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 하신 예수님의 당부를 담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이 말씀은 복음 선포, 치유, 되살림, 구마 등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한"으로 이루어질 모든 일들의 원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제자들의 소박한 출신 성분이나 기질적 부족함이 오히려 하느님 도구로서의 자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율법에 능통한 학자 계급도 아니고 의술에 출중한 재주를 지닌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투박한 이들이 하느님의 도구가 될 때, 그 자신이 아닌 하느님의 권능이 더욱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또 자기 것이 아닌 능력에서 나온 결실에 대해 아무도 소유권이나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을 겁니다. 그 권한의 원천이 자신이 아닌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될 이들보다 한 발자국 앞서 은총을 체험한 이들입니다. 순서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오히려 먼저 받은 이에게는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할 거룩한 사랑의 의무가 주어지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길 떠나는 이가 준수해야 할 가난과 의탁, 머무름, 평화의 기원, 거부당할 때의 대응 방법을 차례로 일러 주십니다.
"마땅한 사람."(마태 10,11)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 마땅하지 않으면..."(마태 10,13)
마땅함이라는 말씀에 머무릅니다. 합당하고 적합하며 제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권력이나 재산, 지식, 힘을 소유한 존재를 가리키기보다, 길을 나선 제자들을 환대하고, 가난하고 부족한 그들을 통해서도 하느님 현존을 감지해 존중하는 이들을 가리킬 겁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마태 10,14)
제자들은 충분히 거부와 배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꽃밭만 주어지지는 않으니까요. 예수님은 그에 맞서지 말고 평화의 사람으로서 대응하기를 바라십니다.
담담히 떠나되 어떤 마음의 앙금도 남기지 말고 "발의 먼지"와 함께 털어 버리라고요. 심판은 하느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는 요셉과 형제들의 화해를 다룹니다.
"우리 목숨을 살리려고 하느님께서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 45,5)
놀라고 두려워 당황하는 형들에게 요셉이 한 말입니다. 이는 요셉이 형들에게 버림받아 이국땅에 팔려가면서부터 시작된 고통의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자기와 함께해 주시며 복을 내리셨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말입니다.(창세 39,2.23; 41,38 참조)
내 잘난 덕에, 자기 능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베풀 수 없는 신비한 힘에 감싸여 왔으며,
비록 이방인이지만 자기를 지키시는 하느님의 힘을 감지하고 경외하며 존중한 여러 "마땅한 사람"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걸 놓치지 않는 그는 진정 "하느님의 영을 지닌 사람"(창세 41,38)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먼저 준비시키셨다고 굳게 믿으며 고통과 슬픔의 앙금을 말끔히 털어내었습니다.
"우리 목숨을 살리려고..."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가 된 요셉이 여전히 형제들을 "우리"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끕니다.
비록 자기를 배척하고 사지로 몰아낸 형들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소속과 생명의 원천인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을 돌보시는 하느님은 그가 우여곡절을 견뎌낼 수 있게 지탱해 준 구심점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형들의 잔인한 죄악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큰 믿음과 신뢰가 과정 안에 있었던 아프고 슬픈 상처를 치유해 형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용서는 충분히 사랑받으며 치유받아 과거를 재해석할 내적 힘이 무르익으면 가식없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첫 파견에 나선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대와 달리 행여 배척과 거부를 당하더라도, 하느님의 돌보심과 섭리를 믿으면서 묵묵히 가야합니다.
아직 하느님을 맞이할 "때"가 되지 않은 그(그 고을)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날 때, 원망하지 않고 온유와 평화를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들과 순수한 용서와 화해를 나눌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진정한 "우리"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특별나지도 않고 평범하기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 이제 그분의 파견을 받은 "평화의 사도"가 되신 벗님을 축복합니다.
거저받은 은혜를 거저 묵묵히 나눔으로써 파견하신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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