, 자녀로도, 스승으로도, 제자로도, 주인으로도, 종으로도, 즉 어떠한 관계성을 맺어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주님께 직접 올리는 경외심에 더하여, 타인 안에 담긴 주님의 모습을 알아보고 그를 귀하게 여기며 삼가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상대를 대하는 혼인유대관계 안의 남녀라면, "성실한 친구"(집회 6,14.15)처럼 서로에게 "든든한 피난처, 보물, 지고한 가치, 생명을 살리는 명약"(집회 6,14-16)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방금 나열한 "성실한 친구"를 일컫는 표상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자기들의 주님께 붙여드리고 고백한 명칭들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옵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서로의 안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며 존경과 사랑을 공유하는 남자와 여자는 이미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한 몸입니다.


그러니 둘 중 어느 누구도 이 하나됨을 손상하거나 상실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보고, 만나고, 섬기는 사랑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벗님 여러분은 친구가 많나요? 저도 sns 친구가 많습니다. 수천명이 되지요. 그런데 대부분 이름만 친구지 얼굴도 모르고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요. 그중 쌍방소통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친구도 여러 종류가 있지요.


좋은 친구가 있는 사람은 정말 복된 사람리지요. 그런 친구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갖고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런 친구를 얻을 수 있을까요? 방법은 단 하나 '주님을 경외하는 이'가 되는 것밖에 없답니다.

오늘 '주님을 경외하는 이'에게 '성실한 친구'를 붙여주시는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여러분의 그 '친구'에게 깊이 감사하고, 나또한 누군가의 그런 친구가 되도록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