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 독서말씀 중에 유난히 반복되며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창세50,19.21)
제1독서인 창세기는 형들이 고인이 된 야곱의 유언을 빙자해 요셉에게 용서를 재차 간청하는 대목입니다.
요셉 덕에 이집트에서 풍요로이 지내던 형들이 아버지 야곱의 죽음을 맞자, 자기들이 요셉에게 저질렀던 죄의 댓가를 이제라도 치르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미 요셉에게 용서를 빌어 화해가 되었음에도(창세 45,5) 여전히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들에게 요셉이 반복해 들려주는 용서의 다른 표현이 '두려워하지들 마시라'는 것이지요.
마치 고백성사를 통해 모든 죄를 용서받았음에도 여전히 과거의 잘못에서 온전히 해방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케 합니다.
"형님들이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세 49,20)
사실 요셉의 마음 속에는 형들이 두려워하는 적개심이나 복수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요셉이 이미 하느님의 시각으로 삶의 궤적을 재해석하였기에 분노나 피해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 형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자기들이 저질렀던 죄악의 상처가 남아서 어둠을 피워올립니다. 그 악취는 두려움이 되기도 하고 죄의식이 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얼만큼 두려워 말라는 말을 듣고 또 들어야 진짜로 두려움에서 해방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죄악의 상처가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은 주님의 제자로서 겪게 될 박해와 고난의 길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스승인 당신이 감수하고 있는 몫임을 밝히는 대목에서 격려처럼 등장합니다.
불과 얼마 전 예수님은 치유 기적으로 한 영혼에게 생기를 되찾아 주셨음에도 바리사이들에게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마태 9,34)는 비난을 들은 바 있으시지요.
'스승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제자들에게 무슨 말인들 못 하겠느냐'는 뜻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파견 당부와 수난예고(마태 16,21-23) 사이에 징검돌처럼 존재합니다.
이처럼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이 등장한 문맥은 조금씩 다르지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로 모아집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창세 50,19)
요셉은 심판과 복수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복음에서 예수님도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라고 일러주고 계시지요.
그런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요셉의 형들에게 잊지 않고 희망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창세 50,24)
즉 옛 죄의 굴레에 묶여 퇴행할 때가 아니라는 것, 결국 하느님이 그리고 계신 더 큰 구원의 그림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구원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
당신을 알고 고백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서 배척과 박해를 당하겠지만, 바로 그 앎과 고백 덕분에 그 이름이 하느님 귓가에, 그분 마음에 새겨지리라는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여러분은 두려우신가요? 사실 우리는 서로 생김새가 다른 만큼 영혼도 고유하고 삶의 모습도 다릅니다. 저마다 두려움의 종류와 크기, 농도와 색깔 또한 다를 겁니다.
나의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것이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 앞에 선 경외심인지, 아니면 아직 사로잡혀 있는 욕망과 죄악의 수치스러움인지 직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희망을 주시는 그분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죄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면 희망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만 그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두려움에 싸여 스쳐보내기엔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의 축복이 벗님을 온갖 두뤄움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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