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7.17.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dariaofs 2019. 7. 17. 05:36



오늘 복음은 아버지께 드리는 예수님의 감사 기도로 시작합니다.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0,25)


철부지! 세상이 인정하는 지혜와 슬기를 갖추지 못한 이들, 공식적으로 지혜와 슬기라고 일컫는 학문에 접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


당장 시급한 생계유지에 매달리느라 현학적인 이슈는 떠올리기조차 버거운 이들, 누구에게도 지혜와 슬기를 청하는 질문을 받아보지 못한 단순하고 소박한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신비가 열리고 있는데 대해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계십니다.


당대의 내노라 하는 바리사이, 율법 학자, 최고의회 의원들에 속하지 못하는, 부족하고 투박한 당신 제자들이 한 걸음씩 아버지의 진리 안으로 다가가는 과정에 스승인 예수님께서 더할 나위 없는 감사를 올리시는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마태 10,27)


아버지만이 아들을 아시고,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이만이 아버지를 압니다. 아버지를 알 수 있는 특권은 예수님께 달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시는 이들만 아버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곧 "철부지"입니다. 그가 세상 지혜와 슬기로 가득 차서 자기의 앎을 주장하는 세상의 학자가 아니라 "철부지"라서 예수님이 그에게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제1독서는 모세의 부르심 장면으로,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무렵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탈출 3,1)


그런데 이 첫 구절이 이미 탈출기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백성을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시나이로 갔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두려워 주저하는 모세의 모습이 이어지겠지만, 그런 그의 망설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느님은 이미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탈출 3,12) 그리고 실제로 이 일은 이루어집니다.(탈출 24장 참조)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40년을 살다가 살인죄로 도망쳐 미디안 땅에서 목자로 40년을 삽니다.


그리고 80세가 되어서 부르심을 받고 파라오에 맞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오지요. 그렇게 광야에서 40년을 지내고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둔 채 숨을 거둔 때가 120세(신명 34,7 참조)입니다.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탈출 3,3)


하느님께서 타오르되,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길로 나타나시자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갑니다. 이방인이고 살인 죄인으로서 낯선 곳에 몸 붙여 산 긴 세월은 그를 보다 단순하게 낮추어, 신비에로 다가갈 줄 아는 이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탈출 3,4)


주님과 모세의 시선이 서로를 향합니다. 모세는 놀라운 광경을 보기 위해 떨기나무 속 주님께 다가가고, 주님은 당신을 보러 오는 모세를 보십니다. 관상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다가서는 순간은 찰나인 듯 영원합니다.


물리적으로 좁혀질 듯한 거리나 시간도 무한대로 이어집니다. 이 "봄"이 교차하는 가운데 말씀이 등장하십니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6) 이 말씀은 "봄"을 "앎"으로, 그리고 "참여"로 확장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소개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모세에게 밝히십니다. 그리고 그를 당신 일꾼으로 세우십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탈출 3,11)


모세의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조심스레 아뢰는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집트 왕자, 의협심에 불타올라 살인을 저지르는 자, 동족을 가르치려 들던 이의 톤이 아닙니다.


미디안의 40년은 그를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하고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상은 철부지에게 온갖 지식과 처세술을 채워 똑똑해지라고 재촉합니다.


반면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의 온갖 지식과 처세술을 비워내고 다시 철부지가 되라고 초대하지요. 모세는 그렇게 되기까지 40년이 걸렸고 마지막 비움이 완성되기까지 광야에서 40년을 더 닦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여러분도 체험하듯이 삶에서 우리에게 허락되는 약함, 죄스러움, 낯설음은, 강하고 결백하고 능력 충만할 때보다 우리를 더욱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철부지들에게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은 모자라고 부족하고 죄인인 우리 철부지들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세상에 감추어진 신비가 꾸밈 없고 단순한 마음으로 불길을 향해 다가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기에, 아직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과 한 목소리로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고 외치는 날이 오리라 믿고 희망합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철부지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