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7.12.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dariaofs 2019. 7. 12. 05:55



복음에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당부가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제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두려움을 야기하는 위협적인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리 떼, 의회에 넘김, 채찍질, 끌려감, 죽게 함, 미움, 박해" 등 입니다. 그저 듣기만 해도 불편하죠. 어쩌면 인생에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복병들입니다.

복음 선포와 치유, 구마 등의 권한을 받아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로 우쭐하기도 했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제자직의 진면모를 드러내십니다.


이 길은 과거 예언자들이 걸었던 길이고, 주님의 길입니다. 단맛만 존재하는 인생이 없듯, 이제 쓴맛까지 알게 된 제자들이 진정한 제자의 길로 초대된 셈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찬찬이 살펴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단지 위험 요소만을 나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끌려가고 채찍질 당하고 관리들 앞에 설 테지만,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니"(마태 10,20)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하시고, 또 당신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겠지만,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마태 10,22)이라고 위로하시지요. 또 박해를 받겠지만 일단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마태 10,23)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고보니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그저 고통으로만 끝나는 내용은 없네요. 모든 고난에 희망의 열매가 반드시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이것이 곧 파스카의 여정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예수님께서 얼핏 듣기에 상반되는 덕목을 동시에 요구하십니다. 에덴에서 인류의 적이 되어 버린 뱀과, 노아에게 올리브 잎을 물어다 주어 땅에서 물이 빠졌음을 알린 비둘기의 조합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지요.


그런데 고대 전통에서 뱀은 지혜의 상징이고, 비둘기는 온유와 순결, 평화와 희망의 상징이니, 이 모든 덕목이야말로 험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지혜로우면서도 가식으로가 아니라 진실로 순박한 영혼이 되는 건 인위적인 자기 노력만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비우고 또 비워 하느님 안에 깊이 침잠한 영혼이 은총에 힘입어 길어 올릴 수 있는 샘물이니까요.

제1독서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창세 46,3-4)

파라오가 혁혁한 공을 세운 요셉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 가족을 이집트로 초청하고(창세 45,16-20), 이를 받아들인 이스라엘의 가족이 이집트에 정착하면서 이제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의 역사는 새롭게 전개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유다 민족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파스카 사건의 밑그림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만난 야곱의 기쁨에 머무릅니다. 죽음같은 상실과 실의에 찬 삶 끝에 얻은 놀라운 보상입니다.


이 역시 굵직한 역사적 흐름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파스카 중 하나입니다.


고난과 죽음을 통과해 부활로 이어지는 파스카는 민족 전체의 공동 체험이기도 하지만, 제자들 각자, 우리 각자가 저마다의 삶에서 겪어내고 있는 개별적 체험이기도 하니까요.

십자가 죽음 없이 부활은 없습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뒤따라온 행복도 무미건조할 뿐이겠죠. 어둠이 없었다면 빛이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지 모를 겁니다.


우리의 삶은 성조들이나 제자들의 삶이 보여주듯, 그저 슬픔과 고통으로 끝나버리지 않고 반드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위로와 보상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파견 훈화에서 무엇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고통에만 주목해 주저하고 두려워하느냐, 아니면 이어지는 하느님의 현존 약속을 믿고 의탁하느냐, 파스카의 초대 앞에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선택하는 일은 우리 몫일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파스카의 신비를 일상 안에서 살아오셨으니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늘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간 것처럼 벗님도 순례의 여정으로 또다시 초대받을 겁니다.


이집트에서 힘을 기른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로 우리에게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열렸으니, 벗님에 대한 주님의 축복과 함께하심을 믿고 이 순례의 길을 기쁘게 걸으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